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 박일만
불현듯 뿌리 뽑혀
낯선 땅 척박한 벌판에 버려져
갈대와 함께 서걱대며 울었다
짐승과 벌레들이 뒹굴며 싸우는
피 묻은 이국땅에 내던져진 몸들
땅속 흐르는 물소리 내던져진 몸들
토굴을 짓고 살았다
몸은 부서지고 뼛속에선 짠물이 흘러나왔다
고려인 강제 이주 명령!
밟히고 차이고
육신은 골병들었으나
신념은 오히려 활활 싹이 터 올랐다
영혼을 털어 넣고 땅을 일구며 살았다
싹은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었고
말소리는 열매로 영글어
조국처럼 머릿속에 단호하게 맺혔다
태생을 먹고 자란 말
젖줄을 휘감듯 뇌리에 흐르는 말
잊지 않으려고 되뇌고 되뇌었다
강제 차단된 말을 몰래 꺼내
아리랑을 부르고
아리랑 춤사위로 거친 땅을 일구고
굶주림을 차라리 낭만으로 견디며
전쟁처럼 전쟁처럼 살았다
고려인 강제 이주 명령서
그 정체 모를 활자를 해독하며
끈질긴 근성으로 살아내고
붉은 핏줄도 무수히 키워내서
서러운 이국땅을 굵게 넓게 다져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기관원 몰래 부르던 숱한 나날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 아팠던 숱한 세월
뿌리를 움켜쥐고
갈대밭에 광대한 둥지를 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연면한 강이 되었다
ㅡ 계간 《시산맥》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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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만 시인
1959년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및 범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수료
2005년 《현대시》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 『사랑의 시차』 등.
제5회 송수권시문학상, 제6회 나혜석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