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맑은 허공이 있고,그 아래 다리위 구걸이 있다
비가 온듯 하더니 오후 개이면서 맑은 허공이 그려졌다
온다며 약속없이 오니 흰구름이요
와 구걸박스 놓고 않으니 노숙자다
구름과 노숙자?
운명은 있을까?
무위와 유위는 진정 확연히 구분될까?
구걸남은 다리 건녀 터를잡았다 사업수확이 시원찮아
자리를 바꾸어 앉았으나 거기도 영 ......
자유해탈이다
구름은 스스로를 주체적 고정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작용은 있되 주체는 없다.
더워 물이 증발되니 구름이 되듯
또 기압과 온도차이로 다시 지상을 적시는 비로 화하니
자연이라 하고 순환이라하고 연기라 한다.
'연기를 보는 자 나를 보리라'
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만법의 흐름을 주시하니
그래서 그 순환의 이치를 꿰뚫으니
아~ 거기 님이 계시고,거기 해탈이 있도다.
그걸남!
그도 입에 거이줄은 칠수없어 낮잠을 포기하고 나왔다
사업라하고 비즈니스라 한다.
방구석에 누운듯,죽은 듯 한 것보다 열배는 기특하다
장애자든,노동이 하기 싫든
'움직여 자기생명을 구제'하니 중생이자 부처다.
그의 무기력과 방일을 탓할 수도 있으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래서 무력의 울타리
를 넘어 '대중속으로' 뛰어든 그의 뜻은 갸륵하다.
누구나 처절한 고통과 무기력의 시기가 있다
작금 21세기는 도처의 무수한 대중이 오가나
진정 자기고독,자기번민은 깊어만 간다
그래도 그 대중속으로 잠입해 '움직여 보고 듣고
거들고 깨우쳐' 생동감을 보여주니,곧 '주체적 자아'가
된다.다시 말해 수많은 중생,그 대중들의 행태속에
나의 시각과 안목,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가르침이 있으니,일과 공부,삶과 예술이 대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우리 님께서 '대중속에서 꽃피우라'
는 말씀이니 곧 화엄경이다.
드넓은 허공의 자유 따로 있고
나무다리위 구걸의 속박이 따로 있다고?
님과 님 곧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서 앉은 자리 그대로 축복이요,선자리 그대로 해탈이라 하셨으니
곧 수처작주 입처개진의 뜻이다.
다시 말해 어느 누가 있어 나를 결박할 수 없고
밖의 일체 환경이 나를 구속할 수 없으니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한 뜻은
유식이요,일체 만법이 유심소조에 있다 할 것이다.
맑은 허공에 어찌 선악을 개념을 부여하랴
다위위 구걸남에 어찌 정사(바름과 삿됨)를 논하랴
밖을 보아 안으로 되새기는 부처님의 가르침
장마철에 그 막간 햇뼏의 시간을 이용해 자기생존을
치열하게(?) 꾸려가듯,우리 비록 현실에서
힘들고 고통스럽고,때로는 인간수난의 시공속에서도
님의 고행을 숙지하며 막간에서 이는 부처님의
놀라운 공덕과 가피를 깨달아야 한다.
님이 나투신 뜻은 님의 정진과 해탈법을 비추어 보라는
뜻이요, 흉내내다 원숙해지듯
불보살님을 흉내내다 아라한과를 거쳐
대승보살의 경계로 진입할수 있는 바다.
드맑은 허공이 있고,그 아래 나무다리위에 구걸이 있다
불기 2568.7.23 낮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