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학자 김성철교수님의 글입니다.
업과 과보 및 인과응보에 의해 6도윤회를 설명하는 이론이
체계화 된 것은 불교발생 이후라고 합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초기불교 전문가인 곰브리치 교수 역시
이렇게 설명한다고 합니다.
그 후 우빠니샤드나 바라문교 육파철학 속에 불교의 윤회와
업의 이론이 스며들면서
현재 인도인들의 세계관인 업(까르마)과 인과응보,
윤회 등의 이론으로 정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서양학자들이 불교이전에 성립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우빠니샤드의 경우도
그 내용 전체가 불교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공부한 초기불교 전공자 조준호 박사의 주장입니다.
우빠니샤드 가운데 멋진 표현 대부분은 불교의 영향으로
삽입된 것이기 쉽다는 말입니다.
초기불전을 보면 원래 5도 윤회를 말합니다.
천상, 아수라, 인간, 아귀, 축생, 지옥 가운데 '아수라'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6도 윤회설로 정착됩니다.
6도 가운데 아수라는 인도 옆의 페르시아에서 신봉하던
조로아스터교의 절대신인 '아후라 마즈다'에서 유래합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책 제목에 들어있는
짜라투스트라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성자입니다.
그런데 그 최고신인 아후라가 인도 신화 속에서 아수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인도와 페르시아가 적대관계에 있었기에
인도인들은 아후라 마즈다를 악신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토교에서는 인도의 신인 데바(Deva)를
악신으로 간주합니다.
서로 상대방의 절대자를 악마라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아수라가 5도 윤회설에 삽입되어 6도 윤회설이 성립된 것입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과응보와 업의 이론,
가축을 죽이는 희생제인 '야즈냐'가 꽃과 과일 등
공양물을 올리는 '뿌자'로 바뀐 것
대승불교 사상에 토대를 두고서 샹까라의 힌두신학이 체계화 된 것 등등
힌두교 사상과 의례 내에 불교가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힌두교'라는 것은 없습니다.
인도 내에 각종 신을 모시는 종교행위, 각종 수행을 하는
종교 행위들이 있을 뿐인데
서양사람들이 인도에 들어온 후 그런 종교행위 전체에 대해
싸잡아서 'Hinduism'이라고 이름 붙인 것일 뿐입니다.
셈족의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의 경우 종교라기보다
'조직'의 성격이 강하기에
거대하게 나누어져 각각의 이름이 다른 이질적 종교조직으로서 존재합니다.
이슬람교, 개신교, 가톨릭, 유대교와 같이....
사실 이것들은 종교라기보다 '사회조직'입니다.
보이스카웃, 라이온스클럽 등등과 같은....
반면 인도를 포함한 동양에서는 종교 간에 선을 긋지 않습니다.
그냥 각 개인의 소중한 종교생활이 있을 뿐입니다.
인도와 동아시아 등 동양에서는 자기 내면의 본성, 자성, 신성, 불성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이지
어떤 조직을 만드는 것을 종교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동양의 종교에서는 어떤 교조의 가르침을 신봉한다고 해도,
다른 교조의 가르침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힌두교신을 신봉하는 간디의 어머니가 자이나교 수행자들에게 항상
극진하게 대접했다는 일화에서 보듯이....
사실 이것이 올바른 종교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서양의 종교관, 셈족의 종교관에서 볼 때에는 이런 행위가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
'조직으로서의 종교생활'이 몸에 밴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종교와 종교는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 내의 종교현상 모두에 대해 '힌두교'라고 단일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종교가 그러하듯이.....
그러나 원래 '힌두교(Hinduism)'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도인들이 불교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도에서 탄생한 위대한 성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불교와 다른 종교 간에도 선을 긋지 않습니다.
불교의 가르침과 인도 내의 불교 이외의 가르침이 모두 녹아
인도인들의 삶의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윤회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이 힌두교로 수용됩니다.
윤회의 가르침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실 때,
초야(初夜)의 숙명통과 중야(中夜)의 천안통을 통해 발견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후야(後夜), 즉 새벽에 누진통이 열려 모든 번뇌를 제거하십니다.
불전을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은
'윤회의 정확한 모습에 대한 발견'과 '번뇌의 완전한 제거'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번뇌의 완전한 제거'의 측면만 주목해 왔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중 '번뇌의 제거'만큼 중요한 것이 '윤회의 발견'입니다.
이런 '윤회의 발견'이 그 이후의 인도사상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오늘날 인도인들의 윤회관, 생사관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