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한 병사가 참호 안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영상이 6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유포됐다. 우크라이나 측은 즉각 러시아군이 비무장 우크라이나 포로를 처형하는 장면으로 단정한 뒤 "전쟁 포로를 처형한 전쟁 범죄"라며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를 촉구했다.
총에 맞아 쓰러지기 직전 담배를 입에 문 우크라이나군 병사의 영상 속 모습/캡처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의 러시아 규탄 포스팅(왼쪽)과 포로 사살 영상
12초 분량의 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군 복장의 한 병사가 숲속의 얉은 참호에 서 있다.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우크라이나에 영광이 있기를"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어로 "죽여!"(снимай его)라는 소리와 함께 여러 발의 총성이 들리고, 그는 쓰러졌다.(이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저녁 대국민 담화에서 "살인범들을 색출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6일 이 영상과 함께 안드레이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이 올린 텔레그램 포스팅을 소개했다. 예르마크 실장은 "포로의 살해는 러시아가 전쟁 범죄를 계속하면서 (이를) 나치에 대한 선전과 신화로 세탁하려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아직 이 영상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친러시아군 종군 텔레그램 채널은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러시아군 포로가 총에 맞았거나, 러시아군을 음해하기 위해 만든, 우크라이나군 탈영병을 총살하는 무대 영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영상이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숨겨진 내막은 살해된 군인의 신분이 확인되면 좀 더 명확해질 수 있다. 다행히 캡처한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누구나 쉽게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전에 몇 차례 나온 러시아군 전쟁 포로를 사살한 영상들과 비교하면 이번 영상의 질이 높고 선명하다. 신원 확인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이날 저녁 우크라이나의 한 언론은 피살된 군인이 '마그니트'라는 암호명을 쓰는 우크라이나군 72여단 소속의 한 병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뒤이어 우크라이나 지상군사령부는 그를 30여단의 티모페이 샤두라 병사라고 주장했다.
포로 살해 영상속 사진(왼쪽)과 그 이전 모습
이튿날(7일) 우크라이나 온라인 매체 '검열'(Цензор)은 총에 맞은 군인은 샤두라가 아니고,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 소속 119여단의 알렉산드르 마치예프스키라며 과거 사진을 함께 게시했다. 오른쪽 눈썹 위에 붙인 반창고와 영상속 얼굴의 흉터가 비슷해 보인다. '검열'은 동료들과 그의 고향 친인척들이 그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검으로 고향에 돌아온 것은 지난 2월이라고 한다. 문제의 영상은 늦어도 2월, 혹은 그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그는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시작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고프(체르니히브) 지역 방위군에 자원입대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격전지 바흐무트에 배치돼 한 달 정도 머물다가 또 다른 격전지 솔레다르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 곳에서 연락이 끊어졌다.
스트라나.ua는 "마치예프스키 병사는 솔레다르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우크라이나군 부대는 러시아 용병 부대 '와그너 그룹'과 싸우다 1월 중순에 그 곳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의 시신이 지난 2월 집으로 돌아왔다는 게 사실이라면, 치열한 전투 와중에 누가 어떻게 그의 주검을 인도했을까?
이 영상에 대한 러시아 측의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총을 쏜 자들이 러시아 군인인지 여부도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러시아 종군 텔레그램 계정들이 우크라이나 측과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에 나온 전쟁 포로 처형 영상과는 첫 눈에도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에게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들이 사살되는 영상에는 피해자 얼굴이 똑바로 잡히지 않았다. 영상속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영상에서는 피살된 군인의 얼굴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찍혔다. 러시아 용병 부대 '와그너 그룹'의 도망자(탈영병) 처형 장면과 유사하다.
지난 2월 인터넷에 올라온 포로 사살 영상. 쓰러진 러시아 군인에게 총구를 겨눈 모습이다/영상 캡처
@gixie_beauty 인스타그램 캡처(왼쪽 사진)와 그녀가 등장한 산부인과 병원 관련 사진/캡처
이 영상은 또 지난해 3월 당시 '최대 격전지'로 불렸던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원 폭격 와중에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산모의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들것 사진이 너무 선명했기에 마리우폴 시민들은 사진 속 여성을 금방 알아봤다는 게 러시아 측의 주장이었다. 현지의 미용 관련 인플루언스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전쟁 피해의 모델'로 나섰고, 우크라이나측이 이를 의도적으로 배포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은 그래서 나왔다.
◇ 오늘(6일)의 뉴스 요약
- 러시아 민간 가스업체 노바텍이 우크라이나 사태 후 영국 에너지기업 쉘이 포기한 극동 에너지 개발사업 지분을 인수할 뜻을 밝혔다고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가 6일 보도했다. 노바텍은 최근 러시아 정부에 쉘이 보유했던 사할린-2 프로젝트 지분 27.5%를 인수할 준비를 마쳤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 지분 인수 추진을 위해 쉘의 사할린-2 프로젝트 참여 기간 발생한 환경 등 분야 피해액 산정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쉘의 지분 가치는 948억 루블(약 1조6천억 원)로 추정되고 있지만, 러시아 정부를 이 금액을 전부 셸에 지급하지 않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