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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8일 화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한 사도는 서로 사랑하자며,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다(복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4-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4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하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런데 또한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면, 하느님과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신이 가진 것만을 줄 수 있는데, 하느님과 단절되면 줄 수 있는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불러,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내 힘으로 누군가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손을 거치니, 그것으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는 사랑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사랑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 안에 자신들이 참여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담을 기적의 재료를 제공하고, 또 그 기적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태양에서 오는 빛을 통과시켜 사람이 태양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선글라스의 역할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글라스는 그 자체로는 사랑도 빛도 아니지만, 그 사람이 태양을 볼 수 있게 하였다면, 빛을 전해 주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나와 세상으로 향하는 사랑의 물을 받아 전달해 주는 봉사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시들어 가던 제 마음이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지난 해 마지막 날,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를 진료 하던 중, 불의의 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난 임세원 교수님의 소식이, 오늘 우리 모두를 큰 충격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합니다. 세상을 떠난 임세원 교수님께서 더 이상 직무상 위험이나 스트레스, 고통이나 슬픔이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주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안전한 진료 환경을 보장해 드리지 못한 것이 두고 두고 마음을 안타깝게 만듭니다. 긴박한 상황 속에 다른 의료진들을 먼저 챙기다가 참변을 당하셨다는 것이 또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임세원 교수님의 환우 사랑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진료실을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자신의 것처럼 여겼습니다. 환우들이 겪는 깊은 고통과 외로움에 공감하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지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진료를 끝내고 나가는 환우들을 향해 90도로 인사하셨습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훌훌 털고 일어선 환우들의 감사 편지가 한 가득입니다. 살아생전 임세원 교수님께서 SNS에 올린 글을 통해 그분의 각별한 환우 사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임세원 교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그분의 가족들이 보인 모습 역시 우리를 크게 부끄럽게 합니다.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은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마음의 고통이 있는 분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이 깊어지거나, 낙인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셨습니다. 고인의 죽음이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정신 건강 의료진과 여러 의료진의 안전 확보의 이유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참으로 품격있고 성숙한 유가족들의 태도입니다. 임세원 교수님으로부터 장기간 진료를 받고 치유된 한 가족의 편지는 오늘 우리를 정말이지 크게 부끄럽게 만듭니다. “일주일 입원 기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지만, 선생님에게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였습니다. 운 좋게 귀중한 조언을 들어 감사했는데, 이렇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보내게 돼 통탄할 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들어 가던 제 마음이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은 ‘진정한 선생님’이었습니다. 말씀 잘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시들어 가던 제 마음이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사목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로부터 이런 편지 받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계속되는 첫번째 독서는 사랑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4장 7~8절) 오늘 우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외치는 사랑이 구체화되지 않고, 허공 중에 떠돌아다니는 메아리 같지는 않은지? 참 많이 부끄러운 하루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하느님의 유전자, 사랑
자녀가 부모를 닮지 않을 수 있을까요? 거부하고 싶어도 남들이 보면 반드시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닮았을 것입니다. 분명 유전자를 부모에게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우리들은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와 어떤 면이 닮았을까요?
박보영 목사님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었는데 그때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박보영 목사의 아버지가 예배를 드리는데 뒤에서 한 여인이 미니스커트에 빨간 립스틱에 긴 속눈썹을 붙인 한 여자가 껌을 쩍쩍 씹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치마가 무릎 위에만 올라와도 경찰들에 의해 제재를 받던 때였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몸을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의 은혜를 받았는지 집회 중 앞으로 나와 뒤집어져서 실신을 할 정도로 울더랍니다. 자신이 삶을 회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빚을 워낙 많이 졌기 때문에 그 다음날이면 계속 몸을 팔러 나가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매우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한 장로와 그의 아들이 그 여자가 매우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장로는 자신이 가진 땅을 팔아서 그 여자의 빚을 갚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박보영 목사의 아버지의 주례로 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녀가 자신을 구해 준 한 사람의 집에 시집을 왔습니다. 그 집에서 땅을 팔아서 여자의 빚을 갚아주면서까지 그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계속 이전의 모습을 하고 다녀야 할까요? 이전에 하던 행동을 계속 해야 할까요?
만약 이전의 삶을 계속 살아나간다면 그 집안에서도 계속 그 여인을 며느리로 인정하며 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장로의 집에서 이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면 그래서 그 집안의 딸로 인정했다면 그 자리에 합당한 삶을 살아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주어야만 그 집의 며느리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그 창녀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죄를 지으면 간음하는 것과 같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해주시기 위해 하느님은 땅을 파신 것이 아니라 당신 외아드님을 제물로 바쳐 그 피로 우리를 닦아주셔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창녀 짓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하느님께 큰 아픔을 드렸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죽음의 값으로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가 당연히 변화되어야만 합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성모님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그분들로부터 태어나서 그분들과 당연히 닮아야 하는 것이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본성이 사랑이신 분이라 사랑에게서 난 자녀 또한 그 본성인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그 안에 미움과 시기, 질투 등이 있다면 아직도 이전의 죄 속에 살면서 겉만 자녀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독일 본 대학의 마르틴 로이터(Martin Reuter) 박사는 COMT 유전자의 특정 변이형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자선을 베풀 가능성이 2배나 높다고 밝혔습니다. 대학생 100명으로부터 구강면봉으로 구강점막세포를 채취, DNA를 분석해 COMT 유전자의 두 변이형 중 COMT-Val 그룹이 COMT-Met 그룹에 비해 기부하는 돈이 2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랑도 분명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DNA를 통해 이타적인 마음까지 유전된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기면서 아무 유전자도 안 주실 수 없으십니다. 그분은 사랑 자체이신 ‘성령님’을 주십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맺히게 하는 열매가 바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자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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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세베리노 (Severinus)
신분 : 선교사 수도원장
활동지역 : 노리쿰(Noricum)
활동연도 : +482년
같은이름 : 세베리누스 쎄베리노 쎄베리누스
노리쿰(도나우 강 남부와 오스트리아 중부 및 바이에른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로마 시대 명칭)의 사도로 알려진 성 세베리누스(또는 세베리노)의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때 동방의 모처에서 수도자였음은 확실하다.
453년 이후 성 세베리누스는 오스트리아의 노리쿰에 정착했는데, 이곳은 이방인들의 본거지였다.
그는 도나우(Donau) 강을 따라 비엔(Vienne)에서부터 파사우(Passau)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파사우와 파비아네(Favianae)에 최초로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는 특히 훈족의 족장인 오도아케르(Odoacer)의 존경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후에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로 옮겨져 나폴리(Napoli)의 산 세베리노(San Severino)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가끔 대 환난 시기에 성인을 보내시어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를 삼고, 그의 표양과 행위로 인해 많은 이들을 멸망에서 구하시며, 영육간의 고민을 풀어 주시고, 그들의 신앙과 도덕을 보존케 하고 견고케 하려고 하시는 때가 있는데, 성 세베리노도 역시 이와 같이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중의 하나였다.
때는 5세기의 중엽 지금의 오스트리아 지방의 사방에서 야만족의 침입을 받고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있었을 때, 뜻밖에 천사와 같이 나타나 말과 행실로써 사람들에게 고행과 사랑을 권하고 또한 끊임없는 노력으로써, 오스트리아(당시의 노리쿰)를 야만족의 손에서 구해낸 것이 성 세베리노였다.
그러나 이 거룩한 사제가 어디서 탄생했는지, 또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언젠가 그것에 대해 누가 물으면 "하느님의 일꾼에게 고향이나 형통의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한 것은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위험한 교만 죄에도 떨어질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잘난 체하거낭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써 어떠한 선행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천국 사람중의 하나가 되력 하는 것 외에는 하등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고향같은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했다 한다.
다소 판명된 것은 그가 잠시 동양에 이주(移住)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세베리노는 엄격하고도 거룩한 생활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엄동설한에도 언제든지 맨발이었다.
음식은 하루종일 조금도 취하지 않을 때도 가끔 이었다. 그의 복장은 누추했고, 그의 조그마한 오막살이는 갈대와 진흙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 집에 있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기도와 보속과 자선을 가르치며 권면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하나 구하지 않았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자선을 청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사치생활을 하며, 죄악의 생활에 빠져 있는 부자들을 진심으로 회개하여 보속을 하라고 권했다.
어떤 때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는 하느님의 정의(正義)와 죄에 대한 무서움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언제든지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 세베리노에 대한 존경은 점차 높아져 이제는 그의 훈계에 반항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그는 곳곳에 그리스도교의 축복을 받게 하고 육신상의 자선 사업을 행했다.
어느 곳에 가든 병자를 낫게 하고, 가난한 이를 도와 주었다.
그는 누구에게든지 위로를 주는 사랑이 갚은 아버지였다.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었던가는 항상 여러 집에서 그를 모시려고 경쟁을 한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멈루고 있는 집은 내외의 원수들이 침입을 못하고 항상 평화가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강복을 받고, 또한 그의 기도로 병을 낫게 해 주기를 원하며, 먼데서 찾아오는 이도 많았다.
어느 날 12년간이나 고통으로 신음하며 전혀 수족을 쓰지 못하는 청년이 마차에 실려 어머니에게 부축 받으며 성인에게 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고 성인이 물으니까, 어머니는 제발 아들의 병을 낫게 해주기를 열심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경건한 세베리노는 이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나로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이는 다만 하느님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좋은 것을 가츠려 드리리다. 당신은 용기를 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불쌍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했다.
그 어머니는 마침 자선을 베풀 물건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저고리를 벗어서 그것을 성인에게 드렸다.
세베리노는 그의 갸륵한 심정을 보고서,
"그 옷은 입으십시오. 그 대신에 집에 돌아가거든 반드시 자선을 하십시오"라고 말한 다음 기도를 바치니 그 즉시 아들의 병은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작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나, 그의 기도에 대한 힘의 위대함을 표시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그는 482년 1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은 누구하나 이 성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