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통을 이어받다 / 조영안
내겐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두 사람이 있다. 기쁜 일은 가장 먼저 나누고, 속상한 일은 언제든 마음 놓고 하소연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향한 내 애정은 조금 특별하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것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아무리 혈육이라도 속마음을 온전히 터놓기란 쉽지 않은 법인데, 시가에서는 막내 시누이가, 친정에서는 큰올케가 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남편은 3남 3녀 중 맏이다. 형제들 모두 다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중 막내인 시누이는 가까운 순천에 살아서 자주 왕래한다. 내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살펴 주는 덕에 내 마음이 편하다. 간호사로 일하는 시누이 덕분에 여러모로 도움을 받으며 큰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
50대에 홀로 되신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집안을 일궈 내셨다.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후, 당시 미혼이던 4남매를 모두 시집 장가 보내시느라 당신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 막내 시누이가 결혼한 뒤 형제 모임이 만들어졌다.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어머니께 들어가는 경비는 모아 둔 계 통장에서 쓰기로 뜻을 모았다. 그 세월이 벌써 35년을 훌쩍 넘었다.
모임의 시작과 함께 총무는 막내 시누이가 맡았다. 처음엔 매달 3만 원으로 시작했던 불입액이 지금은 10만 원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병원비며 집안 경조사에 들어가는 지출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생만 하신 어머니의 건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큰 수술을 받으셨고, 여기저기 탈이 나기도 하셨다. 어머니께서 센터에 다니기 시작하시면서 계 모임 통장과 카드가 드디어 내게로 넘어왔다. 손에 쥐어진 통장의 무게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알뜰살뜰 알차게 꾸려온 시누이의 정성 덕분이다. 나 역시 그만큼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며칠 전에는 친정 큰올케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님, 계좌 번호 좀 문자로 알려주세요." 의아해하는 내게 올케는 돈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친정 4남매 모임의 총무는 큰올케다. 그동안 모인 돈이 제법 넉넉해져 일부를 나누어 입금하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단톡에서 나온 내용이라 어쩔 수 없다며 올케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저 살림 잘 산 거 맞죠?" "그래, 맞다 맞아. 정말 고생했다."
도시에서 곱게 자란 올케는 유머 감각이 있고 애교도 많지만 겁도 잘 낸다. 예전엔 시골 마당을 지나가는 쥐를 보고 기겁하며 방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그랬던 올케가 점점 용감한 맏며느리가 되어, 옛 방식을 고집하시던 시아버지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견뎌 냈다. 친정엄마가 쓰러지셨을 때도 집안 행사를 도맡아 척척 해내서 나 역시 큰 힘을 얻곤 했다. 살림을 잘 살아 준 올케 덕분에 13월의 보너스를 두둑이 받은 것처럼 마음이 신나고 든든하다.
시누이나 올케는 나보다 손아래지만 늘 배울 점이 많다. 총무라는 직책을 수십 년간 맡아오면서, 더러 서운해 하거나 불만스러워 하는 이들을 잘 다독이고 이해시켜, 아무 탈 없이 여기까지 이끌어 온 그 지혜가 참으로 대단하다. 어쩌다 보니 나 역시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지만, 두 사람에게 배운 대로 맏이로서 최선을 다해 이 역할을 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