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마가복음 4:30-32)
1. 기독교인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답은 하나님 나라의 인생입니다. 공중의 새들이 깃들만큼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나는 자연인이다>입니다. 사람들이 산 속에 들어가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속에서 사는 그 분들도 평안해 보이고, 또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그것을 보노라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참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는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자연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죽을 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이고, 또 하나는 사업이 망하거나 세상으로부터 큰 실망을 하고 산 속에 들어가서 다시 삶의 안정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병이 깨끗하게 나아서 건강한 것도 신기하고,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회복한 것도 신기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버려진 인생을 자연이 품어준 것입니다. 살려 준 것입니다.
자연 속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가득한 것이지요. 자연의 시원한 공기든지, 산 속에 있는 약초들은 인간의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선물인 셈이지요.
자연은 아직도 때묻지 않은 하나님의 기운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3년 동안 수고하셨던 일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활동을 시작하셨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40일 동안 지상에 더 머무셨습니다. 그 동안에도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절에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자나깨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요즘과 같은 나라나 국가의 형태는 아닙니다.
한 국가라고 하면 땅이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하고, 주권이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도 있고 믿음도 있지만 땅은 없습니다. 굳이 장소가 있다면 그 장소는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가 더불어 사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곳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저 멀리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살면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아주 잘 말씀해 주신 내용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면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치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기에 미국에서 사는 방식을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미국에 와서 살면, 미국의 법도 좀 알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처럼 먼저 인사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그들을 만날 때에는 그런 음식을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 혼자 사는 나라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려면 나 중심적인 것은 마음에 숨겨야 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성질도 좀 감추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어울리며 서로를 존중히 여기면서 살게 됩니다.
5.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 한 알만 같다고 하였습니다.
겨자씨는 참깨 씨보다도 작습니다. 제가 지금껏 본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은 양귀비 씨앗같습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양귀비 씨보다 약간 더 큽니다.
예수님께서 양귀비씨라고 하지 않고 겨자씨라고 한 것은 양귀비는 고추나무 정도 자라지만, 겨자씨는 나무만큼 자라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크게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 비록 작은 것 같지만 나중에는 큰 나무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욥기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처음 시작하였을 때는 단지 아브라함, 사라, 롯, 세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이룬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하면 내 생각만큼 밖에 안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은 아무리 커도 작습니다. 나보다 더 머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은 만나면 나는 그 사람보다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의 일은 나의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큰 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6. 제가 전에 살던 지역에 80세가 좀 넘으신 권사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저희교회를 나오는 분의 시어머니이시기에 장례식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자제분 중에 장로님이 3분이나 있었습니다. 12남매를 두신 분이었습니다. 그 할머니 한 분으로 인하여 자녀손이 86명이나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한 하나님 나라가 80명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그 3분의 장로님을 잘압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선하고 의로우신 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신앙 아래서 선하게 자랐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롭게 자랐기 때문이지요.
비록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지만 크게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7. 두번째로 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심겼다는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 작은 것이 심겼다고 하였고, 심긴 후에 보니 자랐다고 하였습니다.
심겼다는 것은 땅 속에 묻힌 것입니다. 땅 속에 묻힌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싹이 나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조용히 보이지 않게 자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보이지 않게 자라는 것을 볼 때에, 키가 자라는 것이 아니고, 몸이 커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조용히 보이지 않게 자라는 것은 마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에서 자라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어떤 직책이 주어졌느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랑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느냐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심기어져서 얼마나 큰 마음이 되었느냐하는 것입니다.
“모든 풀보다 커지며”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풀이란 일반 사람들의 마음정도를 말합니다. 잡초처럼, 생긴대로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심긴 마음은 그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남들보다 좀 더 나아진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기에, 하나님의 것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고, 말도 조심스럽게 할 수 있고, 행동도 삼가며 하는 것입니다.
8. 조용히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용히 자란다는 것은 땅 속에서 씨앗이 썩어지는 것일 수 있고 죽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썩음으로써 싹이 나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말 없는 분이 더 무게감이 있어보이지 않습니까? 빈 수레가 더 시끄러운 법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조용하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말로 이루는 나라가 아니라, 조용하게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 밤 중에 그들은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밤 중에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란하고 시끄러웠다면 다른 죄수들이 시끄럽다고 난리를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 문이 열린 후에 모두 도망을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실라 곁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존경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밤 중에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조용하게,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평화로운 것입니다.
저는 구약시대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서 성전 안에서 철연장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용하게 자신을 다스리면서 사는 것이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9.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큰 가지를 내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머리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 좋은대로 꼭대기로 곧게 자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큰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새 , 작은 새, 모든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것입니다.
큰 가지라는 것은 새들이 깃들 수 있는 가지를 말합니다. 너무 잔 가지에는 새들이 앉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새들이 앉을 수 있는 가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세우는 하나님 나라로 인하여 삶에 지친 새들이 찾아와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내 자신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내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상이 큰 것입니다.
10.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들이란 정처없이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가 이룩하는 하나님 나라로 인하여 그 가운데서 쉼을 얻고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정처 없이 나그네처럼 사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과 함께 서로 이웃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심을 알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의 나무에 공중의 새들이 얼마나 날아와 깃들고 있는 지 돌아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늘에 깃들일 만큼”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인생이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새들이 나무 그늘에서 쉼을 얻듯이 어떤 사람이 내가 이룩하는 하나님 나라로 인하여 위로도 받고 소망도 얻고 사는 것입니다.
11. 시애틀 아래에 올림피아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교인 15명 정도되는 연합감리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좀 남다른 분들입니다.
일찍 미국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산 오래된 분들입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입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미국인들과 어울리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가 들었고, 이제는 반겨주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이 교회에만큼은 서로가 같은 처지이기에 반겨주고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예배 시간에 교인이 좀 늦게 나와도, 설교를 하다말고 “집사님 이제 오세유”하면서 인사를 해 줄 정도입니다.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현상유지도 어려운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교회입니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이민의 인생이기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식처입니다. 만나면 반갑고, 그곳에 가면 자기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그늘이 있는 곳입니다.
12.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합니다.
우리교회가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곳이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정처 없는 새들이 찾아와서 깃드는 곳입니다.
이곳에 새들끼리 찬송을 부르며 노래도 하고,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에 앉아서, 서로 친숙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서로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고 적은 것은 이차적인 것이고, 이렇게 모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사는 것이 우선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 것입니다.
이곳에 삶에 지친 이들이 찾아와서 서로 기대어 살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사는 것만이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인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설교 제목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이라 하였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인생을 통해 누군가 한 사람, 특히 삶에 지친 사람이 위로를 얻고 힘과 소망을 얻고 산다면,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이지요.
항상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든든하게 서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