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이혼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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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중반의 부부면 그동안 티격태격 다투고 살았어도 이제는 서로 적당히 포기하고 합심해 살 때다. 그런데 나를 찾아온 부인은 남편이 이 늦은 나이에 미쳤다며 나를 찾아와서는 울화를 터트렸다.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수상쩍어 추적해봤더니 바람을 피우고 있더란다. 상대는 두 딸을 결혼시키고 혼자 사는 과부라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이 길길이 뛰며 이혼하겠다고 강수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면 돈을 버느라 고생을 많이 했던 남편이 반 토막 나는 재산을 막기 위해 수그러들 줄 알았단다. 하지만 남편은 도리어 잘됐다는 식으로 이혼에 동의했다고 한다.
이런 남편을 보고 내심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해하면서 재산을 다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전 재산을 다 주고서라도 헤어지겠다고 하니, 어찌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즉 그 부인이 원하는 것은 이혼이나 재산도 아니고 남편이 잘못했다고 자기에게 빌었으면 하는데, 오히려 자기가 수세에 몰리니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어찌하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딱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어쨌든 그녀가 남편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살펴보았다. 일단 원인을 알아야 그녀가 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그녀는 늘 남편에게 돈 버는 일에나 몰두한다고 잔소리했다. 특히 남편이 본가에 후하게 할 때마다 결혼할 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까지 해주느냐며 화를 많이 냈었다고 했다. 그래서 공방이 들었는지 두 아들이 출가해 자기만 덩그러니 집에 있어도, 남편은 전혀 아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불만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너무 오래도록 남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살았던 그 부인에게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정 없이 살았던 것이 이혼 위기라는 결과를 낳은 게 아닌가 했다.
그렇더라도 늘그막에 돈이라는 것은 중요한데 어찌하여 그 남편은 전 재산을 아내에게 다 주고서라도 이혼을 하는지 궁금했다. 더구나 힘들게 돈을 벌었던 사람은 돈에 대해 집착하게 마련인데…. 돈에 대해 초연해진 것인지, 그만큼 아내를 싫어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상대 여자가 그만큼 좋다는 말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부인은 내가 자기에게 남편을 가라앉힐 수 있는 특별한 방안을 모색해주지 못했기 때문인지 두어 번 찾아왔다가는 상담을 그만두었다.
2~3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그 부인이 우울증을 견디기 어렵다며 나를 다시 찾아왔다.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있긴 한데, 여전히 답답해서 왔다고 했다.
그동안의 경과를 들어보니, 남편과는 이혼하였단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나는 전에 가졌던 궁금함, 즉 위자료에 관해 물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절반이 아니라 4/5에 해당하는 재산을 다 이 부인에게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자기는 쓸 줄도 모르고 그저 외로울 따름이라며 울었다. 아들네들도 자기네 살기 바빠 자주 찾아오지를 않으니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녀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아, 전남편은 주변머리 없고 인색한 이 부인이 돈을 쓰지 못하고 아들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것을 알았구나!’ 하고 깨달았다. 피붙이인 아들에게 증여할 몫을 미리 아내에게 맡겨두는 식으로 처리하고, 자기는 뒤늦게라도 뜻이 통하는 여자와 살고자 빠져나갔던 것으로 이해했다.
여전히 전남편에 대해 거칠게 말하는 그 부인에게 나는 그 남자가 잘했든 못했든 이미 지나간 대상이라고 했다. 인제 와서 결혼 파탄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고, 정 따지려면 그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자신의 허물이나 보라고 일렀다. 대상이 싫다는 데도 자꾸 잔소리하거나 간섭하면 정떨어지게 마련이라며, 바로 그런 오류를 그녀가 범했던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하는 그런 쓴소리에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녀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부지불식간에 전남편에 대한 원망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그런 것을 듣기가 거북했지만 곧이어 단조로운 생활에서 다른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읊는 후렴으로 들었다.
어느 날 그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느냐며 내게 물었다. 이런 질문에 나는 “그래, 지나간 것은 할 수 없고, 앞으로가 문제이니까 잘 찾아봅시다.” 하고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몰두할 수 있는 게 어떤 것인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취미가 무엇인지, 봉사활동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아니면 종교에 관심을 쏟아보는 것이 어떤지 등을 살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능동성이 딸리는 그녀는 그 어떤 것에도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좀처럼 적극성을 가지지 못하고 의존적이다 보니, 모든 게 기대만큼 흡족지 않아 그토록 잔소리를 심하게 했던 게 아닐까 하고 다시금 확인했다. 그러고 보면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갖추고 남에게 덜 기대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버겁게 하거나 피곤하게 만들어 결국은 고립되고 마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나이가 꽤 들었음에도 어린애 같은 그 부인을 상담하며 이것저것 잔소리하는 언니 같은 역할을 이어갔다. 그나마 자기를 한결같이 상대해준다며 그녀가 상담을 이어가는 것이 다행이었다.
첫댓글 오늘도 상담사례
감사해요.
좋은 걸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녀의 새로운 삶.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