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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먼저 하나님께 묻는 기도의 사람”
+ 본 문 : 역대상 14장 8절 - 17절 (구약 p.632)
8.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대항하러 나갔으나
9.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로 쳐들어온지라
10.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11. 이에 무리가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이르되 하나님이 물을 쪼갬 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12. 블레셋 사람이 그들의 우상을 그 곳에 버렸으므로,
다윗이 명령하여 불에 사르니라.
13.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14.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15.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16.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쳐서,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
17.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역입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다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승리하십시오. - 행복하십시오.’
자동차 운전자들이 알아야 할 기본 상식 가운데 하나가 길을 떠날 때,
자신이 가고자하는 목적지를 향한 코스를 정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경제적이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 살던 곳에서 어딘가 목적지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한국은 물론, 심지어 세계 어느 나라이든지 자동차를 렌트하게 되면,
한국말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든 쉽게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지도를 보고 찾아가거나, 모르는 길일수록 물어서 가야 했습니다.
한번만 물어선 안 됩니다. 가다가 묻고 다시 묻고, 계속해서 묻고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 동양 사람에 비해서 서양 사람들은 사고 방법이 아주 합리적이기 때문에,
숫자 개념이나 생활 방법이 매우 합리적이고, 아주 정확합니다.
그래서 우리네에 비해 융통성은 없지만, 그 대신 실수는 적습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네는 융통성은 많지만, 그 대신 실수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 동네에서 제일 비싼 땅값이 평당 얼마예요?’ ‘한 1-2천만 원‘ 합니다.
‘광주까지 몇 리나 됩니까?’ 하고 물으면 ‘이삼백 리 될거에요" 하고 대답합니다.
평당 천만 원 오차가 나고, 100평에 10억이나 오차가 나는데도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리의 오차가 100리가 나는데도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음식 문화의 경우도 서양 사람들은 빈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만 놓고 시작합니다만,
우리는 상위에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어 겹치기로 음식 그릇을 올려놓고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떡이나 과일 같은 후식까지도 미리 상위에 올려놓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초대한 사람들의 숫자에 맞게 음식을 준비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초대에 승낙을 했으면 반드시 가서 자기 몫을 먹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초대받지 않는 사람은 평소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 가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잔치 집에 초대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체면이라는 것을 앞세워 그냥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잔칫집에 예상보다 많이 와도 아무 걱정 없습니다.
수저 더 놓으면 되고, 국솥에 두어 바가지 물 붓고 소금치고 간을 맞추면 됩니다.
그리고 밥은 주걱으로 깎아 담으면 됩니다. 그래서 정이 넘치고 훈훈한 것은 좋지만,
이런 관습 탓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확성이 모자라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초대에 간다고 해 놓고 말 한마디 없이 안 가기가 일쑤인가 하면,
온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가 밀어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제 경험으론 모르는 길을 가다가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정확하지 못할 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묻고 물어도 부정확한 것이 사람의 지식입니다.
때론 상담을 통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할 때, 전화나 편지로 상담하는 경우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상담을 통해 내린 결론은 예수님이 대답이고, 열쇠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주제도 예수님입니다. 인생 문제의 해답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인류가 풀지 못하는 숙제의 답안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풀지 못해 고민하는 모든 삶의 문제의 해답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녀들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생업의 문제의 해답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묻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이 그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르바임 골짜기를 침공해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다윗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향해서 공격해 오기 시작합니다.
졸지에 당한 기습이어서, 다윗과 예루살렘 성 사람들은 미처 손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때 다윗 왕은 군대를 동원해서 싸우러 나가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하고 하나님께 먼저 물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으로서는 먼저 전쟁 준비를 하고 나가서, 먼저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다윗 왕은 싸우러 나가는 일보다, 하나님께 먼저 묻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다윗 왕의 신앙 자세는,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신앙 자세입니다.
사실 다윗 왕은 싸움에 능한 장군이요, 특히 불레셋과는 많은 전쟁을 한 백전 노장입니다.
그는 일찍이 소년 시절 물맷돌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넘어뜨린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전군 총동원령을 내리고,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쟁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때가 급했습니다.
왕이 된 직후였기 때문에 정부의 틀이나 진용도 채 갖추지 못했을 때였고,
다윗 왕 자신도 정부 각 부처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특별히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를 점령하고 진 쳤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 성과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수도 예루살렘을 공략하기 위해 수도 인근 위성 도시를 점령했던 것입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언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묻고 할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 왕은 자신의 전쟁 경험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싸움에 능한 장군이었고, 상황이 매우 급박했지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하나님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거듭 ‘자신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면 싸움에 능한 다윗이 상황이 급박한 때에 하나님께 물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긴 했습니다만, 숱한 우여곡절을 거친 후 비로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사울 왕의 경호실장으로 발탁되어 왕의 사랑과 신임을 받으며 정치 수업을 하고,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앞길이 평탄 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다윗을 발탁한 사울은,
그를 죽이기 위해 정사를 제쳐놓고 추격대를 만들어 뒤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고난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약하다, 사람 뜻대로 안 된다." 는 진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 왕은 고난 때문에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 말씀을 보면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고 시편 119편 71절을 보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주제를 파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허물이나, 잘못을 시시콜콜 알고 기억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자기 자신의 허물이나 약점이나, 잘못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고난 속에서, 자기를 찾았고 겸손의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묻는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싸움에 능한 장군인 다윗이 상황이 매우 급박한 때에,
하나님께 물은 두 번째 이유는, 신앙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주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라고 물었고,
16절을 보면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쳐서"
묻기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었으면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대답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답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그러나 대답을 들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절박한 문제 때문에 매일 1시간씩 성전에 나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첫날, 그는 소리 지르며 울면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라.’ 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계속 기도했으나, 아무 응답이 없자 그는 기도제목을 바꿨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럴 수 있습니까? 왜 응답을 안 하십니까? 왜 대답 안 하십니까" 하고,
큰소리로 다그치는 기도를 하자,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아무개야, 너무 성내지 말라. 네가 기도하던 첫날, 하도 절박한 사정을 얘기하기에,
네 기도가 끝나면 응답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기도실을,
뛰쳐나가더구나. 그 다음날도 그랬고, 그 다음날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나한테도 대답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 아니냐? 제발 대답할 기회를‘ 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기도, 응답받는 기도는 묻고,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두 번씩이나 블레셋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 난 후에는 대답대로 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묻는다." 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묻고 듣는다." 는 것을 환상, 환청과 혼동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발견하는 길은 "성경 자체" 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밝히고, 가르쳐 주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고 듣다가 깨닫고 감동하고 결단하는 신앙 행동이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싸움에 능한 장군 다윗이 상황이 매우 급박한 때, 하나님께 두 번이나 물은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먼저 묻는 기도의 사람, 다윗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먼저 묻는 기도의 사람, 다윗이 얻은 것은 크게 이기는 승리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거기서 그들을 치고 이르되,
하나님이 물을 흩음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고 했습니다.
중요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묻고 듣고 그대로 했더니 이겼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묻고, 듣고, 그대로 했더니, 크게 졌다면 묻고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묻고 듣고, 그대로 순종하면, 실패가 있을 수 없고, 반드시 이깁니다.
대학에 수석 합격한 학생에게 기자가 "수석 합격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그 대답은 "부모님 말과 담임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는 말입니다.
자식 잘되라고 타이르는 부모님의 말에 따르고, 순종하는 자식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묻고 그대로 순종한 사람이라면, 그의 성공과 승리는 보증 수표나,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묻고, 듣고, 순종함으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먼저 묻는 기도의 사람, 다윗이 얻은 것은 큰 승리와 함께,
명성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다윗의 명성이 열국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열국으로 저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의 승전 소식은 블레셋은 물론 당시 중동 세계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승리 전략에 혀를 내두르며, 역시 다윗은 당할 자가 없다며,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한마디로 다윗 왕의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리고, 그 뜻을 따라 기다립시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 고 권면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세익스피어는 "적이 강하면 승리도 크다." 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내 고집대로 밀어붙이려고 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둡시다. 한 박자 늦추고, 한 걸음 잠시 멈추고,
"주님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는 기도를 많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기울여 그 뜻을 깨닫고 헤아리며, 주님의 응답을 겸손하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며,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이 오늘 설교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구태여 묻지 않아도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노하우를 가졌고,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때가 급했지만, 다윗 왕은 먼저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렸습니다.(10절)
이처럼 급박한 때에 다윗이 하나님께 물은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요,
그의 돈독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먼저 묻는 기도의 사람,
다윗 왕이 얻은 축복은 크게 이기는 승리와 명성이었습니다.(1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승리와 명예를 얻으시고, 나아가 크고 작은,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