그녀와 하룻밤 /임정자
사는 동안 힘든 순간을 술로 대처하지 않았다. 처음 소주를 먹을 때는 쓰디썼다. 한두 잔에 얼굴 붉어지고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겨 자주 먹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소주 맛이 달다.
내 나이 스물하나, 광주에서 재수학원에 다녔다. 학교 다닐 때 하지 않았던 공부를 뒤늦게 하려니 조급했다.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서라기 보다 친구들이 대학생인 게 부러웠다. 학원에 적응하게 되자 나이 든 사람들과 조금씩 말을 섞게 되었다. 대학 가겠다는 사연도 각각이다. 공무원 생활을 접고 꿈을 위해 공부하던 중년 남자, 지방대학이 맘에 안 들어 서울로 가겠다는 그 남자, 아이 낳고 하고 싶은 게 생겼다던 그 여자, 시험 점수로 선택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간호대학에 가겠다는 동갑내기 등 이유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여름이었다. 늘어진 엿가락처럼 어깨가 처지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졌다. 공부할 의욕도 시들해져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언니는 도시락을 두 개 싸 두었다. 할 수 없이 그것을 들고 조금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학원은 가기 싫고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버스는 탔고 내려야 할 정류장은 지나쳤고 버스 종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 충장로에서 내렸다. 거리는 한산했다. 무작정 걷다가 극장이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고 싶었다. 표를 사 들고 극장에 들어갔다. 듬성듬성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석진 곳으로 갔다. 영화 <미션>을 보았다.시간 가는줄 모르게 영화는 끝났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자막이 사라질 때까지 들려오는 음악의 선율이 좋기도 했지만, 일찍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가서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그냥 공짜로 보면 안 되겠냐 물었다. 그 사람은 단칼에 거부했다. 용돈이 궁한 시절이라 잠시 고민하다 표를 샀다. 상영할 시간이 일러 로비 구석진 의자에 앉았다. 배가 고팠다. 그 사람에게 다시 다가가 도시락을 먹어도 되겠냐 묻자. 뭐 이런 아이가 있나 싶었는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가방을 등에 메고 손에 들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는지 혀를 차면서 매점을 가리키며 아주머니에게 가보라 했다.
밥을 먹고 극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중간쯤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들어온다. 빈자리가 많아 가방을 옆자리에 놓았다. 한 여자가 내게 오더니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냐는 말과 동시에 내 가방을 안고 앉아버렸다. 약간 무례해 보였던 행동이 아직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다른 곳으로 갔으면 했다.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곁에서 보겠다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친구와 다정하게 영화 보는 모습이 되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왔느냐고 묻더니 자기 이야기를 한다.
당돌하고 야무지게 보였다. 충북 제천에서 왔고, 오빠는 광주 신학대학에 다닌다. 그를 만나기 위해 처음 광주에 왔다가 막차를 놓쳤다. 내일 첫 차 시간을 알아 놓고 중앙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여관을 잡아 놓았다. 방에 혼자 있을 수 없어 영화 보러 왔다 했다.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나는 빤히 쳐다봤다. 머리는 단발에 눈은 동그랗다. 넓죽한 얼굴에 코가 오똑하니 예뻤다.
<미션 > 영화는 선교사가 원주민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한 신부 이야기였다. 자신을 향해 총칼을 겨누어도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걸어가는 모습, 오보에를 연주하는 가브리엘 신부의 무저항 소통 등 여러 명장면이 뇌리에 스치면서 잔잔한 음악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흐느끼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옆을 슬쩍 봤다. 그녀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훌쩍거린다.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도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지막 음악까지 다 듣고 일어섰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뭉클했다. 극장 안을 꽉 채운 '넬라판타지아' 노래는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그녀와 함께 극장을 나왔다. 여관 보다는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복잡한 마음을 전달하려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가 광주에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특별하게 아는 곳이 없었다. 충장로에서 중앙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해 걸었다. 그 당시 터미널 인근 오리탕 집이 많았다. 낡고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북적 거리는 식당은 빈자리가 몇 개없었다. 그녀는 앉자마자 전라도 음식은 맵고 시원한 맛이라면서 주인에게 청양고추 송송 썰어 달라고 했다. 오리탕에 넣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전에 만난 친구 같았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충북대 1년을 다니고 휴학했단다. 그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의 울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훗날 낯선 곳이 무서웠는데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웠다며 횡성 성도미니코 수녀원에 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우리는 여관 앞 슈퍼에 들어갔다. 그녀는 새우깡에 소주를 들고 나를 보았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난 암묵적 동의로 고개를 끄덕였다. 까만 봉지에 그것들을 담고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쓰디쓴 맛이다. 목이 뜨거웠다. 얼굴도 몸도 붉어졌다. 열감이 확 올라왔다. 그녀는 좀 먹어 본 듯했다.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 술은 먹었고 취기는 올라오고 밤은 깊어지고 진실을 말하기에 좋은 분위기였다. 그녀는 성당 오빠를 오랫동안 사랑했단다. 그것도 짝사랑. 대학생이 되고서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 사람은 수도자의 길을 선택해 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단다. 그 말을 들은 그녀도 쉽지않은 수도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사랑한 사람을 만나러 광주에 왔다 했다. 아, 사랑! 그날 밤 낯선 공간에서 그녀와 마신 소주 맛은 강렬했다.
첫댓글 그 분이 수녀님이 되셨을 지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요. 되돌아보면 많은 인연이 있었네요. 삶이 오묘해요.
네, 수녀님되셨어요.
'훗날...' 부분에 넣어봤어요. 문맥이 안 맞는거 같아 뺐는데...
아직은 표현하는 게 어렵네요.
선생님. 정말 한 편의 소설같아요.
글로 표현하면 지현샘도 소설같은 삶을 살고있죠. 자신을 멀찍이 함 봐봐요.
@임정자 네.
참 인연은 묘하네요. 낯선 이와 친구가 되어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영화같은 일이 있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수도자로 사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겠는데, 스물한 살 처녀 이야기로 보면 애틋하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수 시절의 답답함, 집도 학원도 가기 싫은 마음에 완전 공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