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사상(還生思想)에 대한 단상(斷想)
정찬 (소설가 / 동의대 문창과 교수)
생명체의 궁극적 조건은 죽음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세계에 대해 인류는 끊임없이 상상하고 질문해 왔다. 인간의 생애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애가 이어진다는 환생사상(還生思想)은 인류의 오랜 상상과 질문에 대한 답의 하나이다.
식물은 겨울이 오면 죽었다가 봄이 오면 재생한다. 죽음과 재생은 하늘에서도 일어난다. 별빛 가득한 하늘에는 달이 보이지 않는다. 달의 죽음이다. 사흘 후 달은 홀연 모습을 드러낸다. 달의 재생이다. 연구자들은 환생에 대한 사유가 죽음과 재생을 거듭하는 식물과 달의 모습에서 싹텄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생명이 자연과 우주의 생명질서 속에 편입되기를 강력히 욕망했던 인간에게 환생(還生)은 그 욕망을 실현하는 매혹적인 통로가 되었을 것이다.
환생사상(還生思想)은 동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에도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비교 경전은 환생(還生)을 ‘눈물 나도록 진저리쳐지는 수레바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영혼불멸사상에 기초하여 환생사상(還生思想)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으며, 아이스킬로스 ․ 소크라테스 ․ 엠페도클레스 ․ 핀달스 ․ 헤로도토스 ․ 플라톤 ․ 플루타르코스 ․ 키케로 ․ 플로티노스 등 고대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환생사상(還生思想)을 받아들였다.
환생사상(還生思想)의 가치관은 육체가 성장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영혼의 성장에도 수많은 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가 환생사상(還生思想)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생(還生)이라는 ‘존재의 유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존재의 완성이고 구원이라면, 신(神)의 역할과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에게 환생사상(還生思想)은 신(神)의 역할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조종하고 인간이 살아온 생애의 결과를 천국과 지옥으로 심판하는 인격신(人格神)의 모습을 거부한다. 그들에게 신(神)은 존재의 근원자로서, 순수의식이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의 원천이며, 모든 생명체의 내면에 존재하는 절대정신(絶對精神)이다. 그러므로 신비주의자들에게 천국 혹은 낙원이란 사후에 경험하는 미래의 어떤 세계가 아니라 신(神)과의 합일(合一)을 통해 ‘이 생애’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재적 세계이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까지 환생사상(還生思想)은 교회 신학의 일부였다. 3세기 그리스도 신학의 연구자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이며 최초의 체계적 그리스도교 신학서인 ‘원리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영혼은 태초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영혼은 이미 여러 세상을 거쳤으며, 완성에 이를 때까지 또 다른 세상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모든 영혼은 전생(前生)에서의 승리로 강해지거나, 패배로 약해져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이 세상에서 명예 혹은 불명예를 겪는 것은 전생의 선업과 악업에 따라 결정되며, 이번 생에서 하는 일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니케아 회의를 소집하여 환생사상(還生思想)을 이단(異端)으로 규정하고 환생사상(還生思想)과 관련된 모든 구절들을 삭제하도록 결정했다. 유스티니누스 황제는 54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15개 조항을 선포했는데, 그중 4개 조항이 환생사상(還生思想)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 항목이 ‘누구든지 터무니없이 영혼의 선재(先在)와 영혼의 복원(復元)을 주장하면 그를 파문하라’였다. 환생사상(還生思想)을 교리에서 완전히 추방한 것은 553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였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신민(臣民)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하나의 제국과 한 사람의 황제를 확고하게 세우려면 하나의 신(神)과 역시 단 하나의 종교가 필요했다. 교회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환생사상(還生思想)은 교회의 권력을 무화(無化)하는 강력한 사유체계(思惟體系)였다. 그리스도교가 제국(帝國)의 종교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환생사상(還生思想)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 세상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은 왜 있으며, 죽음은 왜 있는가?”
이 궁극적 질문 앞에 놓인 수많은 답 가운데 하나가 환생사상(還生思想)인 것이다.
<부산일보 / 아침향기 2015/11/23>에서 옮김 - 혜원 문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