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 온 카드 이상용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고 은퇴한 형님같은 동기로부터 카톡이 날라 왔다. 평소에도 가끔 카톡으로 연락을 한다. 나이도 벌써 70이 넘었다. 그러나 동안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지를 않는다. 함께 기숙사생활도 해서 가깝게 지냈다. 캐나다에 거주하며 베트남 호치민에서 밥퍼의 책임자로 일을 하고 있다.
내용은 “이목사 주소 좀 보내주소”. 간단 명료했다. 답을 했다 “뭐, 좋은 것 주실래요. 청주시 서원구 충렬로 23 한진 빌라트 101호입니다”. 즉시 답이 왔다. “오래전 받은 성탄카드를 감사하게 보관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는 중 다시 보냅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 간직 합니다.” 나는 “고맙습니다. 기념으로 남기겠습니다”. 라고 답을 보내면서도 “모든 것을 정리하는 중” 다시 보냅니다. 하는 말에는 마음이 처연해졌다. 아니 무엇을 정리한다는 말인가? 인생을 정리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캐나다 생활을 정리한다는 것인가? 그이상은 묻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도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삶을 마무리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산다.
물론 미국에서 살다가 캐나다로 가서 시민권을 가지고 현재는 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살 때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서양 사람은 항상 유서를 써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자신도 써서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고방식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아직도 임종할 때쯤 자식들을 불러놓고 유서가 아닌 유언으로 남기는 것이 전례가 아닌가? 아니면 유언도 없이 그냥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끝까지 재산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식들의 효를 유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서를 쓴다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께름칙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째든 이것 때문에 사후 가족 간에 갈등이 일어난다. 형제간에 한바탕 전쟁이 일어난다. 법정으로 가면서 형제가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마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관습과 전통이 있으니까? 몇 칠이 지난 후 누런 각봉투가 도착했다. 봉투를 개봉해보니 성탄 옆서 겉봉투와 안의 성탄카드를 코팅해서 보내왔다.
겉봉투 왼쪽 상단에는
360-102
청주시사직동607-34
영광교회 이상용드림
SEOUL-KOREA 옆에는 100원짜리 우표세장이 붙여 있었다
. 오른쪽 하단에는 Hyung-sik Lee
New-Gate Korean Presbyterian Church
754 Indian Rd, Toronto Ontario 2E3
CANADA
키드 속에는
이형식 목사님께
목사님의 목회사역과 가정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도우시는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모든 선한 싸움에 승리하시고 주안에서 원하시고 계획하는 바를 다 이루시는 새해가 되시길 빕니다. 1993. 12. 9 이상용목사
라고 쓰여 있다.
달필이 아니어서 때로는 내가 써놓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반 정성을 드려 쓴 글씨다.
24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성탄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많이 보내고 받던 시절이다. 일일이 손으로 정성을 들여 글을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국에 가서 붙이던 시절이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그 많은 성탄 카드와 연하장에는 사람 사는 정이 묻어있었다. 오늘날의 풍속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손때 묻진 않았으나 문자나 카톡, 혹은 영상으로 간단하게 인사와 안부를 전한다.
. 손때 묻고 정이 담겨있는 그 당시의 주고 받은 많은 카드와 연하장은 어디 있는가? 세월과 함께 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20여년이상 고이 간직하다가 카드를 코팅을 하여 돌려준 그 정성이 고맙다. 태평양을 왕복한 우정을 나누던 카드는 그 당시 편지를 썼던 50년 이상 된 나무 책상서랍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