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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대할때에 전체의 핵심 주제를 보지 않으면 어렵기만 한것이 아니라 두려운 말씀입니다. 새로운 일이 아니라, 이미 사도요한때에 일어났던 일이고,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이것이 주님 오실 재림때 까지 장차 되어질 일들을 기록한 일입니다. 지금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당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부분들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확인케 하신 부분이 많습니다. 만물 창조 이후에 인간 역사에 전 세계적으로 환란을 당한 때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 역사 속에서 제 1차 세계 대전도 있었고 2차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환란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로마의 열왕들이 역사에 찾아 볼수 없는 기독교를 핍박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마다 항상 성경 학자들은 요한 계시록 시대에 적용해서 말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에 말씀 하셨죠. 마지막 때에 많은 대환란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 하시면서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특히 세대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요한 계시록을 한 사건 시대에 적용해서 풀어 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짐승의 표 받는 것. 666. 항상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려울때 나오는 것이 그겁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펜데믹 속에 또 의학자들이 이렇게 백신을 빨리 만든 역사가 없을 정도로 빨리 만들어 졌죠. 그러니까 대번 백신 주사를 가지고 세대 주의자들이 그렇게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바코드, 이게 또 베리칩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지나니까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 일이 됐습니까? 지금은 그런 말 못하거든요. 미쳤다고 하죠. 이게 세대 주의의 맹점 입니다. 어떤 사건, 거기에 못을 박는 겁니다. 그럼 속이는 것이거든요. 백신도 그와 유사하게 관련된 가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거 맞으면 2년 안에 죽는다. 아직 2년이 안왔으니까, 안 죽으면 우스꽝 스러운 것이 됩니다. 참 이게 기독교가 문제입니다. 그런거 보면 차라리 믿지 않는게 더 낫겠다. 솔직히 그런 부분들도 있어요. 차라리 성경 모르고 예수 믿을수 있다면 더 나을것같아요. 그런다고 해서 또 계시록에서 말해 주는것 처럼 믿는 자들을 통한 이기는 자의 축복을 받을수 있겠습니까? 짐승의 표 666도 그렇지만 십사만 사천 이것도 이단들이 사용하는 특정한 단어거든요. 666이나 십사만 사천도 상징적인 사용과 표현인데 이것 가지고 자기들이 옳다는 것 속에 억지 해석을 해서 맞추는 겁니다.
제가 앞서 말씀을 드릴때 보좌에 일곱 영, 칠수에 대해서 말씀 드렸죠. 왜 일곱 영이라고 했을까? 그냥 충만하고 완전하면 되는데 일곱영. 이게 상징 적이고 비유적인 설명을 하는 겁니다. 충만한 의미를 칠로 나타내는 거다. 왜 그렇게 사도 요한이 기록했습니까? 두 가지 의미에요. 첫째는 그때 당시 시대적 상황 입니다. 이미 네로 황제 때 부터 핍박이 시작됐고, 영화에서도 많이 보셨잖아요. 68년에 네로 황제가 자살 했거든요. 그 다음에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이 때 부터 대 핍박이 시작된거예요. 사도 요한을 저 밧모섬으로 유배 보내죠. 귀향 살이로 보낸것이 도미티안입니다. 시대적 상황이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두번째 이유인데, 첫째는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은어들, 상징이나 비유를 들어서 은밀하게 물고기를 표시하듯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상징을 사용 한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비유를 말씀 하십니다. 씨뿌리는 비유 부터 시작해서 비유가 나오잖아요. 제자들이 물었죠. 왜 비유로 말씀 하시냐고, 그때 하신 말씀입니다. 알아들어야 할 자는 더 잘 알아듣게 하려고, 그 말은 몰라야 할 자는 전혀 몰라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을 대할때 두가지 속에 시대적 상황과, 요한 계시록은 그 시대에 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믿는 자들 속에 하나님은 그 의미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해서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도, 기록된 대로 숫자 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거든요. 십사만 사천 숫자가 어떻게 나왔냐, 이스라엘 열두 지파, 야곱의 열두 아들이잖아요. 그때 부터 열두 지파가 계보로 진행 되잖아요. 열두 지파, 매 지파 마다 만 이천 명씩 거기에 보면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산이 나오는 것이 십사만 사천 명. 구원 받은 숫자라고 신천지는 못을 박죠. 그런데 그 기록이 되어있는 계시록의 말씀을 보면 그 뒤에 분명히,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셀수 없는 숫자라고 했어요. 상징성의 숫자를 갖다가, 전체 구원 받은 성도의 숫자를 십사만 사천이라는 완전수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이단 들이, 신천지만 그런게 아니라 정통 교단 안에서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걸 사용 하냐? 숫자가 정해 지면 사람들이 급해져요. 또 불안 하죠. 왜냐하면 그 숫자에 내가 들어가냐 못들어가냐 대입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신천지 같은 경우는 거기에서 훈련 시키는 것을 받고 시험 치르고 하면 십사만 사천 숫자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것이 신천지가 제일 잘 써먹는것이 십사만 사천이 안 찼을때는 잘 써먹었어요. 사람들이 급해지기 때문에 저 숫자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지난 번에 코로나 사태 일어났을때 신천지 교인들 숫자가 드러났잖아요. 십사만 사천 훨씬 넘었거든요. 이만희가 십사만 사천 차면 재림 온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안 왔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어떻게 말을 바꾸냐, 여기 가짜가 있다. 배도자가 있다. 야 진짜 얼마나 머리가 영특한게 아니라 교만 한거예요. 이렇게 해서 결국은 그 집단을 사실 사람들을 속이는 거죠. 신천지만 그런게 아니라 이단들 속에서 항상 십사만 사천이 나왔어요. 십사만 사천 너가 들어가라 그래 밖에서 난 괜찮다고 해. 참 그런게 먹힌다는 것이 안타깝잖아요. 그게 미혹의 영이라니까, 사람은 잡히면,, 여러분 보이싱 피싱도요.. 중국에서 길에서,,, 너 이상하다. 너희 집에 큰 일이 일어나게 생겼다. 너 빨리 가서 돈 갖고 와라. 그런데 사람이 잡히니까, 돈 갖다 주니까, 돌아 보지 말고 그대로 가. 한 참 가다가 내가 왜 그랬지? 이렇게 된겁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
인생이 그런 일들 속에서 사람이 속히면 그렇게 되는데 영적인것 갖고 속히면 어쩔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양 극단으로 사람들이 빠져요. 완전 잡혀서 그냥 끌려 가던지, 완전 개 무시 하면서 이제는 진짜 반 극단 주의로 가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게 나타나고 있거든요. 그런 만큼 남의 얘기를 들어도 나와 아무런 상관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어느날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만큼 이미 늦었어요. 제가 그래서 앞서 말씀 드렸잖아요. 사도 요한도 하나님이 보여주셨으니까 다 기록해서 증언했다고 했을 뿐이지 증언 했던 사도 요한도 제대로 알고 한게 아니라고, 하물며 우리겠습니까. 전하는 자도 나름대로 깨닫고 은혜 받고 전한다고 해도, 인터넷에 보시라니까 공부 하다가 머리가 돌 지경이 되니까, 결론 적으로 다 참고 해서 자기 주관 자기 견해를 말하는 거예요. 저도 마찬 가지에요. 내가 특별히 계시 받아서 하는게 아니고, 저는 솔직히 요한 계시록 어느날 보니까 내게 중요한 것이 안되더라고, 모르는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그런 것이 내게 중요치 않더라고, 그래서 내가 시작할 때 말씀 드립니다. 이게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라고, 사도 요한때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또 주의 재림때 까지 장차 되어질 일이다. 제가 그랬죠. 저 창세기 3장 부터 시작된 일이라고, 마귀와 하나님과의 싸움이잖아요. 그런데 그 일이 인간이 그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결국 그 싸움은 인간을 통해서 일어나요. 저 창세기 부터 시작된거라니까. 제가 그랬잖아요. 노아 홍수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시대에 종말 사건 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올때에 노아의 때와 같겠다고 말한 겁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도 재림 때와 같은 거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연결성을 갖고 보지 않으면 거기에서 이단이 나오는 겁니다. 내가 왜 요한 계시록이 중요한 서신 서인데 급해지지 않았냐. 창세기가 바로 풀리기 시작하니까. 시작이 바로 되니까 성경 66권이 바로 풀려지는 겁니다. 그런 만큼 믿는 자들의 시작과 과정이 성경과 함께 내 인생속에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속에 풀려져 가니까 계시록이 몰라도 상관없어지는 겁니다. 이단 들일수록 요한 계시록을 때어 놓고 중요한 것으로 만들 거든요. 마치 요한 계시록 모르면 재림때 모르면 남는 자 처럼 됩니다. 그게 종교에요. 내가 믿다 보면 그렇게 되요. 내가 믿는 것이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일이지. 이건 누구도 다 똑같다고, 자기는 그렇게 안 믿어도 사실 이라고, 그 다음 부터가 문제에요. 우리는 자꾸만 종교생활을 강요 했거든요. 말씀을 증거 했다니까. 그러면 듣다 보면 종교가 반응 되어져요. 그런 만큼 은혜도 있는 만큼은 이게 먹힌다니까. 그럼 한 참 믿다 보면 그렇게 믿고 있는 자신이 발견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들도 요한 계시록을 그렇게 말할수 밖에 없는 겁니다.
성도들도 요한 계시록을 대할때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만약에 요한 계시록을 몰라서 우리의 구원의 문제가 된다. 계시록이 기록되기 전에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거 하나만 놓고 봐도 얼마나 우스꽝 스럽습니까?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에요. 살아 있음이 무엇을 의미 합니까? 성취된 말씀이라고 하죠. 말씀 성취가 뭐에요? 구원 성취에요. 그 구원을 누가 이루어 갑니까? 하나님의 역사거든요. 누구를 통해서 나타내세요? 믿는 자들을 통해서 나타내시는 거예요. 내가 믿는 거지만 하나님이 믿게 하시는 겁니다. 내가 믿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믿게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풀려져서 가다 보니까 어느세 요한 계시록 중요치 않냐? 66권과 똑같이 중요하더라고, 여러분 성경 66권 어떻게 다 배워서 알아서 축복을 받겠습니까? 성경 죽을때 까지 배워도 못 배워요, 아무도 성경 다 알자가 없어요. 잘 못들으면 박목사는 성경 무용론을 만드는 거냐? 그렇지 않아요. 또 누구 못지 않을 정도로 성경 갖고 말씀을 증거하죠. 앞서 말씀 들리는 것 처럼, 왜 요한 계시록이 사람들이 두려운 책이 됐냐. 왜 성경 하나님의 말씀 66권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요한 계시록이 특별한 책이 됐냐? 이게 지금 교회 속에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다니까. 믿는 자들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니라고 하면서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마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누구도 다 종교 속에서 믿을수 밖에 없는 존재니까 조금씩 복음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 로 은혜를 받아 오는 만큼 여러분 속에서도 요한 계시록이 종교 차이가 있겠지만 요한 계시록을 대하는 여러분 자신이 확인이 될것입니다. 그렇게 정해 놓아야 기독교 안에 가둘수 있죠? 십사만 사천만 구원 받는다. 빨리 예수님이 재림 할수록 그 확율이 높아지는 거거든요. 늦어질수록 인구가 증가하니까, 내가 들어갈 확율은 적어지는 거죠. 맞아요. 예수님 승천 하시고 사도 시대 때에 왔으면 거의다 들어 갔을지 몰라요. 아마 그랬다면 요한 계시록 펴보지도 못하고 예수님 맞이 했을지 모르는데, 지금은 지식과 정보화 시대이다 보니까 신앙 적인 지식도 너무나 쉽게 얻을수 있습니다. 한 20년 30년 전만해도 요한 계시록 자료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책이 얼마나 많이 보급되었습니까. 그래서 정말 교회가 좋아졌습니까? 계시록 주제의 말씀대로 믿는 성도들이 정말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일이거든요. 이 실제 속에서 하나님이 어느날 내 인생속에 찾아오셔서, 구원을 시작 하시고, 주 예수의 날까지 그 분이 하고 계신 이 실제 속에서 이것이 내 인생과 상관없으면 알고 모르고 상관없어요. 요한 계시록 남이 알기 힘든 만큼 쉽지 않은데 좀 안다. 뿌듯함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특징 계시록을 굉장히 강조 합니다. 계시록 안에 있는 내용들 666, 사람들 속에 뭔가 반응을 불러 일으킵니다. 계시록과 그 내용 아니라도 얼마나 그 내용 믿었냐고, 남 보다 조금 깨달은것 갖고 남 보다 조금 안다는것 갖고, 그러니까 우리 상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데 복음의 실재만 보지 못하고 자신만 모르고 있는 거예요.
솔직히 제가 계시록 안하려고 했어요. 왜? 몰라도 돼. 한가지 계시록이 우리에게 말하는게 뭔지 아세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장차 일어날 일 속에서 인간 역사가 무엇을 말하는가? 환란 역사에요. 시대 마다 크게 적게 이게 인간속에 환란이 커진다는 사실이에요. 중요한 것은 뭡니까? 이제 나갈 겁니다.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이게 중요한 겁니다. 우리 예전에 복음전하다가 당하는 환란만 예수의 환란 만들었거든요. 내가 은혜 받고요, 진짜 먼저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룩하게 보이고 다 천사 같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중에 주의 종들, 말씀 맡은 자들, 이 귀한 천국 복음을 전하는게 얼마나 귀하게 보이던지, 야 하나님이 저들을 얼마나 축복 하실까? 그 후손 까지 얼마나 복을 주실까? 솔직히 저는 그렇게 믿었거든요. 우리 불편한 진실 좀 말합시다. 그게 긍정적인 것만 본다고 해서 좋은 것만 아니에요. 꼭 부정적인 것만 말해서 모든 것을 부정으로 만드는 것도 잘못된것이에요. 속일수 없잖아요. 긍정만 보고 긍정이라고 해도 속이는 거고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 장차 일어날것이니까, 선교 현장을 가서 봐도. 아니 로컬 목회 현장속에 주의 종들을 봐도, 난 가서 봐도 이게 뭐지? 주의 종들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만 아니라, 그렇게 주의 몸된 교회에 충성하고 자기 재산을 다 바치고, 난 그 사람 어마어마한 축복을 주실줄 알았거든요. 이건 또 뭐냐? 서울 대림동에 사시는 어느 장로님이에요. 어느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냥 바람과 함께 사라지면 되는데, 나중에 그 내용을 알고 보니까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 맞아요 그런 사람들만 있는건 아니죠. 진짜 복음을 위하여 믿음으로 헌신하고 자신만 아니라 후대 까지 복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항상 잘된것 좋은것 긍정적인것을 가지고 종교적으로 이용해요. 잘 된것 하나님이 하셨겠죠. 그럼 실패 했으면, 하나님이 한것 아닙니까? 이건 얼마나 표상적으로 나타난 것만 보고, 그것도 자꾸만 맞춘다고, 그래서 성도들은 자꾸만 감추는 겁니다. 자신의 인생의 좋은 이미지가 될수 없는 것들은 다 감추게 되어있어요. 그러면서 자기에게 조금 유익되는 것들을 진실만 말해야 하는데 과대포장 거짓까지 만들어서 자신을 나타내는 겁니다. 교회 속에서도 그렇고, 믿는 사람 거의 그렇게 삽니다.
신년집회 8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