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은 봄 가믐이 시작될때 피어난다.
그때는 보릿고개라고 불리는 춘궁기 이기도 하다.
우리 어렸을 때는 먹을 것이 귀한 때라 찔레나무의 웃자란 새순은 좋은 간식 거리가 되곤 했다.
새순의 껍질을 벗기고 씹어 먹으면 들큰한 맛도 있어 먹을만 했다.
찔레나무의 꽃과 뿌리등은 당뇨에 효과가 뛰어난 약재로 예전부터 민간 요법의 약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찔레나무 상황 버섯은 항암 호과가 뛰어나서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된다.
일제시대에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 이라는 노랫말에 찔레꽃 붉게피는~ 이라는 가사는 좀 어울리지는 않지만 토양의 상태에 따라 연한 분홍색꽃이 피는 경우도 드믈게 있다.
ㅡ2023년5월12일 한강공원에 핀 분홍 찔레꽃 ㅡ
찔레꽃에는 찔레에 대한 안타까운 전설이 있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는 해마다 상국인 원나라에 조공과 함께 처녀들을 공녀로 바쳐야 했다.
공녀로 끌려간 대표적인 여인이 기황후이다.
기황후는 공녀로 끌려간뒤 원의 황제 순제의 귀비가 되었다가 아들이 북원의 황제가 된후 황후가 된 고려의 여인이다.
그 무렵에 깊은 산골에서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공녀로 끌려 가지 않으려고 숨어 살던 찔레와 달레라는 자매가 있었는데 남장을 하고 얼굴에 검댕칠을 하고 아버지의 약초로 캐러 산엘 갔다가 관원에게 붙잡혔다.
자매는 병든 아버지를 돌봐야 하니 한명만 잡아 가라고 사정하여 동생은 남고 언니인 찔레만 원에 공녀로 보내어 졌다.
다행히 찔레는 기황후 만은 못해도 인정 많고 마음씨 좋은 고관집에 공녀로 들어가 부족한 것 없이 편하게 지냈으나 고향에 두고온 아버지와 동생이 항상 걱정이 되어 주인에게 부탁을 하니 마음씨 좋은 주인은 10년만에 찔레를 고향에 보내 주며 아버지와 동생을 원에 데려와 보살피며 살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찔레는 뛸 듯이 기뻐하며 한달음에 고향집에 돌아와 그들을 찿았으나 집은 허물어지고 가족들도 보이지 않았다.
옆집 할머니 말이 찔레가 잡혀간 다음해에 아버지는 목을 매어 죽었고 달레는 그충격으로 머리가 돌아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미친듯이 동생을 찿아 헤매던 찔레는 어느 눈이 많이 오든 날에 산속에서 눈에 덮혀 죽었고 다음해 봄에 그자리에 눈처럼 흰 꽃이 피어나니 사람들이 그 꽃을 찔레꽃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올해도 벌써 찔레순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