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란 대도시에 당시 인구는 1백만 승산이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예상한 만큼 장사는 덜되지만 수익은 발생되었지요.
그때가 1985년도 광주 사태가 나고
조금 시간이 흘러지만 광주에는
그 앙금이 남아 있었고
백화점 사장이 당시에 김대중 선생님을 후원하였다고 들었습니다.
판매금액은 백화점에서 가져가고
어음을 받는
구조로 이익금과 원금을 회수하는 조건입니다.
두 달째 접어들어서 이제 판매금액을 받을 날인데
그만 백화점이 부도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때도 광주비행장으로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 기억이 납니다.
광주에서 꿈이 살아지고 당시 손해금액은
2천여만 원이니 춘천에서 제법 쓸만한 양옥집
한 체 값 내 나이 35세에 처음으로 맞는 시련이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 뒤에도 몇 번을 더 이용한 광주비행장
삼십대에 비행기 타고 사업을 하다가 망한 나
이방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마 오타가 나오겠지요.
폰으로 즉석 글을 남깁니다.
간밤에 늦게 잠을 청하니 머리도 아프고
입안도 씁니다.
빗살무늬토기 탄소측정을 다시해 보니 다른지역 보다도
무려 3000년이나 앞섯다고 합니다.
그리되면 세계문명 발생국중에 하나가 한강이 된다고 합니다.
신나는 소식입니다
첫댓글 사장에서 머무는 계기가 된 사건 ㅎㅎ
그후론 더 이상 꿈은 버리고 업종 전환을 하여서
또 실패를 하고 근근히 살다가 어느 건물주 갑질에
화가 나서 패션을 떠나서 살게 되었지요.
이제 8개월 쉬고나니 좀 나태해 지는것 같아서
결로방지, 수도 동파방지 등 창조와 마켓팅에
연구와 판매대행등 을 추진중입니다.
디자인 세계는 재미가 있어요^^^
광주에서 땅맞고 소주값 많이 썻지요 ㅎㅎㅎ
오늘은 세줄방 청소에 구술땀 흘리고
이제 쉬는 중 입니다
일찍 사업을 시작 하셨네요
실패에서 배운다고 하는데
실패 했을때의 아픔이
정말 크지요
감사합니다
28세에 시작하여 당시 피혁패션에 큰 꿈을 가지고
시작을 하자마자 본 손실에서 결국 혜어나지못하고
이렇게 살게 되었지요 ㅎㅎ
없는 미천에 은행대출 어음발행등
정싱없이 빛진거 값다보니 40이 넘드라구요
나중에 계산해 보니 화김에 마신 술값이나
빛값은 금액이나 비슷하더군여
상처가 깊었지요
실패의 1탄 입니다 ㅋㅋ
아픔과 함께 했던 광주 비행장이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당시 광주에는 화니 한미 태산등 몇개 백화점이 있었지요
대출이 막혀서 부도를내고 말았습니다
시대에 역행한 분에게 투자를 한것이 잘못이지요
광주 비행장에서
높이 날으려고 하셨던
그 꿈이 이루어지지못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셨을 그림자 신사 윤 기명님
그래도
지금 찾는 광주 비행장은
행복이지싶어요
그뒤가 더 재미있지만
다음으로 미룰께요
고은 걸음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