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2]위대한 음식, 최고의 만남 Great Dishes, High Gatherings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 성구成句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이다. 친척(부모형제처자 등)들이 1년에 한두 번 만나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라는 뜻일 터.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나이를 먹어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몹시 슬픈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어제밤에 형님가족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언제 보고 안보았을까? 손가락으로 세어볼 판이다.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그러는데, 돌아가시면 이웃보다 훨 못난 남남이 될 게 뻔하다. 왜 그렇게 됐을까? 왜 그렇게 보기가 어려운 것일까? 흔히 ‘남의 집 식구’가 끼어들기 시작하면 웬만해서 형제 우애가 존속되는 집이 거의 없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그러한 것같다. 아버지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100% 프로 진리"라고 강변해 그때마다 퉁명스럽게 대들고 했었는데. 흐흐. 누구의 책임일까? 우리 모두 ‘부덕不德의 소치所致’임을 인정하자.
아무튼, 장마가 갠 신새벽 무슨 책('우리문화'라는 문화원연합회 기관지)을 뒤적이다, 예전에도 알고는 있었던 ‘기똥찬 문구’를 발견했다. 추사 김정희가 71세에 쓴 일곱자 두 폭의 예서隸書 대련對聯이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최고의 음식(大烹, 이때의 烹자는 삶을 팽이 아니고 요리 팽)은 두부와 오이 그리고 생강과 채소(나물)이고, 최고의 만남(高會)은 부부와 아들 그리고 딸과 손주라는 뜻이다. 첫문장 옆의 협서挾書를 처음으로 찬찬히 살피며 더듬더듬 뜻을 새겼다. <차위촌부자제일일락상락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수요간두대황금인雖腰間斗大黃金印/식전방장시첩수백食前方丈侍妾數百/능향유차미자기인위能享有此味者畿爲人>. 뜻은 이렇다. 이것이(위대한 음식과 최고의 만남)이야말로 촌늙은이(村夫子)의 즐거움 중 제일 가는 즐거움이다/허리춤(腰間에 비록 커다란 황금도장(大黃金印)을 차고/밥상 앞에서 수백 명의 여인이 시중을 든다해도/이런 맛(大烹高會)을 나처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글은 추사의 마지막 해인 1876년 제자에게 써준 것이라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단란한 일상의 소중함이 최고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언제 봐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 일가친척들이 모여 만난(맛난) 음식을 해먹으며(오늘같은 날은 호박전이나 부추전, 고추전, 감자전이 최고이리라), 이야기들(안부, 핵가족 조카 등 근황 묻기 등)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대팽고회> 대련을 읽은 소감이 어떠하오신지? 그 느낌이 피부와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와 닿으시는지? 외람되게 얘기하자면, 나는 진즉부터(4년 전) 이런 기분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을. 새벽에 접한 그 글은 영문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 흥미를 더욱 끌었다.
Great foods are tofu, cucumber, ginger, and wild greens.
Best encounters are with one’s spouse, children, and grandchildren.
This is the greatest joy for old country folk.
Even if one wore a large golden seal around one’s waist,
And hundreds of women were serving food at one’s table,
How many can quite enjoy a taste such as this?
영문도 모르고 간 영문과인지라, 쪽팔리지만, tofu와 spouse가 ‘두부’와 ‘배우자’임을 문장으로 짐작했다. 아주 모처럼 짧은 영어나마 소리내어 읽어봤다. 감회가 새롭다. 솔직히 잘된 번역인지는 모르거니와, 나로선 한 문장도 번역할 줄 모름을 고백하자. 문제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팽고회>라는 네 글자이다. '대팽'大烹이야 자기가 얼마든지 만들어 먹으면 되거니와 스스로 만족(自足)하면 되건만, '고회高會'는 심리心理문제인지라 내가 아무리 바란다한들 인력人力으로 안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핵가족核家族(아내와 아들, 기껏해야 서너 명)이야 그 정도가 덜하겠지만, 대가족(부모, 형제, 처자 등 육친六親 20여명)은 한번 틈이 벌어졌다면 도저히 메울 수 없지 않던가. 구구절절, 자세한 말을 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
1차 장마는 끝난 듯하니 이제 곧 폭염이 닥칠 게 분명하다. 올해는 슈퍼 엘니뇨가 몰아붙인다니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 자갈마당에 수영장(풀장)을 만들어놓고, 초교 1학년 손주녀석을 기다릴 것이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기쁨을 안겨주는 손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고 행복인가. 얼마 전에 이 녀석이 지애비한테 했다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나쁘고 안좋다가도 나만 보면 활짝 웃더라”라는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맞아. 맞아" “all righe. It’s my pleasure. You are my hope”
신새벽, 추사의 멋드러진 회화체 글씨를 보고, 내처 일어나 못쓰는 글씨이지만, 흉내라도 내봤다. 흐흐. 졸필이라고 제발 흉보지 마시라! 오늘 아침은 감자국을 끓일까? 호박국을 끓일까? 찬물에 밥 말아 청양고추를 양념된장에 찍어먹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언제나 대충 열어놓는 대문짝에, 하릴없이 눈이 자주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