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이효사)님의 교우 단상: 사순절을 보내며! ◈
카페 뒷마당에 피인 매화를 바라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막 움트려 하는 벚꽃을 바라볼 날이 머지않았다. 갖가지 꽃들이 자신의 생명을 뽐내는 것을 보면, 시련과 고난의 사순절을 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머지않았음을 하나님께서 봄을 통해 알려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봄의 움틈과 부활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우리 또한 사순절 기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고자 했던 그 길을 올라탈 준비가 됐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순절(四旬節)은 다가올 부활절을 대비하여, 고난받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며,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회개와 깊이 있는 성찰을 하고, 변화와 성숙함을 위해 금식을 통하여 나를 훈련하고, 자신의 신앙을 검토하고 성찰하는 기간으로 불린다.
성서에서 ‘40’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려 준비한 기간과 함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에서 보낸 40년이며, 선지자 엘리야의 호렙산으로 가는 40일간의 여정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처절한 기도와 단식을 뜻한다.
성서에 근거하는 이와 같은 사례들은 사순절의 뿌리가 시련과 고난을 통해 회개와 반성, 그리고 이를 통해 나아가는 성숙함과 변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과거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은 참회와 속죄를 상징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했다는 점 또한 이를 증명한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상징화한 행위이자 영적 훈련을 위해 이루어지는 ‘금식’은 변화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믿음과 내면의 성숙함을 담금질하는 행위로 나를 성숙하고 변화의 주체로 만드는 수단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순절에 대한 유래와 의미는 결국 들꽃공동체가, 내가 주체가 되어 성서 속 인물들이 어째서 하나님을 목 놓아 부르짖었는지, 그 본질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노트에 새겨지는 새해 계획 정도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의 기도를 통해 ‘변화’하고자 했던 그 의미를, 모세와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곧 ‘변화’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참회, 속죄는 기본이고 회개와 성찰로 성숙함과 세련된 믿음의 영역에 다다른 것도 있지만, 성서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직면하도록 한 문제를 해결할 때 눈을 돌리지 않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과거의 반성과 다짐만 한 것이 아니며, 실질적인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도구로써 쓰임 받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사순절을 보내며 나는 들꽃공동체가 산재해 있는 현실의 어려움과 앞으로 가야 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거의 반성과 다짐만 할 것이 아니라, 성서 속 모세, 엘리야, 광야에서의 생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기도처럼, 눈앞에 있는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며 나아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사순절을 통해 느리가고 더디 가더라도 모두와 함께 변화하는 길을 걸어갔던 들꽃신앙 공동체의 정신을 다시금 떠올리는 들꽃인들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청계산 자락 시습재 방 한켠에서 민들레 올림
(*덧붙이며: 요즘 교우님들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다는 풍문이 봄바람을 타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것도 누군가의 희생의 산물이겠죠. 감사합니다. 곧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