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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盛世)의 매향(梅香) 김천 매계 조위 종가 "는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 2025년도에 펴낸 책자 제목이다.
경상북도에서는 종가문화를 보존 활용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하여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을 통해 종가문화 발간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성세(盛世)의 매향(梅香) 김천 매계 조위 종가" 표지
2024~2025년도 사업으로 '상주 난재 채수 종가" "김천 매계 조위 종가"
영양 회곡 권춘란 종가" "영천 백운재 권응수 종가" 등 4곳이 선정되어
2024년 5월 부터 2025년 6월말까지 성공적으로 조사.연구를 마치고
마침내 한 종가에 한 책씩 발간하게 되는 결실을 보게 된것이다.
김천 매계 조위 종가 목차
축간사 ~ 경상북도지사 이철우
지은이의 말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김승룡
1.통서(統緖) ~ 역사와 세계
1)창녕 득성지(得姓地)와 역사화
2)김천 봉산면 봉계 입향과 세계(世系)
2.사람 ~ 세현과 문헌
1)종가의 세현들
2)종가의 문헌들
3.정신 ~ 조위를 중심으로
1)매계 조위의 삶에 대하여
2)도학과 마음, 그리고 매화
4.기억 ~ 제례와 공간
1)불천위제와 경건함
2)추모를 위한 공간들
5.전승 ~ 지역과 고전
1)지역과 함께하는 종가
2)매계문중,고전이 되다
"김천 매계 조위종가" 책 표지 뒷면(봉계 율수재 사진)
경북의 종가문화 연구진
연구 책임자 정우락(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공동연구원 이세동(경북대 중어중문학과)
종가선정위원장 황위주(경북대 한문학과)
종가선정위원 이수환(영남대 역사학과),
홍원식(계명대 철학과), 조재모(경북대 건축학과),
배영동(국립경국대 문화유산학전공), 이치억(공주대 윤리교육과)
종가연구원 김소연(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정보선(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김나혜(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신소윤(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왕지화( 영남문화연구원 연구보조원)
창녕 화왕산과 용지(龍池)
제1장 통서(統緖) ~ 역사와 세계
1.창녕 득성지(得姓地)와 역사화
검은 머리로 금대에서 옛 사관이었거늘
절집에서 밤에 묵으며 부들자리 빌리노라.
등롱아래 가만히 능가경 글자를 되뇌나니
우수수 난간에 부는 바람은 눈이 올 듯 차갑구나.
(직지사에서 묵다, 매계선생 문집 권1)
1)화왕산 용지에서 성씨를 얻다
창녕조문은 남다른 설화를 하나 갖고있다. 바로 득성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 이야기의 장소는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사회적으로 공인되었다는
점에서도 이의가 있다. 창녕 조문은 단일한 성씨로서 단일한 본관을 갖고
있기에 이 설화적인 이야기는 차후 전개될 창녕조문의 모습이 가진
독창적 면모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창녕 일원각 ~ 이광옥 학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암면 대암마을
"신라 시대 창녕에 사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의 몸에 청룡질이라는
병이 생겨 온갖 약을 써도 잘 낮지 않았다. 도사 하나가 이를 보고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을 하면 나을것이라 했다.이 말을 들은 예향이
용지에 가서 목욕하는데 갑자기 운무가 끼어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운무가 걷히고 예향은 목욕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화왕산 창녕조씨 득성지지
그 뒤 예향은 오랫동안 고생하던 병이 씻은듯이 나았는데, 이상하게 배가
불러와 임신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하는 말이
"이 아이를 낳아 잘 키워라. 내가 이 아이의 아버지인 동해 용왕의 아들
옥결이다. 뒤에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니라" 라고 했다. 열 달만에 아이를
낳았는데 용모가 남달랐으며 겨드랑이에 "조(曺)"자 모양의 붉은 빛깔의
태흔이 있었다. 이광옥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었으며,
왕은 하번 보고는 들은 바와 같았고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으며, 태흔을 따라
성씨를 "조(曺)'로 내리고 용의 정기를 이어 받았다고 이름을 계룡으로 내렸다.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의 묘
2) 종덕재
화왕산 용지에서 세상에 나온 창녕조문의 시조 조계룡의 무덤은
경주 자옥산 자락에 있다. 시조 조계룡은 상제에게 성씨를 하사받고
신라 진평왕의 사위가 되고, 태사의 지위에 올랐지만 묻힌곳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조 조명교의 꿈에 현몽하고,보첩에 초계라는 지명이 있었고,
현지에 살던 노인과 주민들에게 조씨의 무덤임을 획인 받았다.
종덕재(種德齋)
이후 창녕조씨 문중의 외손인 유한모가 경주부윤으로 부임하여
묘역을 다듬게 되었다. 같은 해 조회진의 제문에는 "무덤이 경주에 있는데
부치리 북쪽이고 초제가 그 마을이며 자옥산 기슭인데 경태로부터 내려온
산맥에 을향(乙向)으로 묘역을 잡았다네. 그곳에 가서 징험하니 하나하나
착오가 없었고 꿈에 본 바에 의거 확인하니 의심이 없어졌네."라고 했다.
시조 조계룡의 묘비
무덤을 찾은 2년뒤인 1798년(정조 22) 무덤 앞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며, 1817년(순조 17)에 시조의 묘단비가 건립되었는데,
묘단비의 글은 홍양호가 짓고, 조봉진이 해자를, 조석이 전자를 썼다.
이후 세월이 흘러 재사가 허물어지게 되자, 당시 전라도 관찰사이던 조봉진이
1832년 재사를 보수하여 영건하였으며, 재사 이름을 종덕재라 하였다.
"종덕(種德)이란 선조를 사모하면서 덕을 심은것을 그리워하지 않겠는가"이다
김천 봉계마을 매계구거 율수재(律修齋)
2.김천 봉산면 봉계 입향과 세계(世系)
1)김천 봉계로의 입향
이후 창녕조문은 신라 왕실의 외손으로서 고려 시대에 8명의
평장사와 9명의 소감을 낳았다. 그러나 고려 말에 국운이 다하고
가문이 위축됨을 한탄하여 김천 봉계로 입향하게 된다.
김천 입향조 조심(曺深)의 덕원재(德源齋)
입향조는 고려시대 산원을 지냈던 조심(曺深)으로 조부는 고려조에
정순대부로 판전의시사를 지냈고, 창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좌시중에
추증되었던 조우희(曺遇禧)이며, 부친은 고려조의 문하시중
조민수(曺敏修)의 막내동생 조경수(曺敬修)로 고려조에 밀직부사를
지냈고, 조선조에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서성군에 봉해졌다.
김천 입향조 조심(曺深)의 묘
입향조 조심(曺深)의 아들로는 선무랑 조승중(曺承重)과
울진 현령을 지낸 조계문(曺繼門)이 있고, 손자로는 조위(曺偉)를 비롯해
조신, 조보, 조척, 조윤, 조전 등이 있으며, 손녀사위로 김종직(金宗直)이 있다.
입향조의 묘소가 있는 김천 입석마을(외입석리)
김천에 입향한 뒤로 조위를 비롯해 많은 선비들을 배출하였는데,
문장공 조위, 효강공 조신, 지정공 조균, 둔암공 조준남,
지중추부사 조세호, 관찰사 조시영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입석지의 봄
2)세계(世系) : 종가의 형성
입향조 조심(曺深) - 조계문 - 조위 - 조사우 - 조윤희 - 조익 - 조효창 -
조건 - 조세빈 - 조집 - 조문영 - 조현명 - 조인규 - 조진억 - 조윤영 -
조상원 - 조명덕 - 조창환 - 조규탁 - 조형만 ~
매계묵적(梅溪墨跡) ~ 경매에 나왔던 묵적으로 소장자는 아쉽게도 모름
제2장 사람 ~ 세현과 문헌
1.종가의 세현들
한낮에 사립문을 사람 불러 열고는
숲속 언덕으로 걸어서 이끼 낀 바위에 앉노라.
이 사이 그윽하여 일이 적다 말하지 말지니
잔잔하게 흐르는 게곡물로 꽃이 떠 오누나.
-초당에서, 매계선생문집 권1-
입향조 조심을 중심으로
증조부 : 조원계(고려 중문지후, 추봉 찬성사)
조부 : 조우희(고려 판전의시사, 증 좌시중, 창성부원군)
부 : 조경수(고려 밀직부사, 조선 단성좌명공신, 증 좌찬성, 찬성공파 파조)
숙부 : 조민수(조경수 맏형, 문하시중, 창성부원군, 양광,전라,경상,서해교주 도통사)
숙부 : 조익수(조경수 둘째 형, 밀직부사, 상호군, 서성군, 좌찬성 추봉)
창녕 선대 묘소 ~ (왼쪽) 조원계, (오른쪽) 조우희, 조익수
본인 : 조심(고려 산원, 조선 증 병조참의, 김천 입향조)
맏형 : 조흔(대호군, 예조참판)
둘째 형 : 조항(전라감사, 순충적덕보조공신,영의정 추증)
아들 : 조계문(울진 현령, 증 이조참판)
조카 : 조석문(조항의 아들, 영의정)
조효문(조흔의 아들, 평안도 관찰사, 예조참판, 악학도감 제조, 좌익공신)
손자 : 조위(호조참판, 증 이조판서, 시호 문장공, 호 매계)
조신(사역원정, 공조판서에 증직, 효강공), 조전(효력부위)
조척(선무랑 조승중의 아들,함창,교산,거창,풍기,고양 등에서 군수)
마암 선영 위로부터 조계문(울진현령), 조위(매계), 평산신씨(정부인),
조사우(별제공), 조윤희(영월공), 조익(묵재공)
증손자 : 조사우(별제,조위의 아들로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현손(4대손) : 조윤희(영월군수,통정대부,예빈시정), 조윤신(들째로 고성군수),
조윤지(셋째, 양구 현감),
5대손 : 조익(수정처사, 묵재공), 조연(가선대부 병조참판 증직, 거제 정춘사 배향)
6대손 : 조효창(예조좌랑), 조흔(사마시 급제,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
조응상(음직으로 돈령부 도정 역임, 거제도 입향조, 정춘사 제향)
거제도 입향조(입도조) 조응상(曺應祥)의 묘
7대손 : 조건(참봉, 동생 조우와 함께 청녕조씨 대동보인 계유보 편찬)
조유(이조판서 증직, 우졸당집,경렴서원 배향),
8대손 : 조세호,조세룡,조세봉,조세붕 우졸당 조유의 아들 4형제
조세호(자헌대부 지중추부사, 체췌당), 조세룡(사헌부지평 증직, 인재공),
조세봉(통덕랑, 통훈대부 사복시정 증직, 삼석재), 조세붕(세자익위사 시직,경지재),
네형제가 우애있게 살아 그 마을을 4효자동, 이들을 사효 사학행이라 칭송했다
조순(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단정학(철원)
9대손 : 조한영(찰방), 조한수(신천군수), 조한흥(호조판서 증직),
조한신(가선대부 행 장사랑 오위도총부 부총관, 호조참판 증직),
10대손 : 조임(별제, 형조참의 등과 정조가 고려지명을 내리는 등 8차례나
제수하였으나 사양, 제2차 대동보인 정해 대동보를 편찬, 저서로 신재문집)
조문식(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의금부 부사와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증직)
조문권(승문원 정자)
효자 조응방과 효부 창녕성씨 정려비(정려비각, 봉산면 행정복지센터 입구)
11대손 : 조응방(1812년,순조 12년에 효자,효부 정려가 내려졌다)
조국명(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조희명(이조참의 증직)
12대손 : 조원규(통덕랑), 조예규(이조참판 증직)
13대손 : 조진구(가선대부 동지돈령부사), 조진억(온양군수, 동지돈령부사)
조진만(가선 규장각 제학), 조진백(공조정랑, 형조정랑, 병조정랑)
관찰사 조시영과 부인 덕수이씨의 묘
14대손 : 조익영(통정의관), 조석영(울산부사, 통정대부)
조시영(경상도 소무사, 경상남도 관찰사, 화왕산 창녕조씨득성지지 석비 설치,
창녕 고암에 시조 영적비와 일원각 건립, 대동보인 신해보 간행, 매계구거 중수 등)
15대손 :조경승(경학원 사성), 조병태(진사, 대동보인 신해보를 조시영과 간행)
16대손 : 조병규(독립운동가,조선통신사 부사장), 조병완(국회사무처 사무차장)
조성환(화왕산 창녕조씨 득성지지비 감역)
죽산 조봉암 어록비(시조 묘소 입구)
17대손 : 조봉암(독립운동가, 초대 농림부장관,제2대 국회부의장, 2.3대 대통령후보)
조경환(예명 고려성, 독립운동가, 대중가요 작사가), 조광환(예명 나화랑, 대중가요
작곡가, 열아홉 순정, 이정표, 청포도 사랑, 무너진 사랑탑, 울산 큰애기 등 작곡)
조광운(광운대학교 설립), 조익환(공화당 창당위원, 조위 묘역정비와 재실 개축 등)
조태환(경북대학교 의대 교수와 경북대학교 병원장), 조상도(거제시 초대 민선시장)
조재현(부산 해양경찰서장), 조대환(제주지검 차장검사,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
김천 연화지의 봄
18대손 : 조두석(남원군수, 법무부 이사관, 서을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
조형부(제11대 국회의원), 조규성(부산교육청 학무국장), 조규태(감사원 심의관)
조규철(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조홍(경북 체신청장,서울 체신청장),
조무성(광운대학교 총장), 조규일(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차관)
조규설(서울 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 동부지법 부장판사)
백로의 사랑 나누기
19대손 : 조수용(고려대학교 의대교수,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부원장),
조창현(청송군수, 영주시 부시장, 경상북도 문화체육국장, 의회 사무처장),
조성현(인천 복지병원장), 조석현(한림대학교 교수),
20대손 : 조태준(창녕조씨 부산종회장, 전국종회 부회장)
창녕조문의 혁혁한 인물을 모두 소개할 수 없음이 아쉽다.
창녕조문의 종훈은 숭조, 화합, 애족이다. 조상을 받들고 종인들끼리
화합하며 겨레붙이들을 사랑하는 취지의 가르침을 담고있다.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보관중인 문헌과 편액 들
2.종가의 문헌들
보관상의 문제로 한국국학진흥원에 대부분 기탁
.삼석재파 : 고서류 284책, 고문서류 263점, 서화류 19점,
조상환가 : 고서류 8책, 조지환가 : 고서류 22책, 고문서류 10점,
그 외에 목현판 2점, 묘지석 2점.
매계문집
1)문집
○매계선생문집 ~ 매계선생연보, 매계선생문집(중간본), 매계선생문집(삼간본)
○조신 : 적암유고, ○조유 : 우졸당유고, ○조술 : 경매당유고,
○조문식 : 파간유고, ○조시영 : 후계문집 등
2)교지
교지도 대부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보관하고 있다
매계 조위선생 자헌대부 이조판서 ...,. 문장공(文壯公) 교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보관중인 매계 조위선생 외 교지목록
3)가승(家乘) 및 묘지석
창녕조씨 세계(世系), 창녕조씨 족보, 창녕조씨 종중규약, 창녕조씨 가첩,
창녕조씨 호남종회 제1회 평의원 회의록, 창녕조씨 찬성공파 파보,
전라남도 승주군 낙안면 남대리 노인당지, 창녕조씨 세보, 일원지 등
매계선생 모친 문화류씨(조계문의 부인) 묘지명(석판)
이 묘지명(석판위에 새겨진 글)은 2001년 6월 김천 복전리(마암리)
창녕조씨 선영에 자리한 문화류씨 묘소를 정비 하던 중 상석 밑에 곱게
감추어져 있던 석비로, 1459년 모친이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나자
매계 조위선생이 모친을 위해 친필로 새겨서 갈무리했던 묘지명이다.
정부인 문화류씨 묘(貞夫人 文化柳氏之墓)
제3장 정신 ~ 조위를 중심으로
1.매계 조위의 삶에 대하여
북으로 돌아갈사 한식도 가까운데 / 반 이상 봄빛을 두루 보았노라.
물 위로 뾰족하게 어린 묘는 날카롭고 / 허공에 드리워져 가랑비가 비스듬하네.
창밖이 맑아 의당 시구 찾을 만하고 / 술은 담박 하여 정녕 차를 끓여야 하네.
모로 눕다 서쪽의 해가 떨어지나니 / 꼬리 흔드는 저녁 까마귀를 보노매라.
매계선생 영정
1) 봉계, 수학 그리고 급제
그는 1454년(단종 2) 7월 10일에 김산(金山) 봉계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오룡(五龍)이었으며, 10세 때 김종직에게 수학하였다.
그 이듬해 가을에 상경하여 종숙부인 조석문의 집에 유숙하며 수학하였다.
18세가 되는 1471년(성조 2) 생원시, 진사시 삼장에서 모두 1등으로 입격,
하였고 이듬해(1472년) 1월 사마복시 양장에 합격하였다.
1473년 성균관에서 수학하며 관시에 합격하였다.
매계 조위선생 친필 시
유선의 깃발과 부절이 하늘에서 내리니 儒仙旄節下靑冥(유선모절하청명)
멀리 해를 잡고 지극한 정성 의지하네. 遠搏扶桑仗至誠(원박부상장지성)
만리에 고생하니 해가 솟은 듯 하였고 萬里間關廓日出(만리간관확일출)
천년에 즈음하여 황하의 맑음을 만났네. 千年際會値河淸(천년제회치하청)
수심으로 병든 비를 보고 나르는 솔개 떨어지는 듯 하였고 愁看瘴雨飛鳶阽(수간장우비연점)
기쁨으로 바람만난 돛대보고 춤추는 새가 가볍게 나는 듯 하네. 喜見風帆舞鷁輕(희견풍범무익경)
이번에 고향을 버리는 듯 가신 본래 뜻은 此去桑弧聊素者(차거상호료소자)
남자로서 다만 공명 때문이 아닐 것이로다. 男兒不獨爲功名(남아부독위공명)
사화의 빌미가 된 점필재선생 문집
2)두시언해와 점필재집
1474년(선종 5) 봄 식년문과 병과에 합격하고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476년 6월 채수, 권건, 허침, 유호인, 양희지 등과 함께 사가독서를 했다.
1481년 12월 왕명으로 유윤겸 둥과 함께 완성한 "두시언해"의 서문을 썼다.
1493년 6월 호조참판이 되었고 왕명으로 김종직의 시문을 편집했다.
1494년 충청감사가 되었다.
3)겁난과 신원 그리고 문장(文莊)
1495년(연산 4) 4월에 한성 부윤이 되었고, 곧 대사성이 되었다.
8월에 전라감사가 되었고, 1498년 2월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4월에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조신(曺伸)과 같이 중국에 갔다.
순천 임청대
그해 9월 귀국하던 중에, 조위는 김종직의 문인이자
그의 시문을 편찬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의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5월 순천으로 이배되었으며, 이곳에서 김굉필과 같이 도의를
강론했으며, 48세가 되던 1501년 임청대를 세우고 기문을 지었으며,
이때 우리나라 유배가사의 효시인 만분가를 지었다.
문장공 매계 조위선생의 묘
그리고 50세가 되던 1503년(연산군 9) 11월 유배지에서 병으로 졸했다
1507년(중종 2) 신원(복권)되었으며, 1708년(숙종 3) 순천 유생들의 상소로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이때 문장(文莊)이란 시호를 받았다.
"문(文)"은 공부에 부지런하고 문의(文議)를 좋아한다는 취지로,
"장(莊)"은 바른길을 걷고 화해에 뜻을 두었다는 의미로 하사 받았다.
바람과 구름의 만남
2.도학과 마음, 그리고 매화
정호(鄭湖)선생은 "매계는 성종조의 성세(盛世)를 만나서는 옥서(玉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명성도 대단하였다. 바람과 구름이 절묘하게 만난
것처럼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경우라 하겠다." 라고 하였으며,
김종직 공이 말하기를 "내가 태허(조위의 자)와 강학할 때면 강하를
터뜨린 듯 거침 없었다. 태허는 나의 스승이다, 스승이다" 라고 하였다.
"책을 보며 자신을 경계하다"
(관서자경, 觀書自警) ~ 매계선생문집 중에서
그때 마음을 허비하던 것 후회 하나니
먼저 마음을 바루는게 좋은 경계라.
싹이 우산의 나무와 같지 않음이 없나니
그저 소나 양이 나날이 달려들까 두렵네.
또 옛날 주희와 직접 만나며 마음의 공부에 대하여도 노래하고 있는데
즉 "마음이 막히면 어두을 것이요, 통하면 밝아 지리라" 구절에서
보듯 늘 마음이 깨어 있기를 바라고 있 다.
옛날 미언(微言)에 어두워 벽을 마주한 듯했는데
오늘 시훈(詩訓)을 보니 선단(善端)이 열리누나.
이 마음 환하기가 이 창문을 밀친 듯하니
맑은 물줄기가 근원에서 하염없이 흐르노라.
이런 마음 공부를 통하여 도달한 맑은 경계를 "매화" 로 그려낸 듯하다.
강산이 마치 그림 속에 열린 듯하거니
휘어지며 아로새긴 난간에 먼지 하나 없구나.
성아에게 찼는지 이지러진 건지 묻지 말지니
이미 성긴 그림자에 은은한 향기가 오도다.
매계선생이 작성한 두보시 서문
3.성세의 서정과 "두시서(杜詩序)"
다음은 조위가 17세 되던해 강릉을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며
소년시절 부터 품어왔던 자신의 앞길에 대한 포부를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
"길을 가다 우연히 읊다" ~ 도중우음(途中偶吟)
그날 보잘것 없는 나는 구름 탄 용을 꿈꾸며
서쪽으로 장안을 보는데 길은 끝이 없었네.
옹자는 이제부터 궐하로 돌아가나니
계응이 어찌 오중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나.
높은 소나무의 학은 천산의 달을 꿈꾸고
넓은 바다의 붕새는 만 리 바람을 타도다.
하늘가로 고개 돌리니 마음은 더욱 느껍고
흰 구름 어드메가 관동일런고.
김종직선생상(밀양생가)
점필재 김종직이 1476년 사가독서에 참여하는 조위, 채수, 권건,
허침, 유호인, 양희지 등에게 공부의 방향을 당부하는 시를 주었다.
분분하게 사부로 각자 자웅을 다투지만
예부터 오직 두릉옹만 있었다네.
그대들 사무사(思無邪) 편을 되풀이 읽고
달과 이슬 바람과 꽃은 눈에서 비우시게.
마암재 시사 진설상
제4장 기억 ~ 제례와 공간
1.불천위제와 경건함
밤 고요하고 인적드문 향사 홀로 문을 닫은채
등을 짝하여 주역 보면서 그윽한 집을 마주했네.
책 읽는 사이 어느새 매화꽃 떨어지더니만
책상머리에 날아와 부딪히며 하얀 점을 찍누나.
~ 매화를 마주하며 밤에 주역을 읽다~
마암재 제례(청사제)
창녕조문은 종훈의 첫머리에 숭조(崇祖)를 올려 놓았다.
선조의 얼을 되새기는 것을 자신들의 최우선 가르침으로 삼고 있다.
이들에게 제례는 단순 행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본인들이 살아
있도록 해준 선조에게 감사하며 나아가 앞으로 창녕조문이
더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거룩한 의식이다.
매계문중 선대 묘역
묘사 제례일
제례는 신위, 진설, 강신과 참신, 초헌과 독축, 아헌과 종헌, 유식,
수조와 사신, 여적의 순으로 진행 되었으며, 제례를 마친 문중은
그 자리에서 조상이 남겨준 음식을 나누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렸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하는 문중에서 하나씩 묘역을 가꾸고
다듬어 가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율수재(律修齋)
2.추모를 위한 공간들
1)율수재
율수재는 조위선생이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공부하던 곳이다.
후손들은 1686년에 조위가 태어난 곳에 율수재를 건립하였다.
처마밑에 송시열의 친필인 매계구거(梅溪舊居)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매계구거, 율수재, 매계유허 편액
율수(律修)란 시경 문왕편에 나오는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분들의 덕을 잘 닦을지어다. 즉 무염이조율수궐덕(無念爾祖律修厥德)
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상들의 덕을 잊지말고 잘 이어받자"는 의미이다.
덕원재
2)덕원재(德源齋)
덕원재는 김천 입향조인 조심(曺深)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로서
조영호가 1957년에 향사에 모인 원로들에게 발의하여 동의를 구한 후
조준용, 조승묵, 조규한, 조상홍, 조하영, 조병일, 조용승, 조상호,
조근호, 조열승 등을 비롯한 문중의 출연으로 건축을 시작하여
3년이 지난 1959년에 완성하였으며, 당호를 덕원(德源)이라 붙였다.
마암재 전경
3)마암재(馬岩齋)
마암재는 조계문(曺繼門)과 조위(曺偉)의 재실로
1648년 조위의 묘 아래에 재실을 짓고 마암재(馬岩齋)라 명명하였다.
그후 수차례 중수하여 오다가, 2001년 목재가 썩고 낡아 허물어져 다시
크게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으며, 대문은 인의문(仁義門)이다.
마암재 마루 정면에는 조위 모친 묘지명으로 조위의 친필인
"유명조선국 정부인 류씨지묘(有明朝鮮國 貞夫人柳氏之墓) 탁본편액과
"야수암(也須嵒)과 여재암(如在菴), 마암재기(馬岩齋記),
마암재상량문 등의 편액이 걸려있다.
마암재(馬岩齋), 야수암(也須嵒), 여재암(如在菴) 편액
봉천재(좌)와 학하재(우)
4) 봉천재와 학하재
봉천재(鳳泉齋)는 1918년 조균(曺筠)의 유허지인 예지리(봉계마을)에
지어진 재실로, 조균은 학행으로 군자감 참봉에 추천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못가에 정자를 짓고 거문고와 책으로 일생을 즐겼다.
학하재(鶴下齋)는 조세봉)曺世鳳)의 재실로 그의 후손 조병태(曺秉台)가 쓴
학하재 창건기에 의하면 재원이 부족하여 전토 7~8 두락을 팔아 비용에
보충하여 1946년에 준공하였으며, 학하재 현판과 주련이 걸려있다.
황간 송계서원(단비)과 향사(2025.4.12)
황간~매곡 송계서원(松溪書院)은 1666년(현종 7) 창건된 서원으로
매계 조위(梅溪 曺偉)선생을 주벽(主璧)으로 하여, 송당 박영(松堂 朴英),
남정 김시창(嵐亭 金始昌), 오촌 박응훈(梧村 朴應勳) 등을 봉안하였고
숙종 말에 삼괴당 남지언(三槐堂 南知言), 일석 박유동(一石 朴惟棟)을
추향(追享)하여 이를 송계 육선생(松溪 六先生)이라 하였으며, 봉안문은
우암 송시열(宋時烈)선생이 썼는데, 훼철된 이후 현재는 단비(비각)만 있다.
김천 자산공원의 매계 조위선생상(왼쪽)과 김종직 선생상(오른쪽) ~ 경렴서원이 있던자리
제5장 전승 ~ 지역과 고전
1.지역과 함께하는 종가
일찍이 해가 부상에만 머물지 않았나니
별안간 검은 머리가 어느새 세어짐에 놀라리라.
당부하노니 이제 같이 배우는 이들이여
모름지기 공부는 젊은 시절에 힘써야 하네.
동학들에게 주다(증 동학제자,贈 同學諸子) ~ 매계선생 문집
이른바 종문은 혈연을 우선으로 이뤄지는 집단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지역이다.
김천 봉계의 창녕조문은 어떻게 지역과 결합하고 있는가?
나는 그들이 자신의 조상을 숭모하되 지역과 같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음에 감동 받는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제46회 매계백일장(2025.5.3, 김천 종합스포츠타운)
2.매계문중, 고전이 되다
1)첫 만남, 2)종문은 무엇으로 사는가, 3)지역의 의미, 4)또 하나의 텍스트
1)매계백일장
창녕조문은 김천문화원과 같이 매년 매계백일장을 열고있다.
조위의 문학적 성취를 찬양하고 청소년들에게 우리글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1980년부터 조위가 태어난 김천 율수재에서 개최하고있다.
매계백일장 시제(詩題) 발표장(참가 학생과 학부모들)
처음에는 김천지역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1998년부터는 경북지역으로,
2024년 부터는 전국 단위로 참가범위를 확대하여 개최하고 있다.
2025년까지 총 46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행사는 김천문화원에서 주관하고
경상북도와 김천시, 김천시 교육지원청, 창녕조씨 문장공파 대종회에서 후원한다.
제9회 매계문학상 시상식(2025.6.27)
2)매계문학상
매계문학상은 조선 성종조에 "두시언해" 간행을 주도하고
유배가사의 효시인 "만분가(萬憤歌)"를 집필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매계 조위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발전
시키고자 개설되었으며, 2025년까지 모두 9명의 본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매계선생 학술발표회(2025.6.27, 김천문화회관)
3)매계 조위선생 학술발표회(연구)
매계선생 학술발표회는 2009년 김천시 승격 60주년을 맞이하고
매계백일장 30회를 기념하여 처음으로 학술발표회를 열었으며,
이후 성종조 문인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기획되어
2025년까지 총 9회가 개최되었다.
한문학은 물론 국문학, 고전학 전공자들까지 차분하게 조위의 문학세계,
유배시, 문학 지형 속에서의 위치 등을 발표하고 있으며, 이미 "매계집"의
번역 및 성종조 문인에 대한 연구, "두시언해"와 관련한 사학적 연구도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매계학이 하나의 학문분야로 자리 잡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문장공 매계 조위선생 사적비(봉계초등학교 입구)
4)문화콘텐츠
김천 창녕조문은 매계백일장, 매계문학상, 매계학술발표회 외에도
2019년에는 많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봉계초등학교 입구에
"문장공 매계 조위선생 사적비"를 세웠으며, 김천시 시의회의
"김천시 문화관광 활성화 연구회"는 매계의 자취가 지역밀착형
문화콘텐츠가 될 수있는 방안을 연구 모색하기도 하였다.
나화랑 음악제의 가수 남일해 ~ 나화랑과 열린음악들(김천문화회관 공연장)
이보다 앞서 한국가요 1세대로 불리는 김천 봉계에서 태어난 창녕 조문의
작사가 고려성(본명 조경환,曺景煥)과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曺曠煥)의
생가에서 고택음악회가 열리고, 나화랑생가는 국가등록문화재 제775호로
지정(2020.3.9)되었으며, 직지문화공원에는 이들의 형제노래비가,
봉계초등학교 입구에는 노래비가 각각 설치되었다.
직지문화공원의 고려성(조경환), 나화랑(조광환) 형제 노래비
작사가 고려성은 나그네 설움, 제물포 아가씨, 자명고 사랑, 고향에 찾아와도,
등 수많은 가요를 창작하고 당대의 인기가수로 만들었으며,
직곡가 나화랑은 닐리리 맘보, 무너진 사랑탑, 울리는 경부선, 비의 탱고,
청포도 사랑, 열아홉 순정, 님이라 부르리까, 정동대감, 울산 큰애기 등을
작곡하여 수많은 전설의 인기 가수들을 탄생시켰다.
봉계마을의 나화랑생가(국가등록문화유산, 2020.3.9 지정)
5)화합의 고전
나는 매계문중으로부터 치유와 화합의 고전을 읽는다. ~ 중략
청녕조문 매계문중은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려서 상처받고 삶이 버거운
사람들 사이에 서로 보듬고 이해하는 공존의 화합을 일깨워가고 있었다.
~ 이제 매계문중은 고전이 되었다.
그들은 조상의 현양을 위한 존재만은 아니다.
조위 선생의 만분가(한국가사문학관)
앞으로 이들은 시대가 어렵고 인심이 각박해지며 관계가 소원해져
어디로 갈지 모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서 읽히고
길을 안내해 줄것이다. 조위가 순천으로 유배가서 지은 '만분가"를
분노의 고함이 아니라 상처의 치유로 읽어 내듯이 말이다.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 신도비와 율수재 도덕문(道德門)
율수재의 도덕문(道德門)은 매계선생이 사망한지 204년이 지난
1707년(숙종 34) 나라에서 문장(文莊)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지자
그 기념으로 세운 문으로, 시법(諡法)에서는 도덕박문으로 가로대
문(文)이라 하고, 행함이 바르고 뜻함이 온화하므로 가로대 장(莊)이라 하여
즉 "도덕박문왈문 이지화왈장(道德博文曰文 履志和曰莊)으로 줄여서
도덕문(道德門)이라 했다. 문장(文莊) 시호의 근원이다.
*김천 매계 조위 종가" 책자가 발간되기까지 수고해주신
교수님들과 연구진, 관계자 등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책자를 중심으로 하되 사진 등 다소의 편집이 있었음을 양해 드린다.

첫댓글 축하 드립니다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 봐야겠읍니다
긴글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