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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峯類說卷十三 / 文章部六 / 東詩
李判書後白少時。犯路於方伯。方伯令製詩。公卽呈一絶曰。遠郊斜日眩西東。撲眼塵沙困北風。誤觸牙旌知不恨。浪仙從此識韓公。方伯大加驚歎。禮而遣之。或言。此乃古人所作而公借用云。
李後白閨情詩曰。妾身只似門前柳。眉樣雖新已杇心。金克儉詩曰。銀缸還似妾。淚盡却燒心。似佳。
退溪先生南歸日。一時名士出餞于漢江。別章甚多。而李純仁詩最佳。其詩曰。江水悠悠日夜流。孤帆不爲客行留。家山漸近終南遠。也是無愁還有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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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宋成明 : 1674(현종15)~1740(영조16). 자는 君集, 聖集. 호는 松石軒. 본관은 礪山.
國朝名臣言行錄 後集卷二 / 李後白【文淸公。】
字季眞, 號靑蓮, 延安人。 明宗八年癸丑登第。 歷玉堂、吏郞, 賜暇湖堂。 官至吏曹判書。 庚寅, 追策光國勳, 贈府院君。
少時犯路於方伯, 方伯令製詩, 公卽呈一絶曰: “遠郊斜日眩西東, 撲眼塵沙困北風。 誤觸牙旌知不恨, 浪仙從此識韓公。” 方伯大加驚歎, 禮而遣之。 或言此乃古人所作而公借用云。
爲咸鏡監司, 莅政淸明, 務祛宿弊, 一道稱頌。 然蠲減太甚, 郡邑凋弊, 科外誅求, 民始苦之。 林悌有詩曰: “蕙折霜風玉委塵, 一時淸德動簪紳。 可憐貊道終難繼, 相國醫民是病民。”【竝《芝峯類說》。】
李後白以特旨拜刑曹判書。 後白淸勤奉公, 大臣薦之, 故有是除。 先是, 上問朴淳曰: “刑曹長官, 每患不得其人, 請卿勿論職次高下, 薦其可堪者。 雖在郞僚, 亦可擢用。” 淳對曰: “上敎如此, 不勝感激。 臣請出與同僚議薦。” 旣出, 乃薦後白, 故以特旨拜官。
吏曹判書李後白辭疾免。 後白爲銓長, 務崇公論, 不受請托, 政事可觀。 雖親舊, 若頻往候之, 則深以爲不韙。 一日有族人往見, 語次示求官之意, 後白變色, 示以一小冊, 字多記人姓名, 將以除官者也, 其族人姓名亦在錄中。 後白曰: “吾錄子名, 將以擬望。 今子有求官之語, 若求者得之, 則非公道也。 惜乎! 子若不言, 可以得官矣。” 其人大慙而退。 後白每除一官, 必遍問其人之可仕與否, 若除不合之人, 則輒終夜不眠, 曰: “我誤國事。” 時論以後白之公心, 近世無比。
李後白居官盡職, 律身淸苦, 位至六卿, 霜素如儒生, 賄賂一切不受, 客至盃盤冷淡, 人服其潔。 只是局量狹隘, 非廟堂之器。 金孝元常曰: “季眞只是六卿之才, 若至作相, 我當論劾。” 人以後白與沈義謙相知, 故孝元嗛義謙而發此云。 李珥獨曰: “季眞果非相器, 孝元不爲無見。 但無人勝於季眞, 則安能劾其爲相乎?”【竝《石潭日記》。】
北方是豐沛之地, 而在要荒之外, 風俗獷悍, 與胡貊無異。 宣廟初, 李靑蓮後白爲方伯, 作文會書院于咸興, 以文敎道之。 州縣小民有能誦詩書、作文辭者, 親與之爲主客之禮, 人皆競勸, 文風藹然, 策名登朝者相繼。 壬辰之亂, 能撥亂反正, 皆自號儒生者始, 若李公可謂眞方伯矣。
李靑蓮爲冢宰, 門不受私謁, 雖名稱堪爲百執事者, 人或私托, 則必絶之, 惜人才者多病。 多病誠是也, 其視惟貨其吉而門如市者, 亦不可同日而語矣。【竝《涪溪記聞》。】
[주-D001] 淸 : 底本에는 “靖”으로 되어 있다. 《江漢集・資憲大夫……李公神道碑銘》, 《肅宗實錄》 22年 7月 24日, 《國朝文科榜目》에 根據하여 修正하였다.[주-D002] 八年癸丑 : 《靑蓮集・靑蓮先生李公行狀》, 《宋子大全・靑蓮李公行狀》, 《國朝文科榜目》에 根據할 때 “十年乙卯”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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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어 시(釣魚 詩)
把竿終日趁江邊(파간종일진강변) / 낙시대 잡고 終日토록 江邊에 가서
垂脚滄浪困一眠(수각창랑곤일면) / 滄浪에 발을 드리우고 곤히 잠을 잤다
夢與白鷗飛海外(몽여백구비해외) / 꿈에 白鷗와 함께 萬里를 날았는데
覺來身在夕陽天(각래신재석양천) / 깨어보니 몸은 夕陽하늘에 있네
[출처] 성담수(成聃壽)의 조어시(釣魚詩)|작성자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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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수(成聃壽)의 조어시(釣魚詩)
아산 ・ 2024. 12. 6. 21:36
성담수(成聃壽)의 조어시(釣魚詩)
1. 성담수(成聃壽)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수(耳叟), 호는 문두(文斗). 보문각대제학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京畿都觀察使 성개(成槪)이고, 아버지는 홍문관 교리 성희(成熺)이며, 어머니는 호조판서 이견기(李堅基)의 딸이다.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의 재종제이다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천성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세간의 명리에 욕심이 없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자, 아버지 성희도 친족이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혹독한 국문을 받고 김해에 안치되었다.
성희는 3년 뒤에 풀려나서 공주에 돌아왔으나, 마침내 충분(忠憤)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사에 합격했던 성담수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벼슬을 단념하고 선영이 있는 파주의 문두리에 은거하였다.
단종복위와 관련된 죄인의 자제에게는 전례에 따라 참봉벼슬을 제수하여 그들의 거취를 살폈는데,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직역(職役)에 복무하였으나, 그만은 끝내 벼슬하지 않고 시와 낚시질로 소일하였다.
1782년(정조 6)에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 등과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1784년에는 정숙(靖肅)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세상에서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조려(趙旅)·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 등을 생육신이라 일컬어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함께 봉향하였다.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되고 있다.
2. 조어 시(釣魚 詩)
把竿終日趁江邊(파간종일진강변) / 낙시대 잡고 終日토록 江邊에 가서
垂脚滄浪困一眠(수각창랑곤일면) / 滄浪에 발을 드리우고 곤히 잠을 잤다
夢與白鷗飛海外(몽여백구비해외) / 꿈에 白鷗와 함께 萬里를 날았는데
覺來身在夕陽天(각래신재석양천) / 깨어보니 몸은 夕陽하늘에 있네
3. 회곡공파보와 조어시(釣魚詩)
(1) 정유보(丁酉譜-1957년)에는 이 조어시(釣魚詩)가 동생 어조공(漁釣公 諱 聃齡)의 시로 등재(登載)되었다.
(2) 신유보(辛酉譜-1981년)에는 이 조어시(釣魚詩)가 公(諱 聃壽)의 시로 등재(登載)되었다.
(3) 경진보(庚辰譜-2000년)에는 이 조어시(釣魚詩)가 동생 어조공(漁釣公 諱 聃齡)의 시로 등재(登載)되었다.
4. 조어시 출처(釣魚詩 出處)
이 詩의 출처(出處)를 확인(確認)해 보니 모두 문두공(文斗公)의 시로 되어있다.
서울 육백년사(六百年史)는 생육신합집(生六臣合集)에서 근거(根據)하였고,
생육신합집(生六臣合集)은 기아(箕雅)에서 근거(根據)하였다.
(1) 서울六百年史 拔萃
그의 작품인 칠언절구 시 한수가 《생육신합집(生六臣合集)》 중 《문두일고(文斗逸稿)》에 남아 있으며, 함안(咸安)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생육신으로 함께 제향되었고, 창녕(昌寧)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성삼문 등 성씨 일문의 여러 현인들과 함께 제향되고 있다. 시호는 정숙(靖肅)이다.
(2) 生六臣合集 拔萃
成聃壽의 字는 眉叟 , 號는 文斗, 昌寧人이다. 父 熺는 從父兄子 成三問의 사건에 연루되어 金海에 定配되었다가 3년 후에放還되어 公州로 돌아가 憤死했다. 그는 父墓 아래 屛居하면서 布衣 粗食으로 3년상을 치루고는 罪人子弟에 例除하는 參奉도 받지 않고 吟詩釣漁로 悠然自適하게 지내다가 老年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다. 역시 1781년에 吏曹判書를 贈職받았다.
成聃壽의 文斗逸稿는 箕雅에서 移錄한 七言絶句「釣魚」1首뿐이다. 「釣魚」는 江畔에서 낚시질로 終日하는 자신과 獨世를 떠나 遠遊하기를 渴望하는 심회를 자연스럽게 그려낸 妙品이다.
生六臣先生集卷之四
文斗逸稿
詩 七言絶句
釣魚 出 箕雅
把竿終日趁江邊。垂足滄浪困一眠 。夢與白鷗飛海外。覺來身在夕陽天
生六臣合集成論者以爲惟文斗先生寂寥一首詩殊欠鋪 張無人近默難之曰誦其詩可得其志得其志可想其人以先生之志則己多了一首詩之落在世間其孰敢贅爲若微顯闡幽非人人可
(3) 箕雅 拔萃
정의 : 1688년(숙종 14) 남용익(南龍翼)이 편찬하고 간행한 시선집.
내용 : ‘기아’는 조선의 바른 시가(詩歌)라는 뜻이다. 남용익이 대제학의 자리에 있을 때에 간행한 책이다. ≪국조시산 國朝詩刪≫ 이후에 조선 후기에 널리 읽힌 시집이다.
≪기아≫의 구성은 권1에 오언절구, 권2∼4에 칠언절구, 권5·6에 오언율시, 권7∼10에 칠언율시, 권11에 오언배율·칠언배율, 권12에 오언고시, 권13·14에 칠언고시를 싣고 부록을 붙였다.
수조(垂釣) 성담수(成聃壽)
持竿盡日趁江邊。垂脚淸波困一眠
夢與白鷗遊萬里。覺來身在夕陽天
5. 조어시(釣魚詩)는 탁영(김일손)선생년보(濯纓先生年譜)에서 근거하였다.
○ 탁영선생년보(濯纓先生年譜) 拔萃
<1487년>24세 가을 8월 을유(18일)
행주(杏州)에 있는 추강(秋江)을 방문, 함께 파평(坡平) 남곡(南谷)에 가서 문두(文斗) 성(成)선생을 뵙고 인하여 지경 오른쪽에 있는 명산을 유람하고 열흘이 지나 돌아오다.
文斗名聃壽字耳叟集賢校理熺之子丙子熺從父兄子三問謀復 魯山坐竄金海意以忠憤沒世歸葬坡州文斗因居墓下深自韜晦與世相絶不出戶外貞心亮節克紹前烈先生與秋江往訪至其門草屋肅然不蔽風雨土床無席殆難容膝佣酒壺持釣竿引先生遊長浦江上有唱酬詩時公年五十一先生有紀行錄
문두(文斗)선생의 이름은 담수(聃壽)요 자는 이수(耳叟)인데, 집현전 교리 성희(成熺)의 아들이다. 병자년(세조 2년) 성희는 친척인 성삼문(成三門) 등의 노산군(魯山君)의 단종 복위 모의 사건에 연좌되어 김해에 귀양 갔다가 마침내 충분(忠憤)을 이기지 못하고 별세하였다. 그 후 파주(坡州)에 귀장(歸葬)하였는데, 그 묘아래 문두 선생이 거처하게 된 것이다.
문두 선생은 스스로 깊숙이 은둔(韜晦)하며 세상과 인연을 끊고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곧은 마음(貞心)과 맑은 절개(亮節)는 능히 전열(前烈 ; 先代의 忠烈)을 이을 만했다. 선생과 추강이 방문해서 그 문 앞에 이르니, 쓸쓸한 초옥(草屋)은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흙바닥에 자리도 없어 한 몸 용신(容身)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술병을 차고 낚싯대를 들고 선생을 인도하여 장포강상(長浦江上)에서 유람하면서 서로 시창(詩唱)을 주고받았다.
이때 공(성담수)의 나이는 51세였다. 선생은 이때의 기행록을 써서 남겼다.
공은 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註 선생은 김일손(金馹孫)을 지칭(指稱)함.
○ 탁영선생문집(濯纓先生文集) 拔萃
제6권(卷之六) 시(詩) 2
8. 奉和文斗成先生(봉화문두성선생) 聃壽 ○ 丁未
문두 성 선생 담수[1]의 시에 삼가 화답하다 정미년(1487)
鷗鷺忘機護兩邊 갈매기 해오라기가 세상일 잊고 양에서 호위하며
茵沙枕石共閒眠 모래 자리에 돌베개로 한가로이 한잠 잤네
知君一夢遊何處 한바탕 꿈속에서 그대 어디서 노셨는지 알만하니
只在淸風北海天 그 북해의 하늘에 청풍(淸風)[2]만 불고 있었네
[1] 성담수(成聃壽) :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성삼문(成三問)과는 재종간으로 부친(父親) 희(熺)가 사육신 사건 당시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3년 뒤에 풀려나서 공주에 돌아왔으나, 마침내 충분(忠憤)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사에 합격했던 문두(성담수) 선생은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벼슬을 단념하고 선영이 있는 파주의 문두리에 은거하였다. 이때 탁영 선생이 추강 선생과 함께 방문 하여 10일간 묵으며 창수하였다.
주(註) [1] 성담수(成聃壽) :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성삼문(成三問)과는 재종간으로 사육신 사건 당시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이때 파주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탁영선생이 추강선생과 함께 방문하여 10일간 묵으며 창수하였다.]를 위와 같이 수정하였다.(아산)
[2] 청풍(淸風) : 청고한 풍격을 지닌 사람 즉 문두(文斗) 선생을 지칭한다.
9. 附文斗韻(부문두운)
문두의 시를 붙임
把竿終日趁江邊 낚싯대 들고 강가에 나가 하루해를 보내다가
垂足滄浪困一眠 창파에 발을 드리운 채 곤히 한잠을 잤네
夢與白鷗飛海外 백구와 함께 바다 멀리 나는 꿈을 꾸었건만
覺來身在夕陽天 깨고 보니 이몸은 석양 아래 누워 있네
출처
김해김씨족보 | 탁영선생 연보 상(1/2) - Daum 카페
탁영선생 연보 상(1/2)
濯纓先生年譜 上 탁영선생휘일손연보 상(1/2) 原文: 濯纓先生年譜 金大有 著 高宗11[1874] 국립중앙도서관 일산古2511-10-25, 參考譯文: 增補濯纓先生年譜 2006.9.30. 感慕齋宗中, 解釋 : 2008. 8. 15. 金順大, 編輯 :金乙泰 濯纓先生年譜序(탁영선생 연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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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족보 | 탁영선생문집 시(詩) 2 - Daum 카페
탁영선생문집 시(詩) 2
탁영선생문집(濯纓先生文集) 제6권(卷之 六) 시(詩) 2) 1. 謹和呈耕隱李先生(근화정경은이선생) 孟專(맹전) 戊戌(무술년,1478) 경은 이선생 맹전[1]의 시에 삼가 화답하여 드리다. 先生韜晦久盲聲 선생께선 은둔한 채 문 귀 먼 양하시니 小子何知意欲同 소자 무얼 알아 뜻을 같이 하오리까마는 夜夜子規啼不盡 밤마다 소쩍새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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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담수(成聃壽)와 성담령(成聃齡)
성담수(成聃壽) 는 성희(成熺)의 長男이고 성담령은 성희(成熺)의 四子이다.
성담수(成聃壽)는 號가 문두(文斗)이고 성담령의 號는 두문산인(斗文山人)이다.
성담수와 성담령은 모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하지 않았다.
성담수와 성담령은 모두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
성담수와 성담령은 모두 시(詩)와 낙시를 즐겼다.
성담수는 몽구정(파주)에서 시를 읊으며 낚시를 즐겼고, 성담령은 육괴정(이천)에서 시를 읊으며 즐겼다.
◎ 芝峯類說卷十三 (國學原典) 拔取
文章部六 東詩
成夏山夢井題江亭曰。爭占名區漢水濱。亭臺到處向江新。朱欄大抵皆空寂。携酒來憑是主人。可謂達者之詞也成聃壽詩曰。持竿盡日趁江邊。垂脚淸波困一眠。夢與沙鷗遊萬里。覺來身在夕陽天。意興亦高矣。第三句一作夢與白鷗飛海外。聃壽夏山之叔也。
(成聃壽 詩)
◎ 東文選 拔取
東文選은 1478년(성종 9) 성종의 명으로 서거정(徐居正)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持竿盡日趁江邊。垂脚淸波困一眠
夢與白鷗遊萬里。覺來身在夕陽天
◎ 우리나라 漢詩에서 拔萃
1420 문두 성담수 생육신, 耳叟 文斗 成聃壽(?∼?)靖肅 昌寧
釣魚 고기 낚기
把竿終日趁江邊 낚싯대로 하루를 강가 따라서 (장대간 좇을진)
垂足滄浪困一眠 발 담근 푸른 물결 지쳐 한잠을 (찰창 물결랑)
夢與白鷗飛萬里 꿈을 꿔 흰 갈매기 만 리를 날고 (갈매기구)
覺來身在夕陽天 깨보니 몸 머물러 하늘 저녁볕 (깨달을각)
※ 글자가 몇자씩 다르다
把竿終日趁江邊。垂足滄浪困一眠
夢與白鷗飛海外。覺來身在夕陽天
生六臣合集
持竿盡日趁江邊。垂脚淸波困一眠
夢與白鷗遊萬里。覺來身在夕陽天
箕雅
持竿盡日趁江邊。垂脚淸波困一眠。
夢與沙鷗遊萬里。覺來身在夕陽天。
芝峯類說
持竿盡日趁江邊。垂脚淸波困一眠
夢與白鷗遊萬里。覺來身在夕陽天
동문선
把竿終日趁江邊 垂足滄浪困一眠
夢與白鷗飛萬里 覺來身在夕陽天
우리나라 漢詩
把竿終日趁江邊
垂脚滄波困一眠
夢與白鷗飛萬里
覺來身在夕陽天
정유보(丁酉譜-1957년)
把竿終日趁江邊 낙시대 잡고 終日토록 江邊에 가서
垂脚滄浪困一眠 滄浪에 발을 드리우고 곤히 잠을 잤다
夢與白鷗飛萬里 꿈에 白鷗와 함께 萬里를 날았는데
覺來身在夕陽天 깨어보니 몸은 夕陽하늘에 있네
신유보(辛酉譜-1981년)
把竿終日趁江邊 낙시대 잡고 終日토록 江邊에 가서
垂脚滄浪困一眠 滄浪에 발을 드리우고 곤히 잠을 잤다
夢與白鷗飛萬里 꿈에 白鷗와 함께 萬里를 날았는데
覺來身在夕陽天 깨어보니 몸은 夕陽하늘에 있네
경진보(庚辰譜-2000년
[출처] 성담수(成聃壽)의 조어시(釣魚詩)|작성자 아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