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는 문학강좌에서 또 숙제로 연대기를 써 오라 하여
썼음이니...
1950년 8월 어느 날
쌕쌕이날고 대포우는 전쟁
한창인 무더운 여름날
북청 한 과수원집에서 사내아이 태어나다
모두들 명이 길겠다 하다
1951년 1월 어느 날
강보에 쌓인 아이 안고
부모는 흥남에서 배를 타다
이북에서는 반동이라 하다
1955년 7월 어느 날
피난지 거제도
아버지 뱀구워 아이에게 먹이다
현지인들 아이고 무시라 하다
아들없는 부잣집 쌀 열 가마와
아이 바꾸자 하다
갈등하다 아니 주다
1956년 3월 어느 날
부산 화장막있는 변두리동네
국민학교 입학
세상에 처음 나오다
학교가는 길 기찻길 있어
철로에 못 올려놓다
1960년 4월 어느 날
완장찬 아저씨들 동네를 휩쓸다
커서 저런 완장 차겠다 생각하다
학생들 연일 데모 하더니
위대하다던 대통령 그만 두다
영문모를 일이다
1961년 5월 어느 날
담임선생님 긴장한 얼굴로
혁명 일어났다 하다
새로 나온 지폐 신기하다
1962년 6월 어느 날
서울 화장막있는 동네 산꼭대기
부모 무허가흙집 짓다
아버지 등 뒤로 뻐꾸기 소리 들려오다
1963년 3월 어느 날
정선에서 광부로 일하던 가족 옆집으로 이사오다
정선이란 곳 있음을 알다
1964년 10월 어느 날
영남 호남지방 한발들다
그 영향으로 산꼭대기 움막 늘어나다
덕분에 뒷산의 나무들 자취 감추고
뻐꾸기 소리 더 이상 들리지 않다
1965년 7월 어느 날
열다섯 소년 무전여행을 떠나다
한 달 전국일주
산을 알고 물을 알아
방랑벽 생기다
1970년 2월 어느 날
첫 직장생활 나주에서 시작하다
세들어 사는 집엔 대나무숲 우거져
저녁이면 멧비둘기 잠자고
유월이면 뻐꾸기 울다
1974년 5월 어느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낯설다
붉은 벽돌집 4층 지붕밑 골방에도
비둘기는 찾아오다
대나무숲 속 비둘기 생각나다
1977년 3월 어느 날
서울에 직장 새로 마련하다
그렇게 원하던 완장이 채워졌지만
새벽에 나와
별빛 안고 돌아오는 힘든 일이다
1988년 10월 어느 날
아이들에게 시골가서 살고 싶다 말하다
아이들 무슨 말인지 모르다
1997년 10월 어느 날
직장 그만 두고 산에 가고 싶다
그저 산으로 오르다
올라서는 더 먼 산을 그리다
2004년 8월 어느 날
정선에는 대나무숲 없어
소나무숲 있는 땅 얻다
2007년 12월 어느 날
함박눈 쏟아지는 그믐 밤
오랜 직장세월 끝나다
완장을 벗는 날 하늘 보고 허허 웃다
2008년 5월 어느 날
배낭 하나 꾸려 영월 산 속에 들다
두 달 예정하고 집짓기를 배우다
망치는 못 대신 손가락만 때리다
옆사람 몰래 찔끔찔끔 울다
2008년 7월 어느 날
정선 북평 작은 집 하나 짓다
평생 꿈 이루어지다
자다가도 일어나 웃다
2008년 9월 어느 날
소나무숲 속에서 집들이하다
대문엔 빨간 우체통 세워지다
오랜 방랑 끝나다
2009년 4월 어느 날
마당파고 작은 텃밭 만들다
이웃영감 사부 자청하다
이것 심어라 저것 심어라 말도 많다
시킨대로 하니 풍년이다
2009년 12월 어느 날
인간극장 꽃순이와 나무꾼 보고
단임골 찾아 만나다
형님과 동생되다
고향 이야기 끝이 없다
2010년 3월 어느 날
경로당에서 오라 하다
경로당 막내시대 개막되다
팔십넘은 할머님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며 매일 고봉밥 주다
할머님들 담배피운다 구박하여 아깝지만 끊다
2010년 6월 어느 날
뒷산에선 뻐꾸기 울고
숲 속에서는 오디 익어가고
밭에선 감자가 꽃 피우는 사이
멍멍이는 늘어지게 낮잠 자고
주인은 게이트볼 치고 오다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정선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어느 연대기
정선나그네
추천 0
조회 165
10.06.17 04:54
댓글 30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다음검색
첫댓글 어쩜 시대의 상징들을 그리도 잘그려주셨는지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솔바람이 앞머리를 쓸어올릴것같은 인제가 제고향인데 꼬맹이들이 어른이되면 돌아가야지하고 꿈같은 생각을 합니다. 멋지게 살고계신님의 모습을 한눈에 다 담아버렸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그 아름다운 인제가 고향이시군요. 아이들이 크면 당연히 가셔야지요...
정선나그네님! 연대기를 신선 같이 쓰셨네요~
삿갓 난고 김 병연은 영월에 머물고...
정선나그네님은 나그네 아닌 신선으로 정선 북평에 머물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상이시길 바랍니다~
오디도 많이 따세요~ 어떻게 따시는지 아셨쮸?*^^*
매번 신선이라니 과찬입네다. ㅎ 오디를 털기보다는 하나하나 따는 재미가 더 좋아서...
어찌 일도 생생하게 기억을 다 하시는지 그저~~~ㅎㅎㅎ
항상 건강 하시고 늘 좋은날 되세요.
감사 합니다.
나이드니 옛 기억이 살아납니다그려...ㅎ
참 담백한 글입니다..더불어 머물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언제나 드리는 말씀이지만 공감하여주시니 제가 감사하지요.
나그네님의 일대기.....ㅎ
요루케 이해가 빨리되는 것을..
도이칠란드는 정선님 코드와 영 일거란 생각을 했는데..ㅎㅎ
현대사의 질곡을 다 거치셨네요.
이북이 고향인 것을 처음 알았네여...^^*
가끔 도이칠란드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이번엔 여행으루...
어머 좋으네요 정선님...저도 한번 써봐야겠어요.부모 무허가집짓다.뻐꾸기소리 듣다~~
네, 마음먹기 따라 글이란 쓰기 쉽다는 것을 요즘 느낍니다.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니드래요. 여기 잘못되었다 저기 잘못되었다 지적만 받드래요.ㅎ
현대사가 한눈에... 어렵던 시절 다 거치고 숙제 다하시고 평생의 꿈 이루시고 지금이 가장 행복한 나날인듯 합니다. 뒷산에선 뻐꾸기 울고 멍멍이는 늘어지게 낮잠 자고 주인은 게이트볼 치고 오고... 평화로운 전경입니다.
말씀대로 어려웠던 시절은 흘러가고 평화로운 전경은 펼쳐지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네요.ㅎ
정선 나그네님, 혹시 아는분 같네요, 저희 아버님도 흥남이 고향이시고,
프랑크 푸르트 옆나라 살아서 자주 다녔고, 홍제동에서 어린시절 보내고....
그동안 글 속에서 나그네님의 삶이 짐작이 갑니다....
마지막 노울을 멋있게 장식하는듯 앞으로도 행복한 날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그러고보니 말씀 나누면 혹 아는 분이 아닐까... 하기도 합니다.ㅎ
연대기중에서 결혼하신 연대기는 안보이시네요 ㅎ.. 결혼연대기는 언제이신지요 정선에는 혼자 사시는지요? 일생이 일목요연 하게 잘 설명하셨네요~
그렇네요. 빠졌어요.ㅎ
이번엔 지적 덜 받을것 같네요....ㅎㅎㅎ 그런데 결혼연대랑 아내와의 사연은 없네요....괜히 아픈곳을 건드렸다면 죄송해요...
그래도 지적 많이 받았어요.ㅎ
정말요,,,인생에서 제2의 길을 걷는 결혼 이야긴 없군요,,,자녀분 태어나는것도,,,,ㅎㅎㅎ,,,여자들의 흥미거리가 이렇지여,,,
괘니 빼먹어가꼬...ㅎ
남자애들이 철로에 못놓고 기차 지나가는 걸 기다리던 코흘리게 남친들이 생각나네요. 강냉이, 엿, 눈알사탕도 생각 납니다.덕분에 꼬마시절 떠올리며 웃어봅니다.
그 때는 어려웠던 시절임에도 그리움이 밀려오지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간촐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삶의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어떤 위인전보다도 아름다운 인생길이네요...
덕담 감사합니다.
정선에서 기거하시는 님은 곳 정선아리랑의 가락을 빼 닮은듯, 우리네 역사의 시대상을 올려주시어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볼수있게 해주셨습니다. 오늘의 편안함은 지난날의 생이 열정적이었기에 가능한것이리라 생각해 보며 건강과 행복한 날들만이 계속되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언제나 행복한 나날들이 되기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제 여생을 보낼 곳을 찾았고, 또 편히 쉬고 있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