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그 남자의 손☆]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 ============
[◎그 남자의 손◎]
최도선 시집 / 시와문화시집 38 / 도서출판 시와문화(2019.08.25) / 값 10,000원
================= =================
그 남자의 손
뭉툭하고 단단한 거북이 등짝 닮은 그 남자가 손을 쑥 내밀며
노동이 만든 작품입니다 악수를 청한다
더깽이진 삶을 다듬어 온 손
마디만 굵어지고 손 길이는 자라지 않았다는
뱃사람으로 살아온 지 50년
열 살부터 어른들을 따라 배를 탔다는 그
뱃길은 물론 파도도 다스릴 수 있다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 손이 파르르 떨고 있다
파도가 높이 차올라 배를 삼키려고 들이치면
뱃머리에 앉아 파도의 등허리를 애무하며 물러서지 않았다는
바다는 애인이었고 아내였기에
두려움 없는 사랑이었다는
새벽에 풀풀 살아 푸덕거리는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 올릴 때 손맛은
여인의 허리를 끌어안는 맛 이상이라며
볼을 붉히는 그가
소원이 있단다
자기를 쓰고 싶은데
가는 연필이 잡아지지 않아
대필을 부탁한다
손 끝에 갈매기도 앉아 쉬어갈 것만 같은
그 남자, 포세이돈의 손
질문
나무가 사람이 된다면
그가 뿜어낸 냄새는 어떨까?
사람이 나무가 된다면
그 나무는 어떤 향기 풍길까?
태산목 흰 꽃잎 따 물고 느릿느릿
산길을 내려오며 떠올린 생각
사람이 나무가 된들 사람 냄새지
땅에게 물었다
나 죽은 몸 아닌
살아 있는 몸
심을 수 있느냐고
나무처럼
마두금
내 안에 슬픈 머리 하나 뒹굴고 있다
언제부턴가 태초의 울음이
무성한 자작나무 숲 사이로
재앵 제엥 바람을 타고 와
허공을 난다
모래바람은 때 없이 각을 세우고
밤마다 쏟아지는 별
대평원 말발굽 소리
두 줄 현을 통해 서방으로 동방으로
두근두근 떠다니며
낙타도 울게 하는
모성의 소리
평원의 공기를 가르고 울면
먼 옛날 이 땅의 사람들 지구 끝을 향해 달리던
그 혼 살아나 절벽을 오르는 힘 솟구쳤다
엎드린 자는 넘어지지 않는다
갈기를 휘날리며 번지는 초원의 젖줄 소리
애틋한 부적 같은 흥
몸통 안에 가득 차
춤추고 춤춘다
애가 닳도록
귀로 보는 단풍
권금성에서 봉화대를 향해 오르는 등산길
산 위에서 꿱꿱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새소리에
앞서가던 청년이
어무이 단풍 잘 보입니꺼?
하모 단풍 참 곱데이
어무이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저 새소리에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고 있는 거 아입니꺼, 참말로 붉습니다
하, 그래야?
왼손은 아들의 손을 잡고 오른 손은 지팡이를 쥔 어머니
허리를 쭉 펴며 뒤돌아보는데 그 어머니
선글라스가 아닌 검정 안경을 끼고
단풍을 귀로 보며 걷고 있다
시각 유희
이른 아침 테라스 난간에 잿빛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햇살을 받자 새의 긴 그림자가 거실에 들어왔다
차츰 해의 이동에 따라 하얀 그림자가 검은색으로 보인다
조심스레 창밖의 새를 보고 있노라니 이제는
새의 털이 푸른빛으로 보인다
조금 뒤엔 햇살 따라 보랏빛으로 보이다
날아갈 땐 은빛 날개 눈부시다
저 새의 진짜 색은 무슨 색이었을까?
눈으로 본 게 아닌 내 마음 안에 알록달록 있었나?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색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그 색깔을 정한 것이다
새 떠난 자리에 아직도 어른거리는
푸른, 보라, 은빛
내일을 세상이 무슨 색으로 보일까?
꽝꽝나무
본처와 첩 사이가 저리도 살가올까 꼭 평양 나막신 같네
누가 아니라우 죽 한 그릇도 나눠 먹습니다
그야 작은처가 곰배팔이로 품 팔아 거둬오니 그럴 수밖에
큰처가 작은처 빨래는 도맡아 한답니다
그래도 한 서방 품에서 둘 사이가 저리 다정히 살기 쉽지 않지
세상 참 모를 일이네
서방 떠나던 날 가을비 추적추적 내려 한기가 무릎으로 숭숭 든다고 땔나무 없어 생울타리 베어 아궁이에 넣었더니 부엌 천정이 울리도록 꽝꽝거려 그 서방 꽝꽝이 나무 밟고 저승길 간다고들 했지, 백구두에 흙 묻을까봐 죽어서도 나무 등 밟고 뒷짐지고 떠났을 거라고
대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본래 타고난 이름은 없다
누군가 불러줄 때 태어나는 이름
꽝꽝나무의 본뜻은 무엇이었을까
서방 보내고 살동서 간에 꽝꽝거리며 살라고
그날 저녁 그리 꽝꽝거렸을까
제주 산굼부리 오르는 길 생나무 벽을 이룬 꽝꽝나무
까만 열매가 단단히 여물어 있다
시詩
지하도를 막 내려서려는데
시각장애인이 길을 묻는다
손을 잡고 안내하려니
그냥 말로 하라고 한다
막막해서 우투커니 서 있었다
꼬리연
1.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나갈 때
여름방학에 일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침나절, 우아스런 남자가 남녀 두 아이의 멱살을
잡아끌고 들어와 내 앞에 확 풀어 놓는다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붉어진 아이들
맥없이 바닥에 엎어져 문어처럼 찰딱 달라붙어 우는지 웃는지
두 아이 서로 쳐다보고 키득거린다
남자의 입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쏟아졌다
내가 이 학교 1회 졸업생이다 저 아이들이 교문에 앉아
담배 피우는 것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학교가 뭐하는 것이냐
2
아이 둘은 밭 가운데 허물어진 비닐하우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다
컵라면 용기들이 굴러다니고
구원의 빛이 달빛을 가리는 방
웅크린 아이들 옆구리에서 늑대의 울음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이 불결한 지상의 수태들
3
꼬리연, 너 이 지상에서 무슨 완전한 것을 보았느냐?
얇은 종이에 긴 꼬리를 달아 너를 떠나보내며 소원을 빌지만
아이들 이빨에 밴 니코틴 사이로 비웃음만 새어 나올 뿐
가출한 엄마의 속옷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와
매일 술 취해 모두를 때려 부수는 아빠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지 묻는
눈썹 짙은 아이의 창백한 얼굴 어쩌지 못해
내 안에 자리한 울음주머니를 떼어내려다 말고
꼬리를 흔들며 날아가는 꼬리연을 바라만 보고 있다
떠도는 바람
인류의 이동, 10만 년 전 사하라 남부를 떠나
유럽, 아시아를 거쳐 호주로 온 건 5만 년 전
아메리카까지 가는 데 3만 5,000년이 흘렀다
그로부터 뉴질랜드에 도착한 건 1,200년 전이라는
보고서를 보며 아득한 곳에 내가 서 있다
이주자들
떠나야만 하는 이유들을 등에 업고
길을 헤매며 길로 나서서 별들이 정박하는 곳에
뜻도 없이 짐을 풀었을 인류들
‘영원한 내 집은 없다’는 명제 아래
나도 짐을 꾸려야 하는 가을이 왔다
장롱 속 깊이 간직해온 챙이 둥근 나비 문양 모자를 쓰고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리라 낯선 허공을 향해
방랑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의식의 제례 행사
가을이 가기 전 짐을 꾸렸다
곤충도 짐승도 겨울 채비에 들었다
민들레 둥근 씨앗 무리가 둥실둥실 신셰계를 향해 날아간 것처럼
유목민의 후예가 아닌 내가 짐을 꾸리며
수단의 난민들을 떠올린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어둠을 타고 유럽의 육지로 오르다 바다에 수장된 이들을
새로운 행로의 이주자들에게
꽃병을 건네주는 기쁨도 있다
어느 나라에서 건너왔는지 모르는 개망초 꽃이
황폐한 들판에 들어앉은 꽃다발
생은 떠나는 자들의 몫
떠도는 바람
새로운 길 떠나는 이주자들이여 모두 안녕하기를
서어나무
가지와 잎들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서쪽에 별이 뜨는 순간을
서어나무는 삶의 동력이라 부른다
음지에서도 별이 되려는 뿌리를 가진 나무
음수陰樹라는 이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은 끝까지 살아남는 일
아픔은 어느 때나 온다
누구도 모르게
삶의 근육을 키우는 일밖에는
어떤 예감도 받아들일 수 없다
뼛속으로 드는 겨울바람
동서남북 액운이 번진다 해도
음지에서 잔뼈가 굵어
나를 견딜 수 있다
낮은 곳을 서야 높은 곳을 향한다는
아름다운 말이 가지마다 새겨지고 있다
서쪽을 향해
잠든 방을 깨우다
-키질쿰 사막
사막을 횡단하는 길엔
속살 드러낸 사막처럼
엉덩이를 누가 본다 해도
볼일을 봐야만 한다
뜨끈한 것에 놀란 모래 꿈틀거려도
지린내 풍기며 튀어 오르는 미물들 피할 수 없어도
모래 바람이 훌렁 옷을 들출 때는 잡아 내리며
모래 밑의 잠을 깨운다
쭈그리고 앉아
사막아
그냥 소리쳐 부르면서
네가 태초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냐
네가 빛이냐
사막아
I say! 하는 동안
내가 쏟은 한 줌 방울로도
사막의 신부를 키워 주렴
*키질쿰 사막에 피어 있는 분홍색 꽃에게 ‘사막의 신부’라는 이름을 붙였음
물소리
아파트 어귀, 부실한 나무에 연분홍 꽃이 만발하게 피었다
여기 나무가 있었어?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던진다
꽃이 피고 나서야 눈에 띈 나무
지난 새벽 화장실에서 졸졸 흐르다 뚝뚝 끊기는 물소리
가슴에 서늘하게 한기 들었다
한창 때 폭포수 소리처럼 격했던 소리가!
저 물소리는 작은 골짜기 메말라가고 있음이다
한 이불 속에 잠들면서 그가 시들고 있는 것을 몰랐다
그는 늘 환한 등불이라 어둠이 깃들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부실한 나무는 환하게 꽃 피웠는데
그대는 시들어가고 있네
걱정마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픽픽거려도
꽃 피어 환한 날
마른 골짜기로 水의 神 물길 끌어올려
새롭게 힘찬 물소리 들려줄게
울트라마린 블루까진 나도 원치 않을게
말씀
가도 가도 불볕, 이글거리는 길을 하루를 달려도 보이는 건 붉은 사막. 모래가 태양을 태우고 있다 여기는 고비 사막, 사막을 지나 끝없이 펼쳐진 초원. 하늘이 구름바다를 이루고 있다 저기 저 구름 기둥. 그 그늘 아래 염소와 양떼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날 밤 게르에서 추위에 떠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에야 잠시 잠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나를 감싸고 있는 듯 따스하게 스몄다
새벽을 가르며 들려오는 늑대의 늙은 울음,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자란 저 짐승이 내 등을 오싹 훑는다
내가 너를 보호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애초에 하늘과 땅 사이에 드러난 저 환한 말
보고 나서야 믿는 버릇
꽃의 눈물
꽃에도 눈물이 있다
남을 원망할 줄 몰라서 있다
남을 비방할 줄 몰라서 있다
그의 입술이
그의 눈이
부드러워서 있다
저 자신을 때릴 때 흘리고
저의 테두리가 아프고 아플 때 흘린다
어느 날 뒤꼍에서 눈물을 닦으시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다
별도 내려와 채송화 꽃잎에
젖고 있다
가을 강가
조금은 여윈 듯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반짝이는 가을 강가에 가보라
흔들리는 갈대와
갈바람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리니
언덕을 기어오르던 메꽃 잡풀
그 언덕 언저리에 다 부서지고 흩어져
유리알보다 더 맑은 허공에
무겁게 끌고 온 무게들을
가만 내려놓고 떠난다
눈썹 위에 욕망도
가슴에 꽂힌 아픈 상처도
네 발목에 묶인 끈도 풀어 던지고
속이 풀릴 때까지 그 강물에 띄워 보래보라
물 아래 반짝이는 모래가
얼마나 오랜 세월 부대끼며
제 살을 깎아왔는지
물살만 보아도
눈물이 고이는
가을 강에 가서 보라
눈이 부신
강가에
사진 한 장
30년이 지났지만
가슴속 사진 여전하다
눈 속에 무릎까지 빠지며 40리 길을
자전거 타고 오다 길에 부리고 왔다던 날 저녁
우리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어두워져만 가고
연탄난로 위에 물 끓는 주전자 뚜껑 소리만 달그락거렸다
어둠 짙은 좁은 방에서의 약속이
아직도 옥죄어 오지만
길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렇게 그를 눈 속에 돌려보내곤
젖은 바닥에 달라붙은 낙엽처럼
끝내 떨어지지 않고 앙상한 미라가 되어
한쪽 가슴에 여전이 달라붙어 있다
최초의 미소가 그늘이 되어
아직도 통증으로 도져오는
가슴으로 피는 사진 한 장
당신과 나의
따뜻하고 아픈 꽃
간절懇切
장군 칼과 오방기는 없지만
머리를 단정히 하고
시퍼런 작두날 위에 내가 섰다
시는 신이 준다는 말 아니라도
정신의 칼날 위에 서면
심장에 서리는 글귀 하나 얻을까
하미를 입에 문 삯꾼들아
새벽이 올 때까지 참아다오
신령스런 시구 한마디가 새벽을 타고 온단다
정화수 한 사발 떠다 작두날 위에 뿌려다오
맨발로 작두를 타듯
작두를 타듯 시를 만나면
신령스런 언어가 아니라도
조용한 말 가슴 곁에
툭
와 닿는다면
작두날 지긋이 눌러 타고
모든 액을 털어버리리
최도선 설화
이름이 같은 최도선을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그가 가져다 놓았다는 와불을 보니 그를 본 듯 더 반가웠다
천불산 와불 부부
도선 국사가 세상이 바르지 못함을 개탄하여 부처를 눕혀 놓았다는데
이 미륵이 일어나야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데
아직도 저리 꼼짝 않고 누워만 있네
비를 맞으며 눈을 맞으며 누워 있는 돌부처 부부
나른한 햇살 은은히 내리쬐는 돌부처 언저리에 앉아
벌떡 일어나시라고 돌 끝에 손을 가만 얹네
향기로 침묵하다
-빅토리아 수련
단 사흘
밤으로만 찾아드네
그가 보내온 향을 좇아
발을 옮기네
하루는 한 여자로 하얗게
또 하루는 한 남자로 붉게
그 다음 남은 날을 한 몸을 이루며
세상 향해 살포시 보랏빛을 내비친 후
물 아래 드는 그를 보네
사흘 잠든 그를 보네
이제 나는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네
그가 사흘간 꽃피우기 위해 삼백예순 날 달빛을 읽어왔듯
나 그를 읽어가네 그의 향기 머금으며
강설이 그의 연못을 다 점령한다 해도
나 마음 가라앉히고 침묵해야만 하네
설레는 가슴도 바람에게 잎새에게 부딪지 말아야 하네
아, 나 그렇게 소요하며
그 향기 내 발치에 다시 닿을 때까지
소리 없이 두근거려야 하네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네
단 사흘
애도의 저녁
삶이란 죽음이 있기에 아름답다
민들레가 그렇고, 명아주가 그렇고
망초꽃이 그렇고, 제비꽃도 그렇다
현재는 미래에 존재하고
미래는 과거를 기억한다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모든 것은 기억될 게 없다
저 꽃들 그 시절에 피고 지니
그대 마음속에 내 맘속에
영원의 꽃이다
하루살이
넘어가는 햇살 받아 반짝거리며
산책로를 어지럽히는 건
어둠이 오기 전
최후의 환희
노을을 끌어안는 이 시간
性, 女
1
꽃이냐?
쾌락의 도구로 보지 마시길
고결한 성을
2
돌로 쳐라!
왜 여자라는 이름에게만
돌을 던집니까?
내 남편은 다섯이었습니다
누구든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3
女子야, 혹여 오늘 밤도 어느 골목길에서 샌들 끈 풀어진 채
억센 손아귀에 질질 끌려가 곤욕을 당하고 있지는 않더냐
숨까지 끊어놓지 않더냐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4
룸(menarche)로 시작해서 몸으로 끝나는
최초의 죄인
그런 나와 너 아직도
얼굴을 세상 쪽으로만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聖을 지닌 女性들이여
.♣.
=================
■ 시인의 말
식물들도 빛 한 줄기, 물 한 방울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주황색 원주리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장미장마가 들고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이 꽃들이 다 지고 마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아왔다.
빗속에서도 빛나게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었다.
2019년 8월
草月軒에서 최도선
.♣.
=============== == = == ===============
최도선 詩集 [※그 남자의 손※]
[ 해설 ] -
대지의 상상력 혹은 사막의 신부
― 최도선 시집 「그 남자의 손」 읽기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Ⅰ.
최도선의 시선은 늘 아래를 향해 있다. 약한 것들, 버려진 것들, 상처받은 것들은 모두 세계의 바닥에 있다. 대지는 이렇게 버려진 것들의 마지막 거처이다. 최도선의 정동(affect)은 주로 바닥을 향해 있으며, 스스로 대지가 되어 약한 것들, 상처받은 것들을 품는다.
땅에게 물었다
나 죽은 몸 아닌
살아 있는 몸
심을 수 있느냐고
나무처럼
-「질문」 일부
시집 첫 작품이기도 한 위의 시는 세계의 바닥을 지향하는 최도선 시인의 무의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거의 항상,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지향한다. 그는 나무처럼 ‘땅’에 심기기를 원한다. ‘땅’은 ‘대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살아 있는 몸’으로 대지에 스며들기를 갈망한다. 대지는 경계가 없는 공간이며, 모든 것을 품는 공간이다. 대지는 약한 것들이 추락하는 공간이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종말을 맞이하는 장소이다. 최도선이 대지로 스며 대지가 되기 원하는 것은, 그 무無경계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품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최도선의 사랑은, 연애는, ‘대지 같은 어머니’의 그것이다. 흔히 ‘모성애’로 표현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정확히 최도선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다. ‘모성(maternity)’과 ‘모성애(maternal love)’는 다르다, 모성이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된 여성성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여성을 가부장제의 울타리에 가두는 알리바이로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면, 모성애는 좁게는 가족, 넓게는 세상의 모든 약한 것들을 품는 사랑의 독특한 형식이다. 최도선 시인은 거의 생득적으로 부족한 것들, 버려진 것들에게 끌린다.
세상 버리고 싶어 하는 남자
절망의 늪 헤매는 남자들의
스산한 소리 귓가를 스칠 때마다
그의 늑골에 가만 손 넣고
바람벽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
함께 듣는 밤이고 싶네
-「내 남자」 부분
최도선에게 있어서 남성은 여성과 (대체로) 대립각을 이루지 않는다. 그가 남성에게서 읽어내는 것은 가부장의 기계가 아니라, 젠더를 넘어 (만인이 공유하고 있는) 유한자有限者로서의 모습이다. 그에게 있어서 남성이 극복 혹은 저항의 대상이 아닌 이유는 그가 남성에게서 권력이 아니라 약하고 ‘부서진’ 모습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한 이불 속에 잠들면서 그가 시들고 있는 것을 몰랐다
그는 늘 환한 등불이라 어둠이 깃들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부실한 나무는 환하게 꽃 피웠는데
그대는 시들어가고 있네
걱정 마
(……)
꽃 피어 환한 날
마른 골짜기로 水의 神 물길 끌어 올려
새롭게 힘찬 물소리 들려줄게
-「물소리」 부분
안개꽃 안에서 눈짓을 하셨다
아버지는 호흡기를 빼달라는 시늉이었다
아직 밤은 멀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는 호흡을 건너 낙엽 같은 손을
내미셨다
겨우
내 얇은 체온을 덮어드렸다
-「저녁놀」 부분
첫 번째 시는 여성 화자가 남편을, 두 번째 시는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이다. 두 시 모두에서 남성들은 강자가 아니라 (여성 화자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이다. 그에게 있어서 남성은 가부장적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시들고 있는’ 존재들이다. 화자는 이런 약자들에게 ‘걱정 마’라고 말하거나 ‘체온을 덮어’ 준다.
Ⅱ.
가부장제/페미니즘/젠더 담론을 훌쩍 뛰어넘는 최도선의 이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물론 최도선이 여성으로서 가부장의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며칠 뒤 시어머니는 외출 후 돌아오지 않으셨다
길 잃고 집도 찾지 못하는 병
형제들 원망 소리 온 벽에 똥 문질러 놓은 것보다 악취가 더 심했다
내 머리채는 자주 잡혀나갔다
(……)
시어머니가 가신 뒤 치자나무가 시름시름 시들더니
끝내 잎이 다 지고 말라버렸다
어린양의 가시관을 닮은 치자나무가
-「비아 돌로로사」 부분
각주에 따르면 이 시의 제목 ‘비아 돌로로사’는 ‘십자가의 길, 즉 고통의 길이라는 라틴어’이다. 그는 가부장제와 직접 싸우기보다는 종교적 승화의 길을 택한다. 그 높고도 낮은 십자가에서 바라보면 고통의 모티브가 되었던 시어머니도 ‘시름시름 시들더니/끝내 잎이 다 지고 말라버’리는 존재에 불과하다. 앞에서 남편이나, 아버지를 바라보던 시각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시선이 이 시에도 개입된다. 그것은 온갖 권력과 폭력적 주체들의 ‘깨지고’, ‘나약한’ 부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런 시선은 사실상 종교적 승화의 개입이 없이는 나오기 힘들다. 최도선은 ‘아버지의 법칙(Father's Law)’과 직접 투쟁하기보다는 그것의 내면 혹은 속성에 존재하는 ‘허약함’, ‘망가짐’, ‘유약함’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오로지 모든 행복과 불행, 폭력과 평화, 정의와 부정不正의 기표들이 마침내 추락해 내려앉는 곳, 그리하여 위로받고 용서받고 고요해지는 공간, 즉 ‘대지’의 상상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도선 시인의 화자를 ‘세계의 애인’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젠더와 계급과 지위와 권력을 넘어 그 모든 약한 것들, 시들어가는 것들, 사랑과 보호를 갈구하는 것들의 어머니로서의 ‘세계의 애인’이다. 그리하여 이론의 차원에서 여성의 적일 수밖에 없는 모든 항목들조차도 최도선의 정동 앞에서는 무력한 피보호자가 된다.
모래바람은 때 없이 각을 세우고
밤마다 쏟아지는 별
대평원 말발굽 소리
두 줄 현을 통해 서방으로 동방으로
두근두근 떠다니며
낙타도 울게 하는
모성의 소리
(……)
갈기를 휘날리며 번지는 초원의 젖줄 소리
애틋한 부적 같은 흥
몸통 안에 가득 차
춤추고 춤춘다
-「마두금」 부분
몽골 악기 ‘마두금’을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보아, 이 시는 아마도 몽골 대평원을 여행 중에 시상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시에서도 우리는 ‘강함=남성성’의 도식이 ‘강함=여성성’으로 전도轉倒되는 것을 본다. ‘대평원 말발굽소리’, ‘갈기를 휘날리며’와 같은 표현들은 통상 남성성을 지칭하는 기호들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이런 표현들은 곧장 ‘모성의 소리’, ‘젖줄 소리’라는 여성성을 나타내는 기호들과 연결된다. 최도선의 내부는 이렇듯 남성성을 압도하는 여성성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몸통 안에 가득 차’있는 에너지는 ‘흥’으로 넘친다. 그에게 있어서 대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는 폭력적 남성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성의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Ⅲ.
최도선의 여성성은 이론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여성성에 대한 그의 모든 언급에는 잿빛 이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론 이전에 대지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며, 창세 이전부터 존재하는, 지상의 모든 생명들의 젖줄 같은 것이다. 내가 볼 때 최도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같은 생명성 안으로 들어가 있고 그것으로 충만해 있다. 그는 자신이 대지의 어머니라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않으면서, 의식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으면서, 이미 사랑의 어머니, 세계의 애인이 되어 있다. 이것이 그의 시의 넓은 ‘품’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길엔
속살 드러낸 사막처럼
엉덩이를 누가 본다 해도
볼일을 봐야만 한다
(……)
사막아
그냥 소리쳐 부르면서
네가 태초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냐
네가 빛이냐
사막아
(……)
내가 쏟은 한 줌 방울로도
사막의 신부를 키워 주렴
-「잠든 방을 깨우다-키질쿰사막」 부분
사막에서의 방뇨를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사막’은 모성이, 사랑의 에너지가 고갈된 공간이다. 에로스 제로의 공간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공간이고, 죽음의 공간을 지날 때 최도선 시의 무의식은 사랑의 요의尿意를 느낀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타는 듯한 갈증을 만나는 순간, 최도선의 사랑의 리비도는 저절로 터진다. 그것은 갈증의 공간을 사랑의 물길로 적시며, ‘사막의 신부’를 살려낸다.
최도선의 모성애가 태생적인 것이지만, 그리고 모든 아픈 것들, 약한 것들, 죽어가는 것들을 품는 것이지만, 그것은 초월자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은 유한자의 것이므로, 자동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픈 것들을 껴안으면서 함께 울고, 약한 것들을 품으면서 그것들의 ‘뒤꼍’에서 운다.
꽃에도 눈물이 있다
남을 원망할 줄 몰라서 있다
남을 비방할 줄 몰라서 있다
그의 입술이
그의 눈이
부드러워서 있다
저 자신을 때릴 때 흘리고
저의 테두리가 아프고 아플 때 흘린다
어느 날 뒤꼍에서 눈물을 닦으시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다
-「꽃의 눈물」 부분
말하자면 ‘꽃’은 ‘남을 원망할 줄 몰라서’, ‘남을 비방할 줄 몰라서’ 운다. 꽃의 눈과 입술은 각진 형상이 아니라 곡선의 ‘부드러’움이어서 슬프다. 꽃은 강한 것들과 싸우지 않고 ‘저 자신을 때’리기 때문에 아프다. 그리하여 ‘저의 테두리가 아프고 아플 때’ 운다. 이런 사랑을 무슨 이론으로, 논리로 치고 때리랴. 우는 꽃에게는 죄가 없다. 그것은 그 자체 사랑이므로 그것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런 사랑의 거대한 나무에 세상의 모든 아픈 것들, 어리석은 것들, 부족한 것들, 다친 것들이 깃든다. 거대한 나무는 상처로 가득하고 슬픔으로 자란다.
물 아래 반짝이는 모래가
얼마나 오랜 세월 부대끼며
제 살을 깎아왔는지
물살만 보아도
눈물이 고이는
가을 강에 가서 보라
눈이 부신
강가에
-「가을 강가」 부분
이 시를 보면 최도선 스타일의 사랑은 태생적인 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도선은 이론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의 역사는 표면적으로는 본인의 경험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최도선의 모성애는 칼 융(C. Jung)적 의미의 ‘집단적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에 맞닿아 있다. 그것은 먼 과거로부터 최도선에게 오래오래 이어져 내려온 모종의 본능, 무의식적 생명력이다. 따라서 최도선의 시를 구성하는 기호들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죽음의 반대편에 서서 유기체에게 생명의 정언명령을 끊임없이 부여해온 인류 공통의 원형, 신화, 상징들이다. 지상의 모든 미물들은 이 유구한 사랑의 젖줄에 매달려 생명을 유지해왔으며,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었고,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도선은 개인사를 넘어 집단적 무의식의 광대한 스펙트럼 가운데서 사랑의 유구한 힘과 접속했으며,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었고,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도선은 개인사를 넘어 집단적 무의식의 광대한 스펙트럼 가운데에서 사랑의 유구한 힘과 접속했으며, 그것을 삶의 동력, 시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이며 기호와 상징과 원형과 신화의 형태로 다시 인류 대대로 전달될 것이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한 말처럼, 모든 이론이 잿빛이라면, ‘푸르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황금나무’뿐이다. ‘생명의 황금 나무’는 이론을 넘어 논리를 넘어, 세상을 품는 힘이고,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호명할 수 없는 것이다. ‘제 살을 깎’아 아 사막의 현실에 ‘꽃의 눈물’을 뿌리는 것보다 더 숭고한 것이 어디 있으랴. 더구나 그런 행위가 신이 아닌 인간의 몸을 입은 정신에 의해 행해질 때, 우리는 그것을 테리 이글턴(T.Eagleton)을 따라 ‘숭고한 테러(holh terror)’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최도선의 시는 자신의 몸을 온갖 위험에 노출한 채 ‘광목 치마 속에’ 우리를 ‘품고’ 있는 ‘암탉’(「광목 우산」)같다. 그 안에 깃들어 위로받는 자들이 최도선 시의 독자들이다.★.
.♣.
=================
◆ 표4의 글 ◆
최도선의 시집 『그 남자의 손』은 직립의 의지로 생생한 식물성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전작인 『서른아홉 나연씨』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치지 않게 간수하려는 다짐의 자리였다면, 여기에 와서는 수목의 품성이 아로새겨지는 것만으로도 실존의 아득함에 다가서는 시인의 의지임을 읽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조차 말로 되살려내는 것이 인간의 시라면, 시인이 힘겹게 적어낸 풀, 꽃,나무 하나하나는 그렇게 마련된 풍속의 음영으로 생명의 존재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상의 시간은 무겁고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쁘고 경이로운 경험으로 벋어가기도 하는 자발적인 경계여서 애써 치장하지 않아도 아름답고 향기롭다. 시를 잃고 비유가 왜곡되는 현실에서 풀꽃 하나로 버티려는 의지는 ‘번외藩外의 꽃’처럼 아픈 신앙과도 같은 것. 시인이 애써 화려한 비유에 기대지 않으려는 까닭도 이런 현장감과 관련되리라.
-김명인. 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
=================
▶ 최도선 시인∥
∙ 1987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 1993년《현대시학》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 시집 『겨울기억』『서른 아홉 나연씨』
∙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상재
.♣.
================= =================
[책 소개]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으로 자유시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도선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급격한 속도로 달려가는 문명에 침윤되지 않는 가운데 꽃과 나무 등을 새롭게 들여다보아 자연 그만의 미적 자의식을 구현해가고 있다. 또한 오지나 사막 여행 등의 체험을 진득하게 추구함으로써 구각을 벗고 새로운 삶의 자세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물질적인 가치에 몰입되지 않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의 전신을 주제로 한 시편들은 새롭게 의미 있게 읽힌다. 또한 어려운 여성으로서의 삶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들을 만났을 때면 아낌없이 따스한 가슴과 넓은 치마폭을 내주는 코라적 여성상을 중심으로 한 시들도 상당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 『그 남자의 손』『귀로 보는 단풍』 등 74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
최도선 시인의
2019. 시와문화 작품상 수상작 詩 「꼬리연」
1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나갈 때
여름방학에 일직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침나절, 우악스런 남자가 남녀 두 아이의 멱살을
잡아끌고 들어와 내 앞에 확 풀어 놓는다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붉어진 아이들
맥없이 바닥에 엎어져 문어처럼 찰딱 달라붙어 우는 웃는지
두 아이 서로 쳐다보고 키득거린다
남자의 입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쏟아졌다
내가 이 학교 1회 졸업생이다 저 아이들이 교문에 앉아
담배 피우는 것을 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학교가 뭐하는 것이냐
2
아이 둘은 밭 가운데 허물어진 비닐하우스에서
아직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다
컵라면 용기들이 굴러다니고
구원의 빛이 달빛을 가리는 밤
웅크린 아이들 옆구리에서 늑대의 울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 불결한 지상의 수태들
3
꼬리연, 너 이 지상에서 무슨 완전한 것을 보았느냐
얉은 종이에 긴 꼬리를 달아 너를 떠나보내며 소원을 빌지만
아이들 이빨에 밴 니코틴 사이로 비웃음만 새어나올 뿐
가출한 엄마의 속옷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와
매일 술 취해 모두를 때려 부수는 아빠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지 묻는
눈썹 짙은 아이의 창백한 얼굴 어쩌지 못해
내 안에 자리한 울음주머니를 떼어내려다 말고
꼬리를 흔들며 날아가는 꼬리연을 바라만 보고 있다
.♣.
================= =================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제21번 마단조 K 304
Violin Sonata No21 E minor K.304 [Allegro]
*출처: 관악산의 추억(http://cafe.daum.net/e8853/MUEz/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