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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지덕(謙讓之德)
겸손하게 사양하는 미덕이라는 뜻으로,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덕을 말한다.
謙 : 겸손할 겸
讓 : 사양할 양
之 : 갈지
德 : 덕 덕
(유의어)
양례지주(讓禮之主)
겸손(謙遜)하고 사양(辭讓)하는 미덕(美德)으로, 항상 자신을 낮추고 타인에게 양보하는 심성을 지닌 예의바른 아름다운 덕성을 의미한다. 겸손(謙遜)은 다양한 행위 또는 다른 사람과 관련하여 자신을 낮추거나, 반대로 맥락에서 하나의 장소에 대한 명확한 관점과 존경을 갖는 자세로 볼 수 있다.
옛날에 총명하기로 유명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칭찬하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소년은 정말로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소년은 과거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감독관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답안지에 쓴 그 한자가 무슨 글자요?”소년은 가르쳐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그것도 모르면서 시험 감독을 한단 말이오? 내가 과거 시험에 급제하면 그 때 가르쳐 드리리다.”
시험관은 아무 말 없이 청년 곁을 지나갔습니다.시험 발표가 있는 날, 청년은 당연히 합격했을 것이라 믿고 명단을 보았지만 자신의 이름은 없었습니다.화가 난 청년은 시험 감독관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그러자 시험 감독관은 조용히 말하였습니다.“아무리 학식이 높다 해도 겸손하지 못하고 남을 감싸주는 덕이 없는데 어찌 나라의 일을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겠소?”청년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지식이 풍부하다고 하나, 겸손하지 않으면 요즘 세상은 냉혹하게 일명 시가지가 없다. 버르장머리가 없다. 재수없다. 피하고 싶다. 저게 사람이가? 등등 겸손하지 않으면 이러한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겸손은 그 사람의 됨됨이 즉 인격과 같은 의미로 표현됩니다. 흔히 '벼가 익으면 숙인다'고 하잖습니까. 모든 과실수나 열매를 맺는 식물은 숙인답니다. 자연에 이치인 것입니다.
겸손해 보십시오. 말 한마디에 천냥 빗을 갚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겸손하면 만냥 빗을 갚을 수 있으니 겸손하고 겸손하여 멋진 인생(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겸양(謙讓) 이상의 미덕은 없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이라는 어떤 이의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가난하여도 함께하면 외로운 줄 모르고
부자이여도 우쭐대면 홀로된 줄 모르고
글러보여도 어울리면 멀리할 수 어렵고
옳다하여도 설쳐대면 찡그림 만 부르고
어리석어도 겸허하면 깨우칠 수 있지만
시건방지면 천재라도 깨우칠 날 아득해
어떻습니까? 이 겸양지덕이라는 시가 시사(示唆)하는 바가 의미심장합니다. 논어(論語)에서도 늘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부달야자 질직이호의,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찰언이관색 여이하인.
대저 통달한다 하는 것은 질박하며 정직하고 의(義)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살피고 타인의 얼굴빛을 잘 관찰하여 항상 사려 깊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통달(通達)이란 바탕이 순수하고, 이치를 앞세우며, 상대의 이야기를 잘 가리고, 마음 가지를 잘 살피며,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원불교(圓佛敎)의 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종사님의 법어(法語) 원리편에 진급(進級)하는 사람과 강급(降級)하는 사람에 대한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진급하는 사람은 인자하고 겸손하고 근실하며, 공(空)한 마음으로 굴기(屈起) 하심하고, 경외심(敬畏心)으로 남을 공경하며, 덕화(德化)로써 상하를 두루 포용하고, 공부와 사업을 쉬지 않는 사람이며. 강급하는 사람은 성질이 거칠고 공경심이 없으며, 시기하고 질투하며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 하고, 학식 재산 권세 기술 등 한 가지라도 능함이라도 있으면 상(相)을 내고 자만자족(自慢自足)하는 사람이니라.
들길을 거닐 때 낮은 풀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향기의 말들이 풀잎처럼 자라나서 남에게 가슴 따듯하게 해주는 향기의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겸손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과의 만남은 영광입니다.' 이 말은 나를 낮추어도 당신을 우러러보는 아름다운 향기의 말이 아닌지요?
나의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산뜻해지듯 아름다운 향기의 말을 하면 듣는 사람도 자연스레 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나의 생각이 이기적이지 않은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남에게 겸손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탓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며, 삶의 향기 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그의 주변으로부터 황제등극(皇帝登極)을 권유받았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따른 8년 중임의 대통령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지요. 후임 대통령은 부통령으로 있던 아담스였습니다. 워싱턴이 퇴임한지 채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신대륙에 대한 이권을 노린 프랑스가 군대를 동원해 무력도발을 일으켰습니다.
아담스 대통령은 이런 위급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전략가는 워싱턴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여러 가지 의논 끝에 군사적 대응만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판단한 워싱턴은 즉석에서 토벌군 사령관의 직무를 수락했습니다. 이때 아담스 대통령은 워싱턴의 계급 문제로 고심했습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계급이 중장이기 때문이었지요.
이 뜻을 간파한 워싱턴은 특별예우를 사양하고 중장 계급을 달기로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역으로 복귀한 워싱턴은 프랑스군을 토벌해 미국의 국기(國基)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명예를 생명보다 중히 여기는 참군인의 자긍심과 겸양지덕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 아닌지요?
자긍심은 스스로 긍지를 느끼는 마음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참모총장 휘하에서 특수부대 지휘책임을 맡는다는 것,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려 있는 위급상황에서는 계급이나 직책 따위가 아무런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던 워싱턴, 그는 확실히 겸양지덕(謙讓之德)의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국민은 역사상 찬연히 빛나는 그의 업적과 겸양지덕의 인품을 기리기 위해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는 날, 그에게 4성 장군인 육군대장의 계급을 추서했다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선심을 쓰고도 욕을 먹습니다. 그러나 겸양하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겸양은 검(劍)보다 강합니다. 덕의 빛이 크나 겸양으로 덮지 아니하면 오래가지 않아 소멸됩니다.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양이 그 첫째 계단입니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지요.
겸양을 독일말로 Demut 즉 힘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겸양은 하늘나라에 보물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런 사람은 칭찬을 받았을 때가 아니고 꾸지람을 들었을 때 겸양함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겸양한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아니하며 또한 비판하는 소리도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군(魔軍)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겸양이요, 진리가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驕慢)입니다. 크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이 작은 마음이요. 겸손이 큰마음입니다. 사람이 교만하게 되는 것은 자기의 허물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좁고 더러운 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 눈 속의 들보를 깨닫고, 진리와 사람 앞에 겸양한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겸양 이상의 미덕은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높은 체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낮아지고, 항상 이기기로만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 겸양지덕을 길러 진정한 대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겸양지덕(謙讓之德)의 미덕을 갖자
남에게 머리를 숙일 줄 알고 양보도 할 줄 아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이라 한다. 자신의 인품을 절대로 남에게 자랑하지 않으며, 고집 또한 부리지 아니하는 마음은 겸손과 통하는 마음이다. 겸손한 태도는 자기 자신을 평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친근감과 마음이 서로 통하여 사랑의 씨앗을 싹트게 하는 귀중한 생활 덕목이다.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보다 조금 낮은 자리를 잡아라. 남으로부터 내려가라는 말을 듣느니보다 올라가라는 말을 듣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신은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고 스스로 겸손한 자를 반드시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린다는 내용이다.
우리 속담에 꽃도 열흘을 피지 못하고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말도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앞날이 길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겸손이라 함은 나의 인격과 남의 인격을 함께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덕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겸손하라는 의미로 삶의 지혜로운 단면을 나타낸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미덕을 의미한다. 이 말은 겸손하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높이는 일로서 우리 선비들이 실천한 겸손한 지혜의 선비사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유학을 숭상한 선비들은 겸손과 의연한 삶을 이상으로 여기며 실천하였다. 겸손과 의연함 속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살아 온 선조들의 삶 그 자체이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의연함은 자신을 견결하게 지켜나가는 삶의 자세와 실천이다. 겸손과 의연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인생의 덕목으로 실천한 선비 정신에서 우리가 이어받을 정신적인 자산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당신이 오늘 베푼 선행은 내일이면 사람들에게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행을 베풀라 했다. 마담 귀조는 겸손함은 반짝이는 빛이며, 겸손함은 정신이 지식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킨다고 했다. 공자(孔子)는 위대한 사람의 말은 겸손하지만, 행동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하였다.
남의 인격을 멸시하는 태도는 오만이라 하고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무시하는 태도를 비굴하다고 한다. 오만한 태도가 나쁜 만큼 비굴한 태도 또한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귀중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비굴해서도 아니 되며 겸손하지 않을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가끔 친구와 싸우거나 좋지 않은 언행 또는 남을 흉보거나 손가락질을 한다든가 친구 앞에서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 뒤에서는 마구 헐뜯고 흉을 보는 경향도 있다.
나를 낮추고 남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생활한다면 이는 반드시 친구들 또한 나에게 좋은 인상을 받고 우정의 덕을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항상 남을 존경하고 나를 낮추며 우애 있는 모습으로 학교생활이나 사회, 직장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열매 없는 꽃은 심지를 말고 의리가 없는 친구는 사귀지도 말라고 했다.
옛날 다정한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임금님께서 한 사나이들을 급히 찾아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한 사나이는 깜짝 놀라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인가? 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큰 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나이는 겁이 나서 도저히 혼자서는 임금님 앞에 갈 수가 없어서 자신과 가장 친한 두 친구를 찾아가 부탁하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든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해온 친구들이지만 하고 실망을 하였다.
그러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 세 번째 친구를 찾아가 부탁하였으나 그래 내가 함께 가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승낙을 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은 몇 번째 친구에 해당할까? 평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대하기는 쉬우나 별로 가깝지 않거나 낯선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과 공동체의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쁜 일이나 즐거운 일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슬픈 일 괴로운 일을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친구는 과연 얼마나 될까? 고개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겸손한 마음과 행동이 요구된다.
인간의 진실이란 하나를 주고받는 보답 행위만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진실을 다스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거울은 정말 정직하다. 우리는 거울처럼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행동이 요구된다.
사람은 바로 자기를 낮추면서 상대를 높이는 품위있는 행동은 바로 겸손과 의연함의 본보기이다. 우리는 항상 겸손한 생활의 미덕을 갖고 오늘보다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며 살아가야겠다.
겸양지덕의 대명사 고불 맹사성(孟思誠)
청렴한 삶
맹사성(孟思誠, 1359~1438)은 고려말~조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그는 최영(崔瑩) 장군의 손녀 사위이며, 조부 맹유(孟裕)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순절(殉節)했고, 아버지 맹희도(孟希道)는 출사(出仕)없이 절의를 지켰다.
맹사성은 우왕(禑王) 12년에 문과에 급제, 조선조에 들어와 대사헌, 판서를 거쳐 좌의정으로 세종 17년(1435)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는 조선조 500년사의 명재상으로 황희(黃喜), 이원익(李元翼) 등과 함께 청백리(淸白吏)에 올랐다.
맹사성이 살았던 옛 집, 맹씨 행단(사적 109호)에 가보면 그가 청백리에 오른 이유를 알 수 있다. 8년이나 정승의 자리에 있었던 고불(古佛)의 집은 빗물이 새고 세간은 볼품이 없었다. 나들이 할 때는 언제나 소를 타고 다녀 백성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
하루는 판서가 맹사성의 집을 찾았다. 마침 소낙비가 쏟아졌다. 낡은 집인데다 물벼락까지 맞았으니 여기저기에서 빗물이 새나왔다. 판서의 의관이 다 젖었다. 맹사성은 빗물을 피해 앉으면서 구시렁 거렸다. “하필 손님 계실때 소낙비가 쏟아질게 뭐람.” 이 때 판서는 자기집에 사랑채를 크게 짓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판서는 ‘정승의 집이 그러한데 내 어찌 바깥 사랑채가 필요하겠는가’라며 당장 공사를 중단시켰다.
맹사성은 관에서 주는 녹미(祿米) 외에는 먹지 않았다. 하루는 밥맛이 달라 아내에게 말했다. “이보오, 녹미는 아닌 듯한데 어디서 구해온 쌀이오?” 그러자 아내는 “오래 묵어 차마 먹을 수 없기에 이웃집에서 빌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허허, 벼슬아치가 녹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 이후엔 그리하지 마시오.” 이처럼 일국의 정승임에도 그는 평생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겸양한 삶
청렴한 삶도 삶이려니와 그를 명재상으로 만든 것은 겸양지덕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공복의 예를 갖추고 반드시 대문 밖까지 나가 맞아 들였다. 들어와서는 맨 윗자리에 앉혔으며 돌아갈 때에는 공손하게 배웅했다. 그리고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비로소 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겸손했다.
맹사성이 처음부터 그토록 겸손했던 것은 아니다. 맹사성이 장원급제하여 지방의 군수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근처의 무명 선사를 찾아 스님에게 질문했다. “스님, 이 고을 수장으로 제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 보오?” 그러자 스님은 “착한일 많이 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에 맹사성은 “아니, 그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이런 말을 들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외다.”라며 버럭 화를 냈다. “녹차나 한 잔 하고 가시구려.”
그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잔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다 젖습니다.” 맹사성이 소리치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찻물이 넘 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시오.”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는 황급히 방문을 나서다 문틀에 그만 ‘쿵’하고 머리를 부딪쳤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머리를 한 대 더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겸양지덕을 맹사성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명재상이 될 수 있었다.
맹사성이 고향인 온양에 내려갔다 상경하던 도중이었다. 용인에서 비를 만나 허름한 어느 주막에 들렀다. 과객 하나가 누상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선비는 비에 젖은 허술한 맹사성의 차림새를 보았다. 이런 저런 얘기로 둘은 서로 친해졌다.
선비는 이 노인을 놀릴 양으로 공당(公堂) 놀이나 하자고 했다. 맹사성이 묻고 청년이 대답하기로 했다. “무엇하러 한양에는 올라가는공(公)?”, “과거시험 보려고 갑니당(堂)”, “내가 시켜줄공(公)?”, “그러지 못할 것이당(堂)” 선비는 노인이 과거시험이 무엇인 줄 알기나 하겠냐는 듯 비아냥 거렸다.
비가 그쳐 각자 제 갈길로 떠났다. 과거시험이 끝났다. 면접관 맹사성과 선비가 마주 앉았다. 맹사성은 이미 선비가 합격한 줄을 알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뚝 떼며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공(公)?” 깜짝 놀라 선비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말을 받았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당(堂).” 맹사성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길가 거렁뱅이 견공에게서라도 항상 배울 것이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 공인의 길임을 명심하시게나.” 겸손도 겸손이지만 정승의 말과 행실은 이렇게 소탈하고 소박했다.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에 깃든 겸양지덕
맹사성은 음률에도 밝았다. 풍해도 관찰사로 임명되었을 때 영의정 하륜(河崙)이 그를 서울에 머물게 하여 악공을 가르치도록 왕께 건의할 정도였다. 피리 소리가 들리면 맹사성이 집에 있다는 표시였다. 언제나 피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키면 한 곡조씩 불렀다. 스스로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토록 음률을 즐기고 사랑했다.
그가 우의정 재임시 태종실록(太宗實錄) 편찬 감관사(監館事)로서 감수한 일이 있었다. 태종실록이 편찬되자 세종(世宗)이 한번 보자고 했다.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반드시 후세에 이를 본받게 되어 사관이 두려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가하옵니다.” 세종은 그의 말을 따랐다.
품성은 부드러웠으나 조정의 정사에는 과단성(果斷性)이 있었다. 맹사성은 고택에 살면서 아름다운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4수를 지었다. 이것 이 우리나라 최초의 연 단시조(연이어진 독립된 단시조)이며 훗날 강호시가의 원지류가 되었다. 맹씨 행단 앞을 흐르는 금곡천을 배경으로 만년에 지은 시조로 추정된다. 강호사시가 첫 수는 이렇게 시작된다.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濁醪溪邊)에 금린어(錦鱗魚)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로움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대자연 속에 봄이 돌아오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시냇가에 탁주, 안주는 쏘가리로다
이 몸이 한가한 것도 임금님의 은혜로다
자연에 몸을 맡기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청렴과 겸양지덕의 정신이 없었다면 이런 시조를 지을 수 있었을까 싶다.
일생을 청렴하게 살았고 겸양지덕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맹사성. 그는 진정 재상다운 재상이었다. 재상은 마음과 영혼이 깨끗해야 한다. 물욕이 영혼을 망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세심정혼(洗沁淨魂)의 정치인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위대한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있었던 일화라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기차역에서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1등 칸 앞으로 몰려갔지만 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2등 칸을 타고 왔나 해서 몰려갔지만 역시 거기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3등 칸 쪽으로 갔는데 그 칸의 맨 끝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어보았답니다. “박사님 처럼 위대하신 분이 왜 3등 칸을 타고 오셨습니까?”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4등 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참 겸손하고 소탈한 한마디에 그의 인품이 서려 있습니다. 이처럼 겸양은 사람을 더욱 위대하게 만듭니다.
어느 고장에 무릎을 꿇고 비석을 다듬는 석공(石工)이 있었습니다. 석공은 땀 흘리며 비석을 깎고 다듬어 그 비석에 명문을 각인(刻印)했습니다.
한 정치인이 그 과정을 바라보고 석공에게 다가가 “나도 돌같이 단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처럼 유연하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돌에 명문이 새겨지듯 사람들의 마음과 역사에 내 자신이 새겨졌으면 좋겠소.”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석공이 “선생님도 저처럼 무릎 꿇고 일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답했답니다. 일침을 놓는 대답입니다. 오만과 독선보다 늘 자신을 낮추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사람들의 마음과 역사에 더 깊이 각인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하니 스승이 “길바닥에 있는 돌이다.”라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길에 있는 돌을 집으려면 몸을 굽혀야 한다. 진리란 겸손한 자세에서 나온다. 자세를 낮추면 오히려 더 큰 존경을 받게 된다.”라고 스승이 말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재물이나 권세만 있어도 잘난척 하기 바쁘고,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해 안달합니다. 좋은 곳, 높은 곳만 바라보며 살아가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만물을 주재하는 물을 보십시오. 자신을 낮추고 더 낮은 곳으로만 흘러가기에 크고 너른 바다에 머물러 웅장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위대해 지고 싶다면 겸양지덕(謙讓之德)부터 깨우쳐 가야 할 것입니다.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늘 낮은 곳에서 모두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는 자세로 겸허히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선택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삶의 특정 상황에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양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싸우기로 선택한 싸움에서 이기려고 애를 쓸 것인지 아니면 양보를 통해 지는 길을 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경우도 있다. 많은 경우 이기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나타내리라고 여겨지지만 어떤 때는 지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때로는 양보도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토마스 브룩스는 “양보가 때로는 성공의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양보, 사업상 기업의 양보, 사회 계층간 양보, 심지어는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도 양보를 하게 되면 다툼이 종식되고 결국 양보한 자에게도 이익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양보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양보란 “자기 자리나 물건, 길 등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적극적인 행동이며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의견을 따르고 쫒기도 하면서 내 자신만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손해보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보가 있어야 다툼과 분쟁이 해결될 수 있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이라는 말은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움 마음씨나 행동이다. 양보를 모르는 사람은 교육을 잘못 받았거나 덕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지혜를 모르는 자이고 또 인간으로서의 미덕을 가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속담에도 '양보 속에 힘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양보를 하는 사람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편하니까 양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라는 말이 그래서 있다. 때로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인생에는 행복과 불행의 두 개의 길이 항상 있다. 우리는 매일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어짜피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면 결국에는 승리하는 길, 인간다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양보한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보해서 더 편해지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 謙(겸)은 형성문자로 谦(겸)은 간자(簡字), 嗛(겸), 嫌(겸), 慊(겸)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모자란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兼(겸)으로 이루어졌다. 謙(겸)은 자기를 미흡한 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겸손하다, 겸허하다, 사양하다, 공경하다, 육십사괘(六十四卦)의 하나 등의 뜻과, 혐의(혐), 의심하다(혐) 꺼리다(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겸손할 손(遜), 사양할 양(讓)이다. 용례로는 겸손하고 공경하는 모양을 겸겸(謙謙),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춤을 뜻하는 말을 겸공(謙恭), 육십사괘의 하나인 겸괘(謙卦), 겸손하고 조심성이 많음을 겸근(謙謹), 겸손한 덕을 겸덕(謙德), 겸손하고 청렴함 겸렴(謙廉), 자신을 겸손하여 낮춤을 겸비(謙卑),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는 겸수익(謙受益), 겸손하게 삼감을 겸신(謙愼), 겸손한 태도로 사양함을 겸양(謙讓), 겸손한 말을 겸어(謙語), 겸손히 일컬음을 겸칭(謙稱), 겸손한 태도로 어려워함을 겸탄(謙憚),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을 겸하(謙下),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 겸허(謙虛), 겸손하고 온화함을 겸화(謙和), 겸손하고 말이 없음을 겸묵(謙默), 겸손한 말을 겸사(謙辭), 남을 대할 때에 거만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로 제 몸을 낮춤을 겸손(謙遜), 겸손하게 사양하고 물러감을 겸퇴(謙退), 겸손하게 사양하는 미덕이라는 겸양지덕(謙讓之德) 등에 쓰인다.
▶ 讓(양)은 형성문자로 譲(양)의 본자(本字), 让(양)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襄(양; 다툰다)으로 이루어졌다. 서로 말다툼하다의 뜻이 전(轉)하여 사양하다의 뜻이 되었다. 讓(양)은 사양하다, 양보하다, 겸손하다, 넘겨주다, 꾸짖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겸손할 손(遜), 겸손할 겸(謙)이다. 용례로는 권리나 이익 따위를 남에게 넘겨 줌을 양도(讓渡), 지위를 남에게 사양함을 양두(讓頭), 길을 남에게 사양함 또는 길을 서로 비켜 줌을 양로(讓路), 토지의 경계선을 사양함을 양반(讓畔), 남에게 좌석이나 길이나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물러나는 것을 양보(讓步), 남에게 앞을 양보함 또는 먼저 하기를 사양함을 양선(讓先), 넘겨받음을 양수(讓受), 자기의 소유를 보상없이 남에게 넘겨 줌을 양여(讓與), 임금이 자리를 물려 줌을 양위(讓位),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사양지심(辭讓之心), 물려줌과 내침이라는 선양방벌(禪讓放伐), 상대방 또는 남에게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아니함을 일보불양(一步不讓), 겸손하게 사양하는 미덕이라는 겸양지덕(謙讓之德) 등에 쓰인다.
▶ 之(지)는 상형문자로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이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나 어조사로 차용(借用)한다. 之(지)는 가다, 영향을 끼치다, 쓰다, 사용하다, 이르다, 도달하다, 어조사, 가, 이(是), ~의, 에, ~에 있어서, 와, ~과, 이에, 이곳에, 을, 그리고, 만일, 만약 등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새옹지마(塞翁之馬),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라는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등에 쓰인다.
▶ 德(덕)은 형성문자로 悳(덕)의 본자(本字), 徳, 惪은 통자(通字), 㥀, 恴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悳(덕)으로 이루어졌다. 悳(덕)은 바로 보다, 옳게 보는 일이고, 두인변(彳)部는 행동을 나타내고, 心(심)은 정신적인 사항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德(덕)은 행실이 바른 일, 남이 보나 스스로 생각하나 바람직한 상태에 잘 부합하고 있는 일을 뜻한다. 본디 글자는 悳(덕)이었는데 나중에 德(덕)이 대신 쓰여졌다. 德(덕)은 공정하고 포용성 있는 마음이나 품성, 도덕적 이상 또는 법칙에 좇아 확실히 의지를 결정할 수 있는 인격적 능력, 덕분, 어떤 유리한 결과를 낳게 하는 원인, 공덕(功德) 등을 말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태(太)이다. 용례로는 덕이 높고 인망이 있음을 덕망(德望),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을 덕행(德行), 덕행과 선행을 덕선(德善), 좋은 평판을 덕용(德容),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귀는 벗을 덕우(德友), 덕행으로써 교화함을 덕화(德化), 덕이 두터움을 덕후(德厚), 덕의를 갖춘 본성을 덕성(德性), 덕으로 다스림을 덕치(德治), 잘 되라고 비는 말을 덕담(德談), 남에게 미치는 은덕의 혜택을 덕택(德澤),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덕량(德量), 도리에 닿은 착한 말을 덕음(德音), 덕행이 높고 인망이 두터움을 덕륭망존(德隆望尊), 덕을 닦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덕무상사(德無常師), 사람이 살아가는 데 덕이 뿌리가 되고 재물은 사소한 부분이라는 덕본재말(德本財末), 덕이 있는 사람은 덕으로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 따르게 하므로 결코 외롭지 않다는 덕불고(德不孤),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좋은 행실은 서로 권장하라는 덕업상권(德業相勸), 덕망이 높아 세상 사람의 사표가 된다는 덕위인표(德爲人表),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덕필유린(德必有隣)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