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7일(화)
* 시작 기도
주님...
그토록 부러워하고 나도 갖기 원하던 예언이나 방언, 심지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열정보다 더 귀한 것이 주님 안에 있는 사랑이었음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던 그 사랑이 그저 관념적이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지식에 지나지 않았음도 고백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나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거셨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보여주셨건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나를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덮어 덮으심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나를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는 자로 삼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20:1-11
제목 : 나를 형제요 친구로 불러주신 주님의 새 언약.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2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5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8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9 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10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11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 나의 묵상
다윗은 라마 나욧에 도착한 사울을 피하여 요나단을 찾아갔다.
그에게 할 말이 있어서였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으며 너희 아버지 사울에게 무슨 죄를 졌기에 사울이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요나단은 절대 그런 일은 없다. 결코 네가 죽지 않을 것은 내 아버지가 무슨 크고 작은 일을 할 때에 반드시 내게 말하지 않고는 행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아버지가 그런 일이 있다면 나에게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다윗이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요나단 너에게 은혜를 받은 것을 네 아버지 사울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일을 요나단이 알면 슬퍼할까 하여 너에게 알리지 않고 그 일을 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주님의 살아계심과 너에게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곧 죽을 것 같다.
이 말을 들은 요나단은 다윗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든지 내가 그것을 꼭 해 줄 것이라고 하였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부탁한다.
내일이 초하루이므로 내가 왕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지만 나를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어있도록 허락을 해주고 네 아버지가 나에 대하여 묻거든 다윗이 온 가족이 드리는 매년제가 있어서 자기를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고 말씀드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사울이 아무 말이 없으면 나는 무사하겠지만, 네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나를 해칠 생각이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요나단 당신이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것은 요나단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은 것으로 나에게 죄가 있다면 네 아버지에게 넘겨줄 것까지 무에 필요하겠는가? 차라리 네가 나를 죽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요나단은 그런 일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만약 너를 해치려는 아버지의 결심을 내가 확인하게 되면 내가 너에게 그것을 반드시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다윗은 요나단에게 혹 네 아버지가 엄하게 말을 하면 그것을 나에게 어떻게 알려 주겠느냐고 물었고 그 말을 들은 요나단은 다윗에게 함께 들로 나가자고 하여 나갔다.
다윗을 계속하여 죽이려는 사울 왕은 이미 폐위되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 있을 뿐이다.
이에 하나님의 시선은 당신이 택하신 다윗에게 모아지고 있다.
다윗은 비록 쫓겨 다니지만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요나단이 그와 함께 한다.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언약을 맺은 관계이다.
다윗과 요나단의 형제애는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형제애를 표상한다.
창세전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 생명은 아들 안에 있는 영생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이 생명을 사람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아들이 세상에 오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아들의 생명 곧 영생을 얻는다.
하나님의 아들과 그로부터 영생을 얻은 우리는 한 근원인 창세전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형제이며 친구이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그의 친구가 된다.
(요 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새 언약 아래에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주셨으니 우리도 그를 위하여 목숨을 드린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서로 목숨이 연결된 언약 관계는 죽음과 삶을 같이 한다.
이는 이 땅에 주어진 역사인 인생을 넘어 영원까지 어이진다.
따라서 중에 누구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나는 복음을 알지 못하여 주를 위하여 산다고 하였으나 그저 나의 열심과 나의 의를 드러내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모습으로만 살아왔다.
이런 나는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나를 잘 되게 하는 도구로 이용하려 했을 뿐 정말 내가 주를 위하여 나의 생명을 드리는 삶은 살지 못한 자였다.
이런 나는 마치 세상에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의를 위하여 분신자살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시쳇말로 개죽음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죽음도 아니며 오직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분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람은 이처럼 자기의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를 정도로 독하다.
이들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런 극단의 행동을 한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이들을 열사라는 이름으로 추켜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것을 가리켜 진짜 언약 관계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가 80년대였으니 당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스스로 분신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를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를 고민하며 지내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복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심지어 내가 목사가 되고 성도들을 가르치며 목회를 하면서도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왔을 때 비로소 내게 복음이 들려졌다.
그 복음은 몸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언약 곧 새 언약 관계가 정립되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나 관념적이고 지식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 곧 나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나는 복음 곧 실재로 깨닫게 된 것이다.
눈으로 듣고 귀로 들으며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진 것 같은 생명의 말씀을 경험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내가 사는 이 땅에서의 인생이 실재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요 창세전의 세계가 바로 나의 실재이며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내가 현재로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삶은 꿈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 땅에서의 인생은 영원하지 못하고 자다가 깨는 꿈과 같기 때문이다.
한시적이고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을 꿈이요 안개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나는 오늘도 나의 영원한 친구되신 우리 주님과 새 언약 안에서 한 근원에서 난 형제로서 그리고 나를 친구로 불러주신 주님과 더 깊은 교제와 사귐을 갖기 원한다.
내가 할 수 없지만 나를 지으신 주님께서 그렇게 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 하루도 주님이 주신 하늘의 생명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연약함으로 수도 없이 넘어지고 자빠지는 인생이지만 이 곳이 완전한 나의 인생이 아니요 영원한 그 나라에 지금도 내가 있음을 믿기에 오늘 하루를 넉넉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 비록 넘어질지라도 나의 힘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힘입어 일어설 수 있사오니 나를 주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나에게 여전히 첫 아담의 생명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의 생명은 그 첫 아담의 생명이 아니라 그 모든 악을 선으로 이기신 우리 주님 곧 마지막 아담의 생명으로 덮여 있음을 아오니 내가 그렇게 맺은 언약 관계 안에서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기 원합니다.
나는 더 낮아지고 주님만 드러나게 하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