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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몇달 후면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에 퍼다가 올리는 육이오 사변 동영상들 1 부
이석호(Salzburg) 추천 0 조회 75 25.04.24 11:44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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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4.25 00:58

    첫댓글 화천호 근방에서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24,000여명을 사살하고 전사자 시체를 화천호에 수장(水葬)시킨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1955년 1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화천호를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고 성대한 명명기념비 제막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 25.04.25 01:00

    파로호 전투 기념을 위해 1955년 파로호비가 건립되는 모습.

  • 25.04.25 01:08

    육군본부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지암리·파로호 전투'를 보면 중공군의 춘계공세 때인 1951년 5월 24∼30일 화천 파로호 인근에서 국군과 미군에 의해 사살된 중공군 숫자는 2만4천141명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포로는 7천905명이다.

  • 25.04.25 02:22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 Battle of Tabu-dong)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북한군의 의지를 꺾었다.

    배경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후 북한은 무기와 훈련이 부실한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승리하여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을, 7월 5일에는 오산 전투에서 미군까지 격파하고 7월 20일 대전을, 7월 말 목포와 진주, 8월 초 김천과 포항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미군의 강렬한 저항으로 교착상태에 빠졌고 치열한 전투가 몇 차례씩 벌어졌다.
    8월 3일 유엔군은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낙동강 방어선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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