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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념공원~봉오리산
* 2021.03.13./ 사진 100 매
🟫 오늘의 코스 ;
대연역 3번 출구-> 1️⃣ 부산박물관-> 2️⃣ 조각공원-> 3️⃣ 유엔기념공원 (후문 입장하여, 둘러 보고 정문으로 퇴장) -> 4️⃣ 평화공원과 대연수목전시장 산책 후 인근 식당에서 점심 -> 5️⃣ 동명불원-> 6️⃣ 봉오리산(일명 보오지산) -> 용호동 하산 버스로 귀가.(부경대 앞서 저녁), 2만보 이상 많이 걸었다.
[중요 내용]
▣ [시] 목련화 / 이재익
▣ 부산박물관 전시 유물중 <초량왜관>의 역사에 대하여
▣ 부산의 독립운동가 5인 안내(김약수는 빼라!)
▣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와 유엔군 전몰장병수
▣ 유엔군 위령탑, 한국군 전몰장병수는?
▣ 동명불원 연혁
▣ 봉오리산에서 본 부산북항 등 전망
봄꽃
자목련 (추은수 촬영). 북극바다신 부인의 혼
자목련 (추은수 촬영)
* 전설에 의하면, 백목련白木蓮은 북극바다신을 사모한 어떤 공주의 혼이며, 자목련紫木蓮은 북극바다신 부인의 넋이다.
백목련, 공주의 혼.
< 목 련 화> / 이 재 익
눈 속에서 보송보송 꽃눈을 키워
잎 피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고
사람보다 먼저 가슴을 설래네.
흰색 자주색 크고 고운 꽃잎
키 크고 유순한 기린 같아라
찬바람 속 의연한 자태는
북극을 연모하던 진화된 몸짓*
연모戀慕의 정을 무엇으로 달까
꽃샘 추위 속에 목련화에 간절하여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가늠하리라.
새 봄에 목련과 함께 먼저 앓으면
여한餘恨의 목련* 요정이 도와 나중에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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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화 중국 전설 ; 중국의 어느 공주가 북쪽 바다의 신을 사모하여 찾아갔다.
바다의 신은 이미 아내가 있었다. 실망에 빠진 공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가련하게 여긴 북쪽 바다의 신은 아무 죄도 없는 아내의 목숨도 거둬서, 자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어 주었다.
백목련白木蓮은 공주의 혼이며, 자목련紫木蓮은 바다신 부인의 넋이다.
아름다운 목련에는 이렇게 슬픈 전설이 있다.
* 이재익 시집 <<함께 가는 길>> 2011,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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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꽃(자두) 추은수 촬영, 전주 이씨 오얏리 李, 이 꽃을 성스럽게 여긴다. 다른 이씨도 마찬가지.
자두꽃
자두꽃, 자두가 맛있게 열리겠다.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사태가 졌다.
진달래
명자꽃
민들레
수선화
유엔기념공원 주위, 평화공원
부산박물관
부산박물관
수많은 유물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소개한다.
부산박물관, 만덕사지삼층석탑
부산박물관 야외. 석불은 언제 봐도 자비로우시다.
가야, 신라 토기.
만덕사지 출토 치미(절 지붕 장식 기와), 잘 수리해서 복원됐네.
수막새 기와
자기 불상(스님?). 노란 것은 눈물인가?
* 소박하지만 엄숙하다. 깨달음에서 오는 큰 기쁨의 눈물(법루,法淚)인가 봅니다.
백자 연꽃넝쿨무늬병(조선), 현수명 기증.
내가 보기는 나리꽃 같은데, 연꽃이라고 한다. 연꽃이 넝쿨이 있나? 연꽃과 넝쿨~
백자철화용문호, 조선후기, 현수명 기증
▲청자 국화무늬꽃모양 찻잔, 고려, 현수명 기증
부산박물관
초량왜관의 역사에 대하여
▼ 부산박물관은 특히 임진왜란 항쟁의 역사, 대일 외교사절인 통신사 관련, 대일무역 장소인 왜관, 임시수도 시절 등의 자료가 특징이 있다.
* 초량왜관 ; 왜구 회유 위해 무역장소 제공. 오륙도와 영도가 보인다.
[ 왜관의 변천]
1) 세종때 삼포개항 ; 제포(진해 웅천), 부산포, 염포(울산)의 하나로 연 부산포
2) 1601년, 임진왜란 직후 임시로 마련한 절영도(영도 옛이름) 왜관
3) 1607년, 두모포 왜관 ; 배가 정박하기 쉽지 않고, 좁다고 왜인이 끈질게 이전 요구.
두모포는 지금의 기장 월전이다.
4) 1678년(숙종 4년)에 초량 왜관 시대를 열었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으로 일본에 문호를 개방해서 개항할 때까지 초량왜관 체제가 유지되었다.
* 초량 왜관은 용두산을 경계로 서관(일본 사신 사절이 이용), 동관(상주, 무역)으로 나누어 진다.
* 동관에서는 쓰시마인들이 상주하며 우두머리를 관수라 하였고, 가옥과 상점이 많았으면, 개시대청에서 무역이 이루어졌다.
[초량 왜관의 모습]
1) 서관의 초량객사는 일본에 파견되는 우리나라 통신사나, 일본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곳이다.
일본 사신은 초량객사의 조선국왕 위패에 예를 올리고,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나, 동래부사와 만나서 외교적 업무를 본다.
2) 초량 왜관 동관에는 일본 상인 남자 450~500명이 상주함.
3) 무역도 하가받은 조선상인만이 왜관안으로 들어가서 실시함.
4) 동관의 개시대청에서는 한달에 6번 무역을 행함.
5) 일본인은 왜관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못함. 통제공간. 왜관 담장 밖에는 복병막이라는 조선군사 초소가 있어서 조선인과 왜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함.
6) 약조제찰비 ; 경계를 벗어난 자, 밀수 등은 사형에 처하는 등 5가지 금지조항을 새진 비석을 [약조제찰비] 라고 하고, 왜관 안과 밖에 각각 세웠다. 범죄인은 쓰시마로 보내서 처벌한다.
부산지역 중심 독립운동가들
* 하단의 사진은 실제 인물사진이고, 상단의 사진은 연출한 영상자료이다.
* 좌로부터 한형석, 안희제, 박차정, 박재혁, 김약수
▣ 안희제
* 호 백산, 1885. 경남 의령군 부림면 설뫼(立山) 천석군 안발의 장남으로 출생. 양정의숙 졸업. (26세 때)
* 1909년 대동청년당 결성. 비밀청년단체, 국권회복운동.
* 각지에 학교를 세우는 교육사업 ; 구포 구명학교, 의령 의신학교, 창남학교 등.
* 안창호 손병희 등과 의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이갑, 신채호 선생 등과 광복계책 의논, 모스크바서 3년 지냄.
* 1914년 경 부산에서 백산상회 설립, 민족자본으로 근대적 무역상 활동, 임정첩보요원 36호책으로 국내 연락책임 극비업무 수행.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로 개편~1928년까지 유지.
[참고] ; 임시정부 연통제 역할 ; 부산 백산상회, 만주 이륭양행
- 이륭양행 ; 만주 안동현 소재, 아일랜드인 조지 쇼가 경영하는 무역상의 대리점.
- 쇼는 한국독립운동자들을 후원하여 선편을 제공하기도 함.
- 임시정부는 이륭양행 2층에 연통제의 교통국 안동지부를 설치하고 국내 정보수집과 군자금 조달
* 1925년 중외일보 인수, 잡지 <자력> 간행. 중앙일보로 개칭.
* 1927년 전진한과 <자력사> 조직, 최초 협동조합운동 전개
-1931년 대종교 입교, 민족정신고취
- 1933년 만주 동경성으로 옮겨 발해농장 개간, 교포지원, 민족정신 고취.
* 선생의 최후 모습 ; 1942.11 고향 솔뫼에 신병치료차 와 있을 때 대종교의 독립운동 협의로 일본 첩보원 난베(南部大作)에게 체포되어 모란강성 경무청에 압송되어 9개월간 모진 고문을 받고,
병보석 된지 3시간 만에 숨을 거둠.
- 영제의원에 입원한 백산은 단정히 일어나 앉아 정세를 묻고는
“일제가 망할 날도 목전에 왔구나. 그들의 패망을 확신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 박재혁
부산경찰서 서장 암살 의거(1921)
* 1895 부산 좌천동 출생. 1915 부산공립 상업학교 졸업.
* 테라우찌 총독 무단정치 “한국인은 내 법률 앞에 무릎을 굽힐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택할 것인가 ?”
* 박재혁 의사는 교과서 틈에다가
“나라를 되찾지 못하고, 죽어서 어찌 단군님을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써 두고, 1917 상하이로 건너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 1920년에 의열단에 가입.
* 1920 중국인 서적상인으로 변장, 책보자기에 폭탄 세 개를 감추어 부산경찰서 서장에게 접근, 암살하고
의사도 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스스로 11일 단식끝에 순국함. 1921.5. 27세.
▣ 박차정
* 부산 동래 출신, 동래여고 전신 일신여학교 졸업.
* 1928년 근우회 선전`부장으로 광주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했고, 투옥되고 병보석 후 중국 망명, 북경 화북대학 졸업.
*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결혼, 중국에서 조선여자의용군 조직, 곤륜산 항일전투에서 36세로 전사.
* 김원봉 밀양 선영에 안장됨. (김원봉 역시 사회주의자였고 북한에서 김일성에게 숙청됐다.)
▣ 한형석
* 동래 명륜동 태생, 양의였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이 망명할 때 6세 어린 나이로 중국에 가게 되다. 가족들이 다시 귀국할 때는 홀로 중국에 남아 베이징 노하고급중졸, 상해 신화예술대학 졸업, 음악 연극 활동을 함.
* 1937년 중일전쟁 때 국민정부 중국군에 입대하여 정치부 공작대장 활동, 중령계급.
* 1944년 광복군 제2제대 선전부장, 군가 등 음악활동으로 독립군의 사기를 앙양시켰다.
* 해방후 부산대학교 제2외국어(중국어) 교수(1955~75) 역임, 각종 음악 연극활동을 계속함.
* 한형석 열사는 나의 은사이기도 하다. 좋은 시절이 오자 한형석은 부산대학교에서
중국어 교수로 재직하셨다. 나는 1969년 교양과정으로 잠시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다.
▣ 김약수
* 부산 기장 출신, 서울 휘문의숙,경성공업고등학교 졸업, 중국 남경 진링대학, 일본 니혼대학서 수학
* 좌익의 모사, 노동운동, 일제때 총 9년 7개월 복역.
* 광복후 한민당에서 활약하여 전향되는 듯했으나, 1948년 제헌국회에 동래구에서 당선돼 초대 국회부의장이라는 신분이 되었지만 사상은 좌익이라 신생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태롭게 한 국회프락치사건에 가담하였다.
* 1949년 남로당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6.25때 월북했다.
* 1959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고, 평북 벽지에 추방돼 비참한 일생을 마침.
* 사회주의자를 일제시대 옥고를 많이 치렀다고 해서 선정하여 독립유공자로만 소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고] 국회프락치사건(1949)
* 1948년 선출된 제헌국회에서 남조선노동당 박헌영의 배후 조종을 받은 국회부의장 김약수를 포함한 13명의 국회의원들이 주한미군 철퇴에 관한 연판장을 돌려 국회의원 100명 포섭을 목표로 하였지만, 62명 의원의 동의를 얻고, '외국군조속철퇴서' 를 1949년 3월 19일 덕수궁에 있던 유엔한국위원회에 제출한 사건.
* 6.25 남침 한 해 전에 남침을 위한 사전정지 공작이었다.
* 주모자 노일환 이문원 의원은 징역 10년, 나머지 11명 전원도 2년 이상 실형을 받음.
유엔기념공원
유엔군위령탑
유엔군위령탑
이런 날도 있구나. 여기는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라는 곳이다.
마음에 애국심을 새기고 가는 날이다.
부산박물관
자연스런 포즈
가슴에 와 닿아요.
토요일인데도 인적은 뜸하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자리
웃음이 나옴
조각공원
다정함
기발한 착상
멋진 장소
신기한 듯.
감동 그 자체
근엄하시다.
단정함
미소 청년
단정함
모자 창이 커서 햇빛 가리기좋고 자외선은 잘 막겠으나, 사진촬영에는 광선이 어둡네.
기운 차다.
만족한 표정
미소 일품
야무지게 다문 입
유엔기념공원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 미국의 전몰장병의 명단이 각 주별로 새겨졌다. 전몰자(전사자) 명단이 앞면의 1/3 이후 부터 앞면 전체와, 뒤면 전체, 그리고 뒤면의 건너편 별면에도 가득하다.
* 미군 전사자 36,492명의 이름이 모두 기재돼 있어, 마음이 숙연해 진다.
* 이런데도 반미 운운~ 자들은 도대체 뭔가?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봉오리산
️봉오리, 봉우리 ;
꽃은 봉오리, 산은 봉우리,
그런데, 봉오리산, 고유명사니까~
봉오리산으로 가는 중, 지나는 길에 동명대학 구내서 잠시 휴식
봉오리산 180 미터 야산, 마지막 깔딱고비, 힘내시고~
꽃을 감상하는 안정된 자세.
꽃을 관조하는 휴식의 자세.
전망안내판에 집중!
전망안내판에 집중!
아주 대조적인 멋진 대비! 꽃과 함께 회춘해 가시겠다.
힘차서 좋다.
한 포즈, 잘 잡았다.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유엔 참전국 깃발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유엔군 전몰장병추모명비]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유엔군 위령탑
* 6.25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의 각국 전사자 수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 유엔군 전체 전사자는 40,896명. 이중에 36.492명은 미국군인.
유엔군위령탑
유엔군위령탑
유엔군위령탑 부속 조각
유엔군위령탑, 각국별 참전상황과 전사자 수를 알리는 동판이 나열돼 있다.
대한민국 군국 237,686명이 전사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는 미국 33,870명이다.
대한민국의 나라와 자유를 지켜주려고 싸우다가 이국땅에서 전사하였다. 어찌 그 고마움을 잊으랴.
맑은 물이 퐁퐁~
맨 아래 쪽에 연못이 있다.
유엔기념공원 연못
연못으로 들어 가는 다리.
낙엽송길?
여름에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
이명박 대통령 기념식수 소나무가 멋지다.
부산남구 참전유공자 1,049명 기록.
평화공원 남구 참전기념비.
조각의 일부.
상이군인의 손을 상징한 듯~
동명불원
동명불원 대웅전. 용마루가 콘크리트라 운치가 떨어진다.
대웅전 불상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이 1973년에 창건하고, 1976년에 부산시에 헌납.
동명불원 앞산 봉오리산
봉오리산 정상에는 돌무더기가 있고 전망이 일품이다.
봉오리산 전망, 우전방에는 성모병원, 멀리 오륙도SK아파트 방향
좌상에 작은 봉우리, 신선대가 보인다. 오륙도가 잘 보이는 곳이다. 부산북항 신선대부두
부산북항 신선대부두
황령산 방향 전망
해운대 센텀~장산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