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올 여름 장마철 대비조로 주 내내 수천평이나 되는 건물옥상 방수작업을 하느라 땀 좀 흘렸다.
주말인 어젠 가족일행 서울나들이를 했다.
오전에 아내랑 서둘러 텃밭에 토란이랑 열무를 후다닥 심고, 정오 경 딸애랑 셋이서 강남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막내는 특근 끝낸 후 통근버스편으로 상경키로 되어 있었다.
신사동에서 강북행 버스편으로 환승, 의젓하게 늘어선 빌딩숲들.. 잘 포장된 왕복 12차선 아스팔트 시가..
한강을 건너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이 보이는 언덕배기 달동네를 지나 우리는 청계천 부근에서 내렸다.
오는 길에 딸애가 어디서 주워들은 풍문인지..강남의 제법 규모 있는 빌딩 한 채를 가리키며 "저 건물은 누구누구가 선물투자로 6000억을 벌었다가 곧 바로 3000억을 날리고서는 (손 털고?) 그 남은 3천억 자금으로 사들인 거"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얼릉 커서 저런 걸 하나 장만했음 싶다 했다.
어미와 딸애는 평화시장 안으로 들어갔고, 무향은 청계천에서 도넛 한 개를 사들고 쩝쩝 씹어가면서 그 부스러기들로 삐둘기 새끼 한 마리 꼬셔각고서는 함께 재밌게 놀고 있었다. 담배연기를 그놈 두 눈깔에 푸푸 불어줘가면서...
한참을 지나서야 모녀가 노랑색 송월타올 열 장, 잭니클라우슨지 뭔지 하는 접는 우산 두 개, 비와이씨60수 메리야쓰 내의 한 아름...사들고 나왔다.
점심조로 꼬마마야깁밥 한두입 떼우고 촌틱한 우린 경성풍물들 이것저것 눈요길 위해 천천히 걸을까 하다가 다리들이 좀 가엽다 싶어 종5가에서 버슬 타고 남대문시장으로 갔다.
남대문시장에서 쟤들이 바지니 티니 이것저것 골라보고 있는 사이 무향은 오래 전에 사먹어본, 할아버지가 굽던 크다란 도넛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그 도넛가게를 찾아 골목을 샅샅이 뒤지며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보기도 했지만 통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간 어쩜 그 할아버진 pass-away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큰 실의에 찬 채, 꿩 대신 닭이라고 기름기 주루룩 흐르는 맛대가리 별로인 천 원짜리 튀김 도넛 한 갤 사들고, 아주 멋있어보인다는 고급 선글라스를 이마 위에 걸친 채 도넛을 한 입씩 뜯으며, 다른 한 손엔 아메리카노 따끈한 커피잔을 쳐들고서 복짭한 시장골목 여기저기 닥치는대로 기웃거렸다.
한 골목어귀에 어떤 사내가 큼직한 D컵....아니, G컵도 훨씬 넘을 듯 싶은 불룩한 브라자를 거꾸로 뒤집어 걸친 채로, 한 장에 이삼천 원짜리 각양각색 싸구려 바지저고리들을 맨땅에 제 멋대로 수북히 펼쳐쌓아놓고서는 우람한 목청으로 '골라 골라'를 쉼없이 외쳐대고 있었다.
장사가 꽤나 잘돼보이는 것 같았다. 아줌씨랑 할멈씨랑 떼거리로 모여들어 이것저것 골라대는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장사꾼 아저씨는 돈 받고 거스름돈 내어주느라 오줌쌀 여유조차 없어보였다.
"이명박이는 이렇게 바쁠 때면 꼭 자기에게 전화질을 한다."...며 휴대폰을 귀에 갖다대고서 제법 역정을 부리기도 했다.ㅋ
남대문시장 볼일이 끝난 우린 난전에서 파는, 아주 쬐그마한 천원짜리 빨간 수박 한 토막을 사들고 치사하게시리 셋이서 교대로 번갈아가며 한 입씩 웃음 가득 깨물었다.
사방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고 의류도매상들은 새벽장을 위해 일찌감치 철수,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일행은 좀 시장타 싶어 신세계백화점 지하로 가서 요길 좀 하려 했으나 마땅히 먹을만 한 게 보이질 않았다.
대개가 니글거릴 듯한 먹거리들 밖에 없었다.
시원얼큰한 국물이 당겨 우린 다시 명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동에 이르러 그럴듯해 보이는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해물짬봉 같은 게 먹고 싶었던 거다.
입구에 들어서며 옛날에 무향이 근무했던 빌딩을 가리키며 그 건물 입구 거기서 한 때 딸애를 잃어버렸고..거기서 좀 지나가.. 저기 저 명동파출소에서 너를 찾았다는 얘길 딸애에게 해주었다.
그런데 명동에서 중국음식점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개똥도 약하려면 없다더니...
충무로 부근까지 왔다리갔다리 하며 뒤져보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어떤 한 건물 2층에 '中國語' 講座라는 빨강 글씨체의 간판을 애미가 언뜻 발견하고서는.."아! 저깄따!!"..하며 흥분조로 외쳤다. 이~런.ㅋㅋ
도중에 건물 3,4층쯤 돼보이는 곳에 짬봉전문 4,000원이란 선전구가 한 두번 보였으나 날림제품일 것만 같아 제대로 중국집을 찾고 있었다.
명동성당 지나 그 동넬 다 벗어났을 때쯤 겨우 한두 집 눈에 띄었다.
삼선짬봉 둘, 자장면 하나 시켜먹었다.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얼큰시원했다.
반주 겸 백알 한 잔 생각났으나 만류로 참기로 하고 귀가하여 한 잔키로 맘 먹었다.
막내는 신혼의 친구랑 약속이 있어 강남에서 그와 함께 하기로 했다며 연락이 왔다.
중국집을 나와 담배 한 대 폐부 깊숙히 맛있게 빨아당긴 후, 우린 우리집 바로 앞이 종점인 강남발~시골착 직행버스에 환승키 위해 그 인근에서 강남행 시내버스를 탔다.
딸애는 막내가 걱정되어 둘이 함께 늦차로 오겠다길래 떨쳐놓고 영감할망 둘이서만 귀가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동네마트에 들러 막걸리 한 병+ 담배 두 갑을 챙겼다.
근래 젤 많이 걸었다며 다리가 아파 죽갔다 엄살을 피우는 아내의 탱탱해진 종아리를 한참 주물러 준 후,
막걸리 한 잔 들이키고 살포시 그녀를 감싸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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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향 옆에는 막걸리병과 로스구이 한 접시..그리고 담배와 라이터 & 빈 커피잔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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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고...담배 좀 고만 피우쏘이~? 쯧쯧...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