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화와 정의를 추구해도 다른 요인들 때문에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아브넬과의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을 평화적으로 합병할 수 있었지만, 요압이 독단적으로 아브넬을 암살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의 한계점일 뿐 하나님의 한계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한계 상황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디딤돌로 삼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되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합시다.
27,30절 편협하고 독선적인 태도가 평화를 깨고 정의를 손상할 수 있습니다. 요압에게 아브넬은 적이자 자기 동생을 죽인 원수일 뿐이었고, 그에게 정의는 아브넬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지향하는 넓고 대안적인 통치를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도피성인 헤브론의 성문 안에서 아브넬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훼손했고(참조. 민 35:9-34; 수 20:7), 다윗의 의도를 거스름으로 왕의 정의를 훼손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부르짖는 정의가 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정의를 훼손하진 않는지 살펴봅시다.
31-37절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좋은 길은 진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였을 때, 백성은 정황상 다윗이 사주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를 뿐 아니라, 그의 상여를 따라가 무덤 앞에서 통곡했으며, 애가를 지어 아브넬의 억울하고 허망한 죽음을 슬퍼했고 스스로 금식했습니다.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윗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유다의 백성은 다윗이 비열한 술수를 쓰는 군주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이 아브넬을 죽이지 않았으며 자신들에게 호의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진심 어린 애도가 백성의 오해를 불식시켰고, 요압이 갈라놓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봉합했습니다.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진실과 진심보다 나은 방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