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1]어느 철학자가 쓴 <난세일기亂世日記>
30대 이상이라면, 도올 김용옥 선생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터.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무시로 넘나들며 거의 모든 학문에 대해 무불통지無不通知(?), 고명한 철학자이면서도 신학자이고, 동양고전학자에 시인, 수필가,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글도 잘쓰고 말도 잘하고, 등등등등. 우리같은 범생들이 그분을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불가능.
이틀간 정신없이 몰입한 그분의 책, 이번에는 ‘일기日記’다. 그것도 올해 4월 24, 25일 5월 1, 4, 7, 8, 10, 11, 12, 13, 14, 15, 22, 24일, 단 14일치의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난세일기>(2023년 6월 15일 통나무출판사 1쇄 발행, 359쪽, 18000원)가 그것이다. 이충무공님의 <난중일기>가 아니고, 도올 김용옥 선생의 <난세일기>.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6월 15일 발행이니,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그제밤 전주 홍지서림에서 부리나케 구입, 어제와 오늘 통독한 소감을 뭐라고 말할까? 한마디로 도저到底하다. 이제야말로 조금도 주저치 않고 어디서든 말하겠다. 도올은 우리 역사 5천년사에 있어 최고의 천재라고 말이다. 정말 천재가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다재다능多才多能, 이런 수식어가 무색하다. 그냥 천재다. 다행이다. 우리 시대, 그분 말대로 ‘완벽한 난세’에 그분이 있다는 게. 한때 젊은 시절엔 자신을 ‘우주보宇宙寶’니 뭐니 자화자찬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지만, 이젠 겸손謙遜하기까지 하다. 호 도올 도 ‘돌대가리’의 ‘돌’에서 따왔다던가? 그분은 계속적으로 잘난 체해도 괜찮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흐흐.
일기라니? 일기는 원래 사적인 글이므로, 조금은 내밀內密한 게 정상일 터이나, 그에게는 하등 거칠 것이 없다. 내뱉고, 씹고, 조지고, 연구하고, 친절히 설명하고, 같이 한숨쉬며 분노하자고 한다. 그가 지은 명제 “나는 씹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씹는다’는 ‘먹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아하- 너무 재밌다. 너무 심각하고, 너무 무섭다. 나의 무식이 창피하다. 일본의 핵폐기수 방류는 ‘건곤乾坤’를 파괴할 것이기에 현생인류 최대의 재앙이라고 단언한다. 아무리 바쁘고 여유가 없어도,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철학자의 일기를 읽어보심이 어떠하시인고? 읽고 듣고 알고 배워야 할 것투성이이다. 그는 어느새 한국현대사에도 어느 학자 못지않다. 여순사건과 제주4.3사건을 풀어내는 것을 보시라. 나는 늘 도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감사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절인들 못하겠는가.
‘지금, 여기, 오늘’의 시점時點을, 그는 ‘난세亂世’라고 확실하게 규정했다. 우리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난세에 살고 있다. 6학년인 우리야 살만큼 살았다해도 우리 아들과 손자세대는 어찌할 것인가? 통일은 요원하고 정치는 ‘개똥’이지 않은가.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노태우도 겪어봤다지만, 검찰독재, 검찰공화국은 웬 말인가? 그 끝은 과연 어디일 것인가? 4, 5월 두 달 14일치의 일기를 보라. 그가 왜 난세라고 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거의 모든 게 담겨 있다. 그러니, 어찌 읽지 않을 수가 있으랴?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38년 숨지기 직전에 병원 복도가 떠나가도록 큰 목소리로 “목인아! 목인아! 네가 정말 큰 죄를 지었구나!”라고 외쳤다 했는데(목인睦仁은 히로히토의 할아버지 명치천왕을 가리킴), 이번엔 도올이 “석열아- 석열아, 네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구나!”라고 외치고 있다. 왜 그럴까? 빈틈없이 바쁜 우리의 석학碩學이 장문의 일기를 쓰며 왜 그렇게 외치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가? 어떤 힌트도 줄 생각이 없다.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나라에 무릎을 꿇는 것이 왜 인류사의 성스러운 사업인지? 미국의 ‘트루먼독트린’ 부활이 무슨 의미인지? 미 의회연설에서 윤석열이 왜 그렇게 많은 기립박수를 받았는지? 원로목사 김상근의 윤석열에 대한 고언苦言은 왜 나왔는지? 천안에 동학농민혁명기념도서관을 왜 세워야 하는지? 성균관대 교수들이 개교이래 최대규모의 시국선언을 왜 했는지? 키시다라는 일본총리가 고베보다 얼마나 교활한지? 국유현묘지도라는 풍류風流가 무엇인지?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을 펴낸 한창기 선생이 남기고 간 유산은 무엇인지? 풍류가 왜 우리민족 예술의 전체인지? 과연 민중이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는지? 이 모든 것에 대한 석학의 정답과 해답이 이 일기책에 있는 것을. 우리는 거저 앉아서 눈동자만 돌리면 되는 것을. 이런 ‘무임승차’에 책값 18000원은 ‘껌값’이 아닐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