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후기가 아니라 답사후일기입니다.
답사 다녀온 다음날의 제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바깥으로 나오니 제일 먼저 산이 저를 맞아줍니다.
산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할 때에는 그토록 저를 막막하게 만들던 산입니다.
하지만 이제 제천에 오면 저 산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것이 하나의 즐거운 일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제가 시골 총각이었다면 저 산을 보며 서울 간 꽃순이는 언제 오려나 생각하겠지만
이제 저는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아내는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전날 답사 때 입었던 옷들을 빨아서 널어 놓았습니다.
신발도 빨아서 장독대 옆에 세워 놓았네요.
하늘을 봅니다.
아직 가을하늘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줍니다.
아내는 그사이 텃밭에서 고추도 따다 놓았습니다.
씻어서 건조시켜야 합니다.
고추 밑으로 바닥에 고정된 절구도 보입니다.
원래 절구로 써야 하는데 별로 쓸 일이 없어서 이와 같이 흙으로 채운 후 채송화를 심어 놓았습니다.
채송화가 귀엽게 피었네요.
채송화는 창고 앞에 화분에서도 예쁘게 크고 있습니다.
갑자기 필을 받아서 이런저런 꽃사진을 찍어 봅니다.
이꽃은 알고 있는데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나지를 않네요.
이꽃은 뭐라고 듣긴 했는데 역시 기억이 나지 않고
이것도 아침에 아내에게 뭐냐고 물어봐서 확인했었는데 또 기억이 안납니다.
옛날엔 그래도 총기있다 소리 들었는데
이젠 뭐 머리는 그저 목 위에 달린 신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이건 확실히 압니다. ㅋㅋ
호박꽃이지요.
빨갛게 잘 익은 고추는 아침에 다 땄기 때문에 조금씩 덜 익은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고추가 아주 실하게 잘 매달려 있습니다.
고추가 실하다는 얘기입니다. 꼬추가 아니구요.
기차길옆 오막살이는 아니지만 옥수수도 잘도 컸습니다.
이제 다 따먹고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면 대충 다 정리될 듯 합니다.
저희 집을 끼고 흐르는 조그만 개울입니다.
저곳에서 놀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한 시 한번 읊어볼까요?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인데 연못가의 봄풀은 채 꿈도 깨기 전인데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라.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리는구나.
카~~~!
한시 한 줄 넣으니 그냥 기품이 사는군요.
저희 집 앞집입니다.
원래 주말마다 오는 집인데 요즘은 거의 안오다가 이날은 부부가 같이 와서 열심히 일을 하더군요.
아내는 이제 고추를 건조기에 넣어 말리는 것같습니다.
지붕 위로 보이는 저 나무는 대추나무입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저 나무에서 떨어지는 대추로 겨울에 달작지근한 대추차를 끓여먹고 있습니다.
옥수수를 조금 늦게 수확한 것들은 저렇게 말려서 제가 좋아하는 강냉이를 해 준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닥입니다.
왜냐?
틀림없이 사카린을 넣지 않고 그냥 튀길 것이기 때문에...
강냉이를 사카린을 넣지 않고 튀기면 글쎄요... 앙꼬 없는 찐빵 맛이라고나 할까...
아내가 이번엔 가지를 썰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하는데 제가 계속 사진만 찍고 있으니까 아내가 심통이 난 모양입니다.
카톡으로 지인들에게 제 흉을 본 모양입니다.
마누라는 열심히 일하는데 남편이 카메라만 들고 왔다갔다 한다고...
늘 그러는 것도 아닌데 잘 모르면서 지인들이 맞장구를 친 것같은데...
이 글을 보면 뜨끔하는 분들이 좀 있을듯!
씽크로나이즈 스위밍을 하는 것처럼 꼬리를 반짝 쳐들은 두 마리의 잠자리가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나무가 예쁘게 쌓인 저 집은 우리집 옆집입니다.
70대 아주머니(여기서 70대는 아주머니임) 혼자 사시는 집인데 대략 나무가 떨어지면
자식들이 와서 저렇게 다 마련을 해 놓습니다.
산골에서 어렵게 자식들을 키웠지만 매주 자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것을 보면
어느 집 자식들 부럽지 않아 보입니다.
옆집도 고추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건 옆집 해바라기
이제는 아내가 감자를 까네요.
아마도 점심은 감자 조림이 될 듯합니다.
우리 집 입구 쪽에 있는 소나무입니다.
예전에는 추석 때 산으로 솔잎을 따러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송편을 찧을 때 필요해서 저와 동생이 같이 산엘 가서 솔잎을 따곤 했습니다.
솔잎을 뽑을 때 힘조절을 잘 하여 솔잎 끝에 이물질이 묻어나오지 않게 따는 것이 요령이지요.
집 뒤쪽으로 가면 마을 뒷부분의 전경이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저 이층집에 사시는 분들은 저희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집입니다.
저집 바깥어른은 교회 장로님인데 절에 다니는 저희와 아무런 종교적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숲 속에 있는 저 집이 그저 밋밋해 보일 수도 있지만
가을에 보면 훨씬 운치 있어 보입니다.
위 사진은 작년 가을에 찍어 놓은 것입니다.
여전히 아내는 바지런히 점심 준비를 하는데
저는 베짱이처럼 카메라만 들이대고...
노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점심 먹고 나면 마늘을 까라고 하더군요.
칫, 내가 뭐 사람되고 싶은 웅녀도 아니고...
그러던 중 아랫마을의 이웃이 와서 같이 점심을 먹고
설거지 한 후 낮잠좀 자다
정자 근처 정리도 좀 하고나니
어느 덧 하루가 갔습니다.
첫댓글 천국이 따로 없네요.
현지 아빠님은 결혼 잘 하신거여요. 나처럼~~
저도 제가 결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계수나무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요.
댓글에 제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원래 세상 이치가 가꾸는이 따로,
즐기는이 따로인 법.
아주 잘 하셨어요. ㅎ
난 하나도 안 찔림.
저도 참새님은 올곧으신 분이라 하나도 안 찔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지.
사진으로 푸는 따뜻하게 사는 생활이야기가 참으로 잘 다가 옵니다 매일 바삐 사는 저랑은 많이 틀리지만 저렇게 사는걸 다들 꿈꾸실걸요? 꽃이름은 맨드라미, 꽃범의꼬리 그리고 층층잔대랍니다
툭하면 일월산으로 야생화 찍으러 다니시문서... ^^
저도 제천 왔을 때만 여유롭습니다. 일하러 다시 서울 가면 전쟁 속입니다.
저렇게 정갈하고 부지런한 아내를 어떻게 아내로 맞으셨을까...나도 그런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대는 그대 나름데로 고운 아내입니다. ㅎㅎㅎ
이번만 그렇지 사실 저도 일 많이 합니다.
저 일하는 사진 올리면 저같은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잔잔한 수필을 대하는듯 합니다.
두분의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워낙 시골 자체가 잔잔합니다.
제천댁 바깥양반의 일기가
제천댁 살림솜씨 만큼 야뭅니다^^
장독대가 저번보다 높아진거 같은데요?
제가 넘 낮다고 했었는데...
누가 했을까요?
글구 채송화는 제가 넘 좋아하는 꽃
내년엔 꽃피면 제가 몇송이 데려 올라구요~
저도 찔리는거 없습네다 ㅎㅎ
아내가 어디서 나무 팔레트 줏어다 올려놓았습니다.
음... 아내가 했다고 하려니 또 제 존재가치가 깎이는 느낌이 드는군요.
바닥 파내고 벽돌 까는 일은 제가 다 했는데...
랑만 남편은
정자 향하는 길목에
가로등도
달아주셨더구먼~~
ㅎ
고추 따는 것, 10회.
가지 말리는 것, 10회.
한 것으로
계산하면 안될까?
계수나무님~
ㅎ
랑만남편이라니요. 꿈같은 말씀이십니다.
사실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머슴남편입니다.
사진에서 가을냄새가 물씬납니다. 두분 너무나 행복해 보이세요^^
글쎄요. 아내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ㅎㅎ
우리가 알고 싶었던 것이 저런 소식이었거든요! 그런데 계수는 그냥 장화신고 비오는 산걷다 철푸덕 앉아서 믹스커피마시는 거 ... 등등 그런거밖에 안보내주더니....역시 현지아빠는 진정한 언론인이십니다 ㅎ ㅎㅎ ㅎ 저는 결단코 그 지인들 톡에 아무말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ㅋ ㅋ ㅋ ㅋ ㅋ 왜냐... 저는 아내분처럼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ㅋ ㅋㅋ
음... 제 생각엔 은사시님이 젤 의심이 가는데...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으니...
전원일기 한편 ~
제마음이 다 편안해집니다.
그렇다면 제 아내는 일용엄니?
제천에 사시나 보네요
이번에 제천에서 영화제 열렸지요
우리 아이가 거기서 10일동안 봉사활동한다길래
제천 한 번 가볼려다가
광주서는 가는 길이 넘 멀어서
포기 ..
아이말이 평화로운 곳이더라고
의림지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더라구요
예, 음악영화제이지요.
올해는 저도 한번 가볼까 하는데 일정이 맞을 지 모르겠네요.
의림지는 비교적 도심쪽에 있구요 저희는 시내에서는 좀 떨어진 산골에 있습니다.
잔잔한 고요한 일상이 수필처럼 잼있슴다........제천이 더 조아질려구해요.....
계절마다 변하는 전원생활도 자주 보여주세요.......^&^
그럼 그때마다 아내한테 일안하고 카메라만 들고다닌다고 또 타박 들을텐데요
신선놀음이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정말 좋군요.
정자에 앉아 주안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신선놀음이라 하심은 과하십니다. ^^
계수나무님 입장에서는 탱자탱자 노시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지만
그 덕분에 저희는 이렇게 고소한 일기도 볼 수 있으니 하루를 알차게 보내신겁니다. ㅎ ㅎ
오랫만에 어린시절 솔잎따던 추억도 떠올리고 저에겐 참 좋은 시간입니다.
현지아빠님~ 자주 올려주셔요. 감사합니다. *^^*
사실 제가 탱자탱자 논 것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계수나무는 제 사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베짱이든 신선놀음이든 시선은 늘 계수를 향해 있음이 보여서 미소가 절로 납니다..ㅎㅎㅎ
산 볼때는 산만 보고 꽃 볼 때는 꽃만 보세요~~ㅎㅎ
계수얼굴이 왜 그렇게 달덩이처럼 이뻐지나 했더니..카메라발 이네요~~..ㅎㅎ
참..이쁘다는 말 밖에...
원래 예전에는 딸만 찍었는데 사춘기 딸에게 버림받은 뒤로 아내에게 앵글을...
(꿩대신 닭이냐고 구박받을 듯)
ㅎㅎ 까짓 꽃이름 모른들 어떠리
아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참 장가를 잘 들으신듯하네요
그 아내좀 가끔 보고싶네요
사진으로 보는 햇빛도
곡식이 팍팍 익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혹시 아내 만나게 되시면 참 시집 잘 간거 같다고도 한 마디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