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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이 홍사
청노새야~ 울지~~ 말어라~
K는 새벽부터 흥얼거린다. 갑자기 웬 청노새 타령일까?
재미를 붙여야 한다.
이렇게 재미없고 따분한 곳에서 버티려면 무엇에든 재미를 붙여서 잡념이 안 들도록 집중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오기 싫은 곳이 있을까? 이곳으로 날아오는 항공기 티켓을 끊고 날자가 다가오면, K는 휴가 나와서 귀대를 앞 둔 군대시절처럼 잠을 설치고, 더 나아가 이젠 가수면 상태에서 악몽을 꿀 정도다,
가서 어떻게 견디지?
이 곳의 일이 진행되는 걸 보면 무한한 인내가 필요하다. 출장으로 일을 하며 머무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언제부턴가 K의 인식은 살짝 각도를 달리했다. 일이 아무리 잘 되어도 투자한 금액의 본전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니 오기 싫은 마음은 곱절 더한 것이다. 이윤을 창출하기에는 이미 떡 쪄먹고 시루를 엎었다. 초기 K가 투자할 적보다, 정권이 바꾸면서 달러 값이 40%나 급등했으니 화폐개혁이나 달러가 폭락하기 전에는 본전 건지기가 힘든 것이다.
떠나오기 전에는 며칠간은 심드렁하고 친구들과 마시는 술맛조차 없는데 마지못해 아내가 챙겨주는 대로 가방을 꾸리곤 한다.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기 전의 호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고개를 갸웃하는 K도 모를 일이다.
일단 왔으니 견뎌야할 일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잠자리에서도 한국에 있을 적보다 자주 깬다. 잠을 설친다고나 할까. 하룻밤을 자고나면 침대 옆 유리탁자 위, 깨끗이 비워둔 재떨이에 꽁초가 서너 개 있다. 자다가 일어나 피운 것이다. 그 만큼 자주 깬다는 얘기다. 없으면 안 되고 와 있으면 할 일이 없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오토바이를 도색해야지.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 주던~~ 아아아~
또 소리 내어 흥얼거린다.
아래층에서 식사준비를 하던 퓨퓨가, 저게 또 살짝 맛이 갔나? 해장부터 웬 지랄이야? 분명 그 눈치다. 덜거덕거리며 개수대에 그릇 씻는 소리가 잠깐 멈추었다. 이번 행차에서는 예기치 못하게 K는 오토바이에 빠졌다. 진행되는 일은 뒷전이다. 새벽에 일어나 휴대폰의 사진을 확대시켜 보았다.
오토바이의 사진인데 어제 찍은 것이다. 오토바이는 두 대인데 한 대는 바퀴를 찍고 한 대는 휠 커버와 프레임을 찍은 것이다. 어제 저녁에 이리 저리 자세히 훑어보았지만 새벽에 일어나 다시 훑어보는 것이다. 바퀴는 이 색상이 마음에 들고 휠 커버는 다른 것이 마음에 든다. 오늘 오토바이를 도색하러 가기로 되어 있다. 바퀴의 휠은 금색으로, 휠 커버와 프레임은 브론즈 색상으로 칠을 할 것이다. 마음에 들도록,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도록 꾸밀 것이다. 어제 그렇게 하기로 약속되어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캉카이가 나오지 않으니 K는 오토바이를 노리개삼아 따분한 일요일을 시원하게 까웅, 까웅 (좋게, 좋게) 때울 것이다.
불과 일주일, 아니 정확히 닷새 만에 K는 오토바이를 세 대나 바꾸었다.
뒷생각을 않는 K의 성급한 성격 탓이겠지만 예기치 못하게 일이 그렇게 커졌다.
지나간 건 생각하지 말자. 그건 과거니까,
K는 혼자 중얼거린다. 그리곤 혼자서 고개를 주억인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즐기면 되는 거니까, 오늘 하루는 지겹지 않게 때울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맨 처음 오토바이를 산 것은 지난 화요일이었다.
소형인데 오토바이라기보다는 오토사이클이다. 아줌마들이 시장이나 나갈 때 타는 오토바이다. 기어가 따로 없이 당기는 대로 나가는 초보용 50CC 오토바이다. 작은 것이지만 일본에서 중고를 직수입한 거라 가격은 만만찮았다. 중국제 새 오토바이와 가격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야마하(YAMAHA)인데 자전거를 탈 줄 알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이게 몸에 익지 않아서 타보니 기어를 넣는 큰 오토바이보다 더 위험했다.
옛날에 기어가 있는 오토바이를 타던 버릇이 있어서 좀체 몸에 익지 않는 모양이다. 브레이크를 잡으려면 자신도 모르게 오른 발에 힘이 들어간다. 손으로 잡는 자전거 브레이크랑 구조가 같은데 브레이크가 없는 오른발에 자꾸 힘이 들어가고 브레이크를 손으로 잡는 속도가 한 템포 늦은 것이다.
K가 오토바이 타본 지가 벌써 몇 십 년 전이지만 체득된 몸은 아직도 잊지도 않고 반응을 한다. 오토바이란 물건은 뇌가 지시를 하기 전에 손발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야 되는데 그 소형은 뇌가 지시를 한 다음에 반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늦어서 몇 번 위험을 모면했고 결국 골목 안 이웃의 나무로 만든 담장을 앞바퀴로 쿵 박았다. 나무담장이 아니고 마주 오는 차였더라면, 상상만으로도, 뒷말은 생략하자.
K는 담장을 받고 그 길로 오토바이를 산 가게로 가서 되팔려고 했다. 가격이 좀 깎이더라도 되팔고 다른 오토바이를 사고 싶었던 것이다. 손짓 발짓을 하며 영어와 미얀마 말을 섞어서 했지만 오토바이가게 주인은 K의 뜻을 알고 손사래를 쳤다. 당장 살 돈이 없으니 두고 가면 위탁판매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K도 손사래를 쳤다. 같은 기종의 오토바이가 수두룩한데 손님이 오면 위탁판매를 받은 오토바이부터 먼저 팔겠는가? 그게 장사인가? 빈말을 해도 유분수지.......
숙소로 와서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바라보았다. 디자인과 군청색으로 된 색상은 마음에 드는데 구조는 아니었다. 큰 사고를 내기 전에 바꿔야 한다고 작정을 했다.
이걸 어떻게 팔지?
오토바이를 바꾸는 게 숙제처럼 여겨졌다.
그 오토바이를 사던 첫날, 택시를 대절해서 여러 곳을 다녔다. K는 살까말까 내심 망설이던 중이었다. 그냥 오토바이 구경이나 실컷 하고 바람이나 쏘인다는 차원에서 매니저인 캉가이에게 얘기해서 택시를 대절했다. 양곤 시내에는 새 오토바이를 파는 대리점이 없다.
왜 없느냐?
양곤에서 시내 주요도로에는 오토바이 주행금지다. 골목이나 외곽도로에서만 가능하다. 연일 차가 막히는데 오토바이까지 풀어 놓으면 최악의 교통지옥이 될 것이다. 몇 번 시내도로에 오토바이 통행을 허용해달라고 도로국에 상정을 올렸었다. 허나 교통평가를 하여 도로국에서는 번번이 퇴자를 놓았다. 잘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새 오토바이를 사려면 양곤 인근 읍으로 가야한다.
택시를 한나절 대절하여 양곤 인근의 타욱재부터 레구까지 훑어보니 마음에 드는 모델이 없고 중국제 싸구려 오토바이 뿐이었다.
거기서 물어서 삼십여 킬로 떨어진 모비로 갔다. 당초 계획에 없던 모비로 가서 오토바이 대리점 세 곳을 순례했다. 무시부! 없다는 미얀마 말이다. 마음에 점을 찍어둔 모델이 없었다. 바퀴가 작고 타이어가 넓으며 현가장치가 뒤쪽 중앙에 하나 달린 모던하게 빠진 오토바이는 없었다. 그 모델은 숙소 앞, 허름한 노천카페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백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지나다니는 걸 유심히 본 결과 가장 맘에 드는 것이었는데 찾으니 없는 것이다.
오토바이의 본거지라 불리는 바고로 가야했다. 거기서 바고까지는 백여 킬로가 떨어진 거리다. 바고를 외치니 택시기사는 신이 났다. 택시비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고 바고로 가자고 한 것이다. 바고로 가는 택시 안에서 캉카이가 휴대폰으로 인터넷의 직거래 장터를 훑었다. K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매 방법이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오토바이 사진이 올라와 있고 가격이 게시되어 있었다. 모델과 가격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두 군데 전화를 해서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하나는 만달레이에 있고 하나는 모오곡에 있다고 했다. 만달레이는 육백 킬로가 떨어진 도시이고 모오곡은 사파이어, 다이어몬드 천연옥 등이 많이 나오는 광산 도시로 훨씬 더 멀다.
물 건너 간 송아지네!
K가 위치를 듣고 흘린 말이다. 바고에 가니 신호등마다 오토바이 물결이 장관을 이루었다. 신호등에서 차는 항상 뒷전으로 밀렸었다. 주차하기 좋은 곳에 택시를 세우고 샨카욱쉐(쌀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오토바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토바이 본거지답게 한 집 건너 한 집이 오토바이 가게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곳에서도 오토바이를 사지 못했다.
가격이 턱없이 비싼 까닭이었다. 인터넷으로 K의 눈을 버렸다고 할까? 자꾸 인터넷에서 본 것과 자꾸 가격을 비교하게 되었다. 그리고 K는 타다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곳 사업이 종료되면 팔아야하는 물건인데 인터넷으로 중고 가격을 보았으니 감가삼각이 너무 심할 것 같았다. 만만한 가격의 물건을 찾으니 품질이 떨어지고 마음에 드는 것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K는 망설였다. 들르는 오토바이 가게마다 좀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흘리고 나왔다. 그리고 사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K의 심리적 갈등 때문이었다.
노리개 삼아서 오토바이를 꼭 사야하나? 겨우 골목나들이나 하며 타려고?
회의가 밀려들었다. 오토바이를 산다는 걸 아내가 알면 난리가 날 터이다. 이 교통질서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무법천지에서 오토바이가 말이나 되느냐고 펄쩍 뛰며 또 보험을 넣는다고 할 것이다.
-양곤으로 돌아가자. 구경 잘 했다.
택시를 돌렸다. 양곤으로 내려오는 내내 K의 눈에는 지나다니는 오토바이만 보였다. 저건 뭐가 나쁘고, 저건 중국제고 저건 모델이 맘에 안 들고.......
택시를 타고 나오며 지나다니는 오토바이를 평가하고 있는데 캉가이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말했다. K가 외국인이라 가격을 좀 더 부르는 것 같다고 하며 마음에 드는 모델을 사진 찍었으니 현지인 누구를 보내 딱 부러지게 얼마에 사오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K는 그 말을 허투루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고를 빠져나왔다. 허투루 들은 것은 노리개로 사겠다는 충동이 좀 옅어졌다는 말이다.
K가 오토바이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당시에는 오토바이가 전부 수입품이며 고가였고 귀했다. 중학을 졸업하고 일찌감치 정밀공장에 취직을 해 기술을 배우는 불알친구의 공장, 혼자 쓰는 공장에 딸린 방에 갔다가 그 친구가 사장 오토바이를 몰래 끌고 나왔다. 언제 배웠는지 녀석은 오토바이를 제법 잘 탔다. K는 어떻게 타는 것이냐고 물으니 자전거만 탈 줄 알면 쉽게 배운다고 했다.
이건 클러치고 이건 기어고, 클러치를 이렇게 잡고 기어를 넣고 클러치를.......
일단 오토바이에 올라앉았다. 친구가 가르쳐주는 대로 했는데 오토바이가 울컥 거리며 시동이 꺼졌다. 다시 한 번만, 친구가 클러치를 살살 떼라고 했다. 이런 또 울컥거리며 시동이 꺼졌다. 당시에 구미공단 입구의 한산한 도로였는데 광평파출소가 바로 앞에 있었다. 파출소에서 나이가 지긋한 경찰 하나가 나오다가 울컥거리며 쩔쩔 매는 K를 보고 다가왔다. 황송하게도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K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나이가 지긋한 경찰은 면허증을 보자고 했다. 면허증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도로교통법을 운운하며 무면허 운전이라는 경찰에게 말했다.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요? 지금 배우고 있는 거라구요.
배우는 건 공터에서 배우고 면허증을 따서 도로에 나오는 게 원칙이라며 막무가내로 우기는 경찰에게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즉결에 넘긴다는 말에 K는 마지못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무면허로 딱지가 떼였다. 과태료 삼천 원. 당시에 친구의 월급이 겨우 사만 원이었는데 작은 돈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는 출발도 해보지 못했는데 억울했다. 그 길로 인근의 공단운동장으로 가서 오토바이 출발하는 법을 배웠다. 출발하는 법을 배우고는 오후 내내 비어있는 공단운동장을 돌고 연료가 떨어질 때쯤 친구의 공장으로 가서 세워놓았고 책을 사서 그 다음 주에 바로 면허를 땄다. 쓸 일이 있거나 없거나 약이 올라서 면허를 딴 것이다.
오토바이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더 어려워!
친구의 말이었다. 타보니 그 말이 확실했다.
그 친구는 고향을 떠나 인천 어디에서 정밀공장을 차렸다는 말을 들은 지가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고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불알친구들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다들 연락이 끊겼다는 말만했고 불알친구들을 만나도 그 친구의 안부에 대해서 얘기하는 빈도가 점차 줄었다.
어디에서 잘 늙어가고 있겠지. 그 친구를 회상하니 세월은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하며 K는 입맛을 쩍 다셨다. 참 친했던 불알친구인데 이거 너무 소원했던 게 아닌가? 이번에 들어가면 수소문을 해보아야겠다.
또 기억에 남는 오토바이는 군대시절에 주운 오토바이다.
K는 남해안에서 해안경계병으로 복무했다. 전방으로 간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완전히 당나라 군대였다. 분초단위로 근무했는데 상병 때였다. 신병 하나를 데리고 K가 맡은 작전도로를 순찰하다가 길섶에 풀밭에 넘어져 있는 오토바이를 보았다. 90CC 빨간색 오토바이였는데 누가 술을 진탕 먹고 와서 엎어진 김에 오토바이를 두고 간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낮술을 되게 처먹은 모양이네.
작전도로는 밤에는 민간인 출입금지였다. 주인이 찾아가겠거니 하고 지나쳤는데 오토바이는 다음날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메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세워보니 오토바이는 멀쩡했고 키도 얌전히 꽂혀있었다. 키를 넣고 시동을 걸어보니 한방에 걸렸다. 시동을 걸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순찰을 포기하고 총을 가로로 메고 오토바이를 분초로 타고 왔다. 신병은 오토바이 뒤를 따라서 뛰어왔다. 당시에 분초에는 일곱 명이 근무를 했는데 K위로 병장인 분초장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보더니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후임들은 빼고 분초장인 그 병장과 궁리한 결과 빨간 오토바이를 군용으로 만들기로 했다. 박격포에 칠하는 국방색 페인트를 꺼내 후임 중 손재주 좋은 놈을 시켜 전체를 국방색으로 도색을 했다. 넘버를 떼어내고 합판조각을 잘라서 그럴듯하게 부대 넘버를 만들고 보니 영판 중대장이 순찰용으로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와 똑 같았다. 그리고 탐조등 비상발전기에 넣는 휘발유를 넣어 중대장이 순찰을 돌지 않는 낮에만 작전도로를 타고 다녔다. 밤에는 중대장 눈에 띄지 않게 분초부근의 숲에 세워놓고 위장망으로 덮어두고 경계근무를 했다.
오토바이는 선임인 병장과 K의 전용이었다. 후임들은 오토바이에 손도 못 대고 오토바이를 닦고 야간 경계근무에 들어가는 시간이면 겨우 숲으로 끌고 가서 위장망을 덮는 게 일이었다. 그 병장이 전역을 하면 K가 분초장이 된다. 그러면 오토바이는 K의 전용이 된다. 생각만으로도 든든했다.
그 오토바이를 그렇게 서너 달 타고 다녔나?
K가 병장으로 진급을 하여 분초장의 임무를 맡고 그 선임이 전역 한 달을 앞두고 근무에서 열외가 된 시점에 심심풀이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얼굴이 마치 실컷 얻어터진 복싱선수처럼 되어 돌아왔다. 작전도로에서 과속으로 달리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날아가서 옆의 소나무에 둥치에 얼굴이 부딪혔다는 말을 입에 핏물을 질질 흘리며 했다. 입술은 다 터지고 눈가에 피멍이 들고 눈썹 위가 조금 찢어졌다. 우스웠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떨어지는 가랑잎도 조심해야할 시점에서 소나무에 오되게 펀치를 맞았다. 그나마 헬멧대신에 누가 보더라도 순찰 중으로 위장하느라 방탄모를 쓰고 총을 메고 나가서 머리는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다행히 열외병력이 그 모양이 되었으니 근무에는 차질이 없었다. 중대장이 알면 바로 영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 열외병력은 밤낮 침상에 누워 가져다주는 밥을 먹고 거울을 보며 약을 바르다가 인근분초에서 중대장이 그쪽으로 갔다고 연락이 오면 취사장으로 피했다. 오토바이는 K의 전용이 되었다. 그때 대대본부에서 전언통신이 내려왔다. 인근 해안중대의 소대장 하나가 어촌계 오토바이를 빌려 타다가 작전도로에서 바닷가로 추락해서 통합병원에 입원가료 중이니, 절대 민간인 오토바이 사용을 금지하라는 전언통신이었다.
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자는 오전시간에 통신병이 K를 급하게 깨워 전언통신을 보여주었다. 까딱하다가 걸리는 날엔 영창을 면하지 못하리라. K는 열외병력인 선임과 상의하고 위장막으로 덮어둔 오토바이를 없애기로 했다. 자고 있는 후임들을 모두 깨워 오토바이를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인 취사장 부근 바닷가로 낑낑거리며 들고 내려갔다. 취사장 옆 공터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오토바이 화형식을 하고 남은 잔해는 분리해서 썰물이 빠져나간 다음에 갯벌을 파고 묻으라고 시켰다. 화장에 수장까지, 깔끔하게 오토바이를 정리했다.
-카나래!(잠깐만!) 스톱!
뒷좌석에서 캉카이와 인터넷으로 오토바이를 검색하던 K는 택시기사에게 소리쳤다. 숙소로 들어오는 우회 골목길이었다. 오토바이센터 앞에 서있는 오토바이 한 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곳에 오토바이센터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택시를 세우고 내려서 훑어보니 색상, 디자인, 제조사,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는 물건이었다. 타보지도 않고 가격을 흥정했다. 부르는 가격에서 조금 다운시켜 불렀다. 주인은 깎아주는 대신에 일본에서 들어온, 텅스텐으로 된 짐받이를 달아주겠다고 했다.
야래!(됐다!) 까웅래!(좋다!)
그걸로 끝이었다. 오토바이 가게 주인과 K는 서로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어보였다. 그 자리에서 택시비를 치루고 택시를 돌려보내고 짐받이를 금세 달자 K는 캉카이를 뒤에 태우고 숙소로 왔다. 산 가격은 더하고 뺄 것도 없이 한국의 담배 열 보루 값이었다. 숙소에 캉카이를 내려놓고 헬멧을 사러 갔다. 시장입구의 부품센터에 가니 여러 종류의 헬멧이 있었다. 두 개를 골랐는데 가격은 놀랍게도 한국의 담배 두 갑 값이 안 되었다. 헬멧을 쓰고 기분 좋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반바지에 반팔 티를 입고 사십 도가 넘는 폭염과 강렬한 땡볕에 탔으니 팔다리와 얼굴은 완전히 구릿빛이었다. 반바지를 걷어붙이면 흑백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었고 발등은 슬리퍼를 신은 자국이 선명하다.
헌데, 이 놈의 오토바이가 작다고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이틀을 탔는데도 좀체 몸에 익지 않는 것이었다. 이웃 담장을 박고 오토바이 산 가게에서 거절당하고 돌아와 부셔버리고 싶다고 하니 캉카이와 퓨퓨가 이웃에 소문을 낸 모양이었다. 골목 안 이웃들은 이방인인 K가 그 오토바이를 얼마에 샀다는 걸 이미 사던 날부터 다 알고 있었다. 숙소 앞에 못 보던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수시로 K가 타고 다니니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퓨퓨에게 물어보았던 모양이다.
없애겠다고 하자 숙소 바로 옆에 보석 세공공장의 야우짤리(아저씨)가 친구에게 소개해서 팔아주겠다며 전화를 하고 캉카이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사이 앞집에 사는 애기엄마, 젊은 새댁이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인근에 오토바이 직거래 장터가 있다고 했다. 직거래 장터? 그게 어디냐고 물었다. 멀지 않다며 위치를 설명을 하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같이 좀 가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게 뭐 어렵냐면서 안고 있던 애기를 제 할머니에게 맡기고 키를 달라고 했다. K가 오토바이 타는 실력이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키를 건네자 익숙한 솜씨로 시동을 걸고 뒤에 타라고 했다. K가 뒤에 타니 능숙한 실력으로 유연하게 출발이다. 속력을 높이며 꽉 잡으라고 했다. 덕분에 K는 젊은 새댁의 군살이 없고 매끄러운 허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오토바이 직거래 장터는 시장을 지나고 한 블록을 더 지나서 작은 골목 안에 있었다. K도 그 길은 몇 번 지나다녔는데 무심코 지나다녀서 그냥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끼리 노닥거리고 있는 줄 알았다. 가게 앞에는 오토바이가 여러 대 어지럽게 늘어서 있고 인간들은 가게 앞에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가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오토바이가 좀 많다는 것이었다. 이웃집 새댁은 그 앉은 사람들 중에서 한 친구를 불러 현지어로 뭐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는데 K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깍두기머리를 한 젊은 친구가 오더니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그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며 한국인이라고 하자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조금 한다고 하니 타고 간 오토바이를 얼마에 팔고 싶으냐고 영어로 물었다. K는 얼마에 사흘 전에 샀다고 했다. 고개를 주억이더니 서있는 오토바이를 골라보라고 했다. 다 파는 물건이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그렇다고 했다. K는 오토바이가 하도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었다.
일단 기어가 있는 오토바이부터 골았다. 타기에 만만한 것을 염두에 두었다. 중국제는 빼고 마음에 끌리는 것이 있어서 빨강색 오토바이가 얼마냐고 물으니 깍두기머리는 앉아서 차를 마시는 사람 중 누구를 불렀다. 아마도 오토바이 주인인 모양이다. 그리고는 뭐라고 하더니 오토바이 안장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얼마라고 현지어로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곤 K에게 영어로 얼마라고 했다. 그 옆에 있는 노란색은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니 또 다른 누구를 불러 뭐라고 하더니 또 오토바이 안장을 손바닥으로 치며 얼마라고 소리쳤다.
깍두기머리가 하는 걸 보니 옛날 소를 사고파는 장터가 떠올랐다. 어릴 적에 아버진 자전거를 타고 먼저 내려가시고 K는 소를 몰고 장에 여러 번 갔었다. 완장을 찬 중개인이 소 사이를 돌아다니며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치며 얼마라고 하면 그게 값이 되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기준 환율이 되는 셈이다. 중개인은 소 엉덩이를 치며 가격을 외치고 나면 사고 싶은 사람과 팔 사람이 그 가격을 기준으로 조율하게 되어있다. 꼭 소 엉덩이를 치며 가격을 외치곤 했는데 깍두기머리가 꼭 그 꼴이었다. 장에서 아버진 소를 팔고 다른 소를 사서 고비를 쥐어주시면서 꼭 백 원을 용돈 아니, 수고비로 주셨다. 어린 K는 그 돈으로 아이스깨끼를 사서 먹으며 소를 몰고 올라오곤 했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것 이것저것 물어보면 정신만 혼란해지고 판단이 흐려진다. 마음에 드는 것 두 세 개를 놓고 비교하면 된다. 아버지께서 소를 사는 구매 철학이었다. 그러나 K는 어느 걸 사던지 타고 간 오토바이를 파는 게 관건이었다. 두 대를 염두에 두고 비교했다. 하나는 태국제품으로 125CC이고 하나는 한국과 중국 합작인데 110CC로서 가격은 미미한 차이였다. 디자인과 색상이 클래식한 한중 합작이 맘에 들었다. 손을 어지간히 보고 아껴서 탄 표시가 역력했다. 한 번 타 봐도 되냐고 물으니 얼마든지 타보라고 했다. 당연히 타보고 사야겠지만 마누라는 빌려주어도 오토바이는 안 빌려준다는 말이 생각났기에 물어보았다. 아버지께선 오토바이를 두고 ‘과부틀’이라고 명명하셨다. 과부를 양산하는 기계라는 말씀인즉, 그 만큼 위험하다는 말이었다.
깍두기가 시동을 걸어주었다. 그걸 타고 주위를 한 불럭 돌았다. 기어가 있고 발로 잡는 브레이크니 몸에 금세 익어서 안전했고 무엇보다 슬로에서 엔진소리가 부드러운 게 맘에 들었다. 그걸로 하겠다고 하고 얼마의 웃돈을 주었다. 어차피 넘버가 없는 물건이라 계약서고 뭐고 필요 없다. 키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타고 간 오토바이는 산 가격에서 조금 깎였다. 그 정도는 예상했던 터라 신경 쓰이지도, 아깝지도 않았다.
간단하게 바꾸었구나, 이렇게 간단한 걸 그렇게 고민했네.
시동을 거는데 깍두기가 다가와서 웃으며 돈을 요구했다. 무슨 돈? 물으니 소개비, 구전이란다. 뒷자리에 올라앉은 새댁은 주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 그렇지 옛날 소를 사고 팔 때도 구전을 주었으니까, 얼마냐고 물으니 오천 짯이란다. 한화 오천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다. 기분 좋게 소개비를 주고 오는데 속도를 조금 높이자 이번엔 뒤에 탄 새댁이 K의 허리를 껴안았다. 등짝에 닿는 짜릿한 촉감,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새댁을 태우고 지구 끝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새댁은 투덜거렸다. 현지인은 구전으로 삼천 원을 받는데 외국인이라고 더 부른다고.
미야지 째주띤바래!(대단히 감사합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새댁을 내려주며 한 말이다. 오토바이 소리가 나고 K의 목소리가 들리자 캉카이가 냉큼 나왔다.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웃어주고는 오토바이를 돌려 시장으로 갔다. 작은 배낭을 사야했다. 판 오토바이는 안장아래 트렁크가 있는 구조였는데 새로 산 오토바이는 없다. 손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으니 자꾸 흘러내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가방을 사면 재미있다. 엄청 싸기 때문이다. K는 시장에 단골 가방가게가 있고 가죽으로 된 손가방을 여러 개 사서 한국의 술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한 적이 있다. 저렇게 싸게 팔아서 재료비가 나오나 싶을 정도다. 새로 산 회색가방에 손가방을 넣어서 메고는 바로 후배가 운영하는 중고차 매장으로 향했다.
캉카이가 퇴근할 시간이라 바로 그쪽으로 오토바이를 돌린 것이다. 가장 지겨운 시간이 캉카이가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다. 하루 중에 그 시간이 제일 마디다. 전날 가서 콜라를 한잔 마시고 왔지만 시간도 때울 겸 후배에게 또 오토바이 자랑을 해야 했다.
양곤에서 오토바이를 타려면 골목길을 잘 알아야 한다. 속골목이 어디로 통하고 어디에서 다른 골목으로 갈아타야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메인도로에서 길을 건넌다. 방향감각만 있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양곤은 퇴적평야에 생긴 도시라 산이 없으니 도로가 다 바둑판 형식이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도 다 길이 연결되어 있다. K는 이틀 동안 골목길을 엄청 익혔다. 이미 양곤의 반쪽은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메인도로를 다니다가 경찰에게 잡히면 오토바이를 빼앗긴단다. 특히 넘버가 없는 오토바이는 수틀리면 바로 영치라고 했다. 하여, K는 오토바이를 사던 날부터 캉카이가 시키는 대로 주머니에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비상용으로 갖고 다닌다. 경찰에게 잡혔을 적에 해결하는 방법이란다.
후배의 매장에 도착할 즈음 오토바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스피드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질주의 본능이 아니더라도 명색이 오토바이인데 배터리를 연결한 전동자전거에게 추월당할 정도였다.
-야! 이 오토바이 죽어라고 안 나간다. 빨리 가서 바꿔야지.
선 자리에서 헬멧도 벗지 않고 콜라를 한잔 마시고는 석양을 보며 오는데 마음이 바쁘니 오토바이가 더 안 나갔다. 이런 우라질, K는 그 소리를 연발하며 겨우 돌아와 오토바이 장터로 가니 깍두기는 있는데 오토바이가 서너 대 밖에 없었다.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웃는 깍두기는 K가 왜 다시 왔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스피드가 안 난다고 하자 깍두기는 클래식이라 골목 안에서 타는 것이고, 노인용이라 그렇다고 하며 정 바꾸고 싶으면 내일 오전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내일 오면 많이 탔다고 금액이 많이 깎이는 게 아니냐고 K가 농담을 하자 웃으며 그런 일은 없다고 하며 오토바이를 자주 바꾸면 손실이 많이 난다고 했다.
다음날, 그러니까 바로 어제, 정확히 오전 열 시에 휴대폰과 지갑이 든 배낭을 메고 K는 숙소에서 나섰다. 이때쯤이면 장이 섰으리라.
숙소를 나서며 K는 생각했다. 어차피 노리개로 사는 것,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미얀마를 더 깊이 안다는 차원에서. 지나간 걸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지레 걱정하지 말고 그 사이에서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또 흥정하는 걸 즐기자고 맘을 먹었다.
장터에 가니 예상대로 오토바이가 빼곡했다. 전날 보다 더 많았다. 안면이 있었던지 몇몇은 K를 보고 손을 들어보였다. 헌데 깍두기는 보이지 않았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무리들이 K에게 의자 하나를 양보하며 앉으라고 했다. 그러나 K는 물건들을 보니 마음이 급했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이것저것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제 보았던 그 오토바이는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훑어보니 애초에 K가 마음에 점을 찍어둔 모던하게 빠진 오토바이가 세 대나 있었다. 그 중에서 한 대를 붙들고 한번 타 봐도 되냐고 물으니 앉아있던 한 녀석이 냉큼 일어나 키를 가져와 시동을 걸어주었다. 천천히 한 블록을 돌며 속도를 내 보았다. 잘 나가는 오토바이다. 머플러가 세 개나 달려 생긴 게 폭주족 오토바이처럼 생겼으니 스피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벨라웃래? 얼마냐고 물으니 고개를 흔들었다. 팔지 않는 물건인 모양이었다. K는 그 옆은 같은 기종의 오토바이를 찍었다. 그건 블루칼라였다. 주인이 되는 녀석이 키를 가져오고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성능은 비슷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웃어보이고는 대답 없이 의자를 가리키며 앉아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 때 깍두기가 골목으로 걸어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깍두기는 멀리서 K를 보고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K도 손을 들어보였다. 깍두기가 도착하자 자리가 어수선해졌다. 깍두기는 어지럽게 서 있는 오토바이를 한 바퀴 쭉 훑어보았다.
아하! 깍두기가 도착해야 장이 서는 모양이구나. 이 자식이 왕초구먼.
오토바이를 훑어보고 자리에 앉은 깍두기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타고 간 클래식한 오토바이를 가리키자 깍두기가 웃었다. 깍두기가 웃은 다음에 먼저 타본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흥정은 그렇게 웃으며 시작해야하는 것이다. 깍두기가 일어나 그 오토바이 쪽으로 갔다. K도 따라갔다. 오토바이 주인을 보고 현지어로 뭐라고 했는데 들으니 제작년도를 묻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오토바이 안장을 손바닥으로 치며 가격을 외쳤다. K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곤 K에게 영어로 이 기종은 오래 달리면 엔진이 과열되니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건 치명적인 결함인데? K가 옆에 있던 블루칼라를 가리키니 또 뭔가를 묻더니 K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커피나 마시자고 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깍두기는 지금이 오토바이가 가장 싼 철이라고 했다. 무슨 소린인가? 우기가 닥치기 전이라 오토바이가 비교적 싼 편이라며 돈이 있으면 지금 사두는 게 좋다고 했다. 한국은 겨울에 오토바이 타기가 힘들다. 그러나 미얀마는 우기가 닥치면 오토바이 가격이 내려가는 모양이다. K는 커피를 마시다가 일어나 오토바이 바퀴가 마음에 드는 걸 골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휠 커버와 프레임 색깔이 예쁜 걸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은 K는 어제 흥정하던 태국제품은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깍두기는 어제 이미 팔렸다고 하며 아까 타본 것이 모델은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남들이 눈치 채지 않게 눈을 껌뻑이며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K가 오토바이를 본격적으로 탄 건 신혼시절이었다.
구미공단에서 낙동강 건너 하수종말처리 건설현장에 토목기사로 있으면서였다. 그 공사는 사 년이 넘게 걸렸는데 집에서 현장까지 직선거리로는, 육안으로 보일정도지만 강이 사이에 있어서 대교를 건너 돌아가려면 시내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했다. 그렇다고 신혼인데 현장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다른 대리들과 숙식을 같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리 끝에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 90CC 빨간색 오토바이였는데 그 오토바이를 거의 사 년 넘게 타고 공사가 마무리 되고 대구의 보세창고 현장으로 옮겨가면서 중고차를 사고 오토바이를 팔았다. 새 오토바이 가격이 올라서 그랬는지 살 때 가격보다 좀 더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음주단속이 느슨했다. K는 사 년간 회식이 있는 날이면 술을 먹고 다녔지만 사고 한번 내지 않았고 딱지 한번 떼이지 않았다. 오토바이에 관한한 K는 모범이다. 아버지께서 ‘과부틀’이라시며 천천히 다니라고 누누이 말씀하셨고 술이 취해서 어디 간다면 아내가 키를 감추어버렸다. 그 때문이지만 나름대로 오토바이 운전에 대한 철학도 지녔다. 분명히 헬멧은 쓸 것이며 K는 절대 보호안경이나 선글라스는 끼지 않았다. 달리다가 마파람 때문에 눈에 힘이 들어가는 속도가 오토바이의 한계속도로 규정하고 속력을 낮추곤 했다.
양곤은 한국에 비해서 도로사정이 안 좋다. 도로는 움푹 파인 곳이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있다. 그러나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타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심은 해야지.
기다리는 동안 오토바이 두 대가 거래가 되었다. 깍두기가 안장을 때리며 외치고 돈을 직접 받아서 건넸다. 거래를 마친 오토바이가 빠져나갔고 세 대가 더 들어왔다. 오토바이를 팔러 온 청년들은 다들 나이가 고만고만했다. 현지 아이들이 왜 오토바이를 파느냐고 물었다. 깍두기 설명으로는 돈이 떨어져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돈이 떨어지면 오토바이를 좀 싼 것으로 바꾸고 차액을 쓰고 돈이 생기면 좀 좋은 것으로 바꾼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옛날 농촌에서 소를 팔고 사는 이치와 같았다.
팔기를 포기했는지 점심 먹으러 가는지 두 대가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새로운 오토바이 두 대가 간발의 차이로 들어왔다. K는 들어올 때마다 다가가서 유심히 살폈지만 깍두기는 태평이었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가 넘었다. K는 약속된 오토바이가 있느냐며 오기는 오느냐고 물었다. 깍두기는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했다.
식은 커피를 버리고 다시 커피를 시켜서 마시는데 한꺼번에 오토바이 네 대가 무리를 지어 들어왔다. 깍두기는 앉아서 바고에서 온 놈들이라고 했다. 바고? 백오십 킬로가 넘는 길을 오토바이 팔러 오다니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멀리서 온 놈들은 가격을 후려쳐도 팔고 간다고 하며 무심한 척 기다리라며 K에게 속삭이고는 일어섰다.
K는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들어온 오토바이를 살피니 세 대가 오전에 타본 것과 같은 기종이었다. 깍두기는 그 무리들과 대화를 잠깐 하더니 오토바이를 살피고는 K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깍두기가 두 대를 가리키며 어느 것이 맘에 드느냐고 물었다. 검정색 보다는 흰색이 마음에 끌렸다. 직접 타보라고 해서 블록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엔진소리가 부드럽고 브레이크가 잘 잡히며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사이 깍두기는 바고에서 내려온 팀과 다른 오토바이를 흥정하고 있었다. K는 오전에 타본 것과 찬찬히 비교하니 오전에 탄 것은 머플러가 세 개인데 이건 하나였다. 다른 오토바이는 번호판이 없는데 K가 찍은 것은 번호판이 달렸다. 바고에서 내려온 팀 중 하나가 깍두기가 받아서 건네는 돈을 받으면서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마도 흡족한 가격이 아니고 강매를 당한 모양이었다.
그쪽 거래가 마무리되고 깍두기가 돌아왔다. 오토바이를 잘 찍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이 모델은 125CC로서 엔진부품은 이탈리아제이고 아무리 과속으로 달려도 엔진에 열이 나지 않는 물건이라며 넘버가 있으니 경찰에게 걸려도 빼앗기거나 영치되지 않으니 외국인은 이런 것을 타야 된다며 나중에 팔아도 감가삼각이 심한 물건이 아니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단지 번호판 값이 붙어있다고 했다. K는 번호판 값이 얼마인지 궁금했다. 그걸 물으려는 찰라,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있던 한 녀석이 깍두기를 불렀다. 뭐라고 했는데 K가 보기에는 바고에서 내려온 검정색 오토바이를 사겠다고 한 모양이다. 깍두기는 또 그 오토바이를 흥정하러 돌아섰다.
그 짬을 이용해서 K는 제 것처럼 흰색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 건너 블록까지 돌고 제 자리에 오니 그 사이 거래가 끝났는지 검정색 오토바이를 탄 녀석이 K에게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넘버값은 오만 짯이라고 했다. 계산하니 한국의 담배 한 보루 값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경찰 눈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타느니 그게 속이 편하겠다 싶었다. 나중에 팔아도 넘버값은 그대로 붙어있다고 했으니까.
깍두기는 오토바이 주인에게 뭐라고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나무라더니 막무가내로 K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요구한 금액은 K가 예상한 액수에 못 미치는 웃돈이었다. 그리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있는 인도계 녀석에게 돈다발을 받아서 합쳐서 오토바이 주인에게 건넸다. K도 모르는 사이에 오전에 숙소에서 타고나간 클래식한 110CC는 이미 팔린 모양이었다. 깍두기가 오토바이 등록증이라며 비닐에 든 서류를 K에게 건넸다. 이전을 해야 되느냐고 물으니 그럴 필요 없이 보관하고 있다가 오토바이를 팔 적에 가지고 나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바고에서 내려온 녀석은 울상이었지만 K는 흡족한 거래였다.
K는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깍두기에게 보여주며 휠은 이렇게, 바디는 이렇게 꾸미고 싶다고 하니 주위를 둘러보더니 앉아있는 꽁지머리를 불러 뭐라고 하더니 같이 갔다가 오라고 했다. 꽁지머리에게 부탁을 넘어서 지시가 아니라 다분히 명령조였다. 꽁지머리가 냉큼 일어나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K는 뒤에 올라앉았다.
오토바이 인테리어를 하는 곳은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서 경제은행 앞에서 좌회전해 두 블록을 지나 경찰서 뒤쪽에 있었다. 오토바이 수리점이 아니고 대나무 숲이 드리워진 판잣집이었다. 경찰서 앞으로 몇 번 지나다녀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이라면 불법이라고 난리가 날 터이지만 마당에 쳐놓은 차양아래 버젓이 오토바이 두 대가 분해되어 대수술로 둔갑을 당하고 있었다.
꽁지머리는 주인을 불러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라고 했다. 꽁지머리와는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이 필요했다. 영어가 안 되는지 꽁지머리가 먼저 입을 닫고 손짓을 했다. K는 서툰 미얀마 말과 영어를 섞어서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는 이렇게, 이곳은 이 색깔로 하고 싶다고 하니 주인은 알아들었다며 지금은 일이 밀려있으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했다. 가격은 얼마냐고 물으니 대답 없이 꽁지머리를 보고 현지어로 뭐라고 물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깍두기가 보냈느냐고 묻는 말인 모양이다. 꽁지머리가 호웃대! 그렇다고 하자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어 K에게 보여주었다. 참 착한 가격이라고 여기며 내일 아침에 오겠다고 했다.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며 생각하니 점심도 먹지 않은 것이다. 허나 시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무래도 희한하다고 K는 생각했다.
오토바이 장터에 다시 가니 그 사이에 오토바이 몇 대가 거래가 된 모양이다. 오전에 타보았던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았고 바고에서 내려온 팀은 네 대 중에서 한 대만 남았다. 깍두기는 또 다른 물건을 흥정하고 있었다. 흥정을 보니 재미가 있었다. 세 시가 넘어서니 파장인지 바고에서 내려온 팀은 넷이서 남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바고까지 무엇을 타고 가는지 궁금해 깍두기에게 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저렇게 간다고 했다. 백오십 킬로가 넘는 길을 넷이서 오토바이 한 대에 타고 간다? 오토바이를 셋이서 타는 것은 더러 보았지만 넷이서 타는 것은 처음 본 터라 가슴 졸이며 괜찮겠냐고 물었다. 깍두기는 웃으면서 문제가 없다고 하고는 내일 그 판잣집을 찾아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K도 웃으면서 문제가 없다고 했다.
K는 볼일을 다 보았으니 가겠다고 등록증을 배낭에 넣고 시동을 걸자. 깍두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차, 구전을 주지 않았지? 지폐 한 장을 꺼내 깍두기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깍두기는 잔돈을 거슬러주려고 했는데 K가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깍두기가 웃었다. 전날보다 구전을 곱절로 준 것이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K는 골목을 빠져나와 숙소로 오지 않고 바로 후배의 자동차 매장으로 향했다. 오토바이는 스피드를 내자 더 부드러웠고 비포장 요철구간도 가뿐하게 지나갔다.
-형님! 폭주족에 가입했습니까?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는데 후배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야! 점심도 못 먹었다. 라면 있냐?
후배의 매장 사무실에 들어가 경리처녀보고 라면을 끓이라고 했다.
아~ 아아~~ 엽전~~ 여얼닷~~냥~~
흥얼거리며 오토바이 사진을 보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으라고 퓨퓨가 K를 부른다. 그래 아침은 먹어야지. 아침을 먹고 오토바이를, 양곤에서 가장 예쁜 오토바이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토바이로 꾸밀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지제 걱정하지 말고,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오토바이를 꾸미며 즐겨야지. 오토바이를 꾸미고 장터에 들러 깍두기에게 자랑을 해야지. K는 휴대폰을 끄고 일어선다. 헌데, 오늘 일요일이라 장이 서려나? 모르겠다.
청노오~~~새야~~ 울~지말어라~~
흥얼거리며 K는 실내 나무계단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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