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3일, 진주시는 ‘장생(長生) 도라지’를 일본에 수출하기로 하고 일본 호요우사(高揚社)와 300만 달러어치 수출 계약 조인식을 가졌다. 장생 도라지의 일본 수출을 위해 진주시가 2년여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얻은 첫 결실이었다.
진주시는 2003년 3월 일본 국제식품박람회에 장생 도라지를 출품하고 첫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국제건강박람회·국제식품개발전에 이어 2004년 10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농산물 수출상담회 등에 참가해 지속적인 홍보와 실무 접촉을 한 끝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이다.
정영석 진주시장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장생 도라지는 진주시의 끊임없는 개발 노력으로 20년 이상 키운 것이다. 장생 도라지는 간기능 활성화와 치매 예방 및 개선 등에서 뛰어난 약리효과를 발휘해 국내외 전문 학술지에 그 분석 논문이 게재되는 등 독특한 재배법이 국내외 특허로 보호받는 진주의 특산물”이라고 말했다.
장생 도라지는 진주 일원에서 생산되는 21년산 도라지다. 일반 도라지는 밭에서 3~4년 자라면 뿌리가 썩으면서 죽는다. 그러나 3년 주기로 거름기 없는 땅에 옮겨 심으면 죽지 않고 잘 자란다. 이렇게 일곱 번 옮겨 심어 자란 것이 장생 도라지인 것이다.
이영춘 (주)장생도라지 대표는 “21년간 키워온 상품이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과정도 치밀하고 엄격하게 관리한다”며 “최첨단 항공기 생산에 적용하는 선진적 공정 관리 방식을 구축해 품질과 위생의 모든 요건을 까다롭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장생’이라는 말은 나물용인 일반 도라지와 구분하기 위해 개발자인 이성호 씨가 1991년 발명특허를 신청할 때 붙였다. 농작물 재배법으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장생 도라지는 일반 도라지와 달리 건강보조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라지는 일반적으로 반찬을 해 먹거나 술 담그는 재료로 이용한다. 그런데 진주시는 이런 도라지를 특화해 약재로는 물론 다양한 식품 등으로 개발해 수출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장생 도라지는 이렇듯 척박한 국내 농업 환경에서 창의력과 기술로 승부하는 몇 안 되는 농업상품 중 하나다.
“장생 도라지는 진주에서 1시간 거리인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선택적으로 재배합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속에서 자라는 거죠. 이렇다 보니 장생 도라지를 재배하는 일은 그 원리를 알아내는 과정 못지않게 까다롭고 힘든 작업입니다.” 이영춘 대표의 말이다.
장생 도라지의 상품화는 농민들을 단순 생산자에서 판매까지 겸하게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농민들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고부가가치 농산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물론 판매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이 대표는 “그동안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였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장생 도라지의 상품화 성공은 농산물 생산을 넘어 그것을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가공하고 포장하는 것, 시장의 요구를 미리 예측하고 한발 앞서 나간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업도 이제는 자연조건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농업 종사자의 경영 능력에 따라 사업화가 가능하다. 농민들도 창의력과 도전 정신만 있다면 농업을 얼마든지 개성 있는 농업 비즈니스(Agri-Business)로 발전시킬 수 있고, 또 첨단 산업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장생 도라지는 잘 보여주는 것이다.
50년 집념으로 일궈낸 값진 명품 장생 도라지는 장생도라지연구센터 이성호(76) 원장의 50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과 연구 결과 탄생했다. 이 원장은 열네 살 되던 해인 1942년, 폐결핵과 천식으로 고생하던 동네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 발견한 ‘묵은 도라지’를 캐먹고 병을 고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당시 그는 마을 어른들로부터 “오래된 도라지는 산삼보다 낫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원장이 도라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 원장은 군 제대 직후인 1954년 고향 마을(진주시 나동면 귀곡리) 5,000평의 밭에 도라지를 처음 심었다. 그러나 도라지 재배가 보기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3년만 지나면 이유 없이 뿌리가 썩어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 일을 10년 넘게 반복하다가 40세 되던 해 이 원장은 아예 짐을 싸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지리산 기슭에 움막을 짓고 산자락 이곳저곳에 도라지 심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척박한 땅에 옮겨 심은 도라지가 3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1970년대 초, 고향으로 돌아온 이 원장은 텃밭에서 도라지 심는 실험을 계속하던 끝에 거름기 없는 땅에 3~4년 주기로 옮겨 심으면 뿌리가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라지 재배에 관심을 가진 이래 50여 년의 실패 끝에 성공을 맛본 후 1991년 마침내 장생이라는 이름의 21년생 도라지 재배법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이 원장은 장생 도라지 재배 성공 초기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만 판매했다. 그 이후 도라지 진액과 분말은 직접 생산하고, 화장품이나 캔디 등 2차 가공품은 전문회사에 원료를 공급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1998년 장생 도라지 가공 공장을 스스로 지었고, 그게 오늘의 장생 도라지 브랜드를 탄생시킨 계기였다. 이 원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50여 년에 걸친 피와 땀이 지금에 와서 결실을 보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지만, 도라지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라지는 일반적으로 그 기간이 길수록 사포닌(당류와 탄수화물의 복합체) 함량이 늘어난다. 그러나 오래 길렀다고 해서 도라지의 사포닌 함량이 무한정 늘어나지는 않는다. 21년을 고비로 그 함량 증가세가 현격히 둔화한다. 6년근 인삼을 최고로 치듯 장생 도라지가 21년산을 고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200억 원 규모의 일본시장 점령 노린다 장생 도라지는 성장기간이 긴 만큼 효능도 뛰어나다. 과학적으로 성분이 입증되기 전에는 이 원장이 술을 담그면서 효능을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이다. 20년산 미만의 도라지와 달리 21년산부터는 누런 색깔이 눈에 띄게 짙어졌다는 것이다.
장생 도라지에 대한 연구논문과 보고서는 현재 35편에 이른다. 성분도 대부분 규명됐다. 경상대 성낙주 교수팀은 1994년 장생 도라지에 모두 23종의 사포닌 성분이 함유된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사포닌 성분이 인삼(21종)보다 2종이, 일반 도라지(18종)보다 5종이나 많게 들어 있는 것이다. 사포닌 성분은 피를 맑게 해 고혈압과 당뇨 등 성인병에 좋다. 항암 작용과 함께 천식과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연구 결과다.
장생 도라지에는 또 이눌린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이것은 인체 속 혈당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장을 튼튼하게 한다. 또 숙취 해소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각종 인체에 유용한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것도 연구 결과 확인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은 장생 도라지를 이용한 농축액을 비롯한 분말·환·화장품·캔디 등 10여 제품이 시판되고 있다. 내년에는 술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 대표는 “현재 술 개발을 위해 총력을 다하는 한편 생산 라인을 새로 갖추기 위해 공장을 설립 중”이라며 “고급 주를 생산함으로써 장생 도라지에 대한 이미지 제고는 물론 매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1년생 장생 도라지 생산 초기 매출액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었다. 날 것 그대로 파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1997년 매출액이라야 고작 2,000만 원 선이었다. 그러나 1998년 가공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매출이 크게 신장했다. (주)장생도라지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40억 원. 그중 30억여 원어치의 제품을 일본에 수출했다. 국내 매출액도 약 10억 원에 달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25개 직영점과 주요 백화점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판매되면서 매출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일본 수출 비중은 막중하다. 1998년 10억 원어치를 첫 수출한 데 이어 2000년과 2001년 20억 원, 2002년 32억 원, 2003년 35억 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고, 올해 일본 수출액 목표는 약 50억여 원이다. 일본 언론과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회사는 목표액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장생 도라지는 1999년부터 매년 도쿄식품박람회 등 10여 개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 참가해 일본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장생도라지 도쿄지사장인 노성환 박사는 “사포닌 성분이 인삼보다 많이 함유된 데 대해 일본 소비자들이 좋은 평가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지인 <주간 신조(新潮)> <주간 아사히(朝日)> 등 일본 언론들은 ‘경이의 자연생약’이라며 30여 차례에 걸쳐 장생 도라지를 귀한 약재로 소개했을 정도다.
도라지 재배 21년이라는 ‘경이적 기록’에 신뢰감 줘 이 같은 수출 신장세는 함유한 성분에 대한 일본인들의 좋은 평가와 함께 가공 제품에 대한 안전성, 효능에 대한 신뢰가 밑받침이 됐다. 그 믿음은 특히 도라지를 21년 동안 재배했다는 ‘경이적 기록’에서 비롯한다. 회사 측은 3년마다 일곱 번 옮겨 심은 위치, 재배자, 재배기간 등을 전산 입력해 제품별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철저한 ‘실명제’와 ‘이력 관리제’를 통해 도라지의 나이에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지난해 330만 달러어치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던 일본 헬스웨이사 이와사키 회장은 “한국에서 물량만 충분히 공급해준다면 일본시장 규모가 연간 200억 엔(약 2,200억 원)대는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생 도라지의 밝은 미래를 약속해 주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장생 도라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진주·함양·산청·하동의 237농가가 총 15만 평 규모로 계약재배하고 있다. 이들 농가가 장생 도라지 재배만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6억여 원. 농가당 재배 면적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짭짤한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특히 쌀·보리·고구마 등 농작물의 연간 평균 순수익이 평당 1,000원 선인 데 반해 장생 도라지는 3,500원 가량으로 월등히 높은 편이다.
현재 장생 도라지 소요량은 연평균 약 40여 톤. 연간 약 70여 톤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2008년부터는 원료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그러나 재배 면적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 도라지 재배에 21년이라는 오랜 기간이 걸리는 데다 재배 적지인 거름기 없는 밭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재배와 생산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호 원장의 장생 도라지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적은 양으로 효과를 극대화해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다. 이영춘 대표는 “지난해 같은 원료로 4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며 자신있게 덧붙였다.
“수출량은 증가하는데 도라지 생산에는 한계가 있죠. 하지만 지난해 도라지 원료를 4분의 1만 사용하고도 기존의 효능과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연구 성과를 원료 생산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 2007년까지 매출액 100억 원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임직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생 도라지를 붙들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생 도라지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업체인 만큼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