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위태로움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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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여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속상한 마음을 분출하며 울먹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에 대하여 애증 하는 마음이 수시로 바뀐다며, 과연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였다.
결혼해 남매를 낳아 길렀는데, 아이들이 제법 커 손이 덜 가게 될 무렵 자기는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단다. 그런데 거기서 이상형으로 꿈꾸었던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서로 사랑에 빠진 자기네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함께 살자는 약속을 굳게 했다는 것이다. 마침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하던 터라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하니까, 남편은 충격으로 노여웠기 때문인지 굳이 자기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와는 달리 그 남자는 부인이 이혼을 안 해주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그냥 집을 나왔고, 그냥 자기와 살림을 차렸단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쪽 부인이 이쪽을 상간녀로 고발하지는 않더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아내가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살 수 있도록 그 남자가 맨몸으로 나왔기 때문인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고 했다. 아무튼 현재 자기는 그 남자와 살고 있는데, 혼인신고를 할 수 없어 떳떳하지 못한 상태라고 하였다. 자기는 그 남자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아이들마저 버렸는데, 그는 왜 더 강경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지 야속하단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행동이 탐욕이나 분노 또는 어리석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아무리 남편에게 싫증이 나고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더라도 어떻게 까막까막한 눈동자를 굴리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덜렁 이혼했느냐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멍들게 하고 다른 남자와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다니, 야속하다 못해 낭패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비난이 올라오는 속내를 억누르고, 애써 차분하게 이 시점에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산란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상담자를 찾아온 사람이기에 어떻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게 나의 위치였던 까닭이다. 나의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그 남자가 자기처럼 이혼해야 분한 마음이 가실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자신만 붕 떠버린 현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하소연에 나는 그 남자의 아내가 응하지 않는데 무슨 수로 그가 이혼할 수 있겠느냐며, 이혼을 쉽게 생각한 그들이 어리석었던 게 아니냐고 하였다. 이렇게 내가 공감이나 동조를 하지 않자, 그녀는 속이 상했는지 갑자기 소리쳤다. 자기는 이혼했는데, 그는 왜 못하냐며 의지가 없다는 징표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렇게 분해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오로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에만 갇혀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속상해하는 마음을 다 쏟아내도록 한참을 잠자코 듣기나 하였다.
사실, 아내가 바람나서 이혼을 요구하면 대개의 남편은 화를 내며 헤어지고 만다. 반면에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면 대개의 여자는 누구 좋아하라고 해주냐며 버티는 편이다. 이런 배경에는 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의 경제력이 약한 데다가 여성은 현실적으로 새로이 출발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특유의 모성애가 있어 아이들을 쉽게 저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딱하게도 이 여성은 그러한 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그 남자가 이혼하지 못한 것은 의지가 약해서라고 여겼다. 어쩌면 이상형으로 여겼던 그 남자도 막상 살아보니 별로이기 때문에 더 약 올라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그녀가 그 남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닦달하면 할수록 그와 소원해질 게 뻔하고, 그러면 그는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난감한 처지에 있는 것을 알겠으나, 그 모든 게 그녀의 판단 부족으로 펼쳐졌다며 감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그 남자가 부인과 이혼할 수 있도록 묘책을 일러주기는커녕 자기를 비난한다고 여겼는지 뿌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에게 가면 뭔가 현실적인 처방을 일러준다고 하여 왔는데, 불만을 터트리면 그와도 헤어질 게 뻔하다고 말씀하시니까 속상하네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렇게 뿌루퉁해도 달리해줄 말이 없던 나 역시 무거운 심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다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50분 상담에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속상하다고 도중에 휙 나가기도 뭣해 그녀는 앉아있었고, 실망감을 드러내는 그 여성을 상대로 할 말이 없었던 나도 어정쩡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색하게 몇 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다시 태도를 가다듬으며 애초에 잘못된 일이긴 해도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궁리했다. 마침내 내가 그녀에게 건넨 말은 이러했다.
“욕망이 빚은 진퇴양난이긴 한데, 이제는 감내해야 할 멍에 같습니다.”
“멍에요?”
“욕망에 의한 실책이라고 보지만, 숙세의 인연으로 치러야 할 어려움에 봉착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한걸음 뒤로 물러나듯 미온적으로 말하다가 나는 이러한 당부의 말을 했다.
“인제 와서 원망을 일삼으면 지저분해질 따름이니, 냉정하게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지켜본다는 게 어떤 거예요?”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대를 탓하지 말고,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단지 바라보기나 하는 식으로 지내라고 하였다. 양 가정 다 생물과도 같은 사랑을 잘 유지하지 못해 벌어진 사태 같다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해도 소용없을 것 같으니, 그저 현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이나 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나의 말에 동의가 되는지, 아니면 내게서 다소나마 온정을 느꼈는지 그녀는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수습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러놓고 그렇게 어깨가 들먹이도록 우는 그녀, 그야말로 비에 흠뻑 젖은 한 마리의 작은 새처럼 가냘파 보였다. 어쩌다 그렇게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녀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사랑이 뭐라고 그것에 그렇게 홀려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았는가 하는 의문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지냈다. 그러면서 우리의 슬픔이나 고통은 다름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는 세존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토록 자나 깨나 노래 부르는 사랑이나 그리움 같은 것들은 덧없는 환영이지 싶다. 그런 것들이 아닌들 그토록 괴로워하겠는가.
첫댓글 " 어쩌다 그렇게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지혜롭게 잘~~해결되어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상담사례 소개
감사해요..
여긴 오늘 91도F 까지 올라 가네요.
에어컨 틀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