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담에 머문 바람
함양으로 향하는 길은 산이 먼저 여행자를 맞이했다. 여름빛을 머금은 숲은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고, 구름은 산등성이를 따라 천천히 흘렀다. ‘동호정’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자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이름만으로도 물과 정자가 함께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길 끝에서 만난 동호정은 생각보다 소박했고, 생각보다 깊었다. 정자는 화림동계곡의 맑은 물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화려한 단청은 세월을 입었고, 붉은 기둥은 오랜 비바람을 견디며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기둥 아래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 암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은 정자를 세웠지만, 자연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돌을 깎기보다 돌 위에 기둥을 세운 선조들의 마음이 먼저 보였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의병장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5년에 세운 정자라고 한다. 충절을 기리는 뜻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의 동호정은 역사만 간직한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잠시 삶을 내려놓게 하는 쉼터가 되어 있었다.
정자에 오르니 사방이 시원하게 열렸다. 아래로는 옥녀담이 잔잔하게 흐르고, 맞은편에는 거대한 너럭바위가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물이 다듬은 바위는 모서리가 둥글었고, 그 위를 흐르는 물은 서두르지 않았다. 햇살은 물 위에서 반짝였고, 바람은 소나무 숲을 지나 정자의 처마 끝을 흔들었다.
문득 왜 옛 선비들이 정자를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자는 풍경을 보기 위한 건물이 아니라 풍경 속에 자신을 내려놓기 위한 자리였다. 바람을 맞고, 물소리를 듣고, 구름이 흘러가는 속도를 바라보며 사람도 자연의 시간으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
화림동계곡에는 영가대와 금적암, 차일암이 남아 있다. 노래를 부르고, 거문고를 타고, 술잔을 나누며 시를 읊던 자리들이다. 자연은 무대가 되었고, 계곡물은 음악이 되었으며, 바람은 가장 훌륭한 벗이었다. 요즘 우리는 쉼도 계획한다. 여행도 시간표를 따라 움직인다. 사진을 찍고 다음 목적지로 서둘러 떠난다. 그러나 동호정에서는 이상하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자 난간에 기대어 있는 시간조차 아깝지 않았다.
계곡물은 쉼 없이 흘렀지만 조급하지 않았고, 소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제 뿌리를 잃지 않았다. 자연은 늘 움직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정자를 한 바퀴 돌아보다가 기둥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둥은 반듯하지 않았다. 세월을 견디며 조금씩 뒤틀리고 갈라졌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래 버텨 왔기에 아름다웠다. 정자 밖으로 나오니 한 그루 소나무가 몸을 기울인 채 동호정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쓰러질 듯하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곧게 서는 것만이 강인함은 아니라는 듯, 휘어진 몸으로도 하늘을 향해 푸른 잎을 키우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 너럭바위 위에 섰다. 바위는 넓었고, 물은 맑았다. 물속에는 하늘이 담겨 있었고, 흰 구름은 계곡에서도 천천히 흘러갔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 복잡했던 생각들도 물살을 따라 조금씩 멀어지는 듯했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동호정에서의 여행은 오래된 풍경 속에서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타며 하루를 보냈던 이유도 아름다운 경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연 앞에서는 사람도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동호정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둥은 여전히 바위를 딛고 서 있었고, 처마 끝에는 바람이 머물고 있었다. 계곡물은 천천히 흘러가고, 소나무는 묵묵히 그늘을 드리웠다. 그 풍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한 가지는 분명히 들려왔다. 인생은 높이 오르는 데 있지 않고, 잠시 멈추어 자연과 같은 속도로 살아 보는 데 있다는 것을. 동호정은 오늘도 옥녀담 곁에서 그 오래된 풍류를 조용히 이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