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사(pre-history)의 실장석
1992년 8월 알프스 기슭의 오스트리아 티롤 주의 로첸마이텐(Rozen maiden) 얼음 동굴에서 2구의 동사체 미라가 발견되었다.
유전자 감식결과 bc 15,000년 대의 사체로 확인되었으며, 1구의 네안데르탈인 암컷 성체와 1구의 유형성숙(幼形成熟)한 원인(猿人)아종 개체로 확인되었다. 이는 세기의 대발견으로 불리는 고대 실장석, 로첸마이텐인(人)의 발견이었다.
(복원된 모녀의 모습)
거의 대부분의 형질을 온존한 로첸마이텐 미라의 발견 덕택으로 기존의 네안데르탈인의 상염색체수 22쌍 설은 폐기되어 23쌍으로 확정되었다. 다년간의 연구 끝에 같이 발견된 유형성숙 아종, 로첸마이텐인(人)이 오늘날의 실장석 실홍석 실창석 아종들의 조상인 이브 개체이며, 네안데르탈인과 알수 없는 사람과(科) 원인(猿人)과의 혼종으로 밝혀졌다.
(대체로 학자들은 가해자를 호모 사피엔스로 비정하는 설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초고대의 '직스' 산물로 여기고 있다.)
22쌍의 상염색체를 가진 사람과(科)의 원인(猿人)과 23쌍의 상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네안데르탈 사이에서, 사람과의 성염색체가 가짜 2번 염색체 노릇으로 돌연변이화 하여 두번 전사(transcription)를 했기에 혼혈 수정이 가능했던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혼혈개체는 염색체 45개만을 가지고 태어나 다수의 염기쌍이 발현되지 못한채 유형성숙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실장석과 비슷한 생식형태를 가진 코모도왕도마뱀의 zw형 단성생식 메커니즘)
이로서 실장석의 가짜 2번 염색체(Falsit autosome) 설이 자리를 잡으며, 또다른 단성생식종(Parthenogenesis)인 코모도왕도마뱀의 zw성염색체 연구 결과가 뒷받침되어, 실장석의 단성 자가생식의 미스터리, 드물게 발현되는 마라 개체에 관한 수수께기등의 연구도 모두 풀릴수 있었다.
(*유형성숙은 동물이 성적으로 완전히 성숙된 개체이면서 비 생식 기관은 미성숙한 현상을 말한다. 실장석 자체가 원인(猿人)의 유형성숙에 해당하며, 저실장 구더기는 아예 포유류 이전의 생물 원형태를 갖춘 극단적인 유형성숙으로 볼수있다.)
아마도 무언가의 아인종으로 부터 직스를 당한 네안데르탈 어미는 매우 모정이 강하여 혼종자식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키웠으며, 이들이 오늘날 실장 아종 개체들의 모체가 되었을것이다.
2.고대의 실장석
실장석은 본디 알프스 지방이 원산이지만, 빙하기의 종결과 더불어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동북유럽으로 주 서식지가 옮겨간것으로 보인다. 서구에서 기록으로 실장석 최초의 등장은 기원전 4세기경의 그리스 탐험가 피테아스(BC350~BC 285)의 기록에서다.
피테아스는 극북지방의 기록을 남긴 최초의 탐험가로 여겨지며, 그는 발트해의 여러 제종족을 탐험하며 기록을 남겼다. 다음은 제정로마 시대의 스트라보니우스의 저작 "지리학"에 남겨진 피테아스의 항해 기록이다.
- 테오토니의 바다에서 동북쪽으로 보름을 항해하면 도달하는 늪지대에는 태양신을 믿는 벽안인들이 산다. 그들의 태양신은 사울레라고 하며, 샤울라랴(Šiauliai)라는 도시에 모여 1년에 한번 복숭아 씨앗(peach-pit)을 제물로 바친다. (그림의 2번지역으로 추정)
이들은 집집마다 조그만 소인들을 기르는데, 이들은 소인들을 사울레의 사자로 여겨 함부로 해하지 않고 귀히 받든다. 산에 살고 있는 사울레의 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옷을 입고 있다고 하며, 때때로 어린 아이와 자신들의 아이를 바꿔 간다고 한다. 소인들은 주인들이 함부로 할때 스스로 몸속의 돌을 깨서 죽는다고 한다 (중략) -
기록을 통해 이미 이 시기의 실장아종에게서 "위석"이 존재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갖추게 되는 "실장옷"과, 오늘날과 같은 외관을 거의 갖추고 있다는것을 추측할수 있다. 또한 분명한것은 이 급격한 진화 속에는 제 아무리 생활주기가 짧은 실장석일지라 하더라도 무언가의 미싱링크가 존재한다는것이다.
(실장석의 탁아(託兒)에서 모티브를 얻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체인질링)
후대의 fairy전승들은 이들의 외관에서, 특히 체인질링 설화는 초기 실장석의 탁아(託兒) 관습에서 그 원형이 비롯된것으로 보인다.
3.동양의 실장석
동양의 실장석은 스텝지대를 통해 이동되었을것으로 생각된다. 냉대한 동북기후와 초기 실장 아종의 생태가 잘맞아 떨어진 것인지 이들은 매우 빠른 시점에 북만주의 타이가 지대를 무대로 산실장화 한것으로 보인다.
기록에서는 오히려 서구에서보다 빨리 나타난다.
중국의 고서 《잠경(蠶經)》에는 "황제비 서릉씨가 석잠(실장석을 키워 비단을 뽑는것)을 시작했다.(黃帝王妃西陵氏始石蠶)" 라는 기록이 있어, 늦어도 기원전 15세기 경에는 실장석에 의한 양잠치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잠을 위해 삶겨지는 저실장)
또한
《관자(管子)》에서 "하나의 (산)실장 가죽을 값지게 받아들여 준 후에야 8000리 밖의 발조선에게서 입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一装石之皮 容金而金也 然後八千里之發朝鮮可得而朝也。)" 기록을 통해, 고대에 이미 실장 가죽은 주요 교역품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아이누와 실장석의 이동경로)
(실장석을 기원으로 한 아이누 전승의 코로포클)
저실장 양잠업은 곧 한(漢)대에 들어와 더 높은 효율의 누에고치로 대체되어 대륙 실장석은 자취를 감추게 되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이누를 따라 사할린과 훗카이도로 건너가 현대 실장석의 직계 조상이 되는 일본 실장이 되며, 아이누 신화 코로포클(コロポックル) 전설의 원형이 된다.
본래 실장을 뜻하던 고대 한자어 装과 실장석으로 대표되던 양잠업에서의 -실의 동음이의어가 합쳐져 오늘날의 실장석(jissou)의 어원이 된것 또한 분명하다.
4.중세의 실장석
피테아스의 탐험 이후로 뜸한 실장석의 기록이 다시 등장하는것은 리보니아 기사단의 동방원정에서부터다. 폴란드 왕 콘라트 1세 마조비에츠키(Konrad I Mazowiecki)의 요청으로, 실장석의 본향이라 할수있는 발트제종족(유럽 최후의 이교도들)을 복음화하기위해 출발한 게르만계 기사단은 단순히 정복에 그치지 않고 그자리에 눌러앉게된다.
(독일 기사단의 발트정복)
이는 기독교세계와 실장석의 접촉을 의미한다. 복식사(服飾史)에서 이 접촉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치하는데, 소빙기(小氷期)가 시작되어 추워진 기후로 인해 로마네스크(Romanesqu) 양식이 끝장나버리고, 그에 맞춰 실장석의 복식을 카피한 이 게르만계 주민들에 의해 고딕(gothic) 복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장석을 카피한 고딕 복식)
(고딕의 어원은 이를 못마땅해한 이탈리아인들이 야만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과거 고트goth족을 빗대어 만든 단어이며 현대의 고쓰로리도 여기서 차용되었다)
유럽의 실장석들은 복식사(服飾史)에서 깊은 영향을 끼친 반면에, 기독교의 영향과 늪지대의 개간 사업으로 차츰 서식지를 잃고 쫒겨나, 몽고의 침입과 흑사병의 도래로 완전히 절멸에 이르게 되어, 이미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선 이들의 명칭인 요정(elf)는 꾸며낸 이야기 따위로 여겨졌다.
5. 근대의 실장석
실장석이 다시 알려지게 된것은 근대의 일본에서다. 이미 중세에 멸종된줄만 알았던 실장석 개체, 산실장들이 19세기말 훗카이도와 사할린 개발을 통해 재발견된것이다.
독점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만성적인 노동력부족에 시달리던 제국주의 일본의 위정자들은 실장석의 산업이용에 주목했지만, 식량으로의 이용외엔 별달리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인간과 가장 닮은 이 기묘한 동물에의 관심이 곳곳에 퍼졌고, 산실장들은 다양한 교배와 개량을 거쳐 오늘날의 여러 아종(subspecies)으로 분화되어 퍼지게 되었다.
(현 로젠사의 사장 쿠와타니 나츠코의 고조부인 나나시 토시아키)
이를 주도한것이 나나시 토시아키(名無敏明)창업주이며, 그가 1909년 설립한 실장흥업사(実装興業)가 오늘날의 로젠사의 모체다.
-다음편 현대의 실장석으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미친 대체역사가가 나타났다!! 좋은 퀄리티다
퀄리티 ㄷㄷ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뮈
역사를 만드네 띠용~
중간에 크로복클 설화를 인용한부분에서 산실장 혹은 추운데 사는 아종 이야기가 떠올랏음 ㅋㅋ
와 그럴듯하게 잘써내려간다...
발조선이 옛날 조선이라고 추측중인레후
퀄리티가 대단한 레후~ 우지챠의 운치와는 비교도 안되는 레후~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