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롬 2: 19 맹인의 길 롬 2: 20 어리석은 자의 교사
롬 2: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
본 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얻게 된 유익이 언급되어 있다.
1]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셔야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셨기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구체적으로 '구원 계시'를 가리키지만 좀 더 폭넓게 하나님의 섭리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계시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요청된다.
2]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본 구절에 대해서는 해석자들마다 약간씩 견해가 다르다.
예를 들어 틴델(Tyndale)은 '선악에 대한 경험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모펫(Moffat)은 '종교에 있어서 생동력 있는 것에 대한 의식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영역 성경 중에서 이 구절을 '도덕적인 구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한다(NEB).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칼뱅(Calvin)은 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선악을 구별하는 것을 동시에 인정한다. 이러한 해석은 메튜 헨리(Mattew Henry)같은 주석가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본문이 뜻하는 바는 칼뱅의 첫 번째 견해에 더 접근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 절은 유대인들이 단순히 선악 간에 판단한다기 보다는 율법의 선한 교훈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 선한 것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그 선을 옳은 원리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율법에 따르는 선한 삶을 살지 않은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1: 21) 이방인들의 어리석음과 동일하다.
롬 2: 19 맹인의 길 -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
1]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성경에서 맹인과 어두움에 있는 자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다는 것은 어둠 가운데서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사 42: 19-20 - 19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 도다.
* 사 56: 10-12 -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 마 6: 22-23 -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 요 1: 5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고후 4: 4 -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요일 2: 11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여기서도 바울은 역시 중복어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2]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두움에 있는 자들의 빛'이라는 표현은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들의 사명을 시사한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자기의 등불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토라를 소유한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명마저도 자신들의 특권을 자랑하는 도구로 삼고 말았다.
오늘날 성도들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라고(시 169: 105) 고백하면서 빛 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처럼 말씀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자랑하려 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롬 2: 20 어리석은 자의 교사 -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
1]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본 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을 분사 구문의 형식으로, 직역하면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양을 가지고서'가 된다.
이에 대해 칼뱅(Calvin)은 이유를 나타내는 분사 구문으로 이해하여 '지식과 진리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라고 해석했다.
영역 성경 중에서도 이 구절을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because)를 사용하여 번역했다(NIV).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흐름상 적합하다고 본다.
'지식'과 '진리'는 특별한 의미상의 구별 없이 중복어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Black).
'규모'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르포시스'(*)는 '모양'이나 '외모'를 뜻하지만 외적인 모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참된 표현'을 의미하기도 한다(Barmby).
혹자는 '모르포시스'를 '본질'(*, 휘포스타시스)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Black).
간혹 학자들 중에는 '모르포시스'를 유대인들의 '외식'과 같이 '과장된 외형'(Calvin)이나 '경건이 없는 겉모양'(Matthew Henry)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성격상 적합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유대인이 율법을 통해 가진 지식이나 진리가 거짓되다든지 알맹이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한 참된 지식의 본질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Murray, Barmby) 그 지식을 좇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행하는 것을 책망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영적으로 '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가 영적인 의미에서 상징하는 바가 '연약한 존재' 또는 '어리석은 존재'로 나타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본 구절도 앞 절과 마찬가지로 중복어법에 의한 강조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 고전 14: 20 -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 엡 4: 14 -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잠 22: 15 -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훈도'란 용어는 헬라어 '파이듀테스'(*)로 보통 '선생'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디다스칼로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만, 좁은 의미에서 '파이듀테스'는 잘못을 범할 때 채찍질도 가하는 '엄한 선생'을 가리킨다.
3]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은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이라는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갈 6: 3-5 -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본 절과 같이 행함 없는 자랑을 위선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갖지 못한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특권으로 말미암아 더 큰 행악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신뢰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인간의 도덕적 무능력에 지나친 기대를 가짐으로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가운데서 자신을 속이는 잘못을 범하였다.
또한 율법주의자들은 그 이웃들에게 자신도 질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을 지우는 반율법적인 잘못을 범하였다. 더 나아가 그들의 신념은 자신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 중에 지도적인 인물을 대표적으로, 가상적으로 들어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한다. 그들은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긴다.
그들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형식을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다.