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단순하시고 인간은 복잡하다
막6:7~13
아래의 글은 지난 주 직장신우회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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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8~9을 보자.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양식”, “배낭”, “돈”, “갈아입을 옷”... 이런 것들은 여행을 위한 필수품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랑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가라고 하셨다.
만일, 여름 휴가를 떠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여행경비를 요구하자
아버지가 “야! 예수님은 여행을 떠날 때 지팡이만 들고 가라고 하셨어!
지팡이만 들고 가!” 이러면 정신 나간 아버지가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지팡이만 들고 가라고 하셨을까?
이 문제를 풀려면 출애굽기 3장을 봐야 한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가축을 키우고 있을 때
하나님은 80세가 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굽 바로 왕에게로 가라”
이때 모세의 대답은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였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 그냥 맨손으로 가라는 말씀입니까?”라는 뜻이다.
그런데 출4:20을 보자.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모세는 지팡이 하나만 다랑 들고 갔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이었나?
왜 하필이면 지팡이인가? 이를 이해하려면 고대 히브리 문화를 알아야 한다.
라숀(לָשׁוֹן 혀)이라는 단어를 보자. 이 단어를 상형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라멛(ל)은 “목자의 지팡이(권세)”를, 쉰(ש)은 “치아(파괴, 죽음)를,
바브(ו)는 “못(연결, 그리고)을, 눈(ן)은 “물고기(생명)”를 뜻한다.
곧 “죽음”이나 “생명”으로 연결하는 “권세”를 가진 것은 바로 “혀”라는 것이다(위 사진 참고).
잠18:21을 보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성경에서 “지팡이”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ל 라멛)”이 함께 하는 도구로 변했다.
소년 다윗이 거구의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무엇을 들고 나갔나?
사울 왕이 입혀주는 갑옷과 투구와 칼을 차고 나가지 않았다.
그는 달랑 물매와 지팡이만 들고 나갔다.
그것을 본 골리앗이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며 조롱했다. 그러나 지팡이를 들고 나간 다윗은
칼과 창과 갑옷으로 어마어마하게 무장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다윗이 들고 나간 지팡이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능력)가 함께하는 지팡이였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팡이”만 들고 가라고 하셨나?
여행을 위한 “양식”과 “배낭”과 “돈”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려면
생각이 복잡하게 된다. 모세도 바로 왕에 대항하려면 민병대를 모집해야 하고,
식량과 무기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생각이 매우 복잡하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땅의 먼지로 단순하게 지으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단순한 삶이다. 나머지는 하나님을 믿고 살면 된다.
예수님도 그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간은 타락을 하면서 생각이 매우 복잡해졌다. 문제는, 생각이 복잡해지면
그 결과로 믿음이 부실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며 꾸짖으셨다.
하나님을 닮고 싶은가? 그렇다면 생각이 단순해져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지팡이”를 들고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