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임금 오르는데… 워킹맘들 “퇴직금도 줘야 하나”
가사근로자법 6월 시행
《3월 새 학기를 앞둔 연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모님 모시기’가 더욱 치열해지는 시기다. 매년 초 맞벌이 부부의 회사 인사이동이나 자녀들의 입학, 학원 시간표 변동 등에 맞춰 등하원 도우미 등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찾는 가정이 늘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 일정이 불안정해지며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돌봐줄 ‘이모님’을 찾는 수요는 더욱 늘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가구별 월평균 이용시간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85.2시간에서 2021년 96.7시간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돌봄 노동 시장에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해 올 6월 시행을 앞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다. 법에 따르면 6월부터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 제공기관에 고용된 가사도우미는 근로자 권리를 인정받아 최저임금과 4대 보험, 유급 휴일, 연차 유급휴가, 퇴직금 등을 보장받는다. 부모들은 이모님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에 이 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취지는 좋지만…” 부모들은 비용 걱정
가사근로자법은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돌봄 노동이 외주화된 현실을 반영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사도우미를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가사근로자법 통과 이후 인터넷 게시판에는 “새로 구하는 이모님께는 나중에 퇴직금도 드려야 할까요?”, “시터가 그동안 일한 기간만큼 퇴직금을 원하는데 어떻게 하나요?”, “이모님 보험료도 제가 부담해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비용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나오는 배경에는 돌봄 인력의 수급 불균형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돌봄 수요는 더욱 커졌다. 반면 가사근로 시장의 큰 축인 중국동포 근로자들의 입출국에 제약이 생기면서 일할 사람은 줄었다.
기존에도 최저임금 및 물가 상승을 반영해 이모님의 시급은 오르는 추세였다. 통상 이모님 비용은 근무 시간, 입주 여부, 자녀수와 연령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각 가정과 이모님이 협의해 결정한다. 가사를 일부 해주는 경우는 물론이고 아이 보는 일만 담당하는 경우에도 일반적인 최저 시급보다 시세가 높게 형성돼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부족은 이모님 인건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 이모 씨(37)는 “이모님 월급으로 이미 월 270만 원을 지출하는데 이모님이 두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혹시라도 그만두시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가 많다. 주변에서 이모님 월급을 올려드린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부모 입장에선 기존 비용도 버거운데 이제는 사회보험료나 퇴직금까지 부담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도 있다.
인력 소개 업체들은 각 가정에서 정부 인증업체에 고용돼 근로자로 인정받는 가사도우미를 쓸 경우 비용이 20%가량 높아지리라 예상한다. 새 법이 시행돼도 일반 가정에서 직접 이모님의 보험료나 퇴직금을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업체가 사실상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에 이런 제반 비용을 반영할 거라 전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안 초기 정착을 위해 (정부 인증 업체에) 사회보험료 지원과 부가세 면제 등 세제 혜택을 검토하고 있다. 비용 상승이 20%보다는 낮은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입법 취지 살릴 방안 찾아야
6월부터 새로운 법이 적용된다고 해도 당장 가정과 가사근로자 양쪽 모두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새 법이 적용될 대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가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자 제공 업체’에 고용되는 것이다. 업체가 정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용면적 10m²(약 3평) 이상 사무실, 5000만 원 이상 자본금 규모의 법인이 최소 5인 이상을 고용하는 등 일정 자격을 갖춰야 한다.
현재 대다수 업체는 가정과 가사도우미를 연결해주는 소개·알선 업체로, 이 같은 자격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기존 직업소개소의 경우 수수료를 받고 회사에 프로필을 등록한 프리랜서 이모님들을 가정에 소개해준다. 최근에는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들을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도 많다. 이들이 정부 인증 업체로 등록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에도 누구나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이모님을 구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당장 법 적용을 받는 업체를 찾기 힘든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 기업형 소개소들을 정부 인증업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세제 혜택 등 지원과 홍보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법 시행 후 5년간 가사근로자의 최대 30%가 정부 인증기관 소속 근로자로 편입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지난해 5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사근로자법 통과를 환영하며 한국가사노동자협회와 한국YMCA연합회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안철민 기자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인증 요건을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비용 상승이 전망되는데 업체도, 소비자도 굳이 이를 감수하겠냐는 것이다. 직원 4, 5인 규모의 A가사도우미 소개업체는 “우리가 이모님들을 직접 고용해 보험, 연차 등을 보장해줄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B업체 역시 “만약 인증 의무화라도 되면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다”며 “이모님들의 근무 시간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정규직 고용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했다.
가사도우미 소개 온라인 플랫폼 ‘시터넷’의 황연주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소개비로 이모님을 잘 구하는 경우도 있고, 매월 수수료를 받는 업체를 통해 만난 가정과 이모님도 신뢰가 형성되면 나중엔 업체를 배제하고 직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소개 업체들이 정부 인증을 받도록 유도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가사근로자법 시행에 맞춰 정부 인증 사업을 준비 중인 가사도우미 소개 업체 ‘대리주부’는 이미 100여 명을 직접 고용해 4대 보험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봉재 부대표는 “사회보험 혜택을 받아본 적 없던 분들은 마음이 편하고 건보료도 저렴해졌다고 만족한다”며 “가사근로자의 만족도가 고객들의 서비스 만족도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가 책임진다는 것도 장점이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부모들은 법이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2세 남아를 키우는 정모 씨(39·여)는 “인증 업체를 통해 좀더 책임감 있는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다면 조금 비싸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박모 씨(35·여)는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의 경우 도우미의 신원이 확실하고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 육아 교육을 한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향후 정부 인증 사설 업체도 이런 부분을 확실히 보장한다면 부모들이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윤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