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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에 절하는 것.......우상 숭배로 여기는 견해(공사중)
^-^*
우리는 흔히 불교인이란 고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을 행하는 사람들이라 한다.
고타마 싯달타는 누구인가?
어진이 이다.
눈 뜬 자이다.
깨달은 분이다.
그가 깨달았다고 하는 진리란?
사물의 실상을 사람의 6처(안이비설신의)를 기반으로
인간의 고통, 불만족함을 있는그대로 보는 방법인 두가지 성제(집멸)를 근거로
한가지 성제(인간삶의 고통) 을 해결하는 길!
즉
4성제와 8멸도(8정도)를 사람들에게 제시하였다.
즉
흔히 우리는 고를 해결하는 길을 중도라고한다.
중도는 8정도를 일컫는다.
즉
고타마의 길이란
4제와 8도로 요약된다.
즉
번뇌소멸의 길!
깨달은 분(=붓다)은 누구인가?
6처(내,외)를 기반으로하는
인생과 우주의 실상에 눈뜬 사람을 의미한다.
아함경/니까야에 따르면,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그대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하늘이든 마구니든 범천이든
다른 어떤 세간이든 아무도 절복시킬 수 없으며, 더럽힐 수 없으며, 제압할 수 없다.
어떤 것이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그대들에게 이야기한 것으로서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하늘이든 마구니든 범천이든 다른 어떤 세간이든
아무도 절복시킬 수 없으며, 더럽힐 수 없으며, 제압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6입처법이다.
따라서,
그는 신도 신성의 발현자도 아니다.
분명, 육처에 근거한 사람이다.
즉
6처가 청청한 사람이다...._()_
고로 불교 즉 고오타마의 가르침은 수행종교이다.
6처의 내외 안과밖에서 방문하는 의식이 그치고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 들숨 날숨을 알아차리기, 주시하기, 바라보기를
하는 것입니다.
헛되고 초월적인 대상을 쫓는 것이 아니고 있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
현재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은 정념이요 정견이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호흡 챙김 : 날숨이 오고 멈추어지고를 알아차리고 날숨이 나가고 멈추어지고를 알아차림입니다.
몸챙김 : 몸을 알아차리는 공부를 한뒤 집중력이 생기면 알아차리기 쉬워집니다.
마음챙김 : 앞선 마음은 뒤에 오는 마음이 알아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차림을 통하여 자명등이 확고해 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심념처라고 하는데 마음속에 일어나는 마음의 심리적 현상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린다. 단순한 알아 차림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마음이 마음의 심리현상(법)을 알아차림으로써
마음의 원리를 알게되고, 이 자체가 지혜이고, 이 지혜 또한 알아차릴 대상으로 삼아 더욱 알아차림과 지혜가 증장된다.
법이란 생과 멸을 거듭하는 심리현상이며 진리라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개념(남자내, 여자내, 부처내, 사람이내)과는
달리 생멸을 거듭하는 법을 해체/분리/분별하여 무상-고-무아를 철견하여 아는 마음(지혜)를 증장시키는 부단한 노력!!!
여기서, 우리는 알아차림을 통하여 법명등이 확고해 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그런데
예를 표하는 것은 마땅하나 깨달은 이(붓다)를 일컬어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불상을 만들어 예배의 대상으로
절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예를들어, 한자 불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인 + 아니 불)의 합체자로 즉 사람이 아니다 라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동양으로 와서, 서양으로가서, 그리고 흰두교에 습합되게 사라져서 그는 분명 "신이 된 것이다"
비슈뉴의 화신으로써의 붓다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즉
예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절을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즉
작금 한국은 어떠한가?
..............................
부처님의 가피~
부처님의 은덕~
어떻게 보고 이해하여야하는가?
말하고 싶다!!!
가서 똑바로 보고 체험해보라꼬!!!
그 답은 무엇일까?
...........................
불교의 가르침은
3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사성제(고집멸도)와 8정도(정견, ...)를 알고 실천함으로써
누구나 “눈 뜬 자” , 눈 뜬 사람“ 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신성을 개발하여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눈뜬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오온)은 오고감의 법칙에 따라 죽고 산다는 것의 굴레!
즉
윤회의 수레바퀴와 바퀴살을 부수어 버리고 태어나지 않음의 길!!!
고통의 태어남이 없는 길!
늙고 병드는 길에 묶이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 길!
다시는 모태에 들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금강경에 보면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마음의 상까지도 척파하길 간절히 원하는데
하물며 색(신/몸, 형상)을 세우랴? 어떻게 형상을 지어 집착하랴? 두말하면 숨가뿌다!!!
형상(색)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나(아상), 사람(인상), 어리석은 이(중생상), 영혼(수자상)이라는 어리석은 상을
척파한 자가 바로 보살인 것이다. 하물며 형상을 세우랴?
얼마나 적확히 개념적 상을 세우는 것에 우리는 일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묻고 싶을 뿐이다.
- 또한 마음을 내거나 쓸 때 어떠하던가? 금강경에 이르기를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하지않았던가!
-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 : 마음을 낼때 마땅히 어떤 자세로 내어야하는 지를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육조혜능의 게송
菩提本無樹(보제본무수) : 보리(깨침)에는 나무가 없으며
明鏡亦無臺(명경역무대) : 거울 또한 대(놓을자리)가 없는 것이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 어느 곳에 먼지와 때가 끼이겠는가!
: 혜능선사는 무집착, 무아를 잘 표현해주는 게송이라 하겠다.
^_^*
분명 역사적으로
고타마 싯달타는 신격화되어 우리에게 위대한 가르침으로 우리 곁에 와있다.
그러나, 실상 어떠한가? 나이들고 노쇠한 어진이 고오타마가 아니신가?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늙고 병든 老人 고오타마의 고백
이 세상 사람들은 고오타마 싯달타를 초월적 존재, 데바(신), 신 가운데 신(천중천)으로
착각하지만
노쇠한 고오타마 싯달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태어나면 늙고 쇠하는 인간이었다.
심한 신경통, 혈액순환 장애, 소화불량을 겪었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힘에 부치자 자기를 대신하여 가르침을 부탁하였다.
[고타마 싯달타는 등이 아프다고 말하며, 본인을 대신하여 석가족 사람들에게
설법해줄 것을 말한다.]
- 분명 고타마 싯달타는 자신의 육신의 늙고 병듦을 겪고 있다.
- 깨친 후에도 노사를 겪고있다. 왜일까?
- 12연기에 근거한 어떤 족쇄를 끊고서 그는 붓다(눈뜬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가?
- 실제 고타마 싯달타의 정각은 온전한 것인가?
-고타마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이룬 깨달음!!!
이 깨달음이 정각이라면 어떤 측면에서 온전하고 "무상정각"을 이루었다고 말하는가? 에 관하여
세세히 집어 볼 기회를 갖자.
언제 이 문제를 두고 함께 논의하여 보았으면 합니다.
^^
다시 그 분의 말씀을 들어보자
아난다야, 난 이제 80살이고, 늙고 쇠하였구나.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끌려가는 것같이
내 몸도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끌려가고 있느니라[DN, 길게 설한 니까야]
죽는 그날 까지 12연기 특히 노-병-사 상황이 고오타마에게 일어났다.
만약 그가 12연기에 대한 관찰로 윤회의 수레바퀴와 살을 뭉게 버린 결과도
역시 노쇠한 몸 기운빠진 노인의 모습은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언을 남겼다.
자명등!! 법명등!!! 석가등명은 아니라꼬!
이것이 확실히 제자들이 본 것으로 제자들은 바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객관적인 여실지견이다!!!!
<<고마마 싯달타의 임종시 유언>>
눈 뜬 이로서 “인간 고타마 싯달타”에게 의지하지 말라 라는 그 분의 가르침!
법에 의지하고, 자신에 의지하라!
즉
법등명, 자등명이라는 유언으로 남겼다.
그 이유는
인간 고타마 싯달타는 영원한 존재가 분명 아니기 때문에 의지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설한 가르침은
여실히 객관적으로 진리라고 보았기에 제자들에게 법등명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즉
싯달타 등명은 없다는 뜻이다.
즉
승등명은 없다는 뜻이다.
고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1. 연기
2. 무상, 고, 무아(삼특상), 무상-무아-열반적정(삼법인)
3. 4성제, 8정도 이다.
고타마 싯달타는 신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으며,
"6처를 근거로 신수심법에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깨달음"을 얻어 눈 뜬 분이 되셨다.
이런 견지에서
불상에 절하는 것, 불상숭배하는 것은 크리스쳔의 입장에서 보면 우상숭배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인들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불타 즉 고타마 싯달타에 대한 믿음에 표현,
3보에 귀의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그럼
고오타마의 유언인 법등명 자명등과 달리 어떻게 해서 예배가 가능한가?
여기에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고오타마의 가르침에 분명한 논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타마 싯달타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체를 화장하여 유골을 8등분으로 나누어 탑을 조성하였다.
고타마 싯달타께서 입멸 후 유교(남긴 가르침)와 달리 불탑(스투파)신앙, 불멸의 붓다신앙으로 전개되어 갔다.
예를 들면, [불치 하나가 삼십삼천이 수호하고] 이 얼마나 황당하고 말안되는 논리의 전개인가!
이해를 바탕으로한 고오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에 검은 먹구름인것이다.
일체평등인데 고타마의 불치(잇빨뼈)가 무슨 영험을 준다꼬 또 이를 보호한다꼬....
어불성설이다....
또한 니까야에 보면
[신들과 용신들, 왕과 귀족들 두손 모으며 예배 올리나니 (니까야)] 가 나온다.
담마의 길을 넘어서 불멸의 붓다, 초담마적인 붓다신앙의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가 수행종교라는 것이 아이러니 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사에 불탑신앙으로부터 담마 중심의 불교를 굳건히 하려는 노력은 퇴색되고 산냐를 세운 불탑신앙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대되고 활성화되어 구원불멸의 법신불을 내세우게 되고
나아가 재가대중운동의 결과로 이상적인 인간상! 이념보살인 대승보살 사상이 대두되었다.
이념적 형상화인 보살! 나아가 고타마 싯달타의 유골, 불탑에
대한 열성적 예배와 찬탄으로 확장되어 불상, 이념적 보살이라는 산냐를 세우게 되었다.
대승재가운동이 생기게된 연유를 생각하면 이념적 인간상인 보살!
보살운동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금강경의 아상(내가 낸데 하는 내가 불자내~하는 아상), 인상(내가 사람이네~ 하는 인상)
중생상( 내가 범부다~하는 중생상)
수자상(내가 목숨 지닌 존재다~ 하는 수자(영혼)상)이라는 어리석은 상을
없애라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이다...하지만 어떠 한 가????
^^
고타마의 입멸직후 사리숭배신앙- 불탑신앙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여러 사상과 결합되면서 불상을 조성하게 되었고 예배하게 되었다.
즉
고타마 싯달타에 대한 믿음과 여러 사상이 첨가되어 예배의 대상으로
신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의 불자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고타마 싯달타의 유지! 분명 “법에 의지하라, 스스로에 의지하라” 는 유지에 어긋난다고 이해하고 있다.
지금은
불교인들이 불상에 예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것을 두고 불상에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여기는 기독교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위와 같이 불교인과 기독교인의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댓글
好茶 :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은 불상을 신으로 여겨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과 부다와 같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신심을 돈독히 하고자 예배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예배에는 기복이 들어있다. 그러나 복이란 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닦고 실천하므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에 경배를 하면서 신심을 다지는 행위라고 본다. 불교도가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이나 기독교인이 십자가나 마리아상에 경배를 하는 것이나 유교의 유생들이 공자의 영정이나 신주를 모신 대성전에서 석전대제를 지내는 것이나 이슬람교도가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08.09.29 22:16
好茶 : 그런데 유독 기독교에서는 우상신배라고 심지어는 조상의 영전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조차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요,경전 귀절의 참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데 기인한 겉할기식 알음알이의 결과요, 내것만을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고 남의 것은 폄하하려고만 하는 소아병적인 잘못된 신심과 종교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깨닭은 훌륭한 종교 지도자들은 절대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소위 약장수와 같은(너무 폄하해서 미안하지만) 잘못 깨닫거나 잘못 배운 분들의 강요나 궤변에 휘둘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공존과 원융의 이치를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다. 08.09.29 22:25
후박나무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산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하겠습니다...산냐(相, (image, 마음에 비추어진 형상화된 것), 산냐(想, 인식, 개념) 즉 물질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을 구체화하여 그것이 개념화되고 고정화된 형상이라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어떠한 형상도 모양도 고정된 개념도 관념도 세울수없는 것!!! [살불살조]일 것입니다.
친구내 가계에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글귀가 벽에 고히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형상있는 것은 허망한데 만약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님을 바르게 볼 때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라. 다시말해, 원래 불(붓다, 각)에 모양이 없고, 고정된 개념, 관념이 없거늘 어찌 상(형상)을 세우리요. 다만, 앞에 나타난 상/비추어진상을 고정된 형상, 고정된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깨침을 얻은 눈뜬 분이라는 해석을 하여 봅니다. 해석이 거칠고 투박합니다. ()
법에는 남자내 여자내하는 개념을 내려놓고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으로 나누어 구별하여 사람이 맹근 고정관념, 개념(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척파하면, 색온은 근본물질(지수화풍)로 수상행식은 생멸하는 마음, 생멸하는 마음작용, 생멸하는 법으로 인식하게된다. 여기서, 될수있는 한 불선법은 내려놓고 선법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닦아야될 인식(상온, 정사유, 바른 생각, 닦아야할 산냐)와 버려야될 인식(상온, 옳바르지 못한 사유, 버려야할 산냐) 를 나누어 구분하여 정견을 필두로 바른 마음챙김으로 닦아야될 인식을 증장시켜야 할 것입니다. ()
좋은 벗이란? ["그 어떤 사람이 객지에서 좋은 벗이며 어떤 사람이 집안에서 좋은 벗입니까? 그 어떤 사람이 재물에 좋은 벗이며 어떤 사람이 후세에 좋은 벗입니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먼 지방으로 장사길 나서는 사람을 잘 안내해 주는 사람이 객지에서의 좋은 벗이요, 정숙하고 어진 아내는 집안의 좋은 벗이라. 서로 화목하고 가까이 하는 일가친척이 재물의 좋은 벗이고 스스로 닦은 공덕이 후세의 좋은 벗이니라.] 빌린글입니다...()
......냉수 한잔 ^.^~~
소슬이여... 기독교인이 불상에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하는 것이 뭐이 불편한가. 불교인이 우상숭배라하고 기피하면 그것이 문제인거지. 불교인은 불교인의 방식으로 그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요. 기독교인은 그 방식으로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인데 타 종교를 문제 삼는 것도 좁은 그대의 소치일 밖에.... ㅊㅊ 불교안의 기독교인이길 바라지말고 기독교안의 불교인이길 바라지도 말라. 각자의 방식일 뿐. 그대는 불교안의 기독교인이 아닌 것을 나름 정연하게 비난하지만 붓다가 보기엔 안타까울 뿐.... 그대가 편안한 방식을 기독교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곧 기독교인들이 불신지옥, 예수천당이라 외치는 것과 똑 같을 뿐이라는 것쯤은 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