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글
졸업장
달빛을 깨물어 놓은 저녁이
유난히 밝은 어촌 마을에
아버지랑 전 단둘이 살았고
글을 읽지도 못하고 말 할줄 조차 몰라서 오직 가슴으로 밖에 말할수 없었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제 방식은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아빠! 내가 이 다음에 결혼해도 아빠는 꼭 데려갈끼다)
(우리 공주님 마음씨도 예쁘데이)
“어이.. 생선 장수 여기 고등어 두 마리만 주소...”
“우리 아빠 이름은 생선장수가 아니라 김만수거든요“
“아이고 그 녀석 똑똑하데이“
아빠는 혼자 남겨질 저를 태우고
이 마을 저 마을 젖 동냥 하듯
함께하는 이 길에도 행복이 있다며 기적소리 뿜어대는 기차처럼 달리곤 했지요
(아빠! 갈치 두 마리만 퍼떡 )
(응 알았데이)
고사리 같은 손에
신문지를 돌돌 말아 만든 나팔로
“생선왔스예 퍼떡 나오이소”
라고
소리치고 있는 저 때문이라며
가지고 나온 생선을 다 판 아빠는
신이 나서
(딸…! 봐라 이 돈 봐봐라)
(우리 부자다 아빠 그체)
하지만 맘이 편치 않았던 건 내년에 초등학교에 가게되면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데다
글자까지 모르는데 어떻게 혼자서 장사를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서서였을 겁니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고슬고슬 밥을 지어놓고 손수레에 하루 장사를 마치고 오시는 아빠를 보고 뛰어가 안기는 저를 보며
(비린내 난다 오지 마래이)
(비린내가 나면 좀 어떻노….
소중한 내 아빤데 )
(오늘 고등어 세 짝이나 팔았데이)
(아빠 오늘 장사 많이 했는가베..
돈은 잘 받았나?”)
“(응…. 여깄다 봐라)
밤이 만들어준 까만 도화지에
달이 준 노란 물감으로
《우리 아빠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합미데이
(고등어 한 마리 천원)
(갈치 한마리 이천원)
많이 팔아 주이소“
그라고 울 아버지 이름은
생선 장수가 아니라 김만수라예》
라고
별꽃까지 달아 만든 종이를
먼저 잠든 아빠의 머리맡에
놓아두고서
저는 아빠의 품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라
다른 애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겨울 찬바람에 아빠 일을 돕느라 손이 부르튼 제가 맘이 아프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시켜주시고는
(많이 먹으래이….
아빠는 저 밑에 통장님 댁에
고등어 한 마리 갔다주고 오꾸마)
김이 나는 새하얀 쌀알과
고기가 둥둥 떠있는
난생 처음보는 국밥을 숨도 안쉬고
먹고 났는데도 제 앞 빈 의자엔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기에
국밥집을 나와 이리저리 배회하다 골목 안에 세워져 있는 손수레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다 전 발걸음을 멈춰 세워야만 했었죠
아버지는
국화빵 두 개가 든 신문지를 끌어안고
단숨에 먹고있는 모습을
애써 못 본 척 국밥집 앞에 서서
검정 고무신으로 땅바닥에 흙을
이리저리 갈라가며 서 있었습니다
(“이장님 댁에서 잔치를 해
고깃국에 엄청 많이 먹었데이)“
라며
배를 올챙이처럼 불러 보이시더니
트림 한점을 손수레를 얹고서
석양을 마주 보며 걸어가는
웃음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저는 철이 들기 시작했고
뒤 따라가며
소리없이 흐르는 제 눈물은
고무신 위로 떨어지며
강이 되어 흘렀습니다
학교를 마친 저는
한여름이라 태양도 지쳐 잠들어 있는
오후를 소나기가 씻어놓은 길을 따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왔지만
손수레엔 파리만 앉아 있을 뿐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만치서 걸어오시는 아버지는
오늘 못 팔면 상한다며 경로당에
어르신들 드시라고 가져다주고 오는 길이라며
이가 빠진 틈사이로
행복하다는 듯 웃어 보이시더니
빈 손수레에 저를 턱 하니 앉혀 놓으시곤
(“우리 딸…. 지금부터 달린데이….
꽉 잡아래이)
아빠 하나...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그렇게
아빠랑 나랑 ...
까만 밤하늘에 뜬 하늘길을 따라
꼬마별 들을 주우러 달려가던 그때가
지금도 무척 그립기만 합니다
창호지 문 앞으로
달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해님이 그 창호지 문틈으로 들어오는
아침이 오면
저를 깨우는 사람은
늘 아빠였던 것 같습니다
아침밥 대신 마주하는 행복 하나로
빈속을 가득 채우고
도착한 학교 앞에서
아빠랑 헤어지는 게 아쉬웠던지
늘
제가 먼저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빠…. 오늘 비 온다더라
비오면 퍼떡 온네이”)
“.(안 된다….
우리 딸 서울 가서 공부 시키려면
이 아빠가 더 열심히 해야제
니는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나. 서울 안간다 아빠 두고는..“)
(저 고등어 다 팔아서 울 딸 서울로 학교 보내는게 내 소원이다)
(아빠! 우리 집에 그런 큰 돈이 어딨노?)
(내는 우리 딸이 공부 해가꼬 졸업장 턱 하니 이 아빠 손에 쥐어주는 꿈을 매일 꾼다)
1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다 마주친 어느 날
땡볕에 내걸어진 금간 주름 사이에 베인 가난 속에서 겨울이면 서릿발
찬바람에 갈라진 두 손으로 모아 놓으신 돈을 내어주시며
(이 돈이면 니가 서울 가서 공부할 수 있을끼다 아빠가 이 돈 니 다 줄테니까 졸업장 하나만 내한테 가져온나 알것제?“)
(응 아빠 ..
꼭 가져와서 아빠 손에 턱 하니
쥐여 줄테니까 아무 걱정마래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손수레를 끌고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가 걸어가는 하늘을 보며
저는 친구가 된 뭉게구름에게 말했던 것 같아요
“우리 아빠를 부탁해….”
라고
그렇게
저는 서울과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오가며 보낸 지 4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아빠! 조금만 기다리면
아빠 손에 졸업장 줄 수 있데이)
(니가 이 못난 애비 소원 들어준다꼬
타지에서 고생이 많타)
(그때까지 더 아프면 안된데이)
(오냐, 오냐…. 걱정 말거래이
내 죽어서도 그 졸업장 만지러 꼭
올끼니까네)
(그리고 내가 턱 하니 취직해가꼬
이제부턴 용돈 제가 보내줄끼다)
(인자 섭해서 우짜노
내는 울 딸한테 용돈 보내는 맛에 살았는데…….)
(아빠 먹고 싶은 거 없나….
내려갈 때 사갈게)
(없다…. 난 니만 오면된다 ...)
마지막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고드름처럼 매달린 눈물방울을
결국 쏟아내며 달려간 그 곳에는
해거름 질 때까지
마을 입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아빠가 서 계셨고
저는 단숨에 뛰어 올라갔죠
(온다고 욕봤제)
(아빠! 손한번 줘봐라?)
(뭐할라꼬
다 늙어 쭈글쭈글해진 손을…?)
(아빠! 내게는 이 손이
황금보다 더 귀한 손이데이)
(문디 가스나
서울 가더만은 와이카노
늙은 애비 다 울리고)
묵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로
봄날의 햇살보다 더 따사로운
하늘 길을 바라보며
(아빠….
동네 한 바퀴 바람 쐬 드릴텐께
요쪼매 앉아봐라)
(됐다마!
다 큰 가스나가 챙피한 줄을 모리노)
어릴 적 아빠가
태워주신 손수레에 앉아 세워보던
그 별들과 달도 함께 나와
걷는 이 길에
자식에 대한 사랑만을 가득 싣고서
바퀴 따라 흘렀을 아빠의 땀방울을
더 일찍 알지 못했던 날들을
눈물로 사죄하며
저는 서울로 발길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봄이 보낸
겨울이 사라져 갈 때쯤
병원에 누워계신 아빠에게 저는
전화를 해 졸업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딸 졸업장 받았나?)
어디 있노 가까이 디밀어 봐라)
아빠의 눈에는
벌써 안개꽃을 피우고 계셨고
(하모…. 아빠 내가 누구 딸인데...)
(우리 딸 최고다.
이제 아버지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다음 생에는 내처럼 말도 못하고 글도 모리는 아빠 딸로 태어나지 말고
행복한 부잣집 딸로 태어나거래이….)
(아빠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노
다음 생에도 내는 아빠딸 할끼다....
아파도 조금만 참고 있으래이
내 지금 빨리 내려갈게)
(오냐 ! 내 니가 와서 그 졸업장을
내 손에 꼭 쥐여줄 때까지
내 버티고 있으꾸마)
더디게만 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려터진 시계만 쳐다보다 도착한
병원에는 흰 천에 얼굴이 가려진
아빠가 누워 계셨습니다
“아빠 눈 떠봐라..
졸업장 가지고 왔는데 만져봐야 된다 아이가 아빠!
왜 눈만 감고 있노…. 응 아빠“
그렇게
졸업장을 두 손에 꼭 쥔 채
아빠를 엄마가 계신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며
“ 아버지 당신이 있어서
이 세상이 참 행복했습니다“
라고
말한지가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태어나고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묻어있는
이 학교에서 첫 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교실 맨 뒤편에 비어있는 책상에
선생님이 된 딸을 지켜 보고 싶어했던
아빠 대신 놓여있는 졸업장을
바라보며
“ 생선 장수 내 아빠”
당신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스승이었습니다
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 옮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