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질을 하며
오강현
이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질하는 저녁이다
지금까지 한 올 한 올에 신경쓰며 살다보니
삐뚤삐뚤하게 걸어왔다
가르마를 가르듯 다시 정리하는 시간
거울 앞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며
나를 응시해 본다
이십대 삼십대에 하나 둘 보이던 흰머리가
이제는 검은 것보다 흰머리가 더 많음을
빗질한다고 하얀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은 삶이든 하얀 삶이든
헝클어진 과거를 빗질하면서
가지런히 지나온 삶을 정리하자
자르고 잘라도 자라나는 사람들 관계 속
복잡하게 꼬이고 정리가 되지 않아도
천성이 반곱슬인 인생
비가 올 때면 더욱 곱슬곱슬해지는 삶
빗질을 해도 소용이 없다
봄날 오후 봉당에서
보자기 두르고 어머니가 손수
머리를 잘라주시고
가지런히 빗어주실 땐
이렇게 곱슬은 아니었는데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눈을 덥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가르마를 만들고 하얀 머리와 검은 머리
회색의 머리까지 굴곡 많던
지나온 시간을 빗질한다
[작가소개]
등단시인,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시 시의원
[시향]
사람은 마음이 예뻐야 말도 예쁘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다 마음도 말도 이쁠 수가 없다는 것이 한계가 아닐까? 뉴욕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다는 감옥에 수감된 엘리아스는 “약속들, 내 미래에 대한 약속, 내가 무엇인가 되겠다는 약속은 이제 다 사라져버렸다.”라고 스스로 자기를 포기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실패를 겪고 나면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혹은 나이가 많아서 힘에 부친다고 쉽게 포기한다. 그런 것도 서러운데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나를 발견하고 실망하다가도 그 측은함, 곧 가다듬고 빗질하듯 헝클어진 삶을 돌아본다는 것, 참 다행이다. 잠언과 같은 시를 대한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도 있겠지만 아제 시작인 것도 있을 것이다. 모세는 40까지 왕자로, 80까지는 숨어 살며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았다. 그의 나이 80에 이르러서야 야훼의 부름을 받고 히브리노예의 지도자가 된다. 무엇이라도 누구를 탓하지 않을, 헝클어진 과거를 빗질하며 오늘을 정리하고 시작하는 가짐, 성공은 거저 오는 선물이 아니다.
글 : 송병호 [시인/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