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장한나)
첼리스트 장한나
우리말에서는 ‘우리’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쓴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가족, 우리 집…. 반면 내가 열 살 때부터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나의 엄마, 나의 아빠, 나의 가족 등 ‘나의(my)’라는 표현을 늘 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나에게 가장 큰 문화적 차이로 다가온 단어다. 그만큼 ‘우리’에는 우리말의 정서와 정(情)이 더 배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첼리스트로서는 '우리'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첼리스트로서 내가 하는 연주는 분명 '나의 연주'이기 때문이다. 100% 내가 완성하고 책임지며 그 누구도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못하는 순수한 나만의 연주, 나만의 음악적 목소리다.
이런 연주를 하던 내가 요즘 진정한 '우리' 음악의 위대함과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오케스트라에는 100명에 가까운 '나의 연주'를 하는 연주자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소리를 만들고, 감당하고, 책임진다. 지휘자로서 나의 역할은 그 100가지 '나의 소리'를 하나의 '우리 소리'로 빚어 나가는 일이다.
진정한 우리는 무엇일까. 너의 눈물이 나를 울리고, 나의 웃음이 너를 웃게 하는, 너와 내가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의 꿈에 열광하며 도전하며 성취하는 새로운 공동체. 너의 영혼이 담긴 소리와 나의 영혼이 담긴 소리가 진정 하나로 어우러져서, 마치 대자연 속의 셀 수 없이 많은 꽃잎과 잎새의 천만 가지 색색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 완성되는 우리 소리. 이 어우러짐은 동일함에서 오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아닌, 제각각의 색깔과 개성이 통통 튀면서 동시에 나 개인을 능가하는 우리가 되는 찬란함이다. 우리 음악을 위해 각각의 내가 빛나며, 나의 빛과 너의 빛이 합하여 은하수가 되는 오케스트라. '우리'됨의 기적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말,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와 꿈을 담은 한마디는 ‘우리’다. 우리 음악에서 더 나아가 우리 세상, 우리 인류, 우리 지구가 되는 꿈을 가져본다.
첫댓글 나에서 우리로.
지휘자로서의 장한나다운 '우리' 글입니다. 저는 연주 전 각 악기들이 조율해내는 약간의 불협화음도 좋아합니다. 미완성이 완성되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