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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향이 된 지난날 직장생활하던 곳, 대학도시 튀빙겐) 1970년에 독일로 왔을때, 자랄때 겪은 경험과는 무척도 다른 이곳의 자유스런 사회모습, 특히 독일서도 가장 자유(liberal) 스럽고, 옆에 사람들이 하는짓을 융통스럽게 시인, 인식하는 사람들의 도시 Koeln 에 도착. 병동마다 수녀님들이 수간호원으로 일 하는 천주교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쟁전에 있었던 병원이라 건물은 옛 건물이었지만, 간호원 기숙사는 새로 지은 신식(?) 건물이 시설도 아주 좋았다. 그 큰도시 가운데에 오래된 병원이 예로 이름이 있고, 좋은 병원으로 알려져, 우리 할 일이 무척 많았다. 수녀원장이 그때 벌써 중년의 얼굴이 아주 곱게 생기신 분이셨다. 입 가장자리가 특이하신, 그래서 말을 하시면 어디 정이 똑, 똑! 떨어지게... ^^ 병동을 맡은 수간호원 수녀님들이 모두 속세에선 정년퇴직을 버얼써 하셨을, 늙으신 수녀님들이 물론 밤낮없이 봉사 활동을 하시었다. 노동자가 무척도 모자라던 그때 독일에서. 그 수간호원 수녀님들은 일반 간호원 두세명 일을 하시었다. 나이가 많은, 남자내과 병동 수간호원이 그만 일을 그만 두어야 했다. 도저히 그 자리를 맡을 간호원이 없었으니, 독일에 온지 겨우 1년이 안되는 나한테 맡아달라고. 울며 고추먹기로 그 병동을 맡아 일을 하는데, 오래 아프던 수녀 수간호원이 얼마나 쓰레기(?)를 모아두셨는지... 거의 두어달을 그 뒷청소하는데 보조원 한사람과 꼬박. 겨우 반년이 되어가면서 일하는것도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손이 모자라 매일 끙끙거리면서도, 우리 팀이 아주 이해를 잘 하고, 재미있게 병동을 운영하는데, 갑자기 어디서 독일 간호원이 오더니, 며칠후에야 옆에서 동료가 하는말이, "저 애가 이제 수간호원이래." 했다. 간호원장 수녀를 찾아가 물어봤더니, 대답이 우물쭈물... 그런데 이 독일 간호원이 일자리를 늘 비우고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어느날 부엌에서 일하는 나를 무척도 아끼고 좋아하던 이태리 Mamma (^^)가 " 저 애가 옛날에 서무실 과장하고... 지금 저 둘이 다시 만났는데, 그 서무실 과장 마나님 알아요. " 한다. 얼키고 설키고... 몇달을 정리하고, 특근 시간 수없이 일했지만...! 돈 한푼 받은것없이 그 자리를 그만두고 수술실로 일자리를 옮겼다. 반년이 못되어 와장창!!! 그 애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그후 다시는 못 봤으니. 그 서무실 과장은 나를 볼때면 늘 버얼게진 얼굴. 3년 계약 끝나고 사표내었을때, 더 있어주라고 부탁을... 얼마 안있어, 그 병원 수녀님들 모두 수도원 본원(Mutterhaus) 으로 돌아가셔야 했다. 지금 세상에 수녀되겠다는 젊은 여인들이 없으니. 내가 그 병원을 3년 계약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라인강 건너편에 그 천주교 재단에서 새로 지은 병원이 개업했을때, 동료들이랑 초대를 받고 찾아갔었다. 그 사이 본원으로 돌아간 수녀님들의 소식은 가끔 들었고, 그 간호원장 수녀님이 암으로 고생한다는 소식도. 우리가 회장으로 들어서는데, 간호원장 대리를 하시던 수녀님이 나를 보시더니, 금방 나한테 오셔서 두손으로 내 손을 잡으시면서 끌어당기셨다. 나를 다른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데려가신 그 수녀님이 나를 쳐다보며 하시는 말씀이, " 부디 그 간호원장님 용서하십시오. 그 분 건강이 지금 아주 안 좋아요." 하셨다. 왜 그 분은 스스로 용서를 빌지 못 하셨는지... ? 수녀로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하셨는지? 그분은 당신이 나한테 하신 짓을 알고 계셨는데. 훗날 그 병원을 떠나 대학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하나 둘 알게 된 일. 수간호원으로 그때 나한테 월급이 보통 간호원보다 2등급 더 많았어야, 그리고 특근 수당이 한달에 그때 300 마르크 이상이었다는 것도. ( 한달 봉급이 천 마르크 정도일때 엄청난 금액이다!) 대학병원에서 수간호원으로 일하면서 받은 돈이다. 그리고 그 병원서도 다른 병동 수간호원들이 받은 돈. 외국에서 와서 이곳 노동법을 모른다고 이용해 먹은 짓! 수행자로서 그런 짓을 하셨으면, 왜 미안하단 말을 직접 못하고, 대리 수녀님이 죄송하다고 하셨는지? 물론 우리는 돈벌이하러 여기까지 왔으니, 돈도 중요하지만, 나한테 직접 말 한마디 안하고, 다른 사람을 수간호원으로 코앞에 앉히고, 그것도 그 엉망이던 병동 몽땅 정리했을때 그런 짓을 하셨는지. 기숙사 옆방에 사감역으로 살으시던 수녀님, 얼마나 갈등이 심하셨으면 몇번을 자살시도하셨으리. 만나면 늘 내 손 잡고 고향소식 물으시던 ... 실수는 누구나 하는것! 무언가 잘못되었으면 왜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도 어려운지? 미안하다는 말이 그토록 어려우면,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은 한번 더 생각하고, 하기도 어려워야 한다. 특히 번연히 계산을 해서 하는 실수는 그 사람이 아무리 아플지언정 용서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물론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준 독일 간호원들도 있었고, 마지막에 그 병원 그만두었을때, 독일 친구가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는지! 때로 무언가 바르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할때면, 어디선가 도움이 있어 다시 희망이 생긴다. 그저 입 다물고 보고있으면, 언젠가는 꼬이고 틀어진것이 풀어진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
첫댓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알게모르게 지으신 공덕이 무량하십니다...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제는 다 용서 하셨을 옛 이야기에 감동이 잔잔하게 남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마음아픈 추억이 공덕이 되어 복있는 삶을 이루시기를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