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고통을 받아들인 데 따르는 결말
“저의 예수님, 저에게 멸시와 비방과 압제와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저의 예수님, 당신의 고통스러운 삶에의 온전한 참여가 … 저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하소서.”(OOCC, X, p. 220; STA, 519)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작이시자,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기에, 고난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삶에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극심한 고뇌 끝에,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를 위해 마련하신 잔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신 후,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셨습니다. 비록 그것이 씁쓸하고 고통스럽고, 성취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께서 자신을 위해 마련하신 섭리를 이룸으로 인한 마음의 기쁨이 분명 있었습니다. 성 빈센트 팔로티께서는 예수님의 마음에 일어난 그 일을 일어났음을 굳게 믿으셨습니다.
성인에게 있어서, 기쁨이란 인생에서 고통을 받아들인 뒤에 이어지는 즉각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는 삶의 고통을 갈망하고 염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인께서는 종종 멸시와 압제와 비방과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은혜를 하느님께 청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기에, 고난을 받는 것을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성 빈센트에게는 그리스도 때문에 겪는 고난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제 다음의 질문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나는 고난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가, 나의 자아 때문에 고난을 받는가.
나는 고난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그리하여 기뻐하는가.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를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