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우리에게는 4가지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입니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맹자가 이야기한 4가지의 마음이 없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윗이 욕망에 눈이 어두워서 충실한 장군 우리야를 죽게 한 것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제자들에게 겸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한 것은 겸손해야 하는 사양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늘 풍족하였고, 좋은 옷을 입었지만 죽어서 하느님과 멀어지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불쌍한 라자로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했던 레위와 사제는 불쌍한 사람을 돌보려는 측은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수렁에 빠진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끌을 빼주려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의 위선과 허영을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운 마음인 수오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 성유축성미사, 주님 만찬 미사, 현양제대 묵상, 십자가 경배, 부활성야미사를 성주간에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파스카의 성삼일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교회 전례의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삼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의 몸가짐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는지 묵상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대사제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유다는 부끄러운 마음인 수오지심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 앞에 자신의 양심을, 친구를, 하느님과 함께한 신앙을 팔아넘기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분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릴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분의 고난을 가슴아파하고,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2022년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나는 어느 편에 있을까요? 예수님 수난의 길에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