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조류(潮流)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의 물결에 합류해야 행복해진다. 그러나 전통과 습관에 길들어져 있어 쉽게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한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고 있지만, 버린 뒤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의심과 두려움 때문에 현실에 매달려 산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새 술은 발효성이 크므로 헌 부대에 담으면 터지고 만다. 또한 새 술은 담는 그릇이 다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포도주를 소주병에 담으면 되겠는가? 과거의 낡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여 새로운 것을 추구하라는 비유이다.
집안의 옷장이나 신발장에 옛것이 가득하다. 유행에 맞지 않아 그대로 있거나 버리는 것에 아쉬움이 있어 그대로 잠들어 있다.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새것을 사들이고 헌것을 버리지 않으니 가득할 수밖에 없으리라. 버릴 것은 버려야 새것을 얻을 수 있다. 생각과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준다.
시대가 급속으로 변하고 있다. 거기에 따라 인간의 삶도 달라져야 한다. 2024 프랑스 오픈 테니스가 막을 내렸다. 나달이나 조코비치가 만년 우승할 줄 알았는데 젊은 신예 알카라스가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으며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변화가 일어남이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시대사조가 급변하고 있다. 그 조류에 따라 삶의 길도 달라져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새 삶은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류에 동참하는 것이다. 낡은 것에 얽매이면 스스로 침잠하여 나락으로 떨어져 불행을 초래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 정치도 변해야 하고 학교 교육과 종교도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가 하면 학교 교육 변화가 시급하다. 오늘의 교육은 인성 교육은 뒤로 하고 지식 교육만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사고와 사건이 빈번하다.
종교는 어떠한가? 중세기에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면죄부를 주기도 했으며 병폐의 늪에 허덕였다. 지금도 곳곳에 썩어가는 곳이 있다. 그곳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변화의 시대에 걸맞게 갈 수 있다. 가장 으뜸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인데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새천년에 ‘새 복음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잠잠하다. 새 복음화는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로 새 시대에 부응하라는 것이다. 과거의 전통과 인습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에 맞게 새롭게 단장하라는 것이다.
지구촌은 종말의 시대를 부르짖고 있으며 완성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빠르게 변하는 사조에 편승하여 새로움에 따르는 것이다. 새로움은 과거의 관습이나 인습을 완전히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단장하여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