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에 대한 연민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상담실에 들어서는 노부부의 얼굴은 어두웠는데, 특히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편의 모습은 딱해 보일 정도였다. 아내에게 이끌려온 남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아내가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다 전후 사정을 말해주었다.
공기업에 다녔던 남편이지만, 배포가 적었던 남편은 재테크에 있어 맹추였단다. 두 자녀를 제대로 키우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그 부인은 이리저리 알아보며 투자를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남편이 협조는커녕 반대해 격렬하게 싸웠단다. 다행히 투자를 잘한 덕분에 그런대로 노후 자금은 넉넉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주식을 하다가 빚을 잔뜩 졌다는 것이다. 몇 차례 그 빚을 갚아주기도 했는데, 자칫하다가는 다 함께 망할 것 같아 지원을 끊자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때에도 우유부단한 남편은 자식인데 어찌 몰라라 할 수 있느냐며 자기 말을 듣지 않아 대판 싸웠단다. 여하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들은 도박에 손을 대더니 형편없이 망가지더라고 했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몰래 들고 나가 팔기도 하고, 친인척에게 돈을 빌려달라며 구지레하게 굴기도 하고….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살다가 결국 그 아들은 자살하고 말았단다.
그런 충격을 받고 남편이 우울증을 앓았는데 2년이 지나도록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데다가 이 모든 것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고 있단다. 어미가 너무 극성스러워 아들이 그렇게 되었다며 나를 원망하는데 그런 것이 너무 억울하단다. 그런데 남편마저 저러다 죽으면 주위에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그 부인은 한숨 쉬었다. 즉 아내 탓이나 하는 남편이 마땅치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고, 시집간 딸도 친정이 유지되어야 얼굴 들고 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자녀가 휘청거리면 대체로 아버지는 단호하고 어머니는 질질 끌려다니기 일쑤인데, 그 집안은 도리어 아내가 대차고 남편이 여린 듯했다. 어쨌든 부부 사이에 조율이 되지 않아 숱한 날 싸웠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던 아들은 반듯하게 살지 못하고 쉽게 돈을 벌려다 빚을 졌고, 도박에 빠졌다가 급기야는 자살하고 말았다. 누구의 탓이 더 큰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들에게 안정된 정서를 키워주지 못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아들이 그렇게 삶을 마감했으면 부모로서 자책을 많이 하련만, 그들은 여전히 누구의 잘잘못이 큰지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자식 잃은 상처를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들 사람들이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자식도 다 자라면 독립된 객체인데 어떻게 부모 뜻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즉 낳아 기른 핏줄이라도 손이 뻗치지 않으면 놓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감당할 수 없어 이미 죽었으니 가슴에 묻고, 이제부터는 얼마 남지 않는 본인들의 삶을 잘 정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상담자의 이러한 말을 듣는지 마는지 남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응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더 말하는 게 어려웠던 나는 부인을 향해 말했다. 남들 못지않게 잘살아보겠다고 그동안 애를 많이 썼는데 어떤 마음이 드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북받치는지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자기가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 하느냐며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란다. 오히려 자기가 더 죽을 판인데, 왜 남편이 먼저 병에 걸려 저 지경이냐고 아우성쳤다. 워낙 남편이 좁쌀 같아 그만 믿었다가는 다리 뻗고 누울 집 한 칸도 마련할 수 없었다며, 그녀는 그야말로 둑이 터지듯 울어 젖혔다.
그제야 기별이 가는지 남편은 나를 향해 두 눈을 끔벅끔벅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남편과 그동안 살아나온 세월이 억울하다며 아우성치는 부인을 앞에 두고 나 역시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기나 할 뿐이었다. 상담자 앞에서 그 부인이 그렇게 남편에 대한 감정을 다 터트려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첫 회기 상담에서 그렇게 난리를 쳤던 그 부부가 다음 상담회기에 와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하여 입을 열게끔 말을 짚여보다가 나는 그들에게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아무런 종교가 없다고 말하고 부인은 간혹 점이나 보러 다닌다고 하였다.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빈 마음으로 가볍게 살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여 잠시 주춤하다가 이러한 말을 들려주었다.
모든 게 그때그때의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것들일 따름이 아니냐며, 아들이 그렇게 된 것도 그럴만한 상황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안타깝긴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는데 그것에 더 속을 끓이는 것도 일종의 집착이라고 하면서 조건에 따라 수증기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기도 하고 강물이 되기도 하듯, 삶이라는 게 그렇게 변화하며 흘러가는 것일 테니 부디 순하게 살자고 하였다. 순하게 산다는 것은 모든 게 그렇게 연기하는 것임을 알고 ‘그렇구나!’ 하고 변화를 수용하며 바라보기나 하자고 했다.
나의 말이 가슴에 가 닿는지, 그 남편은 나를 응시하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거였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은 놀랍다는 듯이 남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아들이 어미인 자기보다 남편을 더 따랐는데, 남편이 주변머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나 착한 점이 있어 고맙긴 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부인의 말에 힘을 얻은 나는 그들에게 다시금 일러주었다. 모두 상처가 많은 것 같은데, 서로를 딱하게 여겨 잘해주라고 하였다. 남편은 아내와 같은 드센 사람을 만나 힘들어졌다고 여기기보다 자기 때문에 아내가 더 드세졌다고 여기고, 부인은 자기 욕심대로 이루려고 하다 도리어 역효과를 봤으니 이제부터라도 순하게 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신 때문이라고 원망하기보다 나 때문이라며 미안해해야 선순환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즉 이제 살날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에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으면 노년기가 아주 초라해질 거라고 하였다. 어쨌든 자기와 인연 지어진 대상을 보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악업을 짓고 만다고 한 것이다.
나의 이야기에 와닿는 것이 있었는지 그 남편은 내게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하려면 어떤 YouTube를 듣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몇몇을 소개해주며 어차피 삶이 힘든 것이라고 한다며 그러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봐주고 넘어가는 것 아니겠냐고 다시금 덧붙였다.
첫댓글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봐주고 넘어가는 것"
좋은 상담
감사해요,,
행복하고
평안하고
건강한 노년을 위하여~~~~~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게 사실 자기 마음에 욕구가 없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자꾸 생성하는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려면 많이 평소 많이 수련을 거쳐야 하지 싶습니다.
나이들어 서로 네탓 하면서 살아가는 부부
참,, 씁쓸하네요.
미성숙한 부부???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