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1967.7.3-2009.7.12) ... 그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갔다. 희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해발 8125m)을 정복하고
하산길에 일어난 추락사고라는 짤막한 뉴스를 접하는 순간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아침,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씨로 심난한 가운데 접한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고미영, 그는 멋진 여인이었다. 산악인의 꿈을 안고 부안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인천 인성여고로 전학을하여 본격적인 산 사랑이 시작이 되었다. 160cm의 키에 48kg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그의
에너지는 보통 여성으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괴력이다. 언젠가 고미영 스페셜을 접하면서 정말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 그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 산에는 무수한 진리가 들어 있다. 수많은 진리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산을 찾는 등산인들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고미영은 그런 산을 즐기는 차원을 떠나, 희말라야 해발8000m 이상이 되는
14좌를 정복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훈련한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무리한 계획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세계 최초로 14좌에 성공한
전설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도 16년의 세월 동안 14좌를 성공할 만큼 기나긴 기다림과 충전이 필요했다. 14좌를 정복하는 동안 그의 목표는
'살아 돌아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고미영은 금년에 7좌를 등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쉴 사이 없이
도전했던 것이다. 그 경쟁을 부추겼다. 오은선을 지원하는 불랙야드. 고미영의 스폰서 코오롱, 언론의 과열경쟁의 부추김...
5.1일
마나슬루(해발 8163m), 5.18일 칸첸중가(해발 8586m), 6.9일 다울라기리(해발 8167m), 7.11일 낭가파르밧(해발
8125m)의 4좌를 한시즌에 이룩한 것은 전무후무한 것이며 휴식 없는 이런 무리가 비극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비판이 일고 있다.
8000m 이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고미영이 늘 말했드시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라는 그의 소신을 지키지 못해서일까? 산과결혼한 여인, 그는 희말라야 품에 안기어 영원히 잠들었다.
그는 등반가이기 전에
국내 여성 스포츠클라이밍의 1인자였다. 지난 97년 암벽등반을 위해 10여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해
아시아챔피언십 클라이밍 대회에 출전해 6연패를 하고 2004년까지 11년간 암벽 등반가로 활동하여 스포츠클라이밍 세계랭킹 5위까지 올랐다. 그
후 2005년 파키스탄 드리피카(해발6047m) 등정을 계기로 본격적인 세계정상 등반의 꿈에 도전하였다.
여성 최초로 희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기록에 도전하며 11번째 도전에 성공한 낭가파르밧을 끝으로 비운을 맞고 말았다. 12좌 등정에
성공한 오은선(43. 불랙야드),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덴부르너(39)와 삼파전의 선의의 경쟁은 여기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1967년 7.3일생, 41세의 삶으로 희말라야에서 잠든 여인, 캠프2를 100m 앞두고 7.11일 오후 9-10시쯤 고정로프가
없는 10m 구간을 통과하던 중 추락했다. 고미영씨가 추락한 이 지점은 해발 6200m 지점으로 '칼날능선'으로 불리워지는 곳으로 보통 하산할
때 산악대원들끼리 로프에 몸을 묶는데 이곳은 평소 눈사태와 낙석이 많아 로프를 사용하지 못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낭가파르밧은 '벌거숭이
산'이라는 뜻이며 이곳을 3차례나 오른 엄홍길 대장은 전구간이 가파르며 암벽 구간도 어렵고 위험하다. 베이스캠프에 서면 정상부근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고 말한다.
너무도 안타깝다. 어여쁜 얼굴이 동상으로 시퍼렇고, 여성으로 멋도 부리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도 좋으련만 그는 더 큰 꿈을 향해,
세속의 영화를 버렸다. 그의 크고 원대한 꿈을 향한 지칠줄 모른는 도전을 누가 말릴손가? 온 국민의 영웅으로 살기를 원했던 고미영, 그 추위에서
못다한 꿈을 접고 누워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도전정신, 아름다운 꿈을 향한 불타는 열정은 우리 가슴 속에, 전세계 산악인의 마음 속에
'영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짧지만 굵은 삶과 영원한 산 사람으로 살은 고미영 대장, 영원한 명복을 빈다.
그의
편지가 소개되었다. 아버지께 보내는 희망편지, 그 편지가 이제야 아버지께 배달되어 읽게된 아버지.. 그의 효심을 들어보자.
아버지!
신발끈을 고칠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저도 중년이에요. -중략-
어렸을 적 10년 넘게
이장을 하시며 동네 사람들을 마당 가득 채우고 새마을 운동에 관해 연설하시던 때가 생각나요. 마이크 없이도 아버지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죠.
-중략-
아버지!
막내딸이 위험한 곳만 골라 다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산등반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바로
아버지인 걸요. 제가 희말라야의 장관을 보고, 고통스런 시간들을 잘 견뎌낸 건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강인한 의지와 채력을
물려주신 분, 바로 아버지 아니시던가요. -중략-
희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후, 동네잔치를 하고 싶어요. 큰 오바가 서울의
명문대에 갔을 때처럼요. -중략-
아버지, 다음 생신 때 찾아 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막내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