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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Gerard Ρique
^^ 안녕하세요 피케입니다.
오늘로써 긴글이라면 나름대로의 긴글 유형의 " 글 " 을
좋은 자료를 토대로 솔직 담백하게 두번째로 적어보는 시간을 갖어보겠습니다.
다소 글이 좀 길어지고, 지루해지거나 혹 , 오타가있을지어도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오늘의 주제 :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가 겪고잇는 세월속의 변화 & 딜레마 입니다.
★ UEFA 챔피언스리그 About ★
유럽 최고의 클럽 대항전은 1955년 3월 2일 비엔나에서 유럽축구연맹의 첫 회의가 열리고 한달 뒤에 시작됐지만, 흥미롭게도 소위 "유러피언 컵" 창설의 주체는 UEFA가 아니었다.
창시자는 프랑스인
유럽축구연맹 창립 당시 회원국들은 국가 대표팀간의 대항전에 더 큰 관심을 보였던 반면,
프랑스의 스포츠 일간지 '레퀴프'와 당시 편집자였던 가브리엘 아노는 ,
유럽 전역을 망라한 클럽 대항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아노는 동료인 자크 페랑과 함께 수요일 야간경기로 치러지는 토너먼트를 기획했다.
변화하는 대회
이 대회의 형식상 가장 큰 전환점은 1992/93 시즌이었다. 이전 시즌 시범적으로 조별 라운드가
도입된 뒤 조별 라운드와 전통적인 토너먼트를 혼합한 방식의 UEFA 챔피언스 리그가 정식 출범했다.
조별 라운드가 도입되면서 참가 팀 수도 8팀에서 32팀으로 늘어났고 ,
유럽 전역에서 화요일과 수요일에 경기가 열리게 됐다.
지속적인 진화
1992/93 시즌에 출범한 챔피언스 리그는 라운드-로빈 방식의 조별 라운드와 전통적인 토너먼트 방식을 혼합하는 형식으로 계속 발전해 왔다. 현행 방식은 2003/04 시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세 차례의 예선 라운드 이후 32개 팀이 본선 조별 라운드(4개 팀씩 8개 조)를 거치는 새로운 방식이다. 각 조의 1위와 2위 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며,
각 조의 3위 8개 팀은 UEFA 컵 3 라운드 진출권을 얻고, 4위에 그친 8개 팀은 탈락하게 된다.
결선 토너먼트
16강에 오른 클럽들은 대진 추첨을 거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각각 2차례의 경기를 치르게 되며,
2경기 결과를 합산해 더 많은 골을 넣은 클럽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양팀이 기록한 골 수가 같을 경우, 원정 경기 득점 수가 많은 팀이 진출권을 얻게 된다.
승부차기
원정득점 원칙으로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으면 2차전이 끝나고 전후반 15분씩 연장전을 치르게 된다. 연장전에서 양 팀의 득점 수가 같을 경우 원정팀의 득점이 2배로 계산된다. (즉, 원정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 연장전에서 골이 나오지 않으면 승부차기로 승자를 가린다. 결선 토너먼트를 통과한 2팀은 5월에 열리는 결승전에서 단판 승부로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대회 방식 변경
유럽 챔피언 클럽스 컵은 1992/93 시즌 챔피언스리그 시작과 함께 방식이 바뀔 때까지 순수한 토너먼트 형식의 대회였다. 그 해 대회에서는 3차례에 걸친 토너먼트를 통과한 팀들이 조별 리그에 진출해 4팀씩 2개 조로 나뉘어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고,
각 조 1위 팀들이 결승전을 치렀다. 그 다음 시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으나
각 조 1, 2위 팀들이 2차전에 걸친 준결승을 치르고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대회규모 확대
1994/95 시즌부터 대회 규모가 커져 1차 예선 라운드를 거친 클럽들이 4팀씩 4개 조에 편성됐다. 이로써 각 조의 1, 2위 팀들이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1997/98 시즌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2차 예선 라운드를 거친 24개 팀들이 4팀씩 6개 조에 편성됐다. 각 조 1위 6개 팀과 2위 중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2개 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됐다.
라운드 추가
1999/2000 시즌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는데, 1차례 더 늘어난 예선 라운드를 통과한 32강이
4팀씩 8개 조로 나눠져 각각 6경기를 치른 뒤 각 조 1, 2위를 차지한 16강이 2차 조별 라운드에
진출하며 3위에 오른 8 팀은 UEFA컵 3라운드에 진출했다.
2차 조별 라운드가 끝나고 남은 8팀이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됐다.
관련자료: http://kr.uefa.com/competitions/ucl/history/index.html
★ UEFA 컵 ★
1955년 국제 박람회가 열리는 도시의 클럽간 경쟁으로부터 유래하여
' 페어스컵(Inter-Cities Fairs Cup)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며,
1971~72 시즌부터 ' UEFA컵 '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대회 통합
1999/2000 시즌부터 UEFA 컵 위너스 컵이 폐지되면서 자국 컵대회 우승팀들도 UEFA 컵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게다가 UEFA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 라운드에서 탈락한 클럽들과
조별 라운드에서 3위를 차지한 8개 팀들에게도 UEFA 컵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UEFA컵에는 페어 플레이 리그 상위권 3팀과 UEFA 인터토토 컵에서 우승한 3팀,
그리고 특정 국가의 리그 컵 우승팀들도 참가하게 됐다.
2004/05 시즌에는 사상 최초로 조별 라운드가 도입됐다.
베르토니가 디자인한 트로피
황색 대리석 받침 위에 놓인 15킬로그램짜리 은제 트로피는
1972년 결승전을 위해 밀라노의 베르토니 보석상에서 설계 제작됐으며 2만3천 유로의 비용이 들었다. UEFA 컵에는 손잡이가 없지만 그 아름다움은 바로 단순함에 있다.
대리석 받침 바로 위에는 공을 다투는 것처럼 보이는 선수들이 새겨져 있다.
실제로 그 선수들은 UEFA 로고로 장식돼 있는 8각형의 우승컵을 떠받치고 있다.
UEFA 컵은 스위스의 에른스트 톰멘, 이탈리아의 오토리노 바라지
(두 사람 모두 나중에 FIFA 부회장을 역임), 그리고 나중에 FIFA 회장이 된 잉글랜드의
스탠리 루스가 무역 박람회가 자주 열리는 도시 대표팀들의한 대회였다.
전신
유러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이 창설된 지 2주 만인 1955년 4월 18일 UEFA 컵의 전신인 인터-시티즈 페어스 컵이 탄생했다. 제1회 페어스 컵에는 바르셀로나, 바젤, 버밍햄, 코펜하겐, 프랑크푸르트, 로잔, 라이프치히, 런던, 밀라노, 자그레브 등지의 팀들이 참가했다. 제1회 대회는 무역 박람회 일정과 맞추기 위해 3년 동안 진행됐다. FC 바르셀로나 선수들로만 구성된 바르셀로나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런던 대표팀을 합계 8-2로 꺾고 첫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클럽의 참여
2차 대회를 앞두고 조직위원회는 클럽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으나 참가 팀은 여전히 무역 박람회 개최도시 출신 클럽이어야 했다.
16개 클럽이 참가한 1958-60 시즌 이후 이 대회는 매년 열리게 됐다.
1962년에는 참가팀이 32팀으로 늘어났고, 오늘날에는 참가팀 수가 100팀을 넘어섰다.
초창기에는 남유럽 팀들이 페어스 컵을 싹쓸이했고, 바르셀로나가 3회,
발렌시아가 2회 우승을 각각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68년에는 리즈 유나이티드가 북유럽 클럽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이후 6년 동안 잉글랜드 클럽들이 우승을 독차지했다.
명칭 변경
그 중 5번째 클럽은1971/72 시즌 'UEFA 컵'으로 개칭한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한
토트넘 호츠퍼였다. 당시 개칭은 무역 박람회와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졌음을 의미했고, 그 이후로 UEFA가 독자적으로 대회를 운영하게 됐다.
1970년대에는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등지의 팀들이
잉글랜드 클럽들과 겨루기 시작했다. 북유럽의 전성기였던 1968년과 1984년 사이에는
유벤투스(1977년)가 남유럽 팀으로서는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관련자료 – 토탈싸커 ‘ 서형욱 ’
우리는 현재를살고있습니다.
Or 동시에 현재 세계최고의 클럽대항전은 분명 " UEFA 챔피언스리그 " 이겠죠
우리같은 " 팬 " 들은 그져 현재 눈앞에 볼수있고 , 또 감동을받을수있는 ,
유럽 챔피언스리그 라는 훌륭한 클럽대항전이 있기에 행복할지도모르겠습니다.
(물론, UEFA컵도 하락했어도 여전히 팬들에겐 지지받는대회라는점엔 변함없겠죠)
첫댓글 차붐~ 한국 스포츠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단순히 98월드컵의 조기경질된 감독으로만 비쳐질까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