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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창 선생님과의 만남(1)
며칠 전에 칡떼까치 둥지를 찍으러 경기도 포천의 주금산에 갔었다. 산바람님이 알려준데로 찾아들어가니 산 기슭에 식당이 있었다. 머리 속으로 상상했던 곳보다 상당히 외진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어떤 분이 장초점 망원렌즈를 들고 계신다. 혹시 이 분도 칡때까치 둥지를 찍으러 오셨나 싶어서 산바람님께 다시 전화로 확인하였다. 확인 결과 우연한 만남이었다. 이 분은 이 식당 주인과 구면으로 보였고 역시 새를 촬영하러 오셨다한다. 이 분이 송순창 선생님이셨다. 송순창 선생님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래의 약력이 실려있었다. 필자에게 말씀하신 내용도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송순창
서울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하였고, 독일어 강사를 하던 중에 1969년 요시찰인물로 사회활동이 금지(연금)되었다. 1979년 12월 대한조류보호회를 발족하여 1980년 대한조류협회로 개칭하였으며 같은 해 연금 해제되었다. 한국조류학회 이사, 한국토종학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89년 녹색당 위원장, 월간 〈녹색의 대안〉 편집인을 거쳤다. 1990년 유럽 녹색당 방문(독일, 프랑스, 스웨덴, 베네룩스 3국, 핀란드) 후 녹색연합 창립(장원, 김제남, 송순창), 2002년 푸른정치연합 공동대표(장기표, 송순창)를 역임하며, 일본 야조협회 초청 방문, 러시아 시베리아?오호츠크해 무인도 조류 생태조사, 몽골고원 생태조사, 일본 이즈미 두루미 도래지 생태조사를 통해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다.〈서울신문〉에서‘북한의 새’,〈조선일보〉와〈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했고,〈인천일보〉에 환경칼럼과 특집 ‘한국의 새’를 연재했다.〈환경타임즈〉논설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강원일보〉에‘송순창의 한국의 새’를 연재 중이다.
순창 씨는 ‘새 박사’로 불린다. 새와의 인연만 해도 30년이 넘는다. 사회운동을 하던 1969년 요시찰 인물로 지목돼 운신이 힘들자 212평의 비닐하우스에서 새 기르는 일에 몰두했다. 1980년 대한조류협회를 발족시키고 녹색당과 녹색연합 결성에도 힘썼다. 한반도의 오지와 무인도는 물론 철새를 따라 시베리아 만주 몽골 일본 오호츠크해 등지를 누볐다.“
하여간 이 정도 약력이므로 새 친구분들은 많이 아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송선생님으로부터 여러 말씀을 들었지만 새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한다면
(1)한반도에서 관찰되는 조류는 보통 450종이라고 한다.
(2)지금까지 내가 촬영한 종류는 348종이다.
(3)우리나라에서 조류를 많이 촬영한 사람들은 프로 촬영가인 김수만씨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들은 바로는 330종쯤된다고 들었다. 그 외 경희대 윤무부 교수도 꾸준히 촬영하였는데 윤교수의 조류 도감을 참고한다면 220여 종이다.
(4)새를 촬영하는 정보는 당신이 대한조류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므로 하루에 20여통의 전화가 온다. 새에 관한 문의나 이상한 새 발견 전화 등이다. 여기서 주로 정보를 얻고 촬영을 하기도 한다.
(5)조류를 촬영해보면 200종이 넘어가면 촬영이 꽤 힘들어지고 300종 넘어 촬영하려면 아주 힘들다.
(6)일반적으로 도감에는 400종 이상을 실어야되는데 촬영을 못하는 바람에 지난 번에는 동생과 함께 그림으로 그려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말씀을 듣고 필자가 질문드린 항목은 다음과 같다.
Q:한반도에 관찰되는 조류 종수에대한 관찰하거나 조사한 자료가 있나요?
A:잘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450종이라하므로 그렇게 알고있다.
Q:마키 히로조씨는 야조 590에서 590종을 혼자 촬영하였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아주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20년 동안 350종밖에 촬영을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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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독새는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둥지를 만들지 않는 쪽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윗 그림:어디에 쏙독새가 있을까.
아랫 그림: 여기에 숨어 있네요.
물꿩은 물위의 마른 풀을 모아서 둥지를 만든다. 물꿩은 헤엄을 치지 않고 발이 길어 수초 위를 걸어다닌다. 새끼가 걷지 못할 때는 옆구리에 넣어서 다닌다.
윗 그림은 둥지에 관한 자료만 모아놓은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알기 쉽게 적혀있지만 세밀하고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있다. 위 그림에도 나오듯이 쏙독새는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이 사실은 쏙독새 생태(둥지)를 관찰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것이다. 아래 그림 물꿩도 같다.
작년에 둥지에 관한 책을 몇 권 구입해서 다미양에게 준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어릴 적에 호기심이 많은 시절에 동기 부여가 되면 좋을 것같아서였다. 가끔씩 테리비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동기를 보면 어릴 적에 우연한 기회에 동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곤한다. 다미가 어른이 되어 “중학교 시절에 박모 아저씨가 준 둥지 책을 보고 나는 둥지 전문가가 되었어요. 아니면 생물학자가 되었어요”라고 테리비에 나와서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 때쯤은 다미와의 인연도 끝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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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우연히 소쩍새에 관한 둥지 정보를 듣게 되었다. 전화번호도 말씀해주었으므로 바로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는 분(소쩍새를 발견하신 분)은 체험학교? 운영자라고 생각되었다. 바로 전화를 하여 소쩍새 둥지가 있느냐 물었더니 지금 체험학교 뒤에 소쩍새가 포란 중인데 멀뚱멀뚱하게 사람을 쳐다본다고 한다.^^ 그래서 포란 중일 때는 촬영을 하면 위험스러우므로 나중에 부화하여 새끼가 충분히 성장할 때 쯤 찾아가서 촬영을 하고 싶다고 말하였고 그 쪽에서 전화로 연락해주기로 약속하였다. 소쩍새 새끼가 충분히 성장할 때 쯤은 다미가 방학 때 쯤되어 시기도 적정하다고 생각되었다.
시간은 흘러 오늘 장마비가 오려하여 걱정이 되어 그 체험학교로 전화를 하였는데 답변이 의외였다. 그 소쩍새를 촬영하고 싶다는 전화가 여러 통 왔었고, 반대로 둥지를 공개하지마라는 요청하는 전화도 여러 통 왔다고한다. 공개불가를 요청하는 전화도 촬영하고싶다는 인원만큼 왔다고한다. 그런고로 둥지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었다.
또 얼마전에는 아마추어탐조카페에 소쩍새로 보이는 사진이 올라왔길래 메일로 알려줄 수 있느냐라는 문의를 하였는데 공개를 할 수없다는 통보를 받기도했다.
이렇게 하여 박병우의 소쩍새 촬영은 물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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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사정은 일견 타당하게 보인다. 새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둥지를 촬영마라는 것이니 할말도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는 법이다.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서 한쪽을 포기하는 방법은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다. 제품을 개발해보면 ‘품질(quality)’을 올리면 ‘가격(cost)’는 반드시 상승하게 되어있다. 우주만상이 엔트로피(entropy)는 증가하게 되어있는 이치이다. 그러나 가격을 위해서 품질을 포기할 수는 없다. 또 품질을 위해서 가격을 포기할 수도 없다. 끊임없이 가격과 품질의 적정한 합의점에 대하여 고민하고 결정을 해야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 문제도 같다. 환경론자는 개발을 포기하는 것을 주장하지만 한쪽을 포기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없다.
결국 이렇게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고 귀찮아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마키 히로조가 나올 수없고 스즈키 마모루가 나올 수 없다. 또 환경보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료도 모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흰털발제비가 어디에서 어떻게 둥지를 트고 서식하는지도 파악할 수도 없다. 더 답답한 것은 둥지를 촬영은 좋지 않는 일로 처음부터 매도해버리는 풍토이다. 정말로 이런 말을 하고싶다. 우리나라는 피켓드는 환경론자도 많고 수십일(수백일?) 단식으로 환경을 외치는 사람도 기네스북감이고 둥지를 공개말라고 스스로 전화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환경은 엉망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없다. 한 사람이 590종의 새를 촬영하고 둥지만을 찾아다니며 둥지 책을 펴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하수구 물을 한번 살펴보라! 필자는 시모노세키에 가서 하수구를 직접 본 일도 있다. 하수구 뻘에는 수많은 구멍이 빠꼼히 곰보처럼 나있었다. 그곳은 민물 게(蟹)들의 서식처였다. 하수구가 살아있었던 것이다.
해결 방안은 촬영지가 공개되면서 새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해결방향에 중지를 모아야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금지 일변도의 탐조 행태에서는 필자는 반대한다. 금지는 법에 명시된 리미트가 한계점이라 봐야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송순창 선생님이 20년간 350종을 촬영한 것은 기적이었다. 필자는 송선생님께 앞으로 많이 가르침을 주십사 부탁드렸다. 예순여덟 고개 한평생을 순수한 열정으로 사셨던 그 모습이 이신전심으로 느껴졌고 보기 좋았다. 오늘 송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병우씨, 나 오늘 큰유리새 둥지를 발견했거든. 알을 네 개나 낳았어. 나중에 내가 연락하면 이리로 와!’
‘예 연락만 주십시오. 바로 가겠습니다.’
첫댓글 소쩍새는 부화후에 빨리 자라는 것 같고 그러므로 다미양이 방학할 때 쯤에는 빠이~빠이~ 하고 없을겁니다. ㅠ.ㅠ 저는 내일 새벽에 소쩍새를 찾아서 휙~ 떠날 예정입니다. 비님이 오시지 않으시면 말입니다. ^^
비나이다`~~~~~~~~~~비나이다 모샘님 가시는 곳마다 장대비야 내려라~~~^^
ㅠ.ㅠ 올해는 유난히 소쩍새랑 인연이 없을런지, 새벽에 일어나 프랑스랑 스페인전을 보다가 3:0으로 되길래 6시쯤에 장비를 챙겨서 차를 타고 창원을 벗어나는데 안개가 너무 끼어서 차를 돌려 들어왔습니다. ㅠ.ㅠ 오늘 12시 40분에 진주에서 천연기념물 치료(?) 교육이 있어서.... 임선생님의 기도가 먹혀들은 것 같습니다. ㅠ.ㅠ 작년에 암, 수 , 새끼의 사진은 찍었고 디지털 비디오도 찍었지만 HD로 영상을 찍을까 해서 한번 더 갈려고 하는데 잘 되질않습니다. ㅠ.ㅠ
우와....
사실 박샘의 말씀은 맞습니다..허나, 사진 작가랍시고 새를 촬영한다고 새를 소품대하듯 하는 사이비 사진작가들이 많아서 저자신도 비공개를 원하지요..상술도 무시못하고.. 순수한 열정과 근거를 남기려는 작가정신(학자)을 갖고 있다면 어느 누구가 싫어하겠습니까..?? 제 소견엔, 박샘의 순수 열정도 열정의 한계를 극복한다는것은 현재의 숙성도(나이)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론?? 님이 열거한 분들의 성과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린다는것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먼저앞섭니다.물론,전수받고 이어간다면 모르지요.결론적으론..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라는거지요..
저는 새할아버지님과 약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태 작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좀 멋있게 찍을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태 작가들은 새를 죽이는 사냥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생태 작가들이 더 늘어나야만 환경 보존에 대한 여론이 많이 형성될 수있습니다. 민주주의란 결국 쪽수 싸움이지요. 지금 우리나라가 개발 일변도로 가는 것도 환경론자들이 부족하고 개발론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태 작가들은 개발론자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메신저들이라 생각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