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을 장식하는 풀코스대회는 멀리 바다건너 일본으로 그 무대가 넘어간다.
제1회 가나자와마라톤대회에 참가를 하게 된 것.
작년 2월에 이 도시를 방문할 때까지만 해도 대회참가가 실현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2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고 결국 결자해지가 되고 말았다.
금요일 새벽에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 영종도로 상경을 하고 1시간40분을 날아서 도야마공항에 이른다.
전에는 고마츠공항을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비행기 날짜가 맞지 않아 조금 더 먼 이곳까지 오게 되었단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시청에서 주관하는 해외초청팀 환영행사 등에 참여하느라 이틀간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간다.
안주 좋은 동네에 있다보니 매일 저녁마다 술도 마시고...세월 참 좋~다!
풀코스를 뛰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거여?
일요일, 드디어 마라톤대회의 날이 밝았다.
아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니까 날은 어두침침 하다.
숙소에서 불과 300미터나 떨어진 곳에 대회장이 있기 때문에 채비를 다 갖춰서 몸만 훌쩍 빠져 나가도 될 것 같지만 순환이나 왕복코스가 아니라 편도로 멀리 이시가와현의 종합운동장까지 이동하는 코스라 짐을 다 챙겨가서 택배차에 맡겨야 된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교포 여직원은 일본인 보다도 더 고지식해서 철저히 메뉴얼 대로만 움직이기에 유도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이 그저 기계같이 움직이니...
9시에 출발을 하는데 7시반 쯤에 짐을 맡기고 이후로는 비옷을 입고 워밍업을 해주는데 1시간도 더 남은 이때 이미 일본주자들은 다 출발선에 정렬을 했다.
우리도 도저히 마음이 불편해서 더이상 밖으로만 나돌수가 없어 대열로 들어가 서 있는데 성급하게 비옷을 자원봉사자에게 줘버린 것이 후회막급... 출발을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비가 점점 강해지더니 급기야는 폭우수준으로 올라간다.
일본선수들은 이런 와중에도 전혀 동요됨이 없다.
동요는 커녕 큰소리 한번 나오질 않으니... 이 사람들은 모두가 다 수도승인가보다.
대회장에 쓰레기 한톨도 버리지 않는 것 또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일인데...
비가 온다고 몇분 빨리 출발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9시 정각에 예정대로 출발~
전체 참가자가 1만2천명이라는데 우리는 그 중 A그룹이라 2천명 정도가 일착으로 출발을 하는 것인데도 2차선 출발지점을 빠져나가는데만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출발직후부터 도로 양쪽으로는 시민들이 빽빽하게 늘어서서 열띤 응원을 벌이는데 시내 여기저기를 다 보여주듯 넓고 좁은길, 오르막길 터널 등을 두루두루 돌고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허허벌판을 헤매고 다니지만 응원인파는 끊기지 않는다.
45만에 이른다는 가나자와 시민이 죄다 쏟아져 나오고 그것도 모자라서 강아지까지 함께 응원을 펼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축제다.
한국에서 같았으면 7시간 동안이나 온 도시를 통제해놓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여기는 평생 이것 하나만 바라보기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놀라워!
당초 목표기록이 3시간15분 이었고 초반엔 그것보다 살짝 여유가 있게 4'30~35"에 맞춰 달렸는데 달리다보니 이런 기회는 평생 다시 오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페이스를 늦추게 된다.
1만이 넘는 주자들 중에 한국인은 달랑 넷인데 그 중에 두번째로 달리고 있는 난 태극기가 그려지고 KOREA가 선명하게 표기된 유니폼을 입고 있기에 이 존경스런 사람들과 그냥 이렇게 지나칠 일은 아닐 듯.
25Km 무렵부터는 길 가장자리로 붙어서 연도에 나선 시민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간바레"에 맞춰 "아리가또"를 외치게 되는데 이것도 수십 수백번이 아니고 천번대를 넘어가다 보니 적쟎이 체력소모가 따른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 좋은 기회를 살린다는 일념으로 계속 그렇게 가다보니 38Km즈음에서는 완전히 체력이 방전돼서 저절로 슬로우비디오가 되고만다.
딱 10분을 버려서 좋은 추억을 얻었는데 힘이라는게 의욕이 있다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건 아닌가보다.
이번 가을에 앞선 두번의 풀코스대회에서는 후반 막판까지도 체력이 짱짱했었는데 그걸 믿고 안심했던 것이 또다른 이색체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좋은 추억.
5Km 22:43
10Km 22:48 [45:32]
15Km 22:38 [1:08:11]
20Km 23:00 [1:31:11] {H 1:36:16}
25Km 23:14 [1:54:26]
30Km 24:34 [2:19:00]
35Km 25:18 [2:44:19]
40Km 28:15 [3:12:35]
Finish 13:17 [3:25:52]
여기는 피니쉬 지점에 아치나 구조물이 설치된게 아니고 그냥 기둥만 두개를 세워놨다.
보기엔 좀 허전하지만 안전상으론 괜찮을 듯하고 나중에 철거하거나 옮겨놓기는 좋을 것 같다.
근데 정말 중요한 것 또다른 감동은 피니쉬를 지난 뒤부터 시작된다.
트랙의 곡선부분에 천막이 쳐져있고 그곳에 들어서니 자원봉사 학생들이 대형수건을 주자들에게 정성껏 둘러준다.
주자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표정을...
경기장 밖으로 빠져 나가니 이번에는 커다란 체육관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또다시 천막이 몇군데 나오고 거기서 매번 완주메달, 바나나, 생수 등이 공급이 되는데 역시나 하기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쩜 저렇게 학생들이 착할까?
단시간에 교육을 시켜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몸에 베인 예절인데...
체육관 내부에 들어서니 이번에는 기록증이 출력이 되고 그 옆에선 12개 번호로 구분이 된 각자의 물품을 찾게 된다.
바로 그 옆의 체육관으로 들어가니 여기는 대형탈의실올 운영이 되고 있다.
샤워시설이 없어서 뭐가 좀 빠진 듯 하지만 넓다란 실내에서 한없이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는 편의는 또 새로운 맛.
일본인 주자들은 나처럼 훌떡훌떡 옷을 벗어놓고 갈아입지 않고 수건으로 가리고 온갖 예의궁상을 다 갖추는데...이런땐 좀 편하게 하지...이건 좀 그렇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서니 이번에는 일본식 된장국에 뭔가 3덩이가 떠 있는 그릇을 하나씩 들려준다.
이걸 가지고 또다른 체육관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각종 부스가 늘어서 있고 (실내에서 또 천막이라니) 생맥주 부터 꼬치까지 오만가지 것들을 팔고 있다.
밖의 날씨가 궂을 경우에도 느긋하게 머물며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시스템.
단 무료로 제공되는 것은 미소된장국 하나뿐.
이렇게 해서 56번째이며 첫 해외풀코스마라톤이 완성 되었다.
이 대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서는 무려 5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5개월도 아니고...
흔한 대회 중 하나로 추억은 사라지고 덜렁 기록만 남는 그런 대회가 아니라 아주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